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면꽃 작가님-58화 (58/157)

00058 CHAPTER 6. 연꽃 =========================

CHAPTER 6.

이듬해 1월 2일, 전대륙력 942년.

장례는 당연하게도 라이네령, 오드리나를 기준으로 동북부의 끝에 있는 그 땅들의 중앙, 본성이 있는 레룩스에서 치러져야 했다.

그리고 역대 라이네가의 요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전前 라이네 공작이 된 그는 신전에 묻혀야 하며.

오드리나에서부터 시신을 옮기는 여행간, 나는 명령 이외의 사사로운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는 게 어쩌면 옳다. 힘이 없었다. 시신이 있는 마차를 보고, 가는 길 앞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우리 일행은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으나 시신 실은 마차가 있는 한 마구잡이로 달릴 수는 없었다. 또한 말도 쉬게 해주어야 했으며, 나를 위시한 기사들을 시중들기 위하여 동행하게 된 시녀 시종 한 쌍과 다섯 명의 하인하녀들의 상태가 영 좋지 않기도 했었다. 멀쩡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나와 기사들뿐이었다. 하여 본디 칠 일 길 되는 여정에서 이틀을 더 넘긴 새벽에 라이네령 입구에 도착, 본성인 블린성에는 열흘째 되는 날 아침에 도착했다.

“각하.”

나는 나를, 그리고 돌아가신 공작을 맞이하기 위하여 정렬해 있는 봉신 가주들을 건조하게 훑었다.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남자를 시작으로 현 공작인 나와 내 뒤에 있는 전 공작의 시신이 있는 마차를 향해 무릎 꿇고 예를 갖추는 것을 잠잠히 기다려주었다. 라이네 가문의 세대가 교체되었음이 마지막으로 알려지는 순간이다.

마지막. 으로.

공작은, 에본느의 부친은 실로 사망하였으며, 이 몸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 받는 내 절망의 마지막 순간이기도 했다.

다가닥, 말이 발굽을 구르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이지러지는 것만 같아서 눈을 깊이 감았다 떴다.

나를 섬기는 이들이 된 그들은 길고 엄숙한 인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중이었다. 그들에게 계승에 대한 축하를 받는 자리는 이곳이 아니었고, 받는 날은 오늘이 아니었다. 무엇을 해도 최소한 전 공작의 시신이 신전에 들어가고 나서.

나는 입을 열었다.

“모레 아침부터 업무를 시작하겠네. 그때 다시 보도록 하지.”

“예, 각하.”

그들은 내 뒤의 마차를 흘끔흘끔 보면서 내가 지나갈 길을 열어주었다.

나는 걸음을 옮기기 전에 뒤를 돌아보며 마차에서 관을 내릴 것을 눈짓했다. 시신은 하루를 공작의 집무실과 연결된 내실에서 머물러야 하는 게 예법이다. 이 지역까지 오는 동안 시신이 최대한 부패하지 않도록 걸어둔 마법은, 황실 소속의 마법사가 직접 걸어준 것이었다.

공격은 턱도 없으면서, 이런 생활력 강한 반부패 마법은 가능하고.

내가 만든 세상이지만 맥락이 없다.

이제 와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세계관을 짰는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저런 인물들을 만들었는지, 무슨 생각으로 사건들을 만들어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권선징악을 보여준다는 것을 목표로 써내려간 것만이 기억나.

함께 온 기사들이 직접 관을 옮기기 시작한 것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겼다.

본관의 앞에는 성에서 일하는 시종, 시녀들과 용인들이 모두 나와 있더라.

그들은 가문의 가주들에 비해 이 순간 지키도록 얽매인 것들이 덜했다. 우리가 보이자마자 울음을 터트린 것은 그런 덕분일 것이다. 무어, 나라고 얽매였었느냐마는. 전 공작의 시신을 앞에 두고 무너져 내렸던 나를 회상하고 실소를 삼켰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본관 건물에 들어섰다.

3층에 있는 집무실에 이르기까지 숨이 몇 번이고 흔들렸기 때문에, 내실에 관을 내려놓은 기사들이 경례하고 집무실에서 완전히 퇴실하자마자 목을 부여잡고 숨을 토해내야 했다. 켁, 켁. 하, 하, 하아아아. 숨길 어딘가에 먼지가 낀 것처럼 답답했다.

허리를 굽히고 한참을 호흡을 가다듬다 고개를 들었다. 닫힌 내실의 문을 보는 눈에는 이미 물기가 꼈다.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잠시간의 고통에 따른 것이다.

책상에 기대고 입을 벌려 크게 심호흡했다.

하나로 묶었던 머리채가 등 뒤에서 흔들리다 점차 멈춰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두 손을 뒤로 뻗어 책상을 짚고 목을 젖혔다. 눈이 점차 말라가 아프기 시작했다. 추하게 벌어졌을 입을 그대로 두다가 천장을 보며 떠듬떠듬 이름 하나를 속삭였다.

“발리앙…….”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 이름은, 내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뱀 같은 것이 등을 휘감고 올라가 머리 꼭대기에 도착하게 했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 느낌으로 머리가 뜨거워졌다. 갈 곳이 아직도 확실치 못한 분노다.

발리앙 후작이 앞으로 그리하면 베르덴의 심정이 어떠하리라고 짐작하다 말았는데, 후작의 사망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음을 나는 몰랐었다. 결국 중독된 전 공작이 가문과 후계자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에야 그 시신 앞에 가서, 나는, 그 시신 앞에 가서…….

아버지.

……아버지.

내가. 당신을.

“…….”

눈을 감았다 떴다. 나는 뻐근해진 목을 이만 바로 했다.

그리고 거센 찬바람을 맞으며 말을 달려온 탓에 꼴이 말이 아닐 얼굴을 두 손으로 슥슥 문지르며, 책상에서도 몸을 떼었다. 고삐를 쥐느라 잔뜩 구겨진 장갑에서는 쇠 냄새, 짐승 냄새, 바람 냄새 같은 것들이 났다.

홀연히 나타났다 떠나는 추억 같은 것들이다.

덕분에 여기까지 오는 길에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가 떠오르자 코가 매워졌다. 나는 조금 거친 손길로 장갑을 벗기 시작하며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내실 쪽을 돌아보고 집무실의 문을 열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보였다. 다 울었는지 붉게 물든 얼굴을 한 채로 곧게 서 있는 이 성의 총집사와 시종, 시녀들도. 하루간 집무실 앞을 지켜야 하는 이곳의 기사들도 보였다.

나는 옅게 콧숨을 내쉬며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경들은 이만 가서 쉬게. 수고했네.”

“각하의 호위는 그럼…….”

“여기 기사들이 맡을 거야.”

이 성의 건물 내부에서는 오드리나의 저택에서처럼 밀착 호위를 하지 않는다. 성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수가 저택에 비할 수 없이 많은 데다, 그 중에는 기사들도 많다.

휴식을 재차 허락하자 기사들은 그제야 시종의 안내를 받아 떠났다.

내색은 못해도 피로할 것이다. 나야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몸이 바짝 긴장해 있는 상태라 이렇고.

총집사에게 장갑을 건네고 시린 눈을 달래고 있는데,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각하. 쉬셔야 합니다.”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울음기가 신경 쓰이는 바. 나는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고 노인을 보았다. 그리고 옅게 웃었다.

“그래. 그러나 그전에 그대는 나 좀 보지.”

“……예.”

대답에서 예상했던 불안감이 느껴진다. 나는 몸을 돌려 공작의 방으로 향했다.

전 공작이 성내에 있다 하나 현 공작은 나이므로 그 방의 주인은 나였다. 세대교체 시 단 일 분이라도 주인 없이 붕 뜨는 시간은 있어서는 안 된다. 후계자들이 강철 같은 정신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

감당치 못하리라 생각했던 많은 부분들을 나는 이미 짊어지고 있었다.

같은 층에 있는 방까지는 금방이었다. 문 앞에 시녀들을 일단 대기시키고 집사와 나만 입실했다. 작약궁 집무실과 연결된 미니 홀처럼 생긴 넓은 공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문이 세 개. 침실, 욕실, 드레스룸 정도 될까. 처음 들어와 보는 이 방의 공기가 낯설었다.

“…….”

중앙에 놓여 있는 의자들로 다가가 그 중 하나의 등받이 위에 손을 올렸다. 부드럽게 낡은 벨벳. 만지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촉감이다. 손 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가 꽉 쥐었다.

그리고 죄인의 형상으로 서 있는 총집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입을 열었다.

“토벌작전이 있던 당시, 아버지께서 부상 당하셨나.”

“…….”

그간 수고했으며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겉치레는 나중이다.

칼처럼 그를 향해 던진 질문은 내가 생각하기에 몹시도 명료한 내용이었음에도, 시선을 바닥에 박은 노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낮게 웃음을 흘리고 명령했다.

“내 눈, 여기에 있네. 고개 들어. 날 봐.”

“…….”

“대답해, 그대. 아버지께서 그때 중독되셨던 건가.”

고개를 들고 나와 눈을 맞추던 노인의 눈길은 또 다시 나를 비껴갔다. 시선이 엮이는 것을 힘겨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다.

“아무 것도 몰라서 그대에게 묻고 있는 게 아니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대에게 묻는 것이다.”

“……각하.”

“아버지의 유지가 무엇이었든 관계없어. 그것이 가문에 대한 일이라면 존중하지만, 나에 대한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내가 결정할 일이네.”

“…….”

“말해. 그때 부상당하신 일이 있었나.”

“……예.”

다시금 차분하게 묻자, 총집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전 공작은 분명 관계자들의 입을 봉해두었겠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내가 독에 익숙하다는 점과 내가 이미 살인에 능숙한 사람이라는 점, 이곳에서 살아온 평생을 타인을 경계하며 살아왔다는 점, 애초에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점, 따라서 말도 안 되는 결론이라도 가능성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손을 들어 이마와 머리 경계선에 흐트러진 잔머리를 옆으로 넘겼다.

“아버지를 진료한 이곳의 의사, 신관, 마법사. 그들을 두고 나는 지금 그대에게 묻고 있어. 다루기 쉬운 사람은 그대보다는 의사임에도.”

“…….”

“그러니 이것 또한 대답해. 아버지는, 나로 인해 돌아가셨나.”

노인이 확 눈을 돌려 나를 보았다. 고인 충격이 대단하다.

나는 작은 한숨을 쉬며 포퇴유에서 손을 떼었다.

오드리나에 있는 전 공작의 보좌와 저택의 의사에게 전부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오는 길, 아무래도 생각할 시간이 길었다.

침에 찔리니 팔이 시퍼렇게 부었다던 그 말씀. 그때 미처 묻지 못했던 ‘누구.’ 검게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던 오른 팔을 보고 처음엔 아무 생각도 없었으나, 막연하게 떠오른 그 날의 그 말이 나를 묶고 놓아주질 않더라.

그러나 아무래도 그 생각이 옳았던 모양이다. 슬며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나.”

“각하. 아닙니다.”

“말해. 내 탓이라 자괴할지 아니할지는 듣고 나서 생각해 볼 테니.”

“각하, 제발……. 죽여주십시오.”

노인이 결국 무릎을 꿇었다. 나는 흰 정수리를 내려다보다가, 일그러지려 하는 얼굴 표정을 정리했다. 나는 웃는 사람이다. 웃는 얼굴. 농담. 가볍게. 가볍게. 나는 심심하다며 텃밭에서 당근을 캐먹고 죄 없는 너구리에게 뒤집어씌우는 사람. 거슬리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싶다는 이 격분은 응당 감춰야 할 것이며. 이들은 내가 지켜야 할 이들이다.

이 분노의 머리가 실은 계속해서 내게로 향하는 것을 돌려 세우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다 하여 그 방향이 저들을 향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니 고스란히 내 품에 남아 있어라.

그러니 고스란히 남아 내 안에 잠들라…….

그러나 솔직하게 토설하건대, 나는 내 무능으로 공작이 죽은 것이 아니길 바랐다. 죽음을 지고 싶지 않다. 그 무게, 지고 싶지 않았다.

부담스러워 숨이 마, 막혀서.

아, 생각만으로도 숨 한 줌을 일순 잃어버리고 만다. 나는 흐트러진 호흡을 되돌리며, 무엇을 덜어내는 것 같은 손놀림으로 입가를 쓸어내렸다.

노인이 바닥을 짚은 손아래에 내 장갑이 구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차라리 저리 눈에 보이게 구겨져 있을 수 있으면, 그러면 스스로 외면하고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쏟아낼 수 있을까. 어째서 어떤 감정은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수치스럽게 하나.

“…….”

하지만 역시. 내가. 내가 죽였나 보다.

말하기를 주저하는 것만으로도 총집사는 말을 다 했다.

나는 그에게 성큼 다가가 몸을 낮추었고, 다정하게 그의 왼 어깨에 손을 올렸다. 노인이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나는 옅게 웃었다.

그리고 물었다.

“질문을 바꾸겠네. 침에 찔리셨던 게지. 그렇지?”

‘나로 인해 돌아가셨냐’는 질문에 잘못 답하면 총집사가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의혹이 들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돌리는 게 피차 편하지. 그러나 전 공작이 그 침을 내가 소유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를 이들에게 말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나는 막연하게 침만을 말하며 질문을 바꾸었다.

노인의 반응으로 보건대, 아무래도 내가 가지고 있던 독침에 찔렸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지마는.

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확인을 받아야겠다. 알고 싶지 않으나 알아야 하는 부분이고, 지고 싶지 않으나 이 정도까지 왔으면 차라리 다 알고 지는 편이 낫다.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 묻자, 그가 망연하게 나를 보았다.

그러나 입이 열릴 기미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내 눈이 좀 더 가늘어졌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그대, 모셔야 하는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웃으며 하는 말에 총집사가 당연히 기겁했다.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닙니다, 각하.”

“그럼 어서 답하지 않고 무얼 하나. 아버지께서는 그 침에 찔리셨고, 괴물에게 당하셨고, 하여 독이 섞였고. 독성은 주체치 못하고 강해졌다고.”

“…….”

침에 묻어 있던 그 독은 내 살을 썩게 한 적이 없다. 아마 독이 섞인 탓이리.

내가 그가 대답해야 할 바를 대신 말하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혹은, 하지 않거나. 입술이 가늘어지며 아랫입술이 약간 말려들어갔다. 나는 노인을 보며 웃다가, 또 다른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럼 이것에 대답해 봐. 혹시 섞인 독이 그 두 개뿐만이 아니라, 다른 독도 있었나.”

“…….”

이 역시 오드리나를 떠난 이후로 든 의문이었다.

오드리나에서는 전 공작이 괴물에게 부상당하며 주입된 독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하여 나는 사람에 의해 중독되었을 가능성을 물었으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발리앙이나 전 공작의 정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증좌는 될 수 없었다. 괴물에게 독을 건네며 사주한 자가 있을 수도 있는 탓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길에 든 의문 하나가 씨앗이 되더니, 담쟁이덩굴처럼 질기게 이어진 의문이 다시 떠오르더라.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면, 거짓이 아닌 것처럼 교묘하게 말을 피해간 것도 있으리라고.

혹은 훗날 내가 진실을 알지도 모를 때의 걱정일랑 조금도 하질 않은 채로 아예 거짓을 말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전부 알아야 한다. 그들의 염려고 무엇이고 감사히 어울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하여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는 총집사를 잠시 기다리다가, 다시금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사람 귀찮게 한다. 마지막 수단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 사람은 라이네를 섬겨온 시간이 길었다. 그런 사람을 협박하는 것은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그러나 칼을 들어 목에 대는 것보다는 나았다.

잠간 생각하다 빙긋 웃었다.

“그대가 여기에만 있기에 모르는 일이 많으리라는 걸 알아. 지금 개인적인 오기나 사감으로 묻는 게 아니야.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나를 계속해서 죽이려 하네. 여기서 부상당해 올라간 오드리나에서, 나는 한 달 전에 또 독살당할 뻔 했어.”

노인이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잡고 있는 내 오른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토록 함구하려 한다면, 내가 무슨 생각이 들지 생각해 보겠어?”

“…….”

“그 일이 마무리 지어질 때까지는 내가 좀 의심이 많아질 것 같거든. 안타깝게도.”

네가 범인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갈아치워야 할 사람. 이 노인은 내 사람이라기보다는 전 공작의 사람이므로. 그러나 말했듯, 오래 섬겨온 공이 있다. 최대한 다정하고 상냥하게 돌려 협박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일도 내가 평소 웃으며 까거나 놀리거나 협박하는 일을 자주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부려야 하는 사람에게 겁먹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되, 그렇다 하여 그의 마음을 필요 이상으로 상하게 하는 일도 옳은 일은 아니었다.

나는 말귀를 알아들은 것 같은 총집사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자, 그대, 대답해 보겠나? 제3의 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 외에 아는 것을 다 말해준다면 정말 고맙겠네.”

============================ 작품 후기 ============================

*가면꽃은 나이를 만으로 세고 있습니다. 에브는 3월생이라서 3월을 전후로 나이가 바뀝니다.*

이번 챕터는 뭐랄까, 제가 이 글에서 가장 좋아하고 가장 기대해온 챕터입니다. '드디어 이날이 오는군!' 하면서 벌써부터 들떠서 기뻐하는 중입니다. 독자님들께도 기분 좋은 챕터가 되길 바라며 열심히 쓰고 있지만, 역시 아무래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가장 쓰기 힘든 챕터가 된 것 같습니다.

공작이 에브가 자책할까봐 숨기려 했던 걸, 에브는 상당히 빠르게 이것저것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내고 오드리나에서 관련자들 몇을 상당히 살벌하게 추궁해서 알아냈습니다. 아무래도 겪은 게 많고, 경계해야 할 것도 많고, 이번 회에 나온 이유도 있고 해서 생각하는 범위가 좀 넓은 덕분에. 소통의 부재는 이런 결과를 낳습니다.(아님)

관련해서는 차차 나옵니다. 어쨌든, 덕분에 에브의 상태가 평소와 같은 듯, 아닌 듯.

이제는 공작이 된 에브입니다. 다음 챕터부터 본격적으로 로맨스가 살살 시작되기 때문에, 열심히 열심히 판을 깔아보겠습니다. 그러나 그 '본격'에 관해서는 제가 아는 뜻과 독자님들께서 아시는 뜻이 다를 가능성이 농후합......(끌려감)

하지만 씨앗은 이미 심겨졌으니 싹부터 틔우고, 차츰차츰 자라고. 그런 식으로 진행할 겁니다. 부디 염려 마시고, 기쁘게 함께 해 주시면 저도 행복할 거여요...♥(●´ω`●)ゞ

그럼 저는 저 중요한 예언서의 애가를 고민하러 가보겠습니다. 이번 챕터 쓰면서 엄청나게 위화감을 느끼게 되어서......ㅇ<-< 담겨야 할 내용은 담겼는데, 왜 이렇게 읽을수록 유치하지. 흙가루, 흙가루가 문제인가! 나비가 문제인가!(눈물)

그리고 완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 글은 완결나면 하루이틀 후 바로 습작하려 합니다. 그 후에 이벤트성으로 습작해제를 하거나 할 것 같습니다. 완결 전이나 완결 후기에 한 번 더 습작 공지 드리겠습니다.(〃´・ω・`)♪

자유연재입니다. 감사합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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