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9 CHAPTER 5. 사랑을 위한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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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척비척 서재로 들어오자마자, 책상 앞이 아니라 뒤셰스 브리제로 향했다. 앉아서 부츠를 벗자마자 발이 시원해졌다. 와, 온 세상을 가진 것처럼 행복해졌다. 그리고 아, 발 냄새.
얼른 다리를 올리고 몸을 뉘였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하도 서재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다보니, 쥰이 내 양해를 구하고 들여놓아준 뒤셰스 브리제는 내 낮잠을 위해 알차게 이용되고 있었다.
미로골목에 가서 암살 사주가 있었음을 안 뒤로 밤에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풀리지 못한 피로를 낮에 최소 삼십 분에서 최대 두 시간의 잠으로 풀었다. 지난 한 달 간 한창 바쁠 때는 보통 삼사십 분 밖에 자지 못했지만, 나흘 전부터 저택이 통제된 이후로는 두 시간 꽉꽉 채우고 있었다.
그래도 낮잠이든 밤잠이든 수면제 없이는 여전히 깊게 이룰 수 없고, 나는 낮이라 해도 수면제를 복용하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언제 어떻게 날 죽이려 들 줄 알고.
쥰의 모친이 죽기 전에 한동안 해왔던 생활인지라, 이제 와 이런 생활을 힘들어 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생활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할 때의 말이다. 전보다 두 배, 세 배 되는 바깥 활동과 공부가 더해지니 내 체력으로도 힘이 들 수밖에.
베르덴이 내 머리 아래에 베개를 넣어주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나는 여태 들고 있던 초청장을 그에게 건넸다.
“무도회래.”
“예?”
“황궁에서 무도회 있대.”
파스스 떨어져서 내 손에도 붙은 금가루를 털어내며 말했다. 문제는 내 얼굴 위에서 손을 털었기 때문에 그 금가루들이 모조리 내 얼굴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베르덴은 멍청한 나를 몹시 안쓰러워하는 것 같은 얼굴로 내 얼굴을 털어주었다.
“드레스 새로 맞춰야 하고……. 준비 좀 부탁하네.”
“드레스, 말씀이십니까?”
그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의아할 터다. 나도 그랬다.
우연찮게 알드리히를 만나 직접 받아왔다는 초청장을 내게 전해준 공작은, 기묘하게도 당일 입을 예복에 대하여 물으시더라. 후작으로서 처음 참석하게 되는 무도회이니 당연히 바지 정장을 입으리라 대답했는데, 그는 내게 드레스를 제안했다.
말이 제안이지, 설득조가 섞인 명령과 다름없었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라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공작은 갑자기 불안해진 것처럼 한 가지 더 말씀하셨다.
-또 그, 런 화장을 할 생각은 마라.
-그런 화장이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거라고 생각한다.
실은 알고 있었다. 근래 화장으로 공작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게, 그, 쥰의 생일에, 그……. 적어도 내가 정상적으로 보일 화장을 하고 오라는 뜻 같아서 씩 웃어드렸더니, 공작은 정색했다.
상처.
그래서 확답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렴, 내가 설마 황실이 주최하는 모임에 그런 얼굴로 나갈까. 날 도대체 얼마나 괴짜로 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리를 구별할 줄은 안다. 그러니 이번 무도회에서 비정상적으로 보이고 싶었다면 화장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강구했으리.
나는 옆으로 누워 웅얼웅얼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이번엔 드레스를 입으라 하셔서.”
“언제부터 공작 각하의 말씀을 따르셨다고…….”
“아, 거참 너무하네. 내가 도대체 언제 아버지 말씀을 안 따른, 안 따른, ……제길.”
돌이켜 보니, 양심이 아팠다. 따르지 않은 적이 너무 많아. 횟수로만 치자면 그렇다. 가출을 그만큼 많이 했다는 말이다.
침통해하는 것처럼 큭, 소리를 내며 얼굴 한 면을 가리자, 옅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왔는지 쌀쌀한 바람 한 줄기, 나를 쓸고 흘러가더라. 시원했다. 몸은 내 감상과 다르게 바르르 떨렸지만.
그것을 본 베르덴이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곧 내가 있는 층에서 유일하게 열려 있던 창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그는 그대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쉬십시오.”
나는 지난 한 달, 내가 서재에서 자며 쉬는 동안 베르덴을 내 옆에 허락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저 인사와 퇴실은 당연한 절차였으나 오늘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아니네. 나가지 말고, 잠들 때까지 이야기나 좀 하자. 경. 옆에, 바닥에 좀 앉아봐.”
“예?”
“옆에.”
예상외의 말이었을 테니 그가 놀란 것도 이해가 갔다.
나는 얼굴 양 옆을 가릴 만하게 세워진 낮은 팔걸이에 턱을 올렸다. 주춤거리고 있던 베르덴은 그제야 다가와 내 눈앞, 바닥에 앉았다. 내 눈이 그보다 아주 조금 더 위에 있었지만 거의 비슷한 눈높이였다.
나는 얼떨떨해하는 베르덴을 보며 씩 웃었다.
“내가 어제 쥰이랑 이야기했잖아.”
“아. 예.”
“그래서 자네와도 해야 할 것 같더군.”
그건 사실이었다. 오늘 바로 대화할 마음이 들게 될 것을 몰랐을 뿐.
암살 시도에 관해서 모르는 척하는 건 쥰이나 베르덴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내가 그 반응에 드는 생각은 쥰에게 드는 생각, 베르덴에게 드는 생각, 서로 상당 부분 달랐다.
자세에 힘이 들어가는 베르덴을 잠시 보다가, 푸우우 한숨을 쉬었다. 장난기도 담고, 의뭉스러움도 담고, 내 용기도 담고, 재미도 담아. 그리고 싱글싱글 짓궂게 웃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넨 내 보좌잖아. 자네도 당황했을 텐데, 아닌가? 이야기 좀 해 보고 싶었어.”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염려라니. 조금 전 했던 말은 다 입 발린 말인데 그렇게 진심처럼 반응해버리면 내가 멋쩍어진다.
그러나 나는 태연하게 웃음으로 그 감사인사를 받아들였고, 그리고 그를 위로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인이 매수당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심문이 다 끝나면 아버지께서 알려는 주실 거야. 그래서 묻는데, 경.”
“예.”
“자네인가?”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고, 그 직후 참담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베르덴은 얼어붙은 것처럼 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알긴 아는데…….
“……예?”
이렇게 어리석은 반응을 주면 내가 속이 씁쓸하잖아.
허를 찌르다 못해 푹 박힐 정도로 직설적인 질문이었다는 것은 알지만, 이 정도로 더듬거릴 줄은 예상 못했다. 나는 눈을 좀 더 가늘게 접고 웃었다.
“으음. 날 죽이려는 새끼가 자네냐고 물었는데.”
“각……하.”
“날 부를 것 없어. 대답만 하면 되네.”
“……아닙니다.”
“알아.”
힘겨운 대답에 나는 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베르덴은 놀란 것처럼 보였다. 계속 허를 찔러서 얼떨떨할까. 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팔걸이에서 턱을 치우고 베개에 다시 누웠다. 피곤하다. 허리까지 내려간 담요를 손으로 슥슥 당겨 가슴까지 덮었다.
그리고 천정을 멀뚱히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런 물음이 오더라.
“……저를 믿으십니까?”
“아리엘을 믿는 것보다는 더 믿고 있어.”
“…….”
“경. 혹시 이런 생각 안 해 봤나?”
뒤척여 다시 옆으로 누웠다. 의자가 높아서 베르덴의 정수리 부근만 가까스로 살짝 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 조금은 우스운 모양을 보며 말을 이었다.
“누가 자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한다는 생각.”
“…….”
“내 둘째어머니 사후에도 얼마간 나를 죽이려 하는 시도들이 있었는데. 이건 알고 있나?”
“…….”
답이 없다. 알고 있었나. 기가 막혀서 조용히 코웃음을 웃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친구, 라 할 수 없는 사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귀족다운, 후계자다운 사람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을 지도 모르지. 발리앙 후작이 가문과 베르덴을 위해 최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베르덴 역시 발리앙 후작만큼 귀족다워 가문을 위하여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예의상의 확인을 위하여 다시 한 번 물었다.
“알고 있었어?”
“…….”
“이거야 원.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겠네, 그럼. 덕분에 재미있는 걸 알게 되네.”
“아닙니다.”
“응?”
불쑥 튀어나온 대답이 나를 놀라게 했다. 멀뚱하게 반문하자 베르덴은 목소리를 강하게 눌러 다시금 대답했다.
“재미있지 않습니다.”
“…….”
아, 이런. 재미있는 게 맞는데.
베르덴이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 내가 죽기를 바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유가 한정된다. 그러니 재미있을 밖에. 봐, 시간이 지나니 하나하나 드러나게 되고, 영문을 알게 된다니까. 누군지도 결국에는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베르덴의 감상에는 대꾸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그래. 그럼, 알고 있는 걸로 알고. 그때 그 상황에서 내가 죽거나 다쳤다면 사람들이 누굴 가장 먼저 의심했을지 생각은 해 봤나? 둘째어머니께서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일관되게 내가 위험하다면 말일세. 이번처럼.”
그는 동요한 것 같았다. 숨 쉬는 소리가 멈췄다가 풀렸고, 그의 머리 꼭대기가 조금 움직였다.
이번 일은 너무도 명백하여 그도 생각을 해 보았겠지만, 쥰의 모친 사망은 아주 가깝지도 아주 멀지도 않은 과거의 일이다. 떠올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였는데 정말 함께 엮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베르덴은 모르지만 나는 발리앙 후작이 죽어간다는 것도 알기에……, 음, 그쪽 일은 그쪽에게 풀도록 하자. 발리앙 후작을 염려할 정도로 마냥 한가로운 것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상황이 맞물리니 이것저것 알 수 있는 게 많아져. 내가 위험을 여러 번 겪을수록 알 수 있는 것도 많아질 거야.”
“…….”
그래도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더 알고 있는 것도 그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고.
베르덴을 몰아가는 건 이 정도로 되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하여 웃으며 하,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결 가벼워진 음성으로 운을 띄웠다.
“대답해 봐. 경은 발리앙을 사랑하나?”
“…예…….”
알고 있다.
“발리앙 후작은? 사랑하나?”
“예.”
알고 있다.
“아리엘은? 사랑해?”
“……예.”
알고 있다.
“르네는. 사랑하고?”
“……예…….”
이 역시, 알고 있다.
숨을 들이켜고 떨리는 목소리로 하는 대답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알고 있고.
나는 코를 울리며 웃고는 하나를 더 물었다.
“경과 나의 우정은 진실된 것이었어?”
“…….”
이것에는 반 년 전처럼, 베르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 년 전과 다르게 나는 이제 그가 어째서 대답하지 않는지, 어째서 대답하지 못하는지, 어째서 대답하지 못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하여 그의 반응을 칭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 좋다. 신중하군. 현명하다, 고.
나는 적절한 때에 그와 갈라섰고, 적절한 때에 다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내가 공작이 되기로 결심함으로 이야기와 달라져 한치 앞도 모르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일이 그럭저럭 잘 진행이 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기쁘기도 하다. 나는 확실히, 마냥 이야기를 살고 있는 에본느가 아니게 된 것 같았다. 이야기 반, 나 반.
어휴, 재밌고, 두려워라…….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면제를 가져와줘. 내 방, 베드 테이블에 있네.”
“각, 하?”
“어서.”
그를 재촉했다.
급작스레 변한 주제에, 베르덴은 답지 않게 느린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나와 헤르조와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무뚝뚝하고 뻔뻔하게 대처하던 그가 오늘따라 느리다. 내게 연방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탓이니 나는 피식피식 웃으며 기다렸고, 얼결에 일어난 베르덴이 곧 상당히 급하게 느껴지는 걸음으로 서재를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눈앞에 막혀있는 팔걸이를 응시했다.
이 세계에서마저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 많은 것들을 나 홀로 생각하고 추리하고 담아두기를 이십 년 정도. 그러나 공작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미움 받기를 각오했다. 공작은 자기 일신만을 챙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영지민과 봉신 가문을 수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해야 할 말은 해야 하고 챙겨야 할 이득도 챙겨야 하며며, 그 과정에서 적들도 생겨날 수밖에.
베르덴에게 오늘 직접적으로 묻고 경고한 것도, 반 년 전 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니, 아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참, 이상하지.
아리엘을 포기를 못하는 게.
나는 얼굴을 찌푸리듯 웃었다.
그녀에게 무언가 나를 위한 희망이 고여 있는 것처럼. 무지개 끝에는 반드시 보물단지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 이 감정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내 감정이 아니라 에본느의 감정이면 어쩌느냐고. 혹 이야기 자체가 힘을 가져서 내가 아리엘에게 조금도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면 어쩌느냐, 아, 아니다, 이야기에 힘이 있었다면 내가 후작이 되지도 못했겠지 싶고, 그러다가도 내 속에 혹 에본느가 있으면 어쩌느냐는 생각도 가끔 들고. 참 비현실적인 생각인 건 알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내가 쓴 글에 내가 들어온 건 현실적이야?
그래서 나는 당연히 나라 하다가도, 에본느라고도 하고, 에본느를 버리고, 죽이고, 다시 나는 에본느라 하고, 나는 강하다 하다가도, 아리엘보다도 약해서 그녀에게 질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다시 나는 강하다 하고. 그 혼란스럽고 복잡한 과정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가장 좋은 건 어쩌면,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내가 지구로 돌아가는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에서의 나는 아마도 죽었는걸. 그러나 그렇다 하여 정말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으. 간만에 복잡해졌다. 나는 그만 생각을 멈추고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요즘엔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또 웬일인가. 담요 속에서 한참을 투덜거리고 있다가, 숨이 고르지 못한 베르덴이 오자마자 일어났다. 뛰었나 보다.
나는 그에게서 약병을 받아 꺼낸 한 알을 입에 담고, 그가 이어 건넨 물을 마셨다.
그리고 고개를 올려 그를 보며 씩 웃었다.
“이제 잠들면 나는 웬만하면 깨지 못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눈에 힘이 들어갔다가 빠진 베르덴은 목이 멘 것처럼 느리게 나를 불렀다.
“……각하.”
“내 옆에 있게. 오늘은 푹 자고 싶으니까 쥰이 돌아오면 그때에나 깨워.”
“…….”
그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 누운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들 수 있었다. 꿈도 꾸지 않았던 것 같다.
베르덴이 흔들어 일어났을 때엔, 이미 바깥이 주홍색으로 어둡더라. 잘 잤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잠시 이불에 머리를 박고 있다가, 완전히 일어나 뒤셰스 브리제에서 벗어났다. 양말만 신은 발로 책상까지 걸어가 거기 의자에 앉아 부츠를 신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품.
기지개까지 끄어억 비명을 지르며 켜고 나서 잠에서 완전히 깨었다.
베르덴은 그제야 내게 말을 걸었다.
“주무시던 중에 공작 각하께서 잠시 들렀다 가셨습니다.”
“음? 나 보러?”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잠시 저를 내보내시긴 하셨습니다.”
머리를 긁적였다.
여긴 서재이니 사람이 드나드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심지어 이 저택의 주인인 공작이라면 더더욱.
“남기신 말씀은 없나?”
“없습니다.”
그럼 괜찮겠지.
신경 쓰이면 후에 공작에게 물으면 될 일이다. 나는 베르덴이 건네는 잔을 들고, 텁텁한 입을 물로 적셨다
.
오후 다섯 시.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에브, 완전 아무렇지 않게 직구 던졌습니다.
분명 2회인가 3회차에 썼던 내용이 다시 확인해 보니 사라졌다......? 공모전 당시 원고를 확인하니 거기에는 제 기억대로 둘째 부인 언급이 있네요. 수정하며 지워버렸나 봅니다. 푸우우...ㅠ3ㅠ
다시 넣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앞뒤 문단 사이에 어찌 넣어야 하는지 견적이 안 나와서 끙끙 앓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몇 문장 넣는 건데 왜 못 넣는 거니!
여태 본문에도 몇 번 나왔지만, 에브는 실은 딱히 힘들어 하고 있지 않습니다. 힘들다 하면서도 웬만하면 딱 그 순간으로 그치고요.
스물다섯살 된 이후로 가장 정신적으로 곤두섰던 때는 라이네 공작을 살리기 위해 다니면서 쫓겼을 때입니다. 술래잡기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었고, 알드리히가 보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암살자들에게 쫓기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도 나왔었고요.
에브는 반격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반격할 수 있는 지위이고, 이것저것 알아볼 것도 있고, 일을 최대한 비극적으로 끝내지 않고 싶고, 아리엘을 향한 이상한 감정, 기타 등등의 이유 때문에 두고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도 그 이유가 나왔습니다.
'살고 싶다 하면서 목숨 가지고 장난질'이라는 건 자신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리엘을 두려워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반복한다, 그런 뉘앙스의 표현도 여러 번 들어갔습니다:D
그러니 부디, 지금은 너무 힘들게 읽지 마셔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불길).
전개에 집중한 진짜진짜진짜 초고, 자유연재입니다.
내일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