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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모든 건 내가 다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106/125)

106. 모든 건 내가 다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2021.10.04.

“우리가 한발 늦은 듯싶소, 대감.”

서둘러 중궁전을 나선 부원군과 우참찬 조 씨는 곧장 포위된 무사들에게 갔지만, 이미 한발 늦은 상태였다.

추국청으로 끌려가는 무사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탄식만 뱉을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먹을 음식에 독을 타, 독살하려고 했는데 수포가 되고 말았다.

“매번 이렇게 한발씩 늦어서야!”

부원군은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기며 돌아섰다.

‘대체 누가 세자의 옆에서 그를 조종하고 있다는 말인가! 필시 누군가가 세자의 손발이 되어 우리보다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야……!’

추국청으로 끌려가는 무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던 조 씨 역시,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내 사가에 있는…… 청국 물건들을…… 세자가 본 것은 아니겠지요?”

“보면 뭐 어때서.”

“…….”

“그저 청국에서 값비싸게 들여온 물건이라 잡아떼면 되는 것. 그것으로 무슨 시비를 걸려고? 걸 테면 걸어 보라지, 어디.”

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듯 조 씨는 연신 헌의 무사들이 사라진 쪽을 힐끔거렸다.

“저들이…… 정말 중전마마께서 보낸 배후라고…… 토설한다면?”

“무엇이 걱정이오?”

“예……?”

“무려 왕자 아기씨를 출산한 마마입니다. 무사들의 세 치 혀에 감히 왕자를 생산한 국모를 폐위라도 시키려고요?”

“하지만 세자 반역과 연관 짓고 있지 않습니까? 반역이라면…… 중전마마를 위협하기에 충분한 죄명인데.”

조 씨가 부원군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원군은 피식거리며 이어 대답했다.

“그것 또한, 증좌라고는 무사들의 세 치 혀뿐.”

“……!”

“세자 역시, 증거가 고작 무사들의 말뿐이라 다른 증좌를 찾기 전까지 영의정의 죄를 인정할 수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예…… 그랬지요. 맞습니다. 자신이 내뱉은 말이 있으니…… 이번 일을 반역과 연관 짓기에는 무리가 있겠습니다!”

조 씨는 손뼉을 치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듯이 히죽 웃었다.

“그래. 제까짓 게 세자면 다인가? 반역의 증좌를 찾아야지! 암!”

부원군은 그런 조 씨를 뭉근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한데, 우참찬 대감.”

“예?”

“만약 이번에 영의정을 처단하지 못한다면.”

“…….”

“그대는 화론 파에서 영원히 제명될 터인데. 괜찮겠소?”

2년 전, 갑자기 찾아와 중전마마의 사람이 되겠다고 한 그를 부원군은 여전히 흐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부원군 대감, 절대 권력인 영의정이 언제 어느 때 대감과 마마를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도 대책이라는 건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을 대비해서 말입니다. 

-우참찬 대감. 

-나는 화론 파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영의정의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습니다. 

-……! 

-지금부터 나는 중전마마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영의정의 개라고 불릴 만큼, 그의 발아래에서 어떻게든 영의정에게 잘 보이기 위해 허덕거리던 그였는데.

하루아침에 변심해, 자신의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그를 처음에는 완전히 믿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는 부원군의 의심을 없애 주려는 듯, 매일 밤 그를 찾아와 영의정이 중전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부원군을 쏙 빼놓고 나누었던 이야기까지 모조리 그에게 일러바치니 부원군은 조 씨를 자신의 사람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중전에게 다가가 신뢰와 호의를 산 뒤, 마을의 여인들로 돈벌이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었다.

-마마, 더 큰 부귀를 누려보지 않겠습니까? 

-더 큰 부귀라니요……? 

-제게 좋은 묘안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시겠사옵니까? 

그 일을 계기로 우참찬 조 씨와 중궁전 사이에는 끈끈한 연결고리가 생겨 부원군은 조 씨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조 씨는 겉으로는 영의정의 사람이면서 뒤로는 철저히 중전과 부원군을 위해 살아갔으니.

완벽한 제 사람으로 거듭난 조 씨를 향한 중전의 신뢰는 커져만 갔고 부원군은 더, 중전에게 조 씨를 경계하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게 됐다.

그러나 부원군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어째서, 왜. 영의정의 개가 중전의 개가 되겠다 자처한 것이지……?’

처음에는 중전이 회임하자마자 제 발로 찾아온 조 씨가 중전이 아들을 낳을 것을 대비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중전이 아들을 반드시 낳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조선의 최고의 실세인 영의정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은 무리수였다.

믿는 척, 같은 편인 척 지금껏 지내온 부원군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그때, 부원군의 말에 빙그레 조소를 그리던 조 씨가 입술을 열었다.

“제명당하는 건.”

“……?”

“나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대답에 부원군의 눈이 형형해졌다.

“부원군 대감과 중전마마와 한배를 탔는데, 그깟 영의정이 이끄는 화론 파 따위야, 뭐가 아쉽겠습니까?”

“흐음.”

“김 도령이나 빨리 찾아야 할 텐데. 대체 연통도 없이 어디에 꼭꼭 숨어 있는 것인지.”

“벌써 청국으로 내뺀 것은 아니겠지?”

“아닐 겁니다. 청국에 당도했으면 벌써 중전마마께 연락을 취했을 텐데요.”

“그나저나 강 씨 부인은 이미 놈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하던데. 소식이 전혀 없군.”

“그 여인은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입 밖으로 중전마마의 이름을 꺼내지 않을 인물이니 안심하십시오.”

“어허! 조용히 하지 못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입술을 삐죽이며 다시 대책을 모의하기 위해, 중궁전으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무사들이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뭣들 하는 짓이냐!”

“저희를 좀 따라와 주셔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무사들은 우참찬 조 씨 앞에 우두커니 섰다.

조 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뭐, 뭐……?!”

“세자 저하께서 우참찬 대감을 추국청으로 끌고 오라는 명을 내리셨사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무사 둘이 조 씨의 양팔을 결박했고 조 씨는 분노했다.

“끌고 오라고?! 감히 나, 우참찬을?!”

“가자!”

“대감! 부원군 대감! 이게 무슨 일입니까! 대체 나를 왜……!”

“우참찬……!”

“중전마마를 불러주세요! 지금 당장요!”

개처럼 질질 끌려가는 조 씨를 바라보던 부원군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만 같았다.

“마마……, 중전마마……!”

왕이 노망(老妄)나 자신을 찾을 때까지 대전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던, 중전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중전이 들어 있을 대전으로 향해 서둘러 달음박질을 쳤다.

* * *

“나를 왜! 나를 왜……!”

저 멀리서 우참찬 조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 궐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추국청의 문이 세차게 열리고 무사들에게 포박당한 조 씨가 끌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뒷짐을 진 채, 밤하늘을 밝히는 달을 올려다보던 영의정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우참찬…….”

그는 나지막이 조 씨를 부르며 입술을 짓이겨 물었다.

무사들의 손에 의해 억지로 무릎을 꿇은 조 씨는 부들부들 떨며 헌을 노려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저하!”

그러자 묵묵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헌이 휘적휘적 그의 앞으로 걸어와 섰다.

“무슨 짓인지는……. 내가 물을 소리입니다, 대감.”

“뭐……요?”

헌이 조소하며 내관을 향해 고갯짓을 해 보였고 내관은 기다렸다는 듯 조 씨의 사가에서 발견한 물건들을 내어왔다.

그것들을 발견한 조 씨는 잠시 흠칫하더니 더욱 고개를 빳빳하게 추어올렸다.

“도둑질이라도 한 것입니까, 저하?!”

조금 전, 부원군과 나누었던 이야기처럼 이것이 왜 문제라도 되냐는 듯 발뺌할 셈이었다.

하지만 헌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도둑질이라…….”

“이것들은 내 소유의 재산입니다! 한데 어찌 이것을 함부로 가져다 이곳에……!”

“하면 이것도 그대의 것이오?”

주절거리는 조 씨의 말이 듣기 싫다는 듯 헌이 그의 말허리를 끊으며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곤 무릎을 꿇은 조 씨의 앞에 툭, 던졌다.

“……?!”

그것을 내려다본 조 씨의 눈이 점점 커졌다.

덩달아 소진도 긴장한 얼굴로 조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의 것이냐고 물었소만.”

헌은 천천히 허리를 굽혀 비스듬히 고개를 꺾었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조 씨를 느긋하게 바라보던 헌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난데없는 헌의 웃음에 조 씨가 당황함으로 검게 물든 눈동자를 들었다.

“아차차. 내 질문이 좀 우스웠지요?”

“……!”

“이것은 여인네의 노리개인데.”

“…….”

“사내대장부인 우리 우참찬 대감의 것이냐고 물었으니 대감께서 당황하실 수밖에요. 그렇지요?”

여유가 흘러넘치는 헌의 말에 조 씨는 입술을 악물었다.

‘……세자가 다, 알고 있다?’

조 씨의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진의 주먹이 말렸다.

‘그대 역시, 이 일에 연루된 것이 맞군요.’

지하실 안에서 저를 향해 울부짖던 여인들의 울음이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것 같아 소진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 헌이 노리개를 질끈 그러쥐며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럼 질문을 바꾸어서.”

“…….”

“이 노리개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지요?”

“저하! 지금 이것이 무슨 억지입니까!”

“억지라니! 내가 이 노리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정녕 모르는 겁니까, 대감?!”

“……!”

“하면 이 노리개의 주인이 누군지, 중전마마를 이곳으로 모셔와 물어볼까요? 그럼 그 입을 여시겠습니까?!”

헌의 외침에 조 씨가 두 눈을 꾹 감았고 영의정이 그의 앞으로 와 섰다.

그러다 조금 전, 헌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회상했다.

-모든 건 내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대감. 

-감히 이 나라의 왕세자인 저하께서 손수 그 위험한 일을 파헤쳤다는 것은. 

-……. 

-훗날 저하께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화론 파 대신들에게 약점이 될 수도 있어요. 중궁전까지 몰래 들어갔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필시 저하를 노리는 대신들이 그것을 물고 늘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 

-기억을 잃었다는 것까지 알려지게 되면 필사적으로 저하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입니다. 게다가 혹시나 이번 일이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무고한 국모를 의심해 파멸로 이끌려 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 

-처음부터 내가 모든 것을 의심해 파헤쳤고 그것을 저하께 알렸다고 합시다. 

그토록 몰아내려 했던 헌이었지만.

이제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야만 하는 헌이었다.

헌의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여식 때문에.

그리고 그런 자신의 여식을 끝까지 지켜준 그였기 때문에.

“일 년 전부터 마을에 여인들이 사라지고 있었다지.”

영의정이 조 씨를 향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두 눈을 꾹 감은 채, 묵언 시위를 하려던 조 씨가 고개를 들어 영의정을 바라봤다.

“그 일에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인물이 가담되어 있었더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조금도 모르겠습니다만?”

“조금도 몰라? 하기야 살려면 모른다고 해야지.”

쯧쯧 혀를 차던 영의정이 헌을 돌아보며 반듯하게 허리를 접었다.

“지금까지 소신이 아뢰었던 것이 중궁전이 감추고 있는 비밀의 전부입니다.”

“…….”

“소신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이제 저하께서 판단하여 주시면 됩니다.”

“영의정 대감.”

“부디 청하옵건대, 마을의 여인들 실종 사건부터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

“그 뒤에 소신은, 소신이 저지른 벌이 있다면 그 대가를 혹독하게 받겠사옵니다.”

그러면서 영의정이 헌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소진이 입술을 질끈 악물며 고개를 돌렸고 조 씨는 부들부들 떨어야만 했다.

‘……기어이 살고자 화론 파를 버리고 세자에게 붙었겠다? 한데 어쩌느냐? 곧 전하께서 세자의 폐위를 명하고 중전마마의 왕자님을 세자로 책봉하실 터인데?’

영의정의 말에 헌이 윤현을 향해 고갯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어디선가 어마어마한 숫자의 호위대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지금부터 궐 곳곳을 뒤져 영의정 대감이 말한 지하 밀실을 찾아내어라!”

“예, 저하!”

그 말이 떨어지자 조 씨가 바락 소리를 질렀다.

“감히 왕실의 큰 어른이신 대비전까지 뒤지실 요량입니까, 저하?! 또한, 얼마 전 출산 해 몸조리를 하고 계실 중전마마의 처소도 쳐들어가시려고요?!”

“…….”

“간악한 영의정의 꾐에 속아 대체 얼마나 큰 불효를 저지르려는 것입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조 씨가 그렇게 소리치며 흙바닥 위에 자신의 이마를 쿵, 박았다.

그러자 추국청 입구에서 근엄한 목소리 하나가 날아왔다.

“날, 왕실의 큰 어른이라 칭해주어 고맙소, 대감.”

“……?”

우참찬이 황급히 돌아보니 대비가 반듯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면 내 왕실 제일의 어른으로서 명합니다.”

“……마마!”

“동궁전도 대비전도 대전도 그리고 중궁전도!”

“……!”

“모두 예외 없이 처소를 뒤져 밀실인가 뭔가 하는 것을 반드시 찾아내세요!”

“마마!”

“일의 전말을 소상히는 모르나, 감히 이 신성한 궐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왕실의 명예를 실추시킨 장본인이 누군지.”

“……!”

“내 이 두 눈으로 직접 보아야겠거든.”

그러자 조 씨가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어 대비를 마주 보았다.

“중전마마께서 출산하신 지 겨우……!”

애원하듯 대비를 바라보며 조 씨가 입을 열었는데.

“누가 중전의 몸을 뒤지라 하였습니까?”

대비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중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귀한 왕자까지 낳으셨는데 그 왕자가 궐에 기생충처럼 숨어 살고 있던 악의 무리 때문에 해라도 입으면 어쩌려고요?”

“마, 마마……!”

이내 헌이 피식 웃으며 추국청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명을 내렸다.

“지금 당장 궐 곳곳을 뒤져 영의정이 말한 밀실의 존재를 파헤치도록 하라, 또한!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지금 이 시각 이후로 궐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밖으로 통하는 개구멍까지 삼엄히 경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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