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9 CHAPTER 6. 연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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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우리는 블린성을 출발하여 신전을 향했다. 도달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라이네령에 속하는 다른 봉신 가문의 영지에도 물론 신전이야 있지만, 중앙령인 레룩스에 있는 건물만큼 크지는 않았다. 건물의 크기는 신앙과는 상관이 없으나, 아무래도 중양령에 거주하거나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고, 또 라이네 가문은 역사가 긴 가문이기에.
수도에 있는 신전들을 제외하고 각 지방에 있는 신전들은, 그것들이 위치한 지방의 영주 가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세속에 찌들어 부패했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처럼 신권과 정권이 분리되어 있던 적이 없을 정도. 그러나 오래 전, 아주 오래 전, 모종의 일을 시작으로 신전에서 장례를 치르고, 그곳에 영원히 잠드는 것이 몹시도 명예롭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인식이 번졌다. 당시의 대신관은 그 일을 허락하였으며, 그때부터 각자 영지에 신전을 지은 유력 가문의 요인들은 사망 후 신전에 안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바뀐 대신관이 자성의 목소리를 냈지만, 특권계층은 신전을 놓지 않았고, 자성에 힘을 실어줄 정권과의 연결이 미약해진 신전측은 각 가문과의 연결을 끊지 못했다.
결국 신전을 유지하고 신관들이 치료하고 기도하며 여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를, 사후 신전에 뿌려지도록 축복하는 것으로 표하겠다며 자기 위안에 가까운 타협안을 내어놓은 게 고작.
그러나 그 장례가 반복되고 이어져 오니, 이제는 역사였다.
따라서 당연하게 이루어질 이번 장례 역시 그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이다.
나는 오드리나에서부터 동행해 온 기사들의 손에 의해 전 공작의 육신이 거목 아래에 눕혀지는 광경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루를 내실에서 보낸 시신이 거치는 마지막 과정.
할 일을 마친 기사들은 내가 서 있는 외복도 바닥까지 물러난 후, 전 공작을 향해 마지막으로 엄숙한 경례를 올렸다. 길고, 고요했다. 나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의 일부가 된 그 각 잡힌 경애의 표현에서 차마 눈을 돌리지 못했다.
곧 경례를 마친 기사들은 내게도 예를 갖춘 뒤에야 약 2주 간 시신이 담겨있던 관을 들고 신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기어이 함께 온 가주들은 안쪽의 중앙 모임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예스럽고 간소한 장례를 참관하는 건 직계가족의 특권이다. 나는 기사들의 뒷모습에 따로 눈을 주지 않고, 선 자리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계속해서 보았다.
“…….”
뚫린 사각형 넓은 천장에서부터 햇빛이 쏟아졌다. 겨울임에도 푸른 이파리들이 선명하게 빛나서 견딜 만하게 눈이 부셨다. 장례를 목전에 둔 시신이 있음에도 이 기이하도록 평화롭게 보이는 모습을 좀 보라.
이해할 수 없는 평온이었다.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눈동자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눈물이 이제나저제나 흐를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에 사로잡혀있었다. 툭 치면 흔들리고 말 평정. 따라서 현재에 이르러 가지게 된 차분함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멍하고 아무렇지도 않고.
나무를 중심으로 사면을 둘러싼 외복도는,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사각 천정으로부터 햇빛이 닿는 곳도 있었고 닿지 않게 어두운 곳도 있었다. 나는 그늘진 곳에 서서 나무와 햇빛, 시신을 보며, 저 환상에 끼어들지 못했다. 끼어들지, 않았다. 내가 기억할 전 공작의 마지막 모습이므로.
……에본느의 아버지. 당신의 마지막이므로.
“각하.”
나와 다르게 빛 닿는 곳에 서 있던 신관이 마침내 나를 부르며 나를 보았다.
조용한 곳에 울리는 저 목소리 또한 비현실적인 평화의 일부다. 나는 평화를 보던 눈을 돌려 신관을 잠시 보았다가, 다시 한참을 나무와, 햇빛, 그것의 볕과, 땅과, 에본느의 아버지를 보았다.
아, 나는 이 광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바르르 떨리는 턱과 아랫입술을 깨닫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신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신관은 천천히 손을 올려 모으고 기도를 시작했다. 말없는 축복을 받는 시신에 빛이 깃들었다…….
……잠깐, 아니, 아니, 잠깐만.
나는 한눈에 들어오는 신관과 시신을 지켜보고 있다가, 손을 들어 앞으로 더듬더듬 뻗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목 뿌리까지 차오른 탓이다.
그러니 마지막,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벌고 싶었다. 전 공작의 시신이라도 조금만 더 이 세상에 남아서, 잠깐만, 잠깐만, 잠시라도
내 입이 꺽꺽 벌어졌다.
“잠……!”
그러나 이 미련은 늦었다.
전 공작의 몸이 점점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빛이 흘러넘칠 정도로 그득해졌을 때 몸은 팍 부서졌다. 소산된 최후의 최후. 나무 기둥 아래의 땅으로 파스스 내려앉는 그 가루들을 나는 말없이 응시했다.
한 치 정도 뻗었던 손이 천천히 오므라들다, 툭 떨어졌다.
그리고 건조해진 눈이 더는 버티지 못하여 감기려 할 때까지 최후의 광경을 보다, 그제야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이 울음의 전조임을 알고 있었다. 응당 가리고 응당 참아야 할 것. 턱을 꽉 쥐었다.
그러나 진정 끝이다.
나는 그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각하.”
신관의 나직한 부름이 다가왔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손이 다시금 추락했다.
나는 그늘에서 몇 걸음 나와 외복도의 길 왼쪽 가장자리와 흙이 맞닿는 곳에 섰다. 마침내 내 발 끝에 빛이 닿았다. 내가 마치 침묵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내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손을 올려 모으고 기도를 시작했다.
이 장례를 치르도록 도운 신관과, 신과, 전 공작을 위하여.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고개가 점점 떨어졌다. 기쁘지 않다. 기도를 하건만 기쁘지도 감사하지도 않아. 뱀에 감긴 생쥐처럼 외려 숨이 조이고,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보는 마지막 하늘…….
“…….”
기도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나무 꼭대기 위로 보이는 하늘이 작다. 내 입에 멍한 실소가 걸렸다가 사라졌다.
아하. 아. 흐흐. 이 덤덤하게 식은 감정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다. 포기. 이것은 포기다.
더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약 두 주가 지나서야 인정하고 실감한 후에야 드는 체념. 마지막까지 발악하다가 더는 피할 수 없어 순순히 끌려가게 된 자의 말로, 그 감정.
저 사람은 죽었으나 어쩌면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고 헛된 희망을 품다가, 그 희망이 실은 말도 안 된다는 걸 알기에 내가 미쳤구나 자책하다가, 그러면서도 희망을 놓지를 못하다가, 시신이 사라지니 그제야 나는.
그제야 나는!
얽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전 공작의 죽음에 대하여 캐면서도 저 사람은 죽지 않았다고 갈팡질팡하던 미친 혼란이라니. 아, 이것이다. 지난 이 주간 내 행보가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도 이 자리에서 깨달았다. 나는 그의 죽음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죽음 자체도.
그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도. 믿고 싶지 않았다.
-말씀하신대로입니다. 공통된 제3의 독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전 공작께도, 그리고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각하께도.
어제 총집사는 내게 튼튼한 동아줄도 내려주었고, 썩은 동아줄도 내려주었다. 제3의 독이 발리앙과 관련이 있다면 전 공작의 죽음은 오로지 내 책임이며, 그게 아니라면 나는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아아, 인정한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몹시도 마음이 가벼워졌었다.
그러나 섣부른 생각이었더라.
그대로 음독을 계속하셨다면 필시 두 분 모두 졸하셨을 터인데, 도중에 멈췄다고 했다. 이번에 전 공작 각하의 몸이 회복하지 못한 것은 그 독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며, 음독은 길게는 수십 년 전부터 짧게는 수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고도. 했다.
혹 수십 년 전이라면 나와 상관이 없다. 인즉, 발리앙과도 상관이 없다.
-전 공작께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짐작하신 듯 보였습니다.
전 공작이 범인을 알았다면, 그리고 그 범인이 발리앙이었다면, 베르덴은 두고 볼 것도 없이 쫓겨났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가 제대로 된 추리를 했을 때의 일이다.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았지만, 나는 가장 간단하게 풀어보았다. 나와 전 공작의 인생에서 도중에 사라진 원수나 적을 떠올려보면 공통된 사람이 몇 없다. 나는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전 공작이 그의 동생과 얼마나 살벌한 사이였는지 들은 바가 있고.
그러나 전 공작이 이에 대해 알리고 숨을 거두었다면, 그걸 들었을 법한 사람들은 오드리나에 있지, 이곳에는 없었다. 내 짐작을 확인받는 건 오드리나로 돌아간 후. 그때까지 나는 저 죽음을 질 것이다.
평생 풀리지 않는다면 평생 지게 되리.
그러나 아마도, 전 공작은 나 때문에 사망했다. 끝끝내 변명하고 핑계 찾아 무얼 하나. 공작의 정적이든, 발리앙이든, 그가 내가 자객들에게서 회수한 침에 찔렸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조금도, 변치 않을 거야.
“…….”
죄송합니다.
해야 할 말을 찾았기에 마침내 기도를 이었다. 떨리는 한숨이 넘쳐흘렀다.
……죄송합니다.
신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무리 짓기까지 나는 사죄했다. 직후 조금 우스워지고 만 것은,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오른 탓이다. ‘이들은 활자라 하던, 그리하여 나는 상처받지 않겠다던,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던 나는 어디로 갔나.’
모았던 손이 양 다리 옆으로 되돌아왔다. 기가 막힌 탓에 입 꼬리가 작게 비쭉 올라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헤르조와 갈라서고 그 상처에 수치스러워하던 것도 이제는 사치다.
나 죽기 전에 다시 이곳에 올 일은 없기를 바랄 따름. 라이네 가문에 남은 직계는 이제 나와 쥰뿐이었다.
“…….”
이렇게 되니 차라리 글대로 흘러가 주길 바라게 된다. 아리엘을 사랑하여 ‘당연하게’ 목숨을 이어가던 청년들처럼, 쥰도, 다른 누구라도 그렇게 ‘당연하게’ 살아가주면 좋겠다. 글대로 흘러가는 와중에 위험해질 내 목숨은 내가 챙길 테니. 살리고자 했던 전 공작이 글대로 사망해야 했다면, 쥰의 생명도 글대로 계속 이어가지기를.
하늘을 우러러 보던 눈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무의 정수리. 푸른 이파리. 빛이 부서지며 반사하는 그 생기, 건강한 나뭇가지, 기둥, 흙, 땅, 그 위에서 소산되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전 공작.
안녕히.
작게 숨을 들이켜 환기하고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사라진 육신을 향해 보내는 이 인사는 이 생에서 처음으로 하는 것이었음에도 자연스럽게 스몄다. 왼 가슴에 올린 오른 손의 끝에서 장갑의 흰 천이 부서졌다.
이 거짓된 세계를 쓸 때 내가 쓴 신의 속성은 지구에서 내가 믿던 신의 속성인지라 이 세계에 과연 신이 정말 존재하고, 신관들의 저 힘 가진 기도가 과연 내가 쓴 이능 이외의 것이 될 수 있는지, 정말 그것이 이곳 신의 힘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나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내가 믿는 유일신에게 기도해왔었다. 지구에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믿고 있던 신에게.
그러므로 이 자리에서 하는 기도 역시, 그 신께, 지구의 인간들처럼 전 공작에게도 영혼이 있거들랑, 부디 받아 안아주시라고. 이들이 정말 인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부디 하늘에서……, 하늘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
눈물은 안 돼.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허리를 다시 세우며 얼굴에서 모든 것을 지웠다. 모두 나를 화낼 때도 웃는 사람으로 아는 것 같지만, 기실 웃음보다 더 편한 것이 무감정한 얼굴이었다.
볕에서 물러났다. 그리하여 그늘에 잠기려던 찰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반의 반 정도 돌렸다. 신관과 눈이 마주쳤고, 그는 우는 것 같이 미소했다.
“각하의 기도는 여전히 놀랍습니다.”
그 말이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전 공작의 장례에서 저런 말을 할 만큼 독실한 신앙을 가진 것도 알 정도로 이 신관과는 어쩔 수 없이 인연이 깊었다. 예의 없는 말이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그는 전 공작이 신의 품으로 돌아가 행복하리라 생각할 사람이었다.
내가 첫 가출을 했을 때, 약에 해박한 의사를 이 신전으로 끌고 와서 약을 만들게 한 후에 신관의 기도를 받았더랬다. 그것도 신관이 나를 위해 기도해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감사의 기도를 했고. 이 신관이 바로 그 신관이며, 그는 그때부터 나를 종종 도와주어왔다.
따라서 저것을 이해. 하며, 존중, 하겠다.
나는 애써 슬며시 웃었다. 그리고 적당하게 치하했다.
“수고했네.”
그러자 내 대답까지 나를 유심히 보는가 싶던 신관이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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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summer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D
가면꽃은 핑크핑크 달달한 해피엔딩입니다☆^(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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