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봉희야 기다려.
2021.08.09.
“아악, 아악……!”
산실청 앞에 다다르자 중전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대비는 산실청 앞에서 삼엄하게 경비를 서는 근위대를 바라보며 묵묵히 산실청을 올려다보았다.
-삼 일 뒤가 확실히 왕자님을 출산하실 수 있는, 하늘의 기운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성수청 국무당의 목소리가 귀에 선했다.
“삼 일 뒤가 왕자를 생산할 날이었다.”
당의 뒤에 두 손을 곱게 포갠 채 대비가 붉게 노을이 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들이 낳고 싶어 그토록 발버둥을 쳤는데, 고작 삼 일을 앞두고 진통이 시작되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타들어 갈꼬?”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대비의 눈동자에 먹구름에 가려진 산실청이 가득 담겼다.
아랫입술을 감쳐물며 대비가 등을 돌렸다.
그때, 산실청 안의 동태를 살피고 온 대전 상궁이 대비를 향해 은밀하게 다가갔다.
고개를 조아리는 대전 상궁의 낯빛이 어쩐지 어둑했다.
“대비마마.”
“그래.”
“중전마마께서…… 버티고 계시다 하옵니다.”
그 말에 대비의 고개가 사납게 휙, 돌아갔다.
“뭐? 버텨?”
“예. 아무래도 국무당의 말이 여간 신경이 쓰인 모양입니다.”
대비가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으며 다시 산실청 쪽으로 몸을 거칠게 비틀었다.
그 안에서는 중전의 비명이 연신 울려왔다.
온몸에 소름이 쭈뼛 돋을 만큼 세찬 비명이 산실청을 흔들고 있었다.
“저렇게 고통스러운데 참는다고.”
“예에…….”
“저것이 얼마나 지독한 아픔인데…… 그것을 참는다니.”
“왕자를 생산하겠다는 집념이 너무도 강한 것 같습니다. 한데 저렇게 되면…… 중전마마와 뱃속 아이 모두 무사치 못할 것이온대…….”
대비전 상궁이 걱정스러운 듯 산실청과 대비를 번갈아 쳐다보며 읊조렸다.
대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다시 등을 돌리며 산실청을 빠져나갔다.
“그것 역시…… 제 운명이겠지.”
“……마마.”
“왕자를 낳는다면 그것도 중전, 그대의 운명일 것이고.”
대비전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커다란 돌덩이를 단 듯, 무겁기만 했다.
한편, 산실청 안에서 중전을 이를 악문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참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중전마마……!”
“으으윽! 닥치거라! 참을 것이다, 참을 것이야……! 아아악!”
중전은 상궁의 말대로 정말, 산고를 참아내며 일각, 일각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때, 국무당을 데리러 갔던 중궁전 상궁이 황급히 국무당과 함께 산실청 안으로 들어섰다.
“주, 중전마마! 쇤네이옵니다! 정신을 좀 차려보시옵소서!”
그러자 중전이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눈을 떠, 국무당을 올려다보았다.
“삼일 뒤, 삼일 뒤가…… 하늘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날이라 하지 않았더냐……!”
피를 토하듯, 중전이 그렇게 외치며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다.
“참지 마시옵소서, 중전마마!”
“뭐라……? 그럼 나더러 딸을 낳으란 소리냐!”
소리치는 중전의 이마에 푸르죽죽한 핏대가 솟아올랐다.
그러자 국무당이 그녀에게 다가가 고개를 조아렸다.
“참으면 모두 죽습니다.”
“……으윽! 으아아악!”
“어차피 운명의 굴레는 돌아간 것입니다……! 모두 하늘에 맡기시고 순산을 위해 만전을 기하셔야 하옵니다!”
국무당의 외침에 중전의 꽉 다문 입술 사이가 벌어지면서 세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 * *
소진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안채에서 영의정이 후다닥 뛰어나왔다.
“아, 아버지…….”
그러곤 무사들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가, 황급히 집을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최 씨 부인이 바라보았다.
“어머니…… 아버지, 무슨 일 있으셔요?”
소진 역시, 근심 어린 표정으로 최 씨 부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러자 깊이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니야. 신경 쓸 것 없단다.”
소진은 굳게 닫히는 대문을 바라보며, 조금은 어두운 얼굴로 최 씨 부인을 돌아보았다.
그녀를 응시하는 소진의 눈빛이 총명하게 빛났다.
“궐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지요?”
아무래도 영의정 역시, 중전의 산통이 시작됐다는 소리를 듣고 급히 대신들을 만나러 가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최 씨 부인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중전마마께서 출산을 하실 모양이구나.”
“아…… 그렇습니까?”
“중전마마의 출산은 나라의 경사이거늘. 어찌 이리 불안해하고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 말에 소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최 씨 부인을 응시했다.
최 씨 부인 역시, 조금은 먹먹한 눈동자로 소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자 저하께서도…… 지금쯤, 마음을 졸이며 궐을 지키고 계시겠구나.”
그렇게 말하며 최 씨 부인이 가만히 소진의 손을 움켜쥐었다.
“중전마마께서 혹시나, 왕자님을 낳게 되면…… 그렇게 된다면……. 저하의 안위도 흔들리시겠지. 그렇게 되면…… 너도…….”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최 씨 부인이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어머니. 괜찮아요.”
“소진아.”
“저하께서는 지켜내실 것이어요. 그리고 지켜내실 수 있도록 소녀가 옆에서 힘이 되어 드릴 것입니다.”
“…….”
“설령 그것을 지켜내지 못한다 하시어도, 저하의 곁만큼은 소녀가 끝까지 지켜줄 것입니다.”
최 씨 부인은 그런 소진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녀의 품에 안긴 소진은 가만히 눈을 감고, 조금 전 헌과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밤이 깊어지면 궐 앞으로 오세요. 무사를 보내, 동궁까지 무사히 올 수 있는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예, 하면 저하께서는.
-동궁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곤 눈을 떠, 캄캄해지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굳게 앙다물었다.
‘봉희야, 기다려. 오늘은 내가 널, 꼭 구해줄게.’
* * *
“중전마마께서는 출산에 돌입하셨습니다.”
그 말에 김 도령이 초조한 얼굴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밀실은.”
“중전마마께서 출산하심과 동시에 밀실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중궁전 상궁이 문을 열어 안의 여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궐문의 호위대를 어떻게 따돌릴 계획이지?”
“어차피 몇 되지 않아, 그저 반란군인 척 위장해 한양을 발칵 뒤집어 놓을 것입니다.”
살수의 말을 읊조리던 김 도령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중전의 출산과 밀실의 문이 동시에 열린다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영의정이 나타나 일을 방해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겨 지금까지 두 발이 꽁꽁 묶인 채 한양에만 있어야 했다.
행여 이대로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생각하니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제, 속앓이를 끝낼 때가 온 것이었다.
김 도령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반란군은 영의정이 보낸 것으로 꾸밀 것입니다. 후의 일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살수의 말에 김 도령이 흡족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방 밖으로 나가, 궐 쪽으로 향해 크게 절을 올리며 두 손을 꼭 모았다.
“중전마마…… 부디, 제발 부디……. 왕자님을 낳으십시오.”
* * *
산실청에서는 여전히 중전이 산고와 사투를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호위대의 무사복으로 갈아입은 헌은 소진이 무사히 동궁으로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중궁전의 동태를 살피고 온 윤현이 헌의 앞으로 다가왔다.
“저하, 중궁전에 지금 성수청 궁녀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사옵니다.”
“호위대 배치는.”
“마쳤습니다. 혹시 몰라 성문까지 배치했습니다.”
“잘하였다. 먼저 중궁전 안으로 쳐들어가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
“예, 저하.”
“행여, 중궁전 안에서 여인들을 모두 끌어내 궐 밖으로 내는 순간 그것을 막아야 한다. 한 규수가 오는 대로 서둘러 중궁전으로 가자꾸나.”
그 말에 윤현이 소진이 입을 성수청 궁녀 복을 앞에 내려놓았다.
“한 규수께서 잘하실 수 있겠지요?”
윤현 역시, 걱정된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헌이 빙그르르 돌아, 창문 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궁전 안은, 윤현도 그리고 헌도 들어갈 수 없었다.
오직 소진 혼자서 해내야 할 일이었다.
곧, 동궁의 정문이 아닌 뒷문 쪽에서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헌과 윤현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한 규수가 도착한 모양이구나.”
서둘러 헌이 병풍을 걷고, 뒷문을 열었다.
그러자 장옷을 뒤집어쓴 소진이 헌의 무사와 함께 서 있었다.
장옷 사이로 소진이 눈만 빼꼼 내놓은 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낭자.”
그제야 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진이 장옷을 홱, 걷으며 헌을 올려다보았다.
“저하……!”
“다행입니다, 무사히 당도하여서.”
소진은 헌을 반갑게 바라보는 것도 잠시, 이내 휘둥그레한 눈으로 동궁 안을 살폈다.
언제 준비해왔는지 그녀는 성수청 궁녀처럼 머리를 단단히 틀어올린 채였다.
“이곳이…….”
그러자 헌이 피식, 웃으며 윤현에게 나가 있으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곧 윤현과 무사들이 사라지고 동궁 안에는 소진과 헌, 단둘이 남았다.
“예. 이곳이 내가 지내는 처소입니다.”
“……동궁이란 말이지요? 우와, 처음 와봅니다.”
소진이 당연한 소리를 하며 화려하고 웅장한 동궁 안을 살폈다.
“언제까지 거기에 있을 것입니까? 이쪽으로 오시지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연신 감탄을 남발하는 그녀를 귀엽다는 듯, 헌이 바라봤다.
그러곤 곁으로 오라는 듯 뒷짐을 진 채로 까딱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의 눈짓에 소진이 총총총, 헌의 곁으로 다가갔다.
“영의정 대감은요?”
“일찌감치 출타하셨습니다.”
“몰래 나온 것입니까?”
“예. 어머니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그러자 헌이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며 소진의 양어깨를 천천히 그러쥐었다.
허리를 굽혀 그녀를 바라보는 헌의 눈동자에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소진아.”
“……예, 저하.”
그가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고개를 젖혀 헌을 바라보는 소진의 동공이 엷게 떨렸다.
“할 수 있겠느냐.”
“예. 저하. 걱정하지 마세요.”
“중궁전 앞까지는 같이 갈 것이나, 안에 들어가서는 네가 혼자 해야 한다.”
“압니다. 중궁전으로 들어가, 밀실 안에 있는 여인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으면 되는 것이지요?”
“그래, 우선은 막아야 해.”
그 말에 소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주먹을 바짝 움켜쥐며 눈빛을 반짝였다.
“밀실로 향하는 열쇠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중전의 최측근인 중궁전 상궁이 갖고 있을 것이야.”
“하면…… 오늘 밤, 그 밀실 문이 열릴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
“여인들을 밤새 몰래, 빼돌리려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소진은 부들부들 떨며 헌의 발아래에 놓인 성수청 궁녀복을 휙 내려 보았다.
그러곤 그것을 품에 끌어안으며 다시 헌을 바라봤다.
“제가 안에 들어가 제대로 감시하겠습니다.”
“혹여, 빼돌릴 움직임이 보이면 곧바로 중궁전 앞에 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나에게 와 전하거라.”
은밀한 헌의 목소리에 소진도 한껏 음성을 낮추며 힘 있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번 기회에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겠습니다. 봉희도 무사한지 확인하고요.”
결의를 다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헌이 소진을 끌어안았다.
“이것이 정말…… 옳은 결정인지 모르겠구나.”
소진을 품에 안은 헌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가 가만히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등허리를 토닥이자, 소진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의 팔을 꼭 쥐었다.
“이러다 중전마마 출산하시겠습니다. 서둘러 가봐야겠어요.”
그러곤 성수청 궁녀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소진이 등을 돌렸다.
“저기 병풍 뒤로 가서…… 갈아입으면 되겠지요?”
괜스레 그와 한 공간에 있는데 옷을 갈아입을 생각을 하니, 볼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에 헌도 헛기침을 뱉어내며 서둘러 등을 돌렸다.
“입, 입으면 된다. 등을 돌리고 있을 것이니.”
곧 소진이 병풍 뒤로 들어가 옷고름을 풀었다.
저고리를 벗고 치마를 벗으며 막 성수청 궁녀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할 때쯤이었다.
“저하, 대비마마 납시셨나이다……!”
그 말에 병풍 뒤의 소진과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헌의 얼굴이 동시에 굳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