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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천세를 누리리라. (123/125)

123. 천세를 누리리라.

2021.12.03.

지금껏 중전과 부원군이 아무런 의심 없이 그런 악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까닭은 조 참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내외적으로 얼굴이 덜 알려지고 화론 파에서도 늘 조용조용하던 그였기에 그 누구도 조 참찬이 뒤에서 그런 일을 벌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해서 지금껏 중궁전이 여인들을 두고 돈놀이를 했던 흔적 모두를 조 참찬의 사가에 숨겨 두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중전을 대신해 수족처럼 궐과 저잣거리를 오가며 자처해 연결고리가 되었던 것.

“그것이…… 대체.”

놀란 조 참찬이 저도 모르게 휙, 김 도령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조상현이라는 진짜 이름을 숨기고 살던 김 도령은 깊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밤새, 조 참찬과 부원군의 사가를 집중적으로 뒤진 결과.

그간 마을의 여인들로 무엇을 하였는지, 그 여인들로 얼마를 벌어들였는지를 소상히 적어놓은 장부 같은 것을 발견하였다.

헌의 눈짓 한 번에 금부도사는 조 참찬의 사가에서 어렵사리 발견한 장부 무리를 들고 왔다.

한눈에 그것의 정체를 알아본 듯, 중전과 김 도령은 서로 시선을 부딪친 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모습에 헌이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치 물건을 사고팔 때 주고받는 거래서처럼.”

“…….”

“거기에는 여인들을 판 값과 어디로 팔아넘겼는지, 누가 샀는지. 아주 자세히도 쓰여 있더군.”

그러곤 허리를 굽혀 장부 하나를 집어 아무 장이나 펼쳤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곳에 꽂히는 순간이었다.

“붉은색 옷고름 5인.”

“……!”

“입궐.”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소진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헌이 고개를 들어 얼굴을 푹 숙이고만 있는 중전과 김 도령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어 입술을 달싹이는 헌의 목소리는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푸른색 옷고름 10인, 탐라 행.”

“……하.”

“옷고름 색에 따라 값이 다 다르구나? 붉은색 옷고름의 여인들을 푸른색보다 곱절로 받은 것을 보아하니. 꽤 값어치를 매긴 듯한데.”

“…….”

“한 규수는 이쪽으로 오시지요.”

내내 차갑게 쏘아붙이던 헌의 시선이 저 멀리, 소진에게 닿았다.

소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헌의 앞으로 서둘러 다가갔다.

영의정이 걱정 가득한 눈으로 소진을 응시했다.

“한 규수는 이 장부에 적힌 것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소?”

“예, 저하.”

소진이 알고 있다는 말에 사람들의 시선에 의문이 가득하였다.

대체 명문가의 여식이 이것을 어찌 알고 있다는 건지.

호기심 어린 얼굴들이 그녀에게 하나둘, 닿을 때쯤 소진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소인이 직접.”

“…….”

“여인들이 산속에 감금되어 있던 곳에 간 적이 있었사옵니다. 저잣거리 투전판이 아닌, 산속에서 암암리에 열리고 있던 투전판에 직접 잠복하였고요.”

“직접, 낭자가 그곳으로 가였다고요.”

“예, 저하. 그곳에서 이 장부에 적힌 이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여인들과 한 공간에 있었습니다.”

“반가의 규수인 그대가 직접 그 위험한 곳으로 뛰어든 까닭은.”

“저의 벗이 이들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

“처음에는 단순히 제 벗을 찾기 위해 이들을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사건이 아님을 직감하고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고요.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차마 세자인 헌과 함께 파헤쳤다고 할 수는 없기에.

소진은 약속한 대로 아버지인 영의정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 말에 중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소진을 똑바로 직시했다.

‘……네가 내 발목을 잡으리라는 것을 예상은 했다만. 정말 끈질긴 악연이구나.’

소진을 향해 있는 중전의 눈동자에 원망과 증오가 가득했다.

하지만 소진은 더욱, 눈빛을 견고하게 하며 이어 말했다.

“해서 저 역시, 한 가정의 부인으로 위장해 그 산속 처소로 끌려갔지요. 손이 묶인 채, 입에는 재갈이 물린 채. 두 눈은 가리개에 꼭꼭 가려 앞도 보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한데 산속으로 이동 전, 여인들의 수가 꽤 많아 한 곳에서 처리하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

“두 부류로 나누어 이동시켰습니다. 산속에 여인들을 팔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이내 그녀는 중전과 김 도령을 세차게 돌아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김 도령을 정확하게 가리켰다.

“그리고 한참 들어간 산속에서 눈가리개를 풀자마자 만난 이가 이 사람입니다.”

“…….”

“이자를 행수라고 부르더군요. 한눈에 보아도 우두머리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지목당한 김 도령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곳에서 저는 이미 감금되어 있던 여러 여인을 만났고 그들은 옷고름 색이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나누어진 저고리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아릿한지, 소진이 잠시 머뭇거리며 숨을 골랐다.

“그들이 말하길.”

“…….”

“붉은색 옷고름을 입은 여인이 푸른색 옷고름의 여인들보다 훨씬 더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이라 했습니다.”

“아.”

“푸른색 옷고름은 돈 많은 집 노리개로 팔려가지만.”

“……!”

“붉은색 옷고름은 그보다 더 돈 많은 집 사내의 첩실로 팔려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곳을 지키고 있던 웬 여인들이 저를 유심히 살피더니.”

“…….”

“제게 붉은색 옷고름이 달린 저고리를 주었습니다. 거기서 다시 여인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지요.”

그 말에 헌이 가만히 고개를 까딱이며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소진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해서 그 여인들은 어찌 되었는가.”

“죽었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진이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죽었다는 말에 궐 안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죽었다?”

“예, 저하. 제가 미리 포섭해놓은 무사들이 그들을 생포하기 위해 그곳을 들이닥치자.”

“…….”

“저들은 망설임도 없이 여인들이 머무는 공간에 불을 질렀습니다. 증거 인멸을 위해서요. 그 탓에 여인들은 산 채로 불에 타죽었습니다.”

그리고 소진은 지금 생각해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얼굴로 김 도령을 똑똑히 내려다보았다.

“아주 사람의 목숨을 개미보다 못하게 생각하는 천벌을 받을 이들이지요.”

“…….”

“하오나 한편으로는 그런 극악무도한 자들이기에 이런 추악한 짓을 벌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요.”

헌도 그날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그는 ‘붉은색 옷고름 5인, 입궐’이라 쓰인 글귀를 다시금 읽었다.

“한데 여기에는 붉은색 옷고름의 여인들을 입궐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려는 듯이 소진은 중궁전 밀실 안에 갇혀 있던 여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은 저 여인이 설명해줄 것입니다.”

이내 봉희가 헌과 왕, 그리고 대비의 앞으로 쭈뼛쭈뼛 다가와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쇤네는…… 여기 한 규수의…… 벗이자.”

“…….”

“지금까지 중궁전의 지하실에 갇혀 있었던 여인 중의 한 명입니다.”

봉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한 뒤, 소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소진이 봉희를 향해 긴장 풀고 준비한 말을 하라는 듯 몇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방금까지 한 규수가 했던 말, 모두 사실입니다.”

“……!”

“저희는 이른 아침, 깊은 밤, 동트기 전 새벽.”

“…….”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저들에게 보쌈당해 강제로 식솔들과 생이별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지하실에 갇혀 있던 여인들 모두…… 산속 처소에서 붉은 옷고름을 지닌 저고리를 입었었던 이들입니다.”

“…….”

“우린 모두 깊은 새벽 궐로 들어왔습니다. 붉은색 옷고름의 여인들만요. 그리고 궐에 들어오자마자 중전……마마를 뵈었습니다.”

모두 봉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중궁전 처소 궁인들은 자신들이 윗전으로 모시던 중전 김 씨의 뒷모습을 힐끔거렸다.

“중전마마께서 우리 모두의 옷을 벗기고…….”

“……!”

“몸 이곳저곳을 곳곳이 살핀 뒤…… 혼인을 한 여인과 혼인을 하지 않은 여인으로 나뉘어 밀실 안에 가두었습니다.”

헌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고 대비는 경악했다.

하지만 봉희는 거기서 말을 끝내지 않았다.

“하나, 혼인한 여인 중에서도 나이가 어리거나…… 외모가 뛰어난 여인들은 혼인하지 않은 여인들과 함께 지내도록 했습니다.”

“……대체 무엇을 하려고?”

황망하다는 듯, 대비가 물었다.

그러자 봉희가 서둘러 대비의 질문에 답했다.

“저희가 밀실에 갇힌 후, 이들의 계획에 차질에 생긴 것인지 예정된 날짜에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

“해서 정확하게 저희를 어디에 팔아넘기려고 했는지…… 그것은 모르지만. 입궐하기 전 푸른색 옷고름을 입은 여인들이 모두,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섬으로 팔려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 있습니다.”

“…….”

“그러니 아마 저희도…… 바다 건너 부잣집에 첩실로 팔려갔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고는 했습니다.”

봉희의 말이 끝나자 금부도사가 장부 하나를 헌에게 다시 내밀었다.

“이 장부 속에 입궐했던 여인들이 최종적으로 팔려간 곳이 적혀 있습니다.”

헌은 그것을 받아 들고서는 담담한 얼굴로 장부를 펼쳐 들었다.

그의 손끝에 팔랑이는 종이는 가볍기 그지없었지만, 그 종이에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일들을 담고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헌의 얼굴 위로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타국…… 황실?”

어처구니없다는 듯, 헌은 조소를 터뜨리며 중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감히…… 우리의 백성을 타국 황실의 후궁으로 바치려고 하였다?”

그 말에 내내 참담한 표정으로 골치 아프다는 듯 두 눈을 감고 있던 왕이 번쩍 눈을 떴다.

“뭐?!”

그러곤 호통을 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헌을 바라봤다.

“그것이 무슨 소리야! 타국의 후궁이라니!”

헌은 장부를 왕에게 넘기며 자신이 읽은 것을 그대로 설명했다.

“거기에 적힌 값대로 여인들에게 몸값을 받고 타국으로 넘긴 것입니다.”

“……!”

왕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여인들의 이름이 쭉 적혀 있고 몇몇 여인들의 이름에 붉은색으로 동그라미를 친 것이 보였다.

동그라미 속 여인들의 몸값은 그렇지 않은 여인들보다 훨씬 더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조그맣게 타국 후궁의 첩지가 쓰여 있었다.

왕은 그 글자를 발견한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저들끼리 여인의 외양을 살피고 받을 수 있을 만한 후궁 첩지를 논의한 뒤, 그에 상응하는 몸값을 챙겨 받은 것 같았다.

“아니 이것이 어찌……! 조선 여인을 타국 황실의 첩지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조선의 군주인 자신이 모르게 타국으로 조선의 여인을 보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왕은 노발대발하며 장부의 다음 장을 휙, 휙 넘겼다.

그러자 타국 황실로 보낼 여인 외의 나머지 여인들은 모두 타국 갑부들의 첩실로 보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모두 타국에서도 황실과 연이 닿아있는 내로라하는 집안이었다.

“실제로 후궁으로 들어간 여인은 있느냐.”

왕이 장부를 구기며 금부도사를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없고 모두 후궁으로 만들기 위해 따로 타국에서 준비 중인 것 같았습니다.”

“그 근거는.”

근거를 들라 하자, 금부도사가 무언가를 또 내밀었다.

“이것이 그 근거입니다.”

또 다른 장부를 내미는 그였다.

그러면서 금부도사가 설명을 보태 주었다.

“타국 황실 후궁으로 넘길 것이라며 저들이 예상했던 금액을 보시면 됩니다.”

“…….”

“타국으로 넘길 때 처음 받았던 예상 금액과 그 옆에 실수령 금액이 쓰여 있지요.”

“그렇군.”

“한데 그 옆에 실제로 후궁으로 들어갔을 때 최종적으로 더 받기로 한 금액이, 첩지마다 다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왕이 더욱 깊은 시선으로 장부를 살폈다.

금부도사의 말대로 실제로 여인을 한번 타국으로 넘기면 총 세 번의 값을 받기로 책정이 되어 있었다.

처음 타국으로 넘길 때의 몸값.

그리고 황실 후궁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실제로 후궁이 되었을 때 받기로 한 값.

마지막으로 후궁이 된 그 여인이 회임했을 때의 받는 값까지.

그들은 철저하게 이 여인들로 장사놀음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 정녕 이것이…… 현실이란 말이냐?”

실제로 여인을 팔아넘기고 저들이 챙긴 값은 처음 타국으로 넘겼을 때의 몸값뿐이었다.

왕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장부를 내려다보다, 김 도령과 중전 뒤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중궁전 최고 상궁에게로 다가갔다.

“……!”

갑작스러운 왕의 행보에 모두 놀란 얼굴로 왕의 발걸음을 바라보았다.

그때, 왕은 상궁을 일으키더니 거칠게 멱살을 쥐며 뺨을 내리쳤다.

“감히…… 나의 궐에서 지내는 동안…… 내 눈을 가리고 나의 백성들을 타국으로 팔아넘겨 돈 놀음을 하였다?!”

“저, 전하……! 쇤, 쇤네는 그저 윗전이 시키는 대로……!”

그러곤 다시금 그녀의 뺨을 내려치기 위해 손을 들자, 헌이 황급히 왕의 뒤로 다가와 섰다.

“아바마마! 체통을…… 지키셔야 합니다! 이런 추악한 것들 때문에 아바마마의 손을 더럽혀서는 아니 됩니다!”

헌의 외침에 왕의 손은 공중에서 멈칫했다.

상궁은 파르르 떨다, 당장에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

“전하……! 쇤네는 정말 윗전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쇤네를 포함한 중궁전 궁녀들 모두, 중전마마가 하라는 대로 해야만 했을 뿐.”

“……!”

“저희는 저 여인들이 타국 황실의 후궁으로 바쳐지는지는…… 결단코 몰랐습니다!”

상궁의 변명에 중궁전 궁녀들 모두 슬금슬금 그 뒤로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

“참, 참이옵니다. 저, 전하……!”

“저희 모두…… 그저 배를 타고 타국으로 건너가 갑부들의 첩실로만 팔려가는 줄 알았지. 황실의 후궁으로 받쳐질지는 추호도 몰랐습니다!”

“맞습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면 천세…… 천세를 누릴 것이라고 했을 뿐…… 저 여인들이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오죽했으면 그저 저 여인들을 나비라 칭하고 저 여인들의 출궁날을 나비를 날려 보내는 날이라는 암호를 정해, 우리에게까지 쉬쉬하였겠습니까?”

그 말에 잠자코 정면만 바라보고 있던 중전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조소를 터뜨렸다.

“말하면.”

“……?!”

“달라질 게 무엇인데?”

중전의 고개가 왕의 앞에 무릎을 꿇고서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궁녀들을 휙 돌아보았다.

“타국으로 팔아넘기든, 황실로 팔아넘기든.”

“…….”

“그것이 네년들에게 무엇이 중요하다고? 어차피 출세를 위해, 개처럼 내 발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할 년들이 아니었더냐?!”

그 말에 상궁이 고개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우리는! 여태껏 김 도령이 조 참찬 대감의 조카인지도…… 또한, 중전마마의 내연남인지도 몰랐습니다!”

상궁의 외침에 너도나도 김 도령 옆에 무릎을 꿇고 앉은 강 씨 부인을 가리키며 한목소리로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 모두 김 도령의 부인은 저 강 씨인 줄 알았습니다!”

“중전마마께서 저 사내와 뒤에서 그런 짓을 벌이는 줄 알았으면 저희 모두 죽을 각오를 하고 중전마마의 명을 거부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당한 것입니다, 전하!”

그러자 혼란스러워하는 헌의 곁으로 윤현이 다가와 무언가를 건넸다.

“김 도령과 중전 김 씨의 사이를 그 누구도 의심치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종이 한 장을 받아든 헌이 벌벌 떨고 있는 강 씨 부인을 한 번 쳐다보고는 그 종이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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