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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연애 국혼 어떻습니까? (30/125)

30. 연애 국혼 어떻습니까?

2021.01.11.

순간, 헌과 보은군의 시선이 소진에게 꽂혔다.

소진은 이내 느리게 입술을 열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

“하니 두 분 손 꼭 잡고 사이좋게 환궁하시지요.”

“뭐?”

“그럼 소인, 먼저 물러가 보겠나이다.”

그렇게 말하며 소진이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조아려 보였다.

이게 아닌데……!

헌과 보은군의 머릿속에 번쩍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

그러곤 속히 방을 나서려 등을 돌리자 두 사람이 동시에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낭자!”

“한 규수!”

다급한 둘의 목소리에 소진의 고개가 돌아갔다.

헌과 보은군이 각각 그녀의 왼쪽, 오른쪽 어깨를 쥐고 있었다.

두 남자에게 동시에 어깨를 잡힌 소진.

이내, 헌과 보은군은 그 손을 치우라는 듯, 서로를 응시했다.

“놓지.”

“소인이 먼저…… 잡은 것인데요.”

신경전을 벌이듯 맞닿아 있는 두 남자의 시선이 꽤 사나웠다.

소진은 그런 두 사람을 무표정한 얼굴로 번갈아 쳐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그러곤 의아하다는 얼굴로 더 할 말이 남아 있냐는 듯, 소진이 물었다.

그러자 보은군을 슬쩍 밀어내며 헌이 그녀의 팔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 때문에 소진의 어깨를 쥐고 있던 보은군의 손이 툭 떨어졌다.

보은군의 뺨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오후 강습까지 모두 미루었는데.”

“예?”

“이대로 들어가긴 아쉬울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며 헌이 보은군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그 말은 소진에게 하는 소리가 아닌 보은군에게 하는 말인 듯했다.

보은군은 잠자코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 속이 아무리 뜨겁게 끓었지만, 감히 왕세자에게 불편한 내색을 할 수는 없는 법.

그저 속을 다스리며 머리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갈 곳이 있다고 하였지.”

그때, 헌이 보은군을 향해 물었다.

“예? 아, 예. 저하.”

“앞장서거라.”

뜻밖의 말이 그의 입에서 흘렀다.

‘뭐야, 갑자기 동행을 하겠다고?’

소진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란 것은 보은군이었다.

물론 세자와의 동행이 달갑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어찌 저하께서…….”

보은군이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으니 헌이 싸늘하게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곤 그를 눈빛으로 압박하며 묵직하게 입술을 열었다.

“하면 너는 어찌 내 명을 거스르고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것이지.”

“…….”

“그런데 보은군 네가 간다는데 내가 못 갈 이유라도?”

헌은 그렇게 물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오직 보은군, 그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보은군은 눈을 아래로 내리뜨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술을 꾹 앙다물었다.

못 갈 이유는 없었지만 가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는 있었다.

그것은 한소진.

이 여인과 헌이 더는 엮이지 않았으면 싶었다.

“저하께서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소인, 출궁을 명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한 규수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지.”

“소진 낭자와 지금 가려던 곳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말에 잠자코 서 있던 소진의 동공이 커졌다.

“예? 대감, 출궁하십니까?”

그녀의 물음에 보은군이 나지막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머나……! 하면 혼례를……?”

아무래도 보은군의 출궁은 국혼 뒤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소진은 그가 곧 혼례라도 치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헌이 물끄러미 보은군을 돌아보았다.

혼례라는 말에 보은군의 안색이 밝지 않았다.

“혼례는 아직이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 국혼을 치르시고 출궁을 하실 거라는 얘기를 들어서. 하면 먼저 출궁부터 하시는 건가 봅니다?”

“예, 그럴 것 같습니다. 해서 제 거처지가 정해졌거든요.”

“…….”

“시간만 괜찮으시다면 오늘 그곳에 함께 가보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며 보은군은 말끝을 흐렸다.

어쩐지 곁에 서 있는 헌의 눈초리가 따가운 것만 같았다.

소진은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고개를 슬며시 끄덕였다.

그러자 이내 헌이 못마땅한 듯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소진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같이 살 집도 아닌데.”

“……?”

“어찌 함께 보러 간다는 것인지.”

나지막이, 그러나 날카로운 헌의 혼잣말이 소진의 귀에 날아들었다.

그녀는 그를 말 없이 올려다보다가 입술을 살며시 뗐다.

“저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보은군 대감과 제가 어린 시절 함께한 약조가 있거든요.”

소진의 말에 헌의 반듯한 미간이 다시금 홱, 구겨졌다.

적나라하게 그의 불편한 감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보은군은 그런 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내가 어찌 알까……. 당연히 모르지.”

헌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뚫어지라 소진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뒷짐을 진 채, 약조라는 말을 곱씹었다.

아무래도 헌이 지금 투기를 하는 모양이다, 보은군은 홀로 짐작했다.

하지만 소진은 헌의 이 괜한 심술이 투기라고는 짐작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감하게 그의 혼잣말에 대꾸했다.

“대감께서 출궁하시면 살게 될 집을 함께 보기로 하였거든요.”

이내, 흥미롭다는 듯 헌의 눈썹이 솟아올랐다.

“보은군의 살 집을 함께 보기로 한 것이 약조다?”

“예.”

“참으로 각별한 사이인가 봅니다.”

“각별하기는 하지요. 유독 대감과 제가 친하니까요.”

헌의 말에 소진이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헌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꾹꾹 누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 말이…….”

“……?”

“그런 뜻이, 아니잖습니까.”

소진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느리게 입술을 뗐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그런 뜻이 아니면…… 무슨 뜻입니까?”

정말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에 헌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 안을 훑어보았다.

“말해준들…… 낭자께서 알까.”

“예?”

헌이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소진은 그런 그를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뗐다.

“한데 보은군 대감.”

“예.”

“어린 시절의 약조를 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곤란할 것 같습니다.”

“아……. 아무래도 그렇지요? 간택 기간이라서.”

“예……. 행여 다른 이들의 눈에 띄면 구설에 오를 것도 같아서…….”

“예, 이해합니다. 함께 가보았으면 좋겠다, 싶어 이야기를 꺼내 본 것입니다.”

보은군은 소진이 미안해하지 않도록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 밖에 있던 숙자가 작게 문을 두드렸다.

“아씨. 쇤네입니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 말에 소진이 문을 열었고 숙자가 바깥의 동태를 살피며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그때 아씨께서 부탁하신 것.”

“아……?”

“방금 쇠돌이를 만나서 받아오는 길입니다.”

“그래? 그것참, 잘 되었구나.”

소진은 눈을 반짝이며 보은군과 헌을 돌아보았다.

“마침 두 분도 계시니……. 함께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던 소진은 숙자를 돌아보았다.

“혹, 봉희 남편은 어디에…….”

“주방에 숨어 있습니다. 근데 곧, 다른 벗들이 이곳으로 오기로 하였다고 하던데.”

소진은 곤란하다는 듯 볼을 잔뜩 부풀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중요한 일입니까?”

보은군이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예. 실종된 벗과 관련된 일이라……. 제가 따로 숙자에게 부탁하여서 알아보라 한 것이 있거든요.”

“아, 그렇다면 제가 이렇게 밖에 나와 있을 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텐데.”

하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소진과 보은군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헌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마땅한 장소가 있긴 한데.”

“예……?”

“한데 보은군도 함께 들어야만 합니까?”

여전히 셋의 동행이 불편한 듯, 헌이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소진은 그런 보은군을 슬며시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함께 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지요?”

그녀의 대답에 헌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함께 그곳으로 가도록 하지요.”

그러자 소진이 조금 당황한 듯 입술을 말아 물었다.

“한데 곤란한 것이 있습니다.”

두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밖에 호위무사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요.”

“…….”

“이 방에 봉희 남편과 보은군 대감과 저, 이렇게 셋이 있는 줄 알 텐데. 갑자기 저하께서 나타나시면…… 수상하게 생각한 무사가 제 아버지께 그대로 고할 것이어요. 하면 전 아버지한테 혼쭐이 날 것입니다.”

소진의 말에 헌은 묘책을 다 생각해 두었다는 듯, 그녀를 향해 빙그르르 돌아섰다.

그러곤 슬쩍 허리를 굽혀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하면.”

“……?”

“혼쭐이 안 나게 해주면 되지 않습니까?”

***

“자, 그럼 가…… 가볼까요?”

소진은 연신 뒤를 힐끔거리며 어색하게 말을 뱉어냈다.

그러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숙자와 호위무사가 소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저절로 소진의 뒤에 서 있는 두 남자에게 닿았다.

“엥……?”

숙자는 보은군 옆에 서 있는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 아?”

이내 그녀가 그 얼굴을 알아본 듯 눈을 동그랗게 뜨자, 소진이 후다닥 숙자 옆으로 다가갔다.

“보, 보은군 대감께서 앞으로 살게 될 거처지를 마련하셨다는구나. 해서 거기에 가보려고.”

“……아씨, 저분은.”

“쉿.”

그러곤 무어라 중얼거리려는 숙자의 팔을 콕콕 찔렀다.

호위무사 역시 보은군과 그 옆에 선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괜스레 호위무사의 시선에 가슴이 뜨끔한 소진이 사내의 팔을 휙 잡아당겼다.

“이쪽이 제 봉희라는 벗의 남, 남편입니다……! 저의 벗이기도 하고요.”

봉희 남편의 옷으로 갈아입은 세자 헌을.

그러자 헌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호위무사를 향해 까딱 고갯짓을 해 보였다.

“우리 소진이 호위무사라고 하셨지요.”

“……아, 예.”

“앞으로도 쭉, 잘 부탁드리오.”

헌은 그렇게 말하며 소진의 옆에 딱 달라붙어 섰다.

그러면서 자신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는 호위무사를 향해 생긋 웃었다.

헌과 소진의 어깨가 나란히 맞닿았다.

그의 웃음에 소진도 그를 따라 하하하, 소리 내어 웃어야만 했다.

이 순간만큼은 헌은 친한 친구인 봉희의 남편이니 당연히 친해 보여야 했기에.

“하, 하하하. 네가 뭐…… 잘 부탁할 것까지야. 하하하.”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헌의 등을 퍽, 퍽 내리쳤다.

소진의 손바닥이 헌의 등을 내려칠 때마다 숙자의 가슴이 철렁, 철렁하고 있었다.

“에구머니나…… 아이구……!”

사실 봉희 남편의 옷으로 바꿔 입은 헌의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늘 비단으로 만든 도포 자락에 곤룡포만 입던 그는 이런 평민 복장이 신기하기만 했다.

옷의 팔다리가 꼭, 한 뼘씩 작았지만 헌은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고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호위무사가 헌의 위아래를 훑자, 소진이 슬쩍 헌을 자신의 뒤로 잡아당겼다.

그러곤 짤막한 저고리 소매를 꾹, 꾹 잡아 내리며 어색하게 중얼거렸다.

“너, 너는…… 아직도 성장하니? 옷이 왜 이렇게 짧아졌어.”

그러다 딱히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호위무사를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봉희가 지금 다른 곳에 있다고 하네요. 봉희를 만나러 온 것인데…….”

“……아, 예. 하면 가시지요, 아씨.”

“아니. 저희끼리 다녀오도록 할게요. 아버지껜 잘 말씀해주셔요.”

“아.”

“늦지 않게 귀가하도록 하겠다고도 전해주시고요.”

그 말에 호위무사가 보은군과 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소진은 서둘러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여기 장정이 둘씩이나 있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러자 보은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호위무사를 바라보았다.

“제 무사들도 뒤를 따르고 있을 것이오. 다른 걱정은 안 하셔도 될 듯싶소.”

이내 호위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진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돌아섰다.

숙자는 멀어지는 호위무사를 바라보다, 황급히 소진을 바라보았다.

“아씨……! 이게 다 뭐……. 하이고, 참.”

헌의 모습을 보니 기가 찬 듯, 숙자는 말끝을 흐리고야 말았다.

왕세자가 다 해진 평민의 옷을 입고 있으니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아는 사람 눈에는 참으로 기막힌 광경이기는 했다.

소진 역시, 다시금 헌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어때서요? 꽤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예, 퍽이나 잘 어울립니다. 서둘러 가시지요.”

소진은 그렇게 대꾸하며 숙자와 함께 돌아섰다.

이내 헌이 헛기침을 하며 소진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소진은 그런 그를 말 없이 올려다보았는데, 헌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도 꽤 기억에 남겠습니다.”

소진은 피식, 웃으며 그의 옷매무시를 살폈다.

“그래도 저하는 저하이신가 봅니다.”

“……?”

“아무리 누더기 같은 옷을 입혀놔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하니 앞으로는 이런 위험한 장난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뒷짐을 진 채 걷던 헌이 괜스레 그녀와 걸음걸이를 맞추며 걸었다.

“위험한 장난입니까?”

“그렇잖습니까.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위험하긴 한데, 장난은 아닙니다.”

“……예?”

헌의 낮은 음성이 앞서 걷던 보은군의 귀에도 닿았다.

보은군의 표정이 어쩐지 가라앉고 있었다.

“난 지금 최선을 다하는 중이거든.”

“최선이요?”

“내 마음에.”

소진이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고 보은군의 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내 마음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는 말입니다.”

“저하의 마음이…… 어떤데요?”

“위험해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

그렇게 말하며 헌이 피식, 입술을 터뜨렸다.

순간 소진은 가슴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헌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그녀의 뺨이 어쩐지 붉어지는 듯했다.

보은군은 헌이 무어라 더 말을 이으려 하자, 그의 말을 가로챘다.

“하오나 저하.”

헌이 조금 사나운 눈빛으로 보은군을 돌아보았다.

“소진 낭자를 향한 저하의 진심이 행여 독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무어라.”

그때, 소진의 시선도 보은군에게로 향했다.

“저하께서는 장차 보위를 이어 군주가 되실 분인데.”

“…….”

“그런 저하의 사사로운 정이 행여 이루어지지 못한 연으로 남아, 저하를 혹은 낭자를 불행에 빠뜨리게 하진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그의 말에 헌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 말은.”

“…….”

“나는 사사로이 마음을 나눈 정인과는 백년해로할 수 없다는 말인가.”

헌의 어투가 꽤 날카로웠지만, 보은군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하께서는 정보다는 왕실 어르신들의 결정에 따른 국혼을…….”

그때, 헌은 보은군의 말허리를 자르며 입술을 뗐다.

“나는 사사로운 정을 잔뜩 쌓은 이와 혼인을 할 것인데?”

그러곤 자신의 곁에 가만히 서 있는 소진을 다정하게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연애 국혼은 어떻습니까?”

“……예, 저하?”

“선 연애 후 혼인.”

“……!”

“내가 전례에 없던 사사로운 국혼의 새 역사를 써볼까 하는데, 낭자께서 도와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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