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면꽃 작가님-1화 (1/157)

00001 Prologue =========================

어두컴컴한 건물, 파르스름한 어둠. 희게 비치는 달빛과 화르륵 움직이는 등불. 거의 실려 들어오다시피 한 라이네 공작을 기어이 한밤중에 깨게 한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에본느는 이 예고치 않은 산책을 위하여 심히 무리하고 있었으나 남자를 종용하지는 않았다.

그의 직책이 직책이니만큼, 무언가 중히 할 말이 있으리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헌데 그런 생각이 틀렸음을 곧 깨달았다. 기가 막힌 대화는 이어지고 이어져 어디까지 도달했느냐하면, 헛소리에까지.

그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그가 갑자기 말하더라.

“돌아오신 분은 둘이지요.”

둘?

갑작스런 헛소리. 이해할 수 없다.

창백하게 질려 있던 에본느의 얼굴에 이제 그늘마저 드리워졌다. 저 눈. 지나치게 자애로워 소름이 끼치는 저 눈과 저 미소가 그녀의 심장에 갈고리를 거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답답함에 앞섶을 잡았다.

피 토하듯 벌린 입에서 뜨거운 숨이 새어나갔다. 뱀이 등허리를 사악 훑은 것처럼 온몸이 차가워지고, 끈적끈적하고 써늘한 무언가가 정수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기분. 또박또박 소리 나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갑작스레 아프다.

몹시 아팠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각하의 여태까지의 행보는 방어기제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공작의 격에 맞는 예복에 휘감긴 몸도, 마치 이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잠기는 중이었다. 아, 이 순간은 바다와도 같았다. 드넓고 캄캄하며 숨도 쉴 수 없는 그곳으로 지금처럼 걸어가다 머리끝까지 잠길라…….

그러나 상대는 참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을 잇고 있었다.

“에녹의 검과, 당신의 그 순수했던 신앙과, 그렇군, 기도도 그렇지요. 실로 복합적이었지만, 그러한 것 역시 사랑이지 않겠습니까?”

“그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네.”

“신의 사랑 말입니다. 이레님의 사랑.”

그런 걸 듣기 위해 물은 게 아니었다. 색색거리는 호흡 사이로 간신히 물었건만 동문서답이다.

라이네 공작은 어지러운 머리를 참으려 했으나, 기어이 이마를 짚고 말았다.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칼날 선 길을 앞에 둔 것 같이 살갗이 바짝 선 느낌마저 들어서,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칠 것만 같았다.

에본느의 흐려진 눈동자에 파르스름한 첨단이 돋았다. 오래 갈고 닦은 예기다. 남자는 그것을 보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하지만 역시 에녹의 검이 가장 컸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군요.”

“……이보게.”

“에녹의 검이야말로 이레님의 사랑 안에서 안배된, 사랑. 인간의 사랑. 전 이것 역시 감격스럽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뿐이다. 무어라 단호하게 내치고 싶으나 그녀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에본느는 혀뿌리까지 올라온 구토기를 막느라 애먼 침을 연거푸 삼켰고, 그 사이 남자는 속삭였다.

“마음이 꽃 되어 피어나니, 그 위에 그대 죽은 시신이 누워있더라.”

“…….”

“흙가루 뭉쳐 그댈 만드니, 연모임을 그제야 알았더라.”

“…….”

“나비처럼 나비며 떨어지는 는개 있더니, 그것이 눈동자에 닿더라. 어서 오소서.”

목구멍이 피로 젖는 듯했다. 쇠를 삼켰나. 비릿하여 참을 수 없는 욕지기였다. 점점이 징 수십 개가 박힌 것처럼 눈알 표면이 아프기까지 하였다. 그녀는 인내로 점철된 눈을 바닥에 꽂고 들지 않았다. 남자는 시구를 마저 외웠다.

“돌아가시다 밀려오니, 환상마저 서글프더라…….”

하.

“안개 위에서 그대 지는 모습 보이더니, 아, 나도 그대 따라 졌다. 나는 그대에게 꽃이었습니까?”

그러나 그런 노력은 소용이 없었다. 에본느는 기어이 구역질을 했다.

아픈 사람 붙잡고 조금도 영양가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으니, 그렇잖아도 짧아진 인내심이 아예 타들어갔다. 몸을 이겨낼 재간도 없었다. 붉게 핏줄 서 있던 두 눈이 구역질 몇 번에 젖었다.

더 참지 못한 열이 명치 아래에서부터 폭발했다. 머리가 순식간에 몽롱해져서 에본느는 술 취한 사람처럼 눈을 끔뻑여야했다. 그럼에도 남자는 그녀의 안부 한 번 묻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는 이 대화가 끝나면 이 대화를 모두 잊게 될 겁니다.”

“그대…….”

여기서 쓰러지게 되면 이 남자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이갈 듯 남자를 부르자, 남자가 물었다.

“그러나 각하는 어찌하려 하십니까?”

내가 무얼 어찌해.

어지럼증이 심해져 휘청거리다 벽에 등을 기댔다. 차가워 한결 나았다. 그럼에도 뜨겁게 달아오른 숨을 조용히 몰아쉬기 시작했을 즈음, 에본느의 눈동자에 환상이 비치었다.

정돈된 질문부터가 떠올랐다.

-그러나 각하는 어찌하려 하십니까?

나.

에본느는 바짝 마른 입술을 열어 뻐끔거렸다. 내가. 어찌 하냐고? 소리를 실지 않은 움직임에도 남자는 그녀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다시 물었다.

“각하의 처참했던 끝과, 모든 것을 걸고 각하를 살리려 하셨던 어느 분들의 노력과, 배신자와, 연모를,”

에본느의 빛 잃은 눈이 들렸다.

“어찌하려 하십니까.”

============================ 작품 후기 ============================

사랑하는 독자님들께.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지요? 독자님들께서 혼란스러우셨을, 그리고 저도 몹시 멘붕하고 가슴 아팠던 탈퇴날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늦게 돌아와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조아라에 써두었던 글들이 삭제되고, 작은밤으로 활동하고 있는 네이버 블로그에 공개/비공개로 올려두었던 글들도 전부 삭제되어서 정신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조아라에 다시 가입이 가능하기까지 일주일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조아라에 업로드한 글들은 항상 따로 백업해두어 다행이었지만, 지금까지 독자님들께서 달아주신 코멘트들, 추천들, 후원쿠폰들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하여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죄송할 따름입니다.

나중에는 이미 일어난 일이라며 글을 좀 더 넉넉히 수정하고 비축분을 쌓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만, 예고 없이 일어난 일을 독자님들께 어찌 알릴 방도가 없어, 여태 본의 아니게 잠적했던 점도,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완결까지 쭉쭉 달리겠습니다.

-작은밤 올림.

글을 다시 시작하며 따로 드리고픈 말씀.

이 글은 일단의 플롯이 세워져 있으며, 글을 쓰는 목적이나 주제 같은 것도 기획하며 물론 정해두었습니다. 사건의 순서나, 사건의 내용, 업로드한 회차 순서가 뒤바뀌는 등 연재 중에 중간중간 플롯의 수정이 있을지언정 완결 내용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 개인사정이긴 하지만, 저는 시험 준비 중인 수험생입니다. 글보다는 공부에 더 시간을 할애하는 게 본분인 신분입니다. 공부 중이라 멘탈이 많이 약해진 상태인지라, 코멘트에 상당히 흔들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때에는 사전 공지 없이 코멘트를 잠시 닫을 수도 있으니, 미리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비판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마냥 제가 기쁠 수 있는 코멘트도, 해 주신 비판과 짚어주시는 것들을 통하여 제가 배울 수 있는 코멘트도, 혹은 악플도, 이 모든 코멘트들이 제가 공부보다 글에 마음을 두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D

(중간 연재분 수정을 크게 하지 않았으며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이 이 1회차뿐이므로, 전에 읽으셨던 독자님께서는 29회로 바로 넘어가셔도 글을 이해하시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3월 시험까지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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