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 중전의 정인. (114/125)

114. 중전의 정인.

2021.11.01.

어느새 소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대들이…….”

벅차오르는 감동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들이 치열하게 뒤섞이고 있었다.

그때, 인파를 헤치고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소진에게로 다가왔다.

“소진아!”

봉희의 남편이었다.

소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에게로 달려갔다.

“이게 다 어찌 된 일이야……!”

놀란 그녀의 반응에 봉희 남편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백성들을 돌아보았다.

“내가 다 전하였어.”

“응?”

“세자 저하와 네가 우리 식솔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그랬더니 모두 저렇게 버선발로 뛰쳐나온 것이야.”

“……아.”

“궐을 지켜야지. 지금 그 진짜 범인을 아직 잡지 못하였다면서.”

“응. 안 그래도 그자를 잡으려고 저하께서 직접 출궁하시려고 해.”

소진의 말에 봉희 남편이 목소리를 낮추며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오다가 보니까 도성문과 뱃길, 산길, 모두 군사들이 꽉 막고 있더라고. 저잣거리도 막 무장한 군사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보니…….”

“…….”

“아무래도 궐문을 우리가 지키고 있어야 하겠더라고. 식솔들을 찾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손 놓고 울기만 하던 우리인데…….”

“…….”

“그런 우리를 저하께서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저들과 맞서, 식솔들을 구해주신 거잖아.”

봉희 남편의 눈가에도 어느새 굵은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는 하도 눈물을 닦아 달아버린 소맷자락으로 슥, 눈가를 훔치더니 다시 목구멍에 힘을 주었다.

“가만히 앉아 도움만 받을 수는 없어. 그래서 내가 아재들하고 벗들한테 이야기해, 궐문을 지키자고 했어.”

“……고마워. 정말 고맙다.”

“고맙긴. 고생은 너와 세자 저하께서 다 하셨는데.”

어느새, 소진의 곁으로 하나둘 모여든 백성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소리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궐만큼은 저희가 지키겠습니다요!”

“예, 아씨. 하니 걱정하지 말고 그 김 도령인지 이 도령인지 하는 극악무도한 자를 꼭 잡아주세요.”

“보니까 포도청 사람들도 다 한통속이었어요! 믿을 곳은 이제 이 궐밖에 없습니다. 부디 저 안에 갇혀 있는 우리 식솔들……. 꼭 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주세요.”

눈물로 애원하는 백성들을 한 명, 한 명, 돌아보던 소진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곡괭이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전의를 다지는 이도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닦는 이들도 있었다.

“곧……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버티세요.”

소진도 울먹이며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예! 그때까지 궐은 소인들에게 맡기세요.”

“고맙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헌 역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소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자신을 향해 서둘러 고개를 조아리는 백성들을 찬찬히 돌아보며 말문을 열었다.

“그대들을 보니 조선의 앞날이 참으로 밝은 것 같소.”

그렇게 말하며 헌은 막 도착한 말 위에 올라서며 소진에게 나지막이 일렀다.

“궐은 백성들에게 맡기고 나는 속히 김 도령을 잡아 와야겠습니다. 여인들과 이곳을 잘 부탁합니다.”

“예, 저하. 반드시…… 김 도령을 잡아 오세요.”

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 고삐를 꽉 움켜쥐었다.

곧 궐문 앞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던 백성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인산인해를 이루어 좀처럼 틈이 보이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사이로 헌이 탄 말이 지나갔고 그 뒤를 그의 무사들이 따랐다.

“저하, 고맙습니다!”

“몸 조심히 돌아오십시오, 저하!”

백성들의 인사를 받으며 헌이 멀어졌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소진은 두 손을 꽉 모았다.

‘……다치면 아니 됩니다. 무사히 돌아오시어요, 저하.’

* * *

“나비라고 했다고?”

“응, 저들끼리 쓰는 비밀 용어인 것 같았어.”

여인들이 모여있는 처소로 돌아온 소진은 그들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 있었다.

지금 이 여인들 모두, 봉희와 같은 날 밀실에 갇힌 여인들이라고 했다.

봉희가 그곳에 끌려갔을 때 한 무리의 여인들이 새벽을 틈타 막 밖으로 나갔다는 말도 전했다.

“처음 그곳에 갇혔을 때…… 나비를 막 날려 보냈다, 뭐 이런 말을 썼었어.”

봉희의 말에 소진이 잠자코 생각에 잠겼다.

“아마 저 밀실에 갇혀 있던 여인을 나비라고 칭하고.”

“…….”

“출궁을 날려 보낸다고 표현해, 귀를 속인 것 같아.”

소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한 여인이 무언가 생각난 듯 황급히 말을 보탰다.

“저…… 바다를 건너서 간다고 했어요.”

“바다를 건너서?”

“예.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사정했을 때는 집보다 더 좋은 곳으로 보내준다고도 했었고요.”

“…….”

“입고 먹고 자는 것에도 불편함 없이 호화를 누리며 살 것이라 했습니다.”

여인이 그렇게 말하자 소진이 버럭 화를 내며 미간을 구겼다.

“……식솔들이 없는데 어찌 더 좋은 곳이라 하는 것이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봉희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그래도 다행이라는 듯, 엷게 미소를 그렸다.

“그간 잘 지낸 것이야? 너를 만나고도 네 안부조차 묻지 못하였네.”

“잘 지냈겠니? 못 지냈지. 네가 없어져서.”

퉁명스러운 듯하면서도 따뜻한 소진의 대답에 봉희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었다.

“나도…… 못 지냈어. 소진이 네가 보고 싶어서.”

“네 남편도 못 지낸 건 마찬가지야. 다들…… 여기 있는 식솔들 그리워하느라 모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인들이 훌쩍, 훌쩍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삼시 세끼는 꼬박꼬박 잘 챙겨 주었다고?”

“응, 그리 하였어. 뭐 배를 곯는 일도 없고 씻지 못한 일도 없었고……. 오랫동안 이런 일이 반복된 것처럼 그 밀실 안에서의 생활은 꽤 체계적으로 돌아갔어.”

소진이 심각한 얼굴로 봉희의 이야기를 들었다.

“바깥소식을 듣지 못할 뿐이지, 우리끼리 안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 나눴어.”

“도망칠 생각은? 엄두도 못 한 것이야?”

“당연하지. 반 시진에 한 번씩 감시를 하러 궁녀들이 내려왔어.”

“혹…… 너희를 그렇게 가둔 중전마마는.”

“…….”

“본 적 있어?”

소진의 목소리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중전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딱 잡아떼고 있으니 이들에게 증언이라도 확보할 참이었다.

질문을 던진 소진은 봉희의 대답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때, 봉희가 머뭇거리다가 여인들을 한번 돌아보고는 은밀히 입술을 뗐다.

“뵌 적 있어.”

봉희의 대답에 소진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떻게? 중전마마께서 직접 밀실로 직접 갔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곳에 들어갔을 때가 깊은 새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해.”

“응.”

기억을 더듬으며 봉희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이었을 거야. 그때 차례로 무리를 지어 중궁전 안으로 들어갔어.”

“……그랬어?”

“거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전마마를 뵈었지.”

그때를 떠올린 듯, 봉희를 포함한 다른 여인들이 모두 어두운 얼굴로 서로를 힐끔거렸다.

소진의 낯빛이 심각하게 굳어갔다.

“뵈어서…… 무얼 했어?”

“그냥 우리 모두를 유심히 살폈어.”

“어떤 걸?”

“얼굴과 몸…… 곳곳을…….”

봉희는 미간을 구기며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한참 우리를 살피던 중전마마께서 상궁 마마로 보이는 분에게 무어라 말을 전하더니.”

“……?”

“우리를 두 무리로 나누어 놓았어.”

“그게 무슨 말이야?”

방 안 공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소진이 봉희의 차가운 손을 꼭 움켜쥐며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앉았다.

“처음에는 뒤죽박죽, 그냥 아무렇게나 철창 안에 가둬 놓았는데. 중전마마를 뵙고 난 후에는 무슨 기준으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응.”

“여인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서 따로 가두었어.”

“…….”

“꼭, 쓰임에 따라서 나눈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

봉희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씨. 봉희 댁이 있는 무리가 우리보다 먼저 밖으로 나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 있어요.”

“들어온 것은 같은 시일에 들어왔으나, 출궁은 다른 날 한다?”

소진이 그녀의 말을 곱씹자, 여인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이곳에 올 때도 사실 두 부류로 나누었거든요.”

“어떻게요?”

“그 아까…… 아씨께서도 보셨던 그 여인.”

“누굴 말하는 것인지…….”

“중전마마 옆에 있던 그 여인 말입니다. 그 여인이 처음에 중전마마가 했던 것처럼 우리를 유심히 살핀 뒤 두 부류로 나누었어요. 둘로 나눈 무리 중 하나가 우리였고요.”

“그럼 나머지 무리는요?”

“나머지 무리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요. 우리 코가 석 자인데 누굴 걱정해.”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얼핏 예전에 소진이 직접 산속으로 가 몸소 경험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애초에 두 부류로 나누어 소진을 갈라놓았었다.

게다가 갈라놓은 뒤에도 저고리로 색을 구별 지어 애초에 다른 곳으로 팔려간다는 소리를 했었다.

“혹…… 바다 건너간다…… 이런 이야기는 못 들어 보셨습니까?”

“아. 들어봤습니다. 바다 건너 첩실이니…… 노리개니…… 뭐 그런 이야기들을 하던데.”

‘젊고 반반한 새댁들은 죄다 첩실로 팔려간다오.’

산속에서 만난 여인들이 제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순간, 떠올랐다.

‘이 푸른색 옷고름을 가진 우리는 돈 많은 집, 노리개로 팔려가는 것이고. 새댁처럼 붉은색 옷고름을 지닌 여인들은 돈이 더 많은 사내의 첩실로 팔려가는 것이지.’

그런데 왜 어째서.

첩실이든 노리개든, 팔아버릴 여인이라면 그곳에서 바로 배를 태워 보내버리면 될 일.

위험을 감수하고까지 왜 굳이 궐 안으로 들인 것일까.

그리고 이곳에서도 왜 중전이 직접 여인들을 살피고 두 부류로 나누어 가두었던 것일까.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소진의 머릿속을 뒤죽박죽 만들었다.

“맞아, 한데 우리는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 원래 나가기로 한 날에 나가지도 못하고 여태 밀실에 머물렀어.”

“…….”

“혹, 소진이 네가 우리가 나가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았던 것이야?”

봉희의 말에 소진이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헌이 필사적으로 여인들의 출궁을 막은 덕에 지금껏 무사히 궐에서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저하께서 그러셨어.”

저하라는 단어에 여인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밀실 문을 절대 열지 못하도록 저하께서 계속 주시하고 계셨거든.”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야.”

“맞아. 내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셨어.”

“훤한 신수(身手)만큼이나 백성을 위한 마음도 너무나 훌륭하신 분이시구나.”

그렇게 읊조리던 봉희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소진을 다시 돌아보았다.

“한데, 소진아. 아까 그 네가 일 년 전에 보았다던…… 김 도령의 부인 말이야.”

그 말에 소진이 난감한지, 여인들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 궁금하다는 듯, 여인들도 웅성거리며 소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중전마마가 맞아?”

“어?”

“네가 중전마마를 가리켰잖아……. 참이야?”

“……그것이.”

“하면…… 중전마마께서 김 도령의 진짜 부인이고……. 그의 정인인 것이야?”

그것은 소진도 확실히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그날 밤 김 도령의 손을 잡고 달아난 여인이 바로 중전이라는 것.

그것만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소진이 느리게 도리질하며 여전히 숙덕거리는 여인들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낯빛이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그것까지는 확실치 않아. 하지만 그날 내가 중전마마를 본 것은 확실해.”

“……그렇구나.”

“한데 행여나 그런 이야기 함부로 입에 담지 말아. 아직까지는 이 나라의 국모이신 중전마마시니까.”

“알았어.”

“그대들도 지금 제게 했던 이야기, 제가 말해도 좋다고 할 때까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고 함구해야 합니다.”

“예, 아씨.”

소진은 슬쩍 방문을 열어 바깥 동태를 살폈다.

깊은 어둠이 내려앉은 궐 안은 스산하기만 했다.

처소 밖을 지키는 궁인들 몇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곧 동이 터올 텐데…… 저하께서는 보은군 대감을 잘 만났을지…… 의문이네.”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진의 눈동자가 어둠 속을 헤집었다.

* * *

“포도청 사람들도 저쪽 편으로 돌아선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우리 무사들과 대치중이라고 합니다.”

윤현이 다급한 목소리로 헌에게 소식을 알렸다.

저잣거리를 샅샅이 훑고 있었지만, 김 도령의 흔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벌써 저 멀리서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에, 반드시 잡는 것이 목표였는데.

헌은 허탈한 얼굴로 윤현을 바라보았다.

“포도청 사람들도…… 김 도령 편에 섰다고.”

“예. 처음부터 한통속이었습니다. 한데…… 보은군 마마는 어찌…….”

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던 보은군은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보이지 않았다.

헌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그러게. 마음이 변한 것인가.”

실망의 기색을 감추려고 해도 불쑥 솟는, 섭섭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헌은 저 멀리 어스레하게 보이는 숲속을 살피며 말을 돌렸다.

“나루터 쪽으로 가보자꾸나.”

“예, 저하.”

그렇게 헌의 무리가 막 방향을 틀어 나루터 쪽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저하……! 저쪽에……!”

윤현의 다급한 목소리에 헌이 황급히 뒤를 돌았다.

“저하를 비호(庇護)하라!”

어마어마한 기세로 흙바람을 일으키며 무장한 무사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김 도령 쪽 세력인 것 같았다.

얼핏 보아도 지금 헌의 호위대보다 훨씬 더 많은 수였다.

“물러서지 말아라! 남김없이 생포해, 궐로 끌고 간다!”

“예, 저하!”

하지만 헌은 물러나지 않았다.

더욱 굳건한 자세로 그들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복면을 쓴 무사들.

모두 긴장한 상태로 말 위에 올라, 검을 굳게 그러쥐었다.

그리고 그때, 조금의 지체도 없이 두 세력이 한데 엉겨 붙었다.

“이얏……!”

“아앗!”

순식간에 두 세력은 한 덩어리가 되어 치열하게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헌도 이를 악물고, 김 도령 쪽 세력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검술을 가진 헌의 호위대라고 해도, 수에서 밀렸기에 모두 생포하기는 무리였다.

열악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헌은 포기하지 않았다.

“물러서지 말아라! 단 한 명도 도망가게 내버려 둬서는 아니 된다!”

흙먼지를 가로지르는 포효와 같은 헌의 외침에 호위대들이 더욱 이를 악물었다.

고성과 칼들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로 엉망이 되어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 설상가상으로 윤현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하, 저하 위험하옵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무사를 처치하기 바빴던 헌은, 뒤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에도 몸을 피할 수 없었다.

헌의 귀 아주 가까이에 챙, 하는 날카로운 칼 소리가 들려오던 그때였다.

“윽!”

“보은군……?!”

어디선가 나타난 보은군이 헌을 향해 날아오는 칼을 대신 맞고 말았다.

“보은군 마마!”

“보은군!”

헌을 대신해 칼을 맞은 보은군이 낙마(落馬)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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