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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꽃 작가님-24화 (24/157)

00024 CHAPTER 3. 이기심을 위한 선 =========================

CHAPTER 3.

-킨들 라이네 산맥에서 시작합니다.

섬뜩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내 머리맡의 나무에 숄랑이 묶여 있었습니다.

나는 나를 거꾸로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을 보다가 덜덜 물었다.

“……너 뭐하냐.”

놀라서 목메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까스로 묻자, 숄랑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네가 코고는 걸 멈추려고 코를 틀어막았는데, 네가 컥컥 대는 거 있지.”

“그런데.”

“웃고 있다가 묶였다.”

자던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나.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크게 하품했다. 누가 그런 친절하고 상냥한 처리를 해 주었을까. 피곤한 눈에 염증 같은 게 올라왔다. 시리다. 손바닥으로 오른 눈꺼풀을 꾹 누르며 물었다.

“누구한테?”

“너한테!”

푸흡!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던 용병단에게서 미처 막지 못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에 더 열 받았는지 숄랑이 버럭 소리쳤다.

“묶어놓고 기억 못하는 게 제일 짜증나!”

“……내가 코를 골아봤자 얼마나 곤다고.”

“허, 양심도 없냐? 멧돼지도 그렇게 킁킁 대진 않을 거다!”

“…….”

나는 누운 채로 주변 땅을 더듬어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바닥 가득 흙이 묻었다. 상관없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곤 주위 다른 용병들에게 물었다.

“얘 언제 묶였어?”

“음? 좀 됐지. 두 시간? 세 시간?”

“화장실 급하겠다. 그렇지?”

“……야……, 설마…….”

나는 심각한 얼굴을 한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 자식은 틀렸어, 하며. 그리고 설마, 설마를 반복하고 있는 숄랑의 배를 나뭇가지로 꾹 눌렀다. 숄랑이 절박하게 외쳤다.

“아, 아. 나 진짜 급하다고!”

“바지 한 벌쯤 더 있겠지.”

“야, 인마!”

“크흐흐흐. 쉬이이이이이. 쉬이이이이이이.”

낄낄 웃고 있던 케니스가 옆에서 효과음도 내기 시작했다. 곧 온 용병단이 다 동참했다. 와, 아름답다, 이 동료애. 내가 나뭇가지를 거두자 그들은 직접 손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숄랑은 붉어진 얼굴로 버럭버럭 소리 질렀다.

“이 악마 같은 새끼들아!”

“시끄러. 괴물들 기어 나온다. 쉬이이이.”

면박 주는 솜씨도 아주 훌륭했다. 심지어 그 면박을 주며 괴롭힘은 멈추지도 않았어. 저희들끼리 잘 노는 광경이 흐뭇하다. 나는 나뭇가지를 던지고 두 손을 탈탈 털었다. 그 움직임에 맞춰, 쓰고 있던 후드에서도 차가운 흙이 바스스 떨어졌다.

화장실은 나도 급했다. 저 효과음에 내 방광이 괜스레 자극되는 중이었다. 모르는 척 일어나 일부러 배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나 화장실.”

넌 못 가지만 난 간다. 숄랑을 내려다보며 씩 웃어주니, 그가 파들파들 떨기 시작했다. 괴물들 때문에 큰 소리는 못 내니 미친 것처럼 으허허허, 하며 허탈한 웃음을 실실 흘리는 것을 뒤로 하고 대충 가까운 나무 하나를 골랐다. 노숙은 이런 게 불편하다.

볼일을 보고 흙과 나뭇잎으로 덮었다. 이런 산에서는 되도록 마법은 쓰지 않는 게 좋다. 현 내 상황도 상황인데다.

급한 걸 처리하고 나니 슬슬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문득 깨달은 건, 가까운 곳에서 졸졸 물 흐르는 소리. 냇물인가. 비가 내려 수위가 불어날 일만 없다면, 냄새를 지워 추격에서 급히 벗어나거나 식수를 얻기에 좋은 곳이다. 나는 소리를 슬금슬금 따라갔다.

그렇게 만난 건 상류의 끝이 보이지도 않는 시내였다. 망연하게 줄기의 끝을 올려다보았다. 폭이 퍽 넓었다. 이 산을 오르는 건 처음도 아니고, 지도로도 수십 번 본 바 있으나, 실제로 시내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대단하네.”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세상에,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마음이 정갈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폭이 넓어 너무 탁 트여있으니 노숙할 지점은 확실히 아닌 곳.

오래도록 곤두서 있는 탓에 마냥 기분 좋은 감상을 할 깜냥이 지금은 못 되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흘러 내려가는 물을 따라 아래 저편을 잠시 보다가, 몸을 굽히고 시원하게 세안을 했다. 근처에 있는 거친 풀을 뜯어와 질겅거리고 뱉어낸 뒤, 입을 헹궜다. 치약과 칫솔이 있는 세계지만 유감이게도 치약이 다 떨어졌다. 그럼 떠돌이들이 쓰는 방법을 쓰는 수밖에 더 있나. 일단의 세안을 마쳤다.

그러나 옷으로 물기를 미처 닦기도 전에 다시금 주위를 두리번거려야 했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공기가 너무 촘촘하게 짜였다. 정도가 지나치게 사납지 않은가. 본디 이토록 따끔거리게 기분 나쁜 곳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답답해라.

실로 답답하다. 조금 전의 상쾌함은 어디로 가고, 지독하게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토벌이 조금 늦어졌다고 이렇게 달라지나.

젖은 두 손을 마구 털며 용병단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친 채였다. 풀려난 숄랑이 내게 육포 하나를 던져주었다. 그것에 그의 침이 발라졌다는 걸 케니스에게서 들은 것은, 내 손이 빈 뒤였다. 나는 걸어가다 말고 숄랑과 케니스의 살과 뼈를 발라 주었다.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의 몸 위에 돌멩이 몇 개를 올려놓은 용병단은 다시 산행을 재개했다.

우리는 그렇게 이십여 분이 지나도록 서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다 뒤늦게 의아해졌다.

나는 뒤통수를 매만지며 물었다.

“아, 근데, 너희는 왜 여기 있나.”

“네가 우리한테 왔거든. 그러고 보니 너 왜 여기 있냐?”

스무 명 남짓한 용병단이 멀뚱하게 나를 바라보는 광경은 오래도록 기억할 만했다. 그러나 나도 할 말이 없어 그들을 멀뚱하게 마주보고 있는데, 가장 어린 조니가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죠. 우리보고 왜 여기 있냐니요. 우리 쉬고 있는데 누님이 갑자기 와서 퍼 자기 시작했거든요? 그렇잖아도 괴물들 경계하느라 죽겠는데 불쑥 나타나 봐요. 죽일 뻔 했어요. 작태가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저 말을 들으니 내가 왜 이들 옆에서 자고 있었는지가 슬슬 떠오르기 시작했다. 음. 과연 그렇다. 나라도 순간 살심이 솟았을 거야. 저들 입장에서는 내가 뻔뻔한 게 맞았다. 나는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곤 사과했다.

“미안.”

그리고 그들 입장에서는 내 사과가 퍽 순순하게 느껴졌거나 의외로 느껴진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를 잘못 들었다는 표정으로 팍 찌푸리고 귀를 후비지는 않을 터. 아주 그냐앙, 예뻐, 죽겠네. 숄랑과 케니스는 내게 이십 분 전 당한 일을 복수라도 하겠다는 양 앞장서서 귀를 후비고 있었다.

조니는 다시금 손사래를 쳤다.

“아니, 사과는 그렇다 치고. 변명을 해 봐요.”

“……정말 졸렸어. 배고파서 먹은 게 수면초였나 봐.”

“또 아무 거나 주워 먹었어요?”

“아무 거나라니. 날 뭘로 보고.”

기분 나쁜 척 인상을 찌푸리고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

“난 맛있어 보이는 것만 주워 먹는다.”

“야 이 미친 여자야.”

이런.

나는 조니의 멱살을 잡아 내리고 친절하게 다시 물었다.

“너희. 왜. 여기 있다고?”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게처럼 옆으로 걷고 있었다. 조니는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눈을 굴렸다. 그리고 나온 말이라곤 구명해 달라는 외침이었다.

“……단장! 저 좀 살려 주시죠!”

“하여간 매를 사서 벌지. 말해도 된다.”

앞서 가던 윌리엄이 막간을 이용하여 허락했다. 말해도 되고 말고의 문제였다면 짐작대로 의뢰인 모양이다. 그러나 이 험난한 산에 용병단을 올려 보내도록 허락하고 의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입 꼬리가 싸하게 내려갔다. 숨 막히도록 벅찬 긴장. 내가 이 산맥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 이유가 있는 탓이다.

수면초는 거짓. 나는 꼭 필요한 야초가 아니고서야 입에 함부로 집어넣지 않는다. 수면초는 떠돌이에게 필요한 일이 드문 풀이고, 내게는 더더욱 그랬다. 돌아버리겠다. 조니의 입이 열리기 전 겨우 수 초, 나는 미치도록 스트레스에 잠겼다.

내 등을 뚫고 들어온 침을 어떻게 빼고 부러뜨렸는지 떠오르자마자 온몸에서 가시가 서는 듯했다.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건 옛 암살시도들을 떠올리게 한다. 상황이, 아마도 다를 텐데도. ……그 오랜 기간에 걸친 일들이 나도 모르는 트라우마로 남았었을까.

조니가 말했다.

“괴물들이 새끼 깔 시기잖아요.”

“……어?”

이해하지 못했다. 지나치게 당겨져 있던 정신줄이 빠른 이해를 차단했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조니는 콧노래를 부르듯 어깨를 으쓱했다.

“토벌작전이 조금 늦어지는데, 괴물들은 이미 새끼 깔 시기에 들어갔고. 우린 선발대인 거죠.”

“선발대의 선발대겠지. 먼저 들어가서 길 좀 닦아두라는 거지.”

케니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이해했다. 토벌작전이 있는 시기. 안다. 알고말고. 옳다. 나는 멱을 잡은 손을 풀었다. 손가락에 쥐가 난 것처럼 감각이 묘하게 없어졌다는 게 옳겠다. 절로 풀리다시피 했다.

느낌상으로만 가벼워진 손가락을 움직여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토벌작전이 늦어진 건 그렇다 치고, 이들이 이곳에 발 들여놓은 이유가 내게 족했다. 한결 안심하고 빙긋 웃었다. 조금은 멍청하게 보일 지도 모를 그 웃음을 보더니 숄랑이 내게 물었다.

“설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거냐?”

“킨들 라이네 산맥……, 첫째 산?”

“문. 두 번째 산.”

“…….”

그에 동요하려는 숨을 가까스로 삼켰다.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첫째 산의 입구 근처에 있었거든. 없는 정신을 어찌어찌 긁어모아서 비틀비틀 잘도 걸어왔구나. 이들을 만난 건 필시 행운이다.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경우, 혹은 만난 이들이 이 용병단이 아니었을 경우를 어렴풋하게 생각해보자마자 아찔해졌다.

어떤 약에 당하여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그대로 오드리나로 끌려가거나 죽어서…….

내 걸음 끝에서 돌멩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그 작은 돌멩이 하나로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숄랑이 옆에서 내 팔뚝을 잡아주었다.

나는 침을 삼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럼 됐어.”

공기가 사나웠던 건 괴물들이 늘어난 데다 사나워지기까지 해서. 그것뿐. 손을 옷에 문지르고 목 뒤를 쓸었다.

토벌이 늦은 곳에 이 용감한 분들은 들어왔고. 자신이 있으니 들어왔겠으나, 귀족에게서 명령이 떨어졌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대놓고 물어서 이들의 긍지를 어지럽히고 내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게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내 속을 모를 숄랑은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여행을 다니는 건 그렇다 치고. 혼자 다니고 있는 것도 그렇다 치고.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 산맥에 들어온 거야?”

아하, 좋은 질문이다. 나는 순발력을 끌어 모아 최대한 매끄럽게 대답했다.

“등산이 좋아서.”

“……조니, 얜 미친 게 맞았다.”

“바보에게 뭘 바랐어요? 형님도 참.”

“…….”

“잊은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바로 옆이 낭떠러지야. 왜 너희 둘은 매를 사서 버는지 모르겠어.”

이 자식들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나의 바로 뒤에서 산을 타고 있던 케니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지. 불과 삼 분 전부터 길이 좁아졌다. 바로 옆에는 낭떠러지.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추락이라는 말이다. 도대체 어떤 심장과 어떤 간을 가지고 있어야 이 길에서 이렇게 촐싹댈 수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 모양이었다. 실은 나도 들었다.

그래서 일단, 주머니에 있던 육포를 숄랑의 코앞에 흔들어준 뒤 낭떠러지에 던졌다.

나뭇가지나 나뭇잎에 탈싹 탈싹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숄랑이 먼저 멈추고 나는 두어 걸음 더 간 뒤에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조니부터 시작하여 내 뒤에 있던 용병들이 전부 입을 틀어막은 채였다. 괴롭게 새어나오고 있는 건 죄다 웃음이다. 숄랑은 내 머리통을 두 손으로 콱 움켜쥐었다.

아야야.

“내가 먹을 것에 목숨 거는 돼지냐! 뛰어내릴 줄 아셨어? 응? 그럴 줄 아셨어요?”

“아니, 저기에서도 살아 돌아올 자신이 있으니까 나한테 시비 거는 줄 알고.”

순진한 척, 진지한 척, 온 마음을 담아 그렇게 생각한 척.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박였다.

조니가 우는 듯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때부터 무진장 싸우다가, 결국 되돌아온 윌리엄에게 한 대씩 맞고 나서야 산행을 계속했다.

숄랑이 맞고 나서 진심으로 운 것으로 보았을 때, 나는 같은 단원이 아니라고 강도가 약했던 것 같긴 한데, 아프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이마를 매만졌다. 어떻게 이렇게나 아플 수가 있지? 고무줄로 맞았을 때보다 더 아프다. 장갑에 맞았을 때보다도 더 아파.

“그래서.”

둘 셋씩 모여서 수군수군 대화하며 등산하고 있던 사람들을 뚫고, 윌리엄의 묵직하고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을 내리며 고개를 들었다. 용병들도 모두 음성을 멈추었다.

“엔젤. 언제까지 여기에 있으려는 거지? 어디 가던 중 아니었나?”

그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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