00062 CHAPTER 6. 연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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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라이네령에서 꼬리를 잡아냈다는 보고가 있던 날로부터 정확히 3주째 되는 날. 그러니까 오늘.
나는 하던 일도 던져두고, 파안대소하며 배를 잡았다. 맙소사. 맙소사!
내게 보고를 올린 가엘은 내 앞에 몸을 굽히고 무릎을 꿇어앉아 침통한 기색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나는! 푸하! 흐하하! 으하하하하! 이 세계에 와서 이렇게 웃어본 적이 몇 번 없었다. 어쩌면, 단 한 번도, 없어. 아직 잡고 있던 펜에서 잉크가 흘러 내 손을 꺼멓게 적시고 있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아차릴 정도였다. 기겁하여 다가온 총집사가 내게서 펜을 일단 받아갔다.
나는 내가 마시고 있던 찻잔을 들어 올려 내 손 위에 찻물을 부었다. 일견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짓을 하면서도 나는 웃는 낯이었다.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으며 연방 피식피식 웃었다. 웃음의 끄트머리다.
아, 진짜 이럴 건가.
정말 이곳 영지민이 영주인 날 죽이고자 하는 의뢰를 받아들이겠다고 나섰다고?
이거, 이거, 이거 너무 재미있게 돌아가지 않는가!
잉크는 그다지 닦이지 않았다. 물든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나는 입을 열었다.
“경이 그럴 것 없잖아.”
“……각하.”
“본래 인간들이란 게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야.”
내가 그래서 기사들이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을 ‘기꺼이’ 한다는 말도 못 믿는 것이고.
아, 그런데 이거 내 손 어떡하지. 총집사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반짝반짝 흔들어보이자, 총집사가 입 모양으로 무어라 뻐끔뻐끔 말한 뒤에 집무실을 나갔다. 무어라 하는지 못 알아들었다.
나는 낮게 웃음을 흘리며 기사의 머리 꼭대기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앉은 자리에서 책상 너머로 그를 보자니 시야가 영 그렇다. 결국 일어나서 책상을 돌아 나왔다. 그리고 미친 것처럼 실실 웃으며 물었다.
“경은 내가 영지민들을 아낀다는 걸 믿나?”
“예, 그렇습니다.”
“무얼 근거로?”
“예?”
“무얼 근거로 그렇게 믿느냐 물었어.”
“자주 시찰을 하시며 민심을 살피시지 않습니까.”
“그게 근거가 되나?”
“…….”
그는 침묵했다.
그 침묵은 내게 그리 대단한 분량을 갖지 못한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경은, 내가 여기서 그자들을 잡아들여 죽이라 하면, 그 명령을 근거로 내가 영지민들을 함부로 대하고 있다고 생각할 건가?”
“당치 않습니다!”
여태 잔잔하게 대답했던 것과 다르게, 이 질문에는 소리를 높였다.
저런, 그렇게 질색하며 대답할 것 없었다. 그저 물어본 거니까. 어쨌든 그가 그리 대답함으로써 좀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 그럼, 잡아오게. 은밀히. 보는 눈이 없어야 해. 지하 감옥에서 보세.”
“존명.”
“그리고 내일부터는 다른 무리도 있는지 찾아보고.”
“존명.”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킨들 라이네 산맥을 영지에 포함하고 있는 라이네의 기사들인 이상 험한 일은 피할 수 없는 기사들이지만, 이런 식으로 굴려진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섬주섬 일어나는 그를 가늘게 뜬 눈으로 보다 입을 열었다.
“수고하네.”
중년의 기사는 그런 가벼운 치하로도 이루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웠다. 나는 이 모든 임무들이 무엇을 위함임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본성에 머무르는 날보다 라이네령 영지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날들이 더 많은 저들도 내가 시찰할 때 외에 어디를 자주 가는지 필시 들었을 것이기에.
기사가 나가자, 내가 향한 곳은 어느 한쪽의 벽이었다. 벽에 박힌 양 받침대 위로 걸린 것은 라이네의 검이다.
“음…….”
나는 그 앞에 서서 두 팔을 뻗었다. 들어 올려 받침대에서 걷어내고 있자니 손 안에 와 닿은 무게가 묵직했다.
먼지 묻지 않은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오른 손을 좀 더 오른 쪽으로 움직여 검 손잡이를 잡았다. 스르릉 드러나는 검신은 시퍼런 날이 서서, 순간 오싹해질 정도였다. 나는 일그러진 내 얼굴 형태를 반사하는 칼몸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이는 상징적인 검이다. 이미 백 년 정도 나이 든.
“…….”
아, 마음이 바뀌었다.
나는 손가락 세 마디 정도 열었던 검을 다시 검집에 박아 넣었다. 아직은 아니다. 아무 것도 확실치 않은 지금은, 라이네의 명예로운 물건을 들고 휘두를 때가 아니었다.
라이네는 이제 내 가문이 되었다.
가주가 되었기에 내 가문이 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 받아들였기에 나의 가문이 되었다. 따라서 라이네의 명예를 지키길 원한다. 쓸데없는 데에 라이네를 쓰고 싶지도 않으며, 그러나 써야 할 곳에는 반드시 라이네의 이름을 쓸 것이다.
그러니 이 밤에 일단 족치고. 죄가 드러난다면 그때는 이것으로 죄인들을 죽이는 게 좋겠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한 후에 다시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아무렴, 무엇을 해도 신중히 해야지. 나는 약 세 달 반 전 오드리나를 떠나오기 전에 걸음걸음마다 건강과 안전을 우선할 것을 쥰과 약속했다. 그 어렸던 게 어느새 커서 나를 걱정하는 게 기특하기 그지없다. 쥰에게서 염려를 한 번 들어본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들을 때마다 마음이 일렁이곤 했다.
전 공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밤에도 그렇다.
쥰은. 내 동생은. 그리고.
그리고……, 시드니는.
“……흐음.”
똑, 똑. 각하. 나는 느린 웃음을 나직하게 웃으며 검을 받침대 위에 도로 올려두었다.
할리가 입실을 청하고 있었다.
“들게.”
그리고 손을 내리며 느낀 건데, 잉크 탓에 손가락에만 장갑을 낀 것처럼 볼썽사납다. 이미 말라서 검집에는 아무 것도 묻지 않은 것 같지마는.
아무 의미 없이 손에 훅 숨을 불며 물었다.
“뭔가.”
“각하.”
“…….”
“저도 움직여 주십시오.”
나는 멈칫했다.
삼 주 전부터 할리는 모든 임무에서 빠져서 오로지 나를 지키는 일만 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젊은 탓이다. 그는 전 공작을 충분히 겪지 않았고, 그에게 보인 나는 세상 염려 없는 피에로 같은 면면뿐이다. 나를 모르는 건 저 가엘을 위시한 기사들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그들은 전 공작이 일을 처리하는 냉혹한 핏길을 함께 겪어온 바 있었다.
인즉슨 그들은 내가 죄인을 죽여도 막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일 사람들이란 말이고, 이 사람은 그걸 견디지 못하고 날 외려 죄인 보듯 볼 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할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잠시 맞받아치던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하! 오늘 왜 이리 웃게 되는 일이 많지. 웃음기 가득한 가벼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경, 지금, 나한테, 나를, 아, 음, 그거네. 나를 거스르는 건가?”
“…….”
“움직이지 않겠다고 했는데. 왜 말을 안 듣지? 혹 나한테 명령하는 건가?”
“각하, 결코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뒤통수, 머리카락 뿌리가 있는 살갗이 삐쭉삐쭉 화닥닥 섰다. 이것은 화가 끓어 명치께의 열이 급속도로 확 오를 때의 느낌이다. 음, 이상하다. 화난 적 없는데. 정말 화나지 않았어.
의아해하며 잉크 묻지 않은 손을 올려 뒤통수를 만졌다. 그 순간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짧게 울리다 사라졌다. 나는 손을 내리며 눈을 살짝 찌푸렸다. 거 참.
내가 내 몸을 살피는 동안 젊은 기사는 초조하게 내 반응을 기다리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나는 약간 불쾌해하며 몸을 살피는 것에 집중했다. 뒤통수의 살갗이 서는 느낌도, 귀의 소리도, 빠르게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졌고, 또 다른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마지막으로 뻐근한 목을 한 바퀴 돌린 후 흘끔 그를 보았다.
여기 와서 나와 지나치게 친해졌던 게지. 아니, 그것도 아닌가. 실은 할리는 아무 문제도 없는 건가. 조금 전 발언에도, 딱히 문제가 없던 건가. 그새 말라붙은 입 안을 혀로 훑고 걸음을 옮겼다.
의자에 앉아 왼 팔걸이에 팔꿈치를 걸쳤다. 몸을 기울여 왼 손의 손가락 끝에 뺨을 받치고 물끄러미 할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 조금 전 할리에게는 크게 문제가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문제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 넓게 지나갈 수 있었던 부분. 내 과민반응이었던 것 같군.
나는 한숨 쉬듯 웃고 입을 열었다.
“내가, 경, 지금 기분이 참 좋네. 그래서 지금 들떠서 경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도 같아. 그러게 사람 참, 왜 하필이면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나.”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 아. 그럴 건 없고. 그럼 내가 미안해지잖아.”
느른하게 그의 사죄를 물리쳤다.
약간 기울인 고개 탓에 시야도 함께 기울어져서 그럴까, 아니면 말없이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그럴까, 둥둥 떠다니던 기분이 점점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그에 나는 의식적으로 입 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어쩌다 할리가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사죄하게 되었는지를 떠올렸다. 자신도 써 달라 했었나, 이 사람.
글쎄.
“경.”
“예, 각하. 하문하십시오.”
“경은, 내가 사람 목숨을 거두라 하면 거두겠나. 그건 경이 생각하기에 정당치 않은 명령인데도 말일세.”
이 뜬금없는 나직한 말에 할리가 어찌 대답할지부터 보자.
전 공작과 오래도록 함께 한 기사들은 믿을 만한 기사들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충성이 고스란히 내게도 오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정 부분 아직도 전 공작을 마음에 품고 있다.
내게도 그들처럼 나를 평생 그리워하며 나를 섬길 기사들이 필요했다. 이른바 기사들도 일부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천천히 자연스럽게 해도 될 일이라고 생각해 시간을 두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가끔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른 눈을 슬며시 찌푸리고 음흉하게 웃음을 그렸다. 의외로 할리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차분하게 답했다.
“각하께서 그 어떠한 명을 내리셔도 제가 그 정당함과 부당함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각하께서 내리는 모든 명령이 제게는 정당합니다. 따라서 명하신다면 거두겠습니다.”
“길 가던 서너 살 아이를 죽이라 해도?”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서임 시의 맹세를 떠올리라. 떠올릴 기회를 나는 굳이 짚어주었다. 그러나 할리는 여전히 침착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죽이겠습니다.”
“십계조의 맹세는 어쩌고.”
“그 맹세에 따라서 주군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저는 각하께서 그런 명령을 하신 이유가 있으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
“저는 각하, 저의 주군, 고귀하신 당신을 믿습니다.”
이거 흥미로운 대답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사들은 전 공작에게 서임을 받았고, 전 공작의 사망으로 그 서임의 주인은 자연스럽게 내게 연결되었다. 그 유산을 원치 않는 기사들은 얼마든지 떠날 수 있었으나 라이네의 기사들은 전부 남았고. 그렇게 내 기사가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내게 저리 분명한 표현으로 충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건. 참, 흥미롭다. 재미있어.
나는 일 분여를 더 기사의 얼굴을 살폈다.
“경. 경이 내 보좌를 해볼 텐가?”
나른하게 눈을 뜨고 은근하게 묻자 할리의 눈이 멈칫 커졌다가 돌아왔다.
“보좌를 한 명 더 두려 하십니까?”
“나도 언젠가는 상경할 테고, 그때엔 여기에 누구 믿을 만한 사람을 남겨두고 싶어서 말일세.”
그렇다고 그를 믿고 있다는 건 아니다.
이곳에서 공작의 대리인처럼 세워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영지에 관련한 보고서 등의 서류들을 모아 오드리나로 보내는 일을 하는 건 총집사였다. 그 총집사의 나이가 상당히 있는 데다, 여기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베르덴이 떠난 후의 내 주변에 대해 구상해 두어야했다.
그러나 베르덴이 머지않아 발리앙으로 돌아가 후작이 될 것이라는 건 나와 현 발리앙 후작과 베르덴 밖에는 모르는 일이니 할리에게 말할 수 없는 바.
기사보다는 문에 특화된 영식 한 명을 보좌로 뽑는 것이 일견 좋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나는 경계해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공부를 주로 하던 사람들은 기사에 비하면 저희 뿌리가 있는 가문을 단호하게 거절해 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편견이라 해도 좋으나, 음, 가문과 연을 끊고 주군에게 집중할 정도로 배짱이 좋은 건 아무래도 기사들이지.
나는 내 봉신들과 지나치게 사이가 좋은 몇몇 시종, 시녀들을 두는 것으로 족했다. 보좌마저 그러면 내가 불안해서 살 수가 있겠나. 혹은 열 받아서. 라이네의 봉신이라 하여 마냥 충성심 강한 것도 아니라 어쩔 수가 없다.
그러므로 머리만 어느 정도 돌아가 주고 어느 정도 강한 충성심만 있다면 보좌는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곧 하품이 나올 것 같은 걸 참고 풍선처럼 부푼 목소리로 할리를 다독였다.
“생각해보게. 아직은 시간은 있으니.”
마침 총집사가 문소리를 내기에 입실을 허락하고 기사에게는 다정한 축객령을 내렸다.
나가는 할리와 교차하여 우아하게 들어온 총집사는 내 손 위에 하얀 가루를 뿌린 후, 함께 들고 온 넓은 그릇 안에 담긴 물로 내 손을 문지르고 씻겨주었다. 잉크는 거짓말처럼 지워졌다. 나는 신이 나서 잉크를 더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총집사는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보다가, 내 명에 따라 가루와 그릇을 놓고 퇴실했다.
그리고 수 시간 후, 그날의 밤에 나는 나를 죽이겠다고 나섰던 내 영지민들을 취조했다. 결국 피가 튀고 피가 식어간 그 자리에 오드리나에서 데려온 몇 기사들과 더불어 할리도 있었다.
나는 신문하여 알게 된 정보로 일순 제정신이 아니게 되고 말았지만,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고자 애썼다. 아니, 아니다. 나는 끝까지 이성적이었다.
내 검에 손가락과, 팔과, 종아리와, 마지막으로 목이 달아난 죄인의 몸을 내려다보다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 거의 멀쩡하게 살아있는 나머지 두 죄인에게로 눈을 돌렸다. 의자에 앉혀져 칭칭 묶여있는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덜덜 떨거나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보아 알겠지만 이게 바로 내가 흉악한 자들을 신문하는 방식이다.”
미로골목에서 몇 번이고 보았었다. 그리고 범죄자들의 심심풀이로 고문을 당하던 사람들을 구해내던 내가, 이제 여기서 사람을 고문하다 죽였다.
내 도덕심, 내 양심, 모든 게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다. 내가 해왔던 일들 중 가장 악했고, 해왔던 살해 중에서도 가장 악했고, 살해의 의미 중에서도 가장 악했다. 이 일을 아는 자들을 몰살하여 죄를 더하지 않는 이상 나는 평생 악한 공작으로 남을 것이다.
그야말로 글로 쓴 에본느보다도 더 독하고 더 손쓸 도리 없는 악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입 열지 않는 저 자의 손가락을 자를 때, 내 영지민의 손가락을 자를 때, 한 번을 망설이지 않았다. 각오는 정말 되었나, 하는 마지막 질의조차 스스로 던지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내려오기 전에 이미 각오를 하고 왔다.
권선징악의 결말이 내 생의 결말로 남는다 해도 이제는, 나는, 악한 죄를 지은 나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럴 지라도 내 살의가 가서 마지막으로 누울 자리를 찾아내야겠어.
나머지 두 사람의 앞으로 수 걸음 옮겼다. 피가 필시 튀었을 얼굴로 양 입 꼬리를 올려 웃고, 써늘하게 물었다.
“궁금하군. 피 흘리지 않으면 혀를 움직이기가 그리 어렵더냐.”
“흐, 흐으…….”
“허나 너희 같은 것들도 내 날개 아래의 영지민이라고, 쓸데없이 죽이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저 죽은 자를 죽이며, 죽은 자에게서도 동료를 살리려던 자들에게서 중요한 것들은 얻어냈다. 이 남자들은 다른 일에 쓰는 편이 좋지.
나는 라이네의 검을 집에 돌려 넣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너희는 어떻게 그 괴물들에게 독을 건넸는지, 어디서 건넸는지, 함께 가서 내게 보여줬으면 한다.”
“아……. 그, 그럼.”
“살려주지.”
검집을 잡은 손을 허벅지 옆으로 내리며 너그러운 눈길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짓는 웃음은 직전과 같은 웃음인 지라 친절하게 보인다면 그건 그들의 착각일 뿐일 테지만.
나는 한참을 그들을 보며 빙그레 웃고 있다가 다시금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또 그 혀, 그 손, 그 발, 피 흘리지 않고는 올바로 사용하지 않겠다면 무엇 하나는 반드시 떨어져 나갈 것을 명심하고, 순순히 안내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물론, 내가 묻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말할 마음이 들면 환영한다.”
그러나 너희는 종국엔 죽을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삐죽 웃어 주고 몸을 돌렸다. 안내가 끝난 후 저 놈들을 살려보낼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의뢰를 받아들여 괴물들에게 독을 건넨 것으로 저들의 죄는 충분했다. 꼴에 거친 바닥에서 구른 놈들이라고, 여기까지 알아내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자정 직전 즈음부터 시작했으니 이미 새벽이리. 지하감옥이라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옅은 한숨을 쉬고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저들의 입을 막아두고. 나는 오늘은 일이 많으니, 내일 날 밝는 대로 출발하는 것으로 하지. 모두 수고했네.”
그러자 기사들은 턱 소리가 날 정도로 오른 손을 왼 가슴에 올리고 허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