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면꽃 작가님-50화 (50/157)

00050 CHAPTER 5. 사랑을 위한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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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하여 알게 된 세부 사항을 알려 달라 요구하였으나, 공작은 거절했다. 통제를 시작한 날로부터 닷새째 되는 날부터 통제를 풀었고, 나는 그 다음 날부터 또 공부와 사교활동에 쫓겨야 했다.

더는 공작의 페이스에 맞춰주지 않겠다고 결심한 게 무색했다. 그의 혈압을 올리면서 장난스레 반발하는 나에게, 공작은 전에 없이 차갑고 냉정하게 호령했다. 일견 여유가 없어 보일 정도라, 기분 상하면서도 의아하더라.

이 정도면 오래 버텼다고 잠시 여행을 고려하던 나는 일단 좀 더 공작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하여 무도회가 열리는 날까지 매우 바빴으나, 그래도 다행이게도 공작과 쥰은 중독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쓰러져 바닥을 기었던 날 이후, 나도 바쁘고, 의사가 나를 찾아오는 일도 없어서 소식은 공작에게 직접 들었다. 나에 대하여 단단히 입은 봉해놨다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의사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공작이다. 공작에게 내가 죽을 뻔 했다는 보고가 결코 들어가지 않았으리라고는 확신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을 뿐더러, 그 보고를 들었다고 생각하기엔 공작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인 적도, 이렇다 할 말을 꺼낸 적도 없었다.

그 외에는 별 다른 일이 없었고, 초청장을 받은 날로부터 2주는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하여 오늘, 무도회가 있는 날.

여성이 작위를 잇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드문 건 확실하여, 역시 드레스를 항시 입고 다니는 건 좋은 시선을 못 받는다. 아마 오늘 무도회에서 드레스를 입고 나서는 무도회처럼 화려한 모임에 드레스를 입고 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한동안은. 사람 일이 어찌될지 모르니 단언은 못하고.

나는 킴이 머리를 만져주는 걸 기다리다가, 손을 올려 배를 쓰다듬었다. 은실이며, 보석이며, 까끌까끌했다.

그래도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 계속 매만지다 입을 열었다.

“드레스의 좋은 점은 그거 같아.”

“예?”

킴은 내 뜬금없는 말에 멀뚱하게 반문했다.

거울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그래도 예뻤다. 빈익빈 부익부, 몰아주기, 그런 걸지도 모른다.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으면 머리를 가져다 내 배에 굴려주면 되는 거.”

“각하…….”

어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킴이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불렀다.

나는 피식 웃었다.

세공된 보석들이 박혀있어, 꾹꾹 눌러 주며 알차게 굴리면 얼굴이 묵사발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간지러움을 참아야 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서 헤르조에게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간지러움을 지독하게 타는 편이었다.

……음, 근데 아주 자연스럽게 헤르조를 여태 잊고 있지 않았나, 나 지금까지?

조금은 얼떨떨해졌다. 오늘 말고 헤르조를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때가 언제였더라? 와. 입이 조금 벌어졌다. 진짜 잊어지는구나. 마음 아팠던 시간도 없었고, 좋아했던 적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게 이런 식으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면 참 좋을 텐데.

킴은 머리카락이 다 넘겨진 왼쪽 관자놀이 즈음에 마지막으로 다이아몬드 빗 핀을 꽂아 고정하고 한 걸음 물러났다.

“어떠세요?”

“음. 항상 그랬듯 최고지.”

“어머나,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성공적으로 킴을 유혹했습니다. ……농담이다.

거울을 통해 눈을 마주치며 치하하자, 킴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기뻐했다. 나는 눈을 내려 거울 속 나를 보았다. 오른 어깨 앞으로 구불거리며 쏟아져 내리고 있는 갈색머리카락은 진주가루를 언제 또 뿌렸는지 반짝거리고 있었다. 드레스는 상당히 화려한 제비꽃 색 드레스다. 가슴도 파였어. 어깨끈도 없어. 소매도 없어. 상체만 무지하게 반짝거리고.

귀걸이와 팔찌, 빗 핀이 오늘 할 장식의 전부라 다행이었다.

쇄골에 진주가루를 뿌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작이 홀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 늦지는 않았지만, 요즘 영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데 공작을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손목까지 오는 실크 장갑을 끼고, 킴이 열어주는 문을 나섰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베르덴, 할리와 맞닥뜨렸다. 그런데 나를 본 두 사람의 표정이 상당히 심각해졌다. 나 역시 슬쩍 인상을 쓰고 그들을 보았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같이 심각해져야 할 것 같았거든.

잠시 후 할리가 입을 열었다.

“……음, 그겁니다.”

“예, 그거.”

베르덴도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래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네.”

“…….”

“……실례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베르덴은 현명하게도 침묵했고, 할리는 기어이 내게 묻고 말았다. 요컨대 베르덴이 할리보다 더 나를 겪은 바가 많다는 뜻이다. 당근과 너구리들을 그렇게 겪고도 아직도 할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몰라.”

“…….”

드디어 할리도 침묵했다. 베르덴은 내가 느낄 정도로 상대를 안쓰러워하는 눈으로 할리를 힐끔 보고는, 내게 설명했다.

“각하께서 아름다운 분이시라는 걸 저희가 일상적으로 잊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름다, 아름……. 뭐?”

조금도 지체치 않고 소름이 화다닥 돋았다. 나는 정말 저런 형용사에 면역이 없다. 내가 당연하게 질색했으나, 이어 입을 연 할리가 고개를 살살 저으며 말했다.

“왜 잊게 되는지를 따로 떠올릴 것도 없이, 방금 또 잊었습니다만.”

……야 인마.

나는 상냥하게 웃으며 할리에게 물었다.

“싸우자는 건가?”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나를 홀까지 에스코트하기 위해 온 것 같긴 하지만, 어째 마주치자마자 서로 시비지.

아, 됐다. 나는 몹시 유감이라는 표정을 짓고 손을 휘휘 저었다. 솔직히 이제 후작이라 혼자 내려가는 게 차라리 나았다. 그러나 두 사람을 지나쳐 가려 하자, 베르덴과 할리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건 또 뭐야. 나는 입 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공작 각하께서 반드시 에스코트해 오라 하셨습니다. 실패하면 제 봉급을 일시 줄이겠다 하셨습니다.”

“…….”

할리의 설명이 기묘했다.

내 웃음이 기어이 조금 옅어지고 말았다. 공작은 그런 성격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귀족적인 사고에 갇혔지마는, 합리적이고 냉철한 인물인 건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에스코트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봉급을 줄인다고?

“…….”

요즘 공작, 뭔가 이상하지 않나?

이제야 그런 의문에 봉착했다.

웃으며 할리와 베르덴의 손에 손을 올리며, 여태 묘하게 느껴졌던 언행들을 꼽아보았다. 나 깨어난 이후로 같이 식사하는 일이 한 번을 없더니, 어제 점심에 나와 함께 식사를 하고 또 쭉 홀로 식사한 것. 그리고 이 드레스. 이 에스코트. 내게 여유를 주지 않은 것, 인즉 그의 여유가 없게 느껴진 것. 좀 더 차가워진 것. 음.

……월경전 증후군?

“…….”

……와, 생각을 해도 그쪽으로 치닫나, 나는.

그런데 단어가 너무 강렬했다. 뇌리를 떠나지 않아서 낑낑거리면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시선이 느껴지더라. 고개를 들었다.

계단 맨 아래, 나를 보고 있는 공작과 시선이 얽혔다.

내 입술이 그 순간 바르르 떨렸다. 아, 그래, 무언가 정말 이상하다. 그가 이 밤에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계속 내려가 계단을 단 한 칸 남겨놓았을 때, 공작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손이 오른 손이 아니라 왼손이라는 것.

이제 별 게 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공작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불안해하게 생겼네.

나는 씩 웃었다. 공작은 내 손을 쥐고 나를 보다 옅게 웃었다. 그리고 남은 계단을 내려오게 한 뒤, 상당히 다정하게 내게 말했다.

“예쁘구나.”

“……감사합니다. 아버지도 멋지신 걸요.”

내가 한 화답이지만 위화감이 엄청나다. 오래 전부터 우린 절대 이런 훈훈한 대화를 나눌 성격도, 사이도 아니게 되었었는데. 내심 한숨을 삼켰다.

그러면서도 어색한 웃음이라도 놓지 않은 채로 공작과 홀을 가로지르고 있던 나는,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다른 사람을 뒤늦게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쥰은요?”

“먼저 보냈다.”

그는 실로 덤덤하게 대답했다. 경멸을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화가 난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같이 가고 싶었다고 투덜거리려던 입을 다물기로 했다. 쥰에 대해서 오늘은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준비되어 있던 마차를 타고 가며, 황궁에 도착할 때까지 공작은 나를 끊임없이 응시했다.

참다못해, 왜 그러시냐고 중간에 물었지만 공작은 픽 웃고 고개를 저었고, 그 이후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거의 다 도착했을 때에야 이렇게 물었을 뿐이다.

“너는 네가 공작을 승계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느냐?”

“예?”

“…….”

뜬금없는 질문에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렸으나, 그는 질문을 반복해주지 않았다. 상관은 없다. 다 듣고, 이해는 했으니까. 하지만, 정말이지.

더 인내하지 못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질문에 대한 답은 결코 될 수 없는 질문. 공작이 어쩌면 내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당신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 마차가 멈추었다.

시종이 문을 열어주자, 공작이 먼저 내려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말없이 바깥의 공작을 보다 일어섰다. 땅에 민들레 홀씨 닿듯, 내 손이 그에게 닿았다.

내가 마차 계단을 내려가 땅을 밟자 공작은 내게 속삭였다.

“너는 잘할 것이다.”

아, 그 말이 내 경계심을 날뛰게 만들 것을 공작은 정말 몰랐나. 심장이 훅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 장갑을 낀 공작의 손이 내게 잡혔다. 그 손을 으깨도 좋을 것처럼 힘을 주고, 주며, 억누른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격려다.”

“아버지.”

“너도 내게 무언가 말을 해 보거라.”

“절 불안하게 만들고 계십니다.”

“너도 결혼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걸 실감해서 그렇다.”

“…….”

내 눈의 초점이 탁 풀렸다가 돌아왔다.

음.

정말 그런 이유라면 내 멘탈이 좀 아프다. 하지만, 정말 그 이유인지. 그러나 그것에 대해 생각을 시작하려던 찰나 나를 이끄는 공작을 따라 얼결에 걸음을 옮겼다. 마차 앞을 벗어나 회장의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나는 공작을 더듬더듬 보았다. 앞을 보다, 힐끔. 공작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앞.

공작은 그런 내게 주의를 주었다.

“위험하니 앞을 보아라.”

그 주의가 결국 쓸모없었던 건, 계단을 거의 다 올라, 열린 문이 보일 때에야 나왔기 때문이다. 나와 공작이 계단을 다 올라 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거기까진 익숙했다.

그런데. 그런데 공작이 멈춰 서서 내 이마 위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쑥스러움이나 경악보다는 멍하고 오묘한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나는 눈을 들어 그를 보며 멍하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나는 황태자 전하를 뵈어야 한다.”

“전하를. ……예?”

아하, 그것은 마법 같은 말이었다.

공작에 대한 모든 걱정에서 한순간에 깨어날 수 있었다. 깨어나다 못해, 된서리를 맞은 것처럼 등허리가 서늘했다.

조금 전 공작이 결혼 어쩌고 하지 않았나? 와, 아, 아, 잠깐만. 그런데 불안하게 알드리히를 만나러 간다고? 아니, 아니, 아니지. 공작될 내가 장차 황제될 알드리히와 결혼할 리가 없지. 공작이 설마 허락했겠…….

몹시 불안해졌다. 공작이 불안한 게 아니라, 알드리히 그 미친 놈이 불안해서.

나는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조심하며 작은 목소리로 공작에게 물었다.

“결혼, 그런 건 아니겠지요.”

“아니다.”

피식 웃은 공작은 단호하게 대답하고 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는 내게서 뒤돌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꾸나.”

“음. 예.”

나는 몸을 돌려, 회장을 떠나는 공작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아직도 내게 향해 있는 시선들 속에 걸어 들어갔다. 오늘은 내가 반쯤이라도 사교계의 꽃일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들이 애틋애틋. 끄아아앙. 독자님들 정말정말 좋아해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진짜 진심으로(강조), 저는 에브가 딱히 구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브는 지구에 있을 때보다 훨씬 생기발랄해지고, 지구보다 이 세계를 더 편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2회에서 에브가 지구에서의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걸 보면 상당히 억눌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넵! 에브 꽃길 걷게 잘 이끌겠습니다♥♥

분량조절 실패하지 않으면 다음편에 시드니 나옵니다.

초고. 자유연재.

안녕히 주무세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D

+빠른 전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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