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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꽃 작가님-33화 (33/157)

00033 CHAPTER 4. 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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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경들이 결국 부단장님께 많이 혼났습니다. 그렇게 화내시는 걸 처음 봐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으응. 그랬구나.

……가 아니지. 나도 모르게 대답하고 있었다!

심지어 전후 사정도 모른다. 내 귀가 깨어난 게 방금이기 때문이다. 나는 눈이 잘 뜨이지 않아서, 감은 눈꺼풀 안에서 한참을 씨름했다. 그러나 육신적인 어려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마음 한 구석이 빈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이유 모를 초조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까닭 모를 이 상황이 싫다.

그러나 이런 나를 모를 쥰은 잔잔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 그러고 보니, 누님, 오늘 작전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번엔 저도 명단에 올랐습니다. 서부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그전에 누님께서 일어나셔서 인사를 드리고 떠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킨들 라이네에 오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정말 가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아.

나는 그제야 이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킨들 라이네 산맥에 갔었고, 가서 아버지를……, 그러니까, 공작을, 구하려다가, 도끼에 옆구리가 찍히고. 아마도 독 때문에 정신을 못 잡고 있었지.

그리고 근무지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쥰이 곁에 있는 것으로 봐서 여기는 오드리나에 있는 라이네 저택일 테고. 어째서 깨어날 대까지 라이네령에 머물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하나하나, 지체가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내 찬 손을 주무르고 있던 사람이 손길을 멈추었다. 하여 다시 손을 움직였다.

“다음 다, 알에……, 누님?”

그래. 쥰. 내 동생.

그러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아직은 손을 움직이는 것뿐이라서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러자 쥰이 다시 나를 불렀다.

“누님? 누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는지 의자가 키이익 밀리는 소리가 났다.

“누님? 깨어나신 겁니까? 제 말이 들리세요?”

미안. 눈이 안 떠짐. 진짜 무거움. 제길.

쥰의 손 안에서 다시 손을 움직여, 네 목소리, 네 말 듣고 있다고 답했다.

“절대, 절대 다시 정신 잃지 마세요. 잠시만. 의사만 불러 올 테니 잠시만. 바로 오겠습니다.”

쥰은 내 손을 정말 조심스럽게 이불 위에 놓아주고 달려 나갔다. 누님이 깨어나셨다고 다급하게 한껏 외치며 달려갔기 때문에 누워서도 그의 목소리가 죄 들렸다. 그 얌전하던 아이가. 저런. 나는 낮게 코웃음을 흘렸고, 마침내 서서히 눈을 뜰 수 있었다.

저택의 내 방이 맞다. 뿌연 시야 탓에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떠야 했지만, 그 정도는 닦이지 않은 시력으로도 판단할 수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켰다. 흉곽이 부풀어 올랐다.

이후 의사가 와서 나를 진찰하고 질의를 하는 것에 미소하거나 고개를 살짝 움직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쥰은 옆에서 내 손을 잡고 지켜보더라. 공작은 없었으나 무사하시냐고 따로 묻지는 않았다. 일어나고 나서 나를 겪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아가씨라 부름에 대충 짐작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래도 역시 확실한 것을 좋아하지.

미약한 불안감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니라서, 모두가 물러가고 쥰만이 남아있을 때 나는 쥰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침대 위에 있지만, 누워 있지 않고 앉아 있음에도 발성이 영 불안했다.

마치 내가 말하는 것 같지 않아서, 통각이 무뎌진 손을 들어서 목을 만지작거렸다. 아, 독은 확실히 내 몸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목소리야 오랜 만에 말하니 그렇다 쳐도 손끝이 무딘 것은 삼 주간 혼수상태였던 것과 관계가 없을 것을 직감했다.

“입궁해 계십니다. 사람을 보냈으니 곧 귀환하실 겁니다.”

“살아 계시는 거지?”

“……예.”

쥰은 일순 목이 멘 것처럼 흔들리는 음성으로 늦게 대답했다. 나는 없는 힘을 모아서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그럼 됐구나.”

“…….”

내 손을 여태 쥐고 있던 쥰은 그에 말없이 나를 보다가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내 손에 제 얼굴을 파묻듯 하였다.

숨결이 닿았다.

이 웬 어리광이냐고 피식 웃던 것도 잠시, 많이 타던 간지러움일랑 태어났을 때부터 없었던 것처럼 조금도 간지럽지 않다는 사실에 주의가 미쳤다. ……이 둔한 감각이 지속된다면 적어도 무기를 쥐고 몸을 움직여야 할 때엔 반드시 불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어깨를 올리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약간 두려워졌다. 내 자신감의 근원 중 하나는 내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무술에 능하다는 점인데. 아리엘의 마법이 혹 나를 능가할 경우도 생각해야 하고.

그래도 애써 생각을 버리려 하며, 목을 만지던 손으로 쥰의 머리를 토닥였다.

“이게 웬 귀여운 행동이지. 응?”

“…….”

“쥰, 왜 그,”

손바닥이 축축함을 깨달은 건 그때였다. 나는 말을 부러뜨렸다. 목소리가 꺾여서 추락했다. ……이게 뭐야. 울……어?

소리도 없고 어깨의 들썩임도 없었다. 내가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아주 작은 떨림만이 머리에 존재했다. 쥰. 내 동생. 네가 날 놓지 않는 한 나도 놓지 않을 동생. 그의 머리와 머리 위에 놓인 내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이유도 모르게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다시 쓰다듬기 시작했다.

울지 마.

-저를 놓지 마세요.

울지 마.

-저를 놓지 마세요.

놓지 말라하는 쥰의 목소리가 재차 떠올랐다.

잊은 게 있는 것 같다. 꿈? 꿈 때문에 그러나.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악몽이었다는 막연한 느낌만이 남아 있고, 더불어 속이 허했다. 텅 빈 것 같이 명치를 뚫고 바람이 지나다니는 것 같아.

나는 통제할 수 없이 잘게 떨리는 손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울지 마. 쥰.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미안해.”

“…….”

“미안해.”

“……무엇이요.”

“전부. 전부, 미안해.”

억눌린 웅얼거림에 그렇게 답했다. 남이 내 탓으로 운다는 것이 이토록 슬플 수가 있나. 이 곳 세계에 오기 전에 나는, 그 어떠한 사람에게도 이만한 무게를 지니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누가 나를 위해 울어 주는 상상을 해 본적은 있으나, 그 상상 속에서 나는 기뻤다.

그런데 왜 이렇게 슬프지. 왜 이렇게, 마음이 아파.

감정의 소모가 극심한 까닭인지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시리다. 얼음조각을 댄 것처럼 아프기마저 했다.

결국 쥰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졸음으로 멈출 것 같던 무렵, 그러나, 적당히 환기되도록 열어둔 테라스를 통해 마차 들어오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어오자, 눈이 번쩍 떠지더라. 쥰도 눈물 젖은 얼굴을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 얼굴을 닦아주면서도, 마차에 타고 있을 사람을 떠올렸다.

공작.

글과 달라진 생사. 나는 떨리는 숨을 흘리며 입을 벌렸다. 웃지 않을 수 없다. 벅차지 않을 수가 없어. 그런데 이상하지. 코가 매워졌다. 화르륵 달아오르는 얼굴을 꾹꾹 가라앉히려 노력하면서도, 소매를 억지로 끌어내려 얼추 닦인 쥰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누님…….”

울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웃고는 있는데, 말을 하는 순간 깨져버릴 것 같아.

나는 팔을 내리다 거칠게 열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지 안다.

“…….”

공작.

그때 그 순간, 그토록 절박하게 끓어 나온 ‘아버지.’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말없이 보다가, 참 한참을 그리 응시하다가, 내가 먼저 움직였다. 힘이 족히 들어가지 않는 근육을 움직여서라도 싱글벙글 웃었다. 그리고 그러하자마자 뜨뜻한 것이 툭 떨어졌다.

타고 흐른 것도 아니고, 뺨에 톡 닿았다가 그대로 툭 이불로. 부서졌다.

“오셨습니까.”

내 눈물을 보지 못했을 쥰이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했지만, 공작은 내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차갑게 명령했다.

“너는 나가라.”

나는 그제야 고개를 숙였다. 쥰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스스스 내려온 머리카락이 한밤의 장막처럼 얼굴을 가렸다. 쥰은 얼굴을 보이지 않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그럼 쉬시라고, 필요하시면 언제든 부르시라고 인사를 남기고는 곁을 떠났다.

문 닫히는 소리가 탁, 난 후에야 공작도 나도 다시 이렇다 할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는 내게 다가왔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공작은 여태 쥰이 앉아있던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몸은 좀, 괜찮으냐.”

“괜찮습니다. 아, 머리야. 아, 옆구리가.”

“괜찮은 것 같구나.”

“…….”

너무 단호하신데요.

목소리에 힘이 없고 머리와 옆구리를 짚은 손도 흐느적거려서, 농담이 안 통할 줄 알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안 통했다. 평소처럼 공작의 혈압을 높이질 못했어.

일어나지를 못하니 제대로 씻지도 못한, 그래서 시녀들이 가볍게 닦아주기만 한 얼굴을 공작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최대한 능글맞게 웃으며 시선을 맞받아쳤다. 여기서 놀란 점은, 공작이 내게로 손을 뻗어왔다는 것쯤 될 것이다.

그는 내가 깜박 잊고 있던 눈가를 엄지로 쓸었다.

……아주 조금 남아있었을 물기도 그가 거두어간 것 같았다.

손길이 다정했느냐, 혹은 다정하게 느껴졌느냐, 하면 그것은 잘 모르겠다. 나와 공작은 후계자에 대한 나의 거부와, 나의 일탈과, 쥰에 대한 처우 등을 이유로 서로 뒷목 잡게 한 역사가 길었다. 최근 십 년은 나의 거듭된 가출로 인해 내가 공작의 곁에 있는 시간이 상당히 짧아지기까지 했으니 이런 손길이 자주 온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뺨을 맞은 적은 여러 번.

그래도 나는 중요한 순간에 공작을 아버지라 울부짖었다. ……아, 역시 인정하고 싶지가 않네. 내가 조금 전 공작을 보고 울었던 것도, 글이 바뀔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을 거야.

나는 어색하게 웃었고, 공작도 일견 어색해 보이는 움직임으로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라. 내가 빼앗았을 때보다 훨씬 엄중하고 두껍고 단단하게 감싸인 침들을 보자마자 나는 눈을 깜박였다. 우리는 역시 살가운 부녀의 정을 나누기보다는 이런 일로 대화하는 게 훨씬 익숙하다니까. 어째서 이게 그에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침을 내려다보고 있자 공작이 물었다.

“너, 이것, 왜 가지고 있느냐.”

“……음, 어째서 여쭈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 것은 아니에요.”

“묻어 있는 것이 독이다. 팔이 시퍼렇게 붓더군.”

“…….”

그 말을 들은 후엔 어쩔 수 없이 멈칫했다.

방금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었고,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일을 들은 탓이다. 아랫입술을 말아 잘근 무는 척 하다가, 크게 호흡했다. 스으, 후으.

그리고 나는 침을 삼켜 성대 부근을 적시고, 눈을 깜박이다 느릿하게 물었다. 이것은 더는 농담할 거리가 아니었다.

“……독이요?”

“그래. 해서, 독인 걸 알고 나서, 혹시나 하여 네 몸을 살피게 하니 찔린 자국이 여럿이라 하더구나.”

“…….”

“침이 네 것이 아니라 하니 널 죽이려 했던 놈들의 것이겠지. 그들을 네가 제압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그들이 누군지 혹 아느냐.”

……알고말고.

망연하게 침들을 내려다보던 나는, 입을 달싹이다 고개를 떨어뜨렸다.

날 기절시키려던 자들에게서 빼앗은 것. 그러나 그들의 목적이 나의 기절이 아니었다면. 알드리히. 네가 나를 죽이려 했나. 벌써 아리엘이 수를 썼어? 내가 공작이 되고자 하여 일이 이토록 빨라진 거야? 아닌데. 글에는 독침 같은 건 나오지 않는데.

도저히 웃음을 가장할 수가 없었다. 나는 메마른 목소리로 떠듬떠듬 대답했다.

“확인, 해보겠습니다.”

알드리히에 대해 지금 당장은 생각지 않는 게 좋겠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무거워진 탓이었다.

그러다 누구 팔이 그리 시퍼렇게 부었는지를 듣지 못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쳐서, 내 부주의로 인해 중독되었을 그 사람을 묻고자 했다. 그러나 그 전에 공작이 말을 잇더라.

“급한 용건은 이것으로 마쳤지만, 좀 더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 미리 끝내두면 너도 나도 편하겠지.”

“물론이지요.”

“베르덴이, 발리앙경이 내게 요청해온 게 있다.”

침들을 다시 두꺼운 수건에 싸고 봉투에 넣는 것을 보며 입을 열려다, 그 말을 듣고 번쩍 고개를 들었다.

“베르덴이?”

“그래. 서임이 깨지고 네가 떠난 뒤에.”

이건 또 웬 해괴한 일이냐고 멀뚱하게 공작을 보다가 뒤늦게 물었다.

“무엇을 요청했는데요?”

“내 기사가 되기를 원했다.”

============================ 작품 후기 ============================

겨울이제일좋아님, 후원쿠폰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D

노파심에 미리 말씀드립니다.

죽이려고 발라둔 독을 맞고서도 에본느가 수면으로 보이는 실신과 일시적인 병증 정도로 끝난 것은 오류가 아닙니다. 차차 나옵니다!:D...라기보다는, 이미 그 이유가 예상 가능하실 수도 있고요.

(퇴고하지 않은 초고입니다. 빠른 전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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