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유혹하려다 유혹당하는 것.
2020.12.21.
“아…….”
아래에서 내려다본 그녀는 참, 예뻤다.
헌은 몸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소진만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쪽으로 오고 있던 숙자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에구머니나……!”
그 목소리에 헌과 소진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고.
숙자가 황급히 등을 돌리고 있었다.
소진은 이 민망한 자세를 숙자에게 들켰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 그만, 헌의 가슴팍을 퍽 밀쳤다.
그런데 소진이 손에 쥐고 있던 먹칠한 붓이 그의 왼쪽 뺨에 닿고 말았다.
“아.”
“어머!”
헌의 결점 없는 뺨에 검은 먹이 칠해졌다.
묻히려고 묻힌 것이 아닌데.
소진은 화들짝 놀라 손을 멈추었다.
헌 역시, 제 뺨에 닿는 물컹하고 차가운 촉감에 순간 굳어 버렸다.
“뺨…… 저하 뺨에…….”
두 사람은 서둘러 떨어졌고, 헌은 손등으로 먹이 묻은 뺨을 쓸었다.
헌의 손등에 검은 먹이 묻어났다.
“이것 참.”
그가 곤란하다는 듯 손등에 묻어난 먹을 내려다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소진은 서둘러 제 앞치마를 벗어 그의 뺨을 닦아주려다 멈칫했다.
“아.”
세자의 뺨을 앞치마로 닦을 수는 없었다.
“얘, 숙자야.”
숙자에게 깨끗한 수건이라도 가져와 달라 말하려던 찰나, 헌이 손을 뻗어 그녀의 앞치마를 쥐었다.
“이것도 괜찮습니다.”
“아…… 예, 저하.”
헌의 말에 소진은 황급히 제 앞치마를 손바닥으로 탈탈 털었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그의 뺨을 향해 뻗었다.
헌의 뺨에 묻은 먹을 닦아내는 소진의 손이 소극적이었다.
좀 전에 그런 낯부끄러운 자세를 취한 것도 모자라, 그것을 숙자에게 고스란히 들켰다.
게다가 감히 왕세자의 얼굴에 먹칠까지 하였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부지런히 그의 뺨에 묻은 먹을 닦아내며 조금 전의 일을 헤집었다.
헌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진지한 얼굴로 제 뺨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손을 움직이는 소진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게 바로 스승 얼굴에 먹칠하는 것입니까?”
웃자고 던진 농담인데 소진의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송, 송구하옵니다.”
헌은 이제 되었다는 듯, 그녀의 손을 제지하며 피식 웃었다.
“괜찮습니다. 농입니다.”
“왜 자꾸 이런 실수를 하는 건지.”
소진이 멋쩍게 말끝을 흐리며 손을 내렸다.
하지만 아직 헌의 뺨에 묻은 먹이 채 지워지지 않았다.
“얼굴에 아직 먹이…….”
“세안을 해야겠습니다.”
“여기서요……?”
이곳에서 왕세자인 헌이 세안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얼굴을 씻겨 줄 궁녀 또한 마땅히 없을 터인데.
소진은 자신이 더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하면 이것은 과제로 돌려야겠지요?”
그때, 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소진의 고개가 돌아갔다.
“과제……요?”
“예.”
그가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진도 쭈뼛쭈뼛 그를 따라 일어나며 먹이 묻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음 만나는 날까지.”
“…….”
“내 용모화를 완성해 오는 것으로요.”
“아.”
“물론 그렇게 되면 상상화에 가까운 용모화겠지만.”
헌이 그렇게 말하고는 빙그르르 돌아섰다.
과제라니.
소진은 난감하다는 얼굴로 그의 뒤로 쪼르르 달려갔다.
“아직 과제로 대체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한데…….”
그녀의 목소리에 헌이 멈춰 서서는 소진을 돌아보았다.
소진이 우물쭈물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헌은 피식, 나지막한 미소를 흘리며 허리를 굽혀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오늘 내 얼굴을 실컷 보았으니 구태여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
“눈만 감으면 눈앞에 그려지지 않겠습니까?”
“예?”
“하면 그것을 종이 위에 그대로 옮기면 됩니다.”
“저하.”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하는 헌을 소진이 빤히 올려다보다 슬쩍 눈을 피했다.
‘구태여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눈앞에 그려질 것이라고……? 내가 뭘 그리 제 얼굴을 많이 보았다고?’
소진이 속으로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헌은 그런 그녀를 빤히 보다, 굽혔던 허리를 폈다.
“물론 잘 그릴 필요는 없습니다. 낭자의 실력을 시험하려 과제를 내는 것이 아니니까.”
“…….”
“다만 내 얼굴에서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의 얼굴과는 무엇이 다른지.”
“…….”
“그 차별점을 콕, 집어내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고자 함이니. 부담 없이 그려 보시지요.”
그 말을 남긴 채 헌이 돌아섰다.
소진은 그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자 곁으로 다가온 숙자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소진의 팔을 잡았다.
“대체 뭐 하신 거예요, 방금?”
“사고.”
“사고요……?”
“왜 앞에 오는 가마를 못 보고 그대로 쿵, 하고 부딪히는 그런 사고 있지?”
“……?”
“그런 거랑 비슷한 거였어.”
그 말에 숙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누가 가마예요?”
“뭐?”
“방금 가마랑 부딪히는 사고 같은 거라면서요. 아씨가 갖다 박았어요, 아니면 저하께서…….”
“말이 그렇다는 거지. 됐어, 궁금해하지 마.”
소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숙자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곤 헌이 사라진 곳을 뚫어지라 응시하다, 뒤를 돌았다.
어찌 부담 없이 그리란 말일까.
선물처럼 남기고 간 헌이 그린 자신의 용모화를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아무튼, 보통 실력이 아니란 말이지.”
선 하나하나가, 꼭 자신의 얼굴을 빼다 박은 듯 하얀 종이 위에 그려져 있었다.
“또 그려 주시었네요? 방금 그리신 것입니까? 후딱 그리셔도 어쩜…….”
“나도 언젠간 이렇게 용모화를 잘 그릴 수 있겠지?”
“누구의 얼굴을 그리시려고요?”
숙자의 물음에 소진이 눈을 반짝였다.
“봉희.”
“예?!”
“봉희의 얼굴을 그릴 것이야.”
“아…….”
“속히 챙겨서 가자. 아버지께서 찾으시겠다.”
“예, 아씨.”
***
“소상히 적었겠지?”
“예. 저하.”
“활인서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쳐 그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모두 가려낼 것이다.”
은밀히 목소리를 낮추는 헌의 얼굴이 딱딱했다.
곁에 선 윤현도 덩달아 고개를 조아리며 더욱이 주위를 경계했다.
“감히 전하께서 병세가 깊어진 틈을 타, 국세로 저들의 곳간을 채워……?”
“…….”
“병든 백성들을 위해 저들 곳간을 열지는 못할망정. 백성들에게 나눠준 것을 쥐새끼처럼 야금야금 훔쳐 먹다니. 이번 기회에 썩은 가지들을 모조리 잘라내야겠다.”
“성심을 다해 돕겠사옵니다.”
말을 마친 헌의 곁으로 일을 마무리한 소진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딱딱하게 굳혔던 얼굴을 풀며 헌이 소진을 돌아보았다.
“지금 돌아갈 것이지요?”
“예. 오늘은 고생 많으셨습니다. 낭자가 도와주신 덕에 수월하게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머니와 함께 종종 들러 병든 이들을 돌보아야겠습니다.”
“…….”
“그간 너무 백성들에게 무심했었던 것 같아요. 직접 와서 보고 일하니 느끼는 바가 큽니다.”
그렇게 말하며 소진이 활인서 안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있는 듯했다.
그런 소진을 헌이 말없이 바라보다 느리게 미소를 지었다.
“여러모로 낭자는.”
“……?”
“내게 필요한 사람 같습니다.”
여러모로.
짧은 그 단어에 담긴 뜻이 무엇일까.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면 세자빈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소진은 모르지 않았다.
‘내가 세자빈이 되면 세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일까.’
소진은 분주히 헌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그는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미소만 짓고 있을 뿐, 그 어떤 마음도 얼굴에 내비치지 않았다.
필요한 사람.
소진은 그 말을 혀끝에 굴리며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저하의 곁에는 충신이 넘치고 또한, 저하의 뜻을 따라줄 궁인들도 많은 것을요.”
“…….”
“하나 저하께서 필요하시다 하시면 기꺼이 도움이 되겠나이다.”
그렇게 대답하는 소진 역시, 감정을 숨긴 채 상투적인 웃음만 지을 뿐이다.
헌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듣던 중 참 반가운 소립니다. 가시지요.”
그때, 활인서를 나서기 위해 두 사람이 걸음을 옮겼는데 저 멀리서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소진의 앞을 막아섰다.
“아가씨……! 가시는 겁니까?”
“이제 가면 또…… 못 보는 것이지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깊은 정이 든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손수 죽도 나누어주고 말동무도 되어주며 여자아이들에게는 곱게 댕기도 땋아주었더니 아무래도 그새 소진에게 정이 쌓인 듯싶었다.
아쉬운 얼굴로 꼬맹이들이 소진의 곁에 옹기종기 모였다.
“또 올게. 그때까지 어머니 아버지, 말씀 잘 듣고. 밥도 많이 먹고 약도 잘 먹고 있어야 해. 알았지?”
소진은 미소 지은 얼굴로 아이들 하나하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곁에 선 헌이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약속하는 것이지요?”
“그럼! 다음에 올 때는 맛있는 거 많이 많이 들고 올게. 약속!”
소진이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곤 이들 한 명 한 명과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약속한 겁니다, 아씨?”
“빨리 오셔야 합니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소진의 손가락을 꼭 쥐었다.
그러다 곁에 멀뚱히 서 있는 헌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의원 나리도 약속하셔요!”
“다음번에 아씨와 함께 나리도 오실 것이지요?!”
당황해하는 헌과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소진.
순간 헌은 자신을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말간 얼굴 위로 눈부신 햇살이 부서지듯 쏟아졌고 소진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헌은 소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거 유혹하려다, 되레 유혹을 당하겠는데…….’
그는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슬쩍 구겼다.
그때, 아이들 틈에 섞여 있던 방울이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얼굴로 헌의 오른손을 살며시 잡았다.
“……!”
손에 닿는 작은 온기에 헌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방울이는 환하게 웃으며 그의 새끼손가락을 끌어와 소진의 앞에 두었다.
“아…….”
그러곤 아이들에게 다섯 손가락이 모두 걸린 그녀의 오른손이 아닌 왼손 새끼손가락을 쥐고는 헌과 꼭 맞춰주었다.
“이리하면 되는 것이지요?”
“방울아……?”
방울이 덕분에 헌과 소진의 새끼손가락이 딱 닿고 말았다.
흠칫 놀라며 소진이 손을 뒤로 빼려고 하자, 헌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제 손가락으로 꼭 걸었다.
“그래. 이리하면 나도 너희와 함께 약조한 것이지.”
“아……. 선비님.”
“어쩔 수 없이 함께 와야겠습니다.”
“……!”
“이리 새끼손가락까지 걸었으니 별 수 있습니까?”
헌의 말에 아이들은 환호했고 소진은 조금 당황하다,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얽힌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빤히 바라보았다.
***
저잣거리를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소진은 장옷을 꼭 여미며 너울을 길게 늘어뜨린 헌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행여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볼까, 해서 ‘웬 사내와 함께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더라.’라는 소문이 나돌까.
소진은 조심, 또 조심했다.
환관과 윤현, 그리고 숙자는 둘에게서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두 사람을 비호하고 있었다.
“다음은 언제가 좋을까요?”
말없이 걷기만 하던 그녀가 나지막이 헌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헌의 시선이 스르륵, 소진에게 닿았다.
“다음이라…….”
“과제 검사를 하셔야지요?”
소진의 말에 헌이 우두커니 멈춰 섰다.
아무래도 다음 만남은 궐이 될 듯싶었다.
곧 그녀는 재간택으로 입궐을 하여야 할 것이니.
하지만 그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소진이었기에 헌은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흠……. 글쎄요.”
“바쁘시면 굳이 시간을 내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헌이 곤란해 그러는 거라 생각한 소진이 그렇게 대꾸하며 걸음을 다시 옮겼다.
천천히 앞서가는 소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헌이 입술을 뗐다.
“바빠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
“다음 만남은 궐이 될 것 같아서.”
그 말에 소진의 걸음이 멈춰 서서는 빙그르르 돌아, 헌을 돌아보았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궐이라니요?”
소진이 조금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자 헌이 성큼,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자세한 건 댁으로 가 직접 듣는 것이 나을 듯싶습니다.”
“그것이 무슨…….”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나, 낭자에게는 비보일 테니.”
“……?!”
“아무래도 행복한 얼굴로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차라리 다른 이에게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소인에게는 비보……라고 하시면.”
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소진이 멍한 얼굴로 분주히 그의 눈빛을 살폈는데.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한 사내를 발견한 소진.
순간 그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소진은 심장이 쿵, 내려앉고 말았다.
“어……?!”
그러곤 저도 모르게 헌의 등 뒤의 사내를 가리키며 놀란 얼굴을 했다.
동시에 헌의 고개도 스르륵 돌아갔다.
“저 사람……!”
희미한 기억이었지만 소진의 기억 속의 두 얼굴을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헌이 사고를 당하던 일 년 전 그날 밤, 그를 습격하고 달아나던 남녀의 얼굴.
소진은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똑똑하게 기억했다.
지금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내는 그때 헌의 머리를 가격하고 달아나던, 그였다……!
소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부르르 떨었는데.
“……아는 사람입니까?”
헌이 무심한 얼굴로 그 사내를 한번 바라보다, 다시금 소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순간, 소진의 가슴이 다시금 곤두박질쳤다.
“그것이.”
소진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헌과 이쪽으로 오는 그 사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대로라면 헌과 딱 마주치고 말 테였다.
그를 공격했던 사람.
아무래도 다시금 그가 헌을 마주한다면 헌의 환궁 길이 위험해질 것 같았다.
“잠시만요……!”
소진은 서둘러 헌의 손을 잡아당겨 그 사내가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헌의 몸을 비스듬하게 돌려세웠다.
헌은 갑자기 소진이 왜 이러나 싶어, 조금 놀란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아슬아슬하게 헌과 스친 사내.
다행히 사내는 헌을 발견하지 못한 듯 일행과 함께 헌을 스쳐 멀어져가고 있었다.
소진은 자신이 잘못 본 것일까, 헌의 손을 놓으며 다시금 사내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저이는 그날 밤의 그 사내가 맞았다.
소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만 내려다보는 헌을 올려다보았다.
‘어찌, 왜…….’
그러자 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느리게 미소 지었다.
“뒤에 호위무사가 잔뜩인데 너무 과잉보호해 주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며 헌이 앞서 걸어갔고, 소진은 그런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을 공격했던 이를 보았는데…… 반응이 없는 것이지?’
순간 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소진의 눈빛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