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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재간택주의보 (21/125)

21. 재간택주의보

2020.12.11.

“그것이…….”

이토록 긴장된 적이 있었을까.

윤현의 대답을 기다리는 헌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좀 전에 소진을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른 시선이었다.

윤현이 그의 말에 대답하려 입술을 조금 뗐는데 뒤에서 소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비님!”

저를 부르는 소리에 헌은 굳혔던 표정을 풀고는 다시금 그녀를 돌아보았다.

소진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살피며 헌에게 오고 있었다.

윤현도 서둘러 입을 다물며 한 걸음 물러났다.

소진을 바라보는 헌의 딱딱한 입가에 느른한 호선이 걸렸다.

“죽이 다 되었습니다. 맛을 좀 봐주시지요.”

헌의 앞으로 다가오는 소진의 얼굴은 한껏 굳어 있었다.

그 손에는 작은 종지와 숟가락이 쥐여 있었고, 흡사 큰 시험을 앞둔 사람처럼 그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헌이 윤현에게 물러가 있으라는 듯 고갯짓을 해 보이며 소진에게 향했다.

“금세 다 되었습니까?”

“제 입에는 딱 맞은 것 같은데…….”

조금 자신 없어 보이는 목소리로 소진이 아랫입술을 꾹꾹 깨물었다.

헌이 종지 안을 들여다보니 하얀 쌀죽이 곱게 담겨 있었다.

“낭자의 입에 딱 맞으면 알맞게 끓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줘 본 적이 없어서…….”

그녀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며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헌은 피식 웃으며 그녀가 쥐고 있는 수저를 대신 들었다.

그러곤 죽을 조금 떠 입에 넣어 맛을 보았다.

고소한 향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어떻습니까……?”

헌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소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긴장한 그녀의 모습이 퍽 귀여워 헌은 그만 웃고 말았다.

그러자 그의 웃음에 소진은 실망한 얼굴을 했다.

이내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맛이 없습니까?”

그 때문에 웃음을 터뜨린 것이 아니었는데.

의기소침해하는 소진을 보니 순간, 그녀를 좀 더 놀려 주고 싶다는 생각이 헌의 머리를 스쳤다.

“흐음.”

이어 쐐기를 박듯 그가 작게 한숨까지 쉬자 소진은 덩달아 깊이 숨을 내쉬며 죽이 든 종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숙자는 괜찮다고 하였는데…….”

“…….”

“영 별로입니까? 어쩌지요?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

“좀 많이 묽습니까? 하면 좀 더 졸여볼까요?”

확신이 없는 듯, 소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대답 없는 헌을 올려다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묽어서 그런 것이어요……? 아니면…… 음, 너무 물기가 없어서?”

무어라 확고하게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 텐데 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의미심장하게 미소만 짓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소진은 헌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길게 흐렸다.

“선비님……?”

그녀는 그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눈을 연신 깜빡였다.

속히 대답을 해 달라는 무언의 눈짓이었다.

이내 헌은 피식, 입술을 터뜨리며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뱉어냈다.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위축되셨습니까?”

“요리는 영…… 자신이 없는 분야라.”

“맛이 아주 좋습니다.”

“예?!”

장원 급제라도 한 사람처럼 소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기뻐했다.

“묽기도 적당하고 쌀알도 알맞게 익은 것이 아주 고소하고 맛이 있습니다.”

“참입니까? 정말이어요?!”

아이같이 방방 뛰며 소진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칭찬은 호랑이도 춤추게 한다고 하였던가.

언제나 고고하게 얼굴을 치켜든 채, 어깨만 으쓱거리던 그녀의 색다른 모습이었다.

기뻐하는 소진을 보니 헌도 덩달아 얼굴이 밝아지는 듯했다.

“소질이 있는 듯합니다. 대체 낭자께서는 못하는 게 무엇입니까?”

“하하하. 제가 원래 하나를 알면 열을……. 아, 이럴 게 아니라 얼른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야겠습니다! 숙자야, 숙자야……!”

헌에게 통과를 받아들고서 소진은 서둘러 숙자에게 달려갔다.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총총총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헌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서 저 여인이 재간택에 임할 수 있게 되었느냐.”

헌은 소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윤현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한 걸음 물러나 있던 윤현이 다시금 그에게 다가왔다.

“예. 한 규수께서 재간택 통과 명단에 올랐습니다.”

“아…….”

그 말이 헌의 귓가에 닿자마자 그의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가 쿵, 떨어지는 듯했다.

헌의 반듯한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윤현은 어쩐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영의정 대감이 가만히 있을까요?”

“…….”

“중궁전 역시 영의정 대감의 편을 들며…… 술수를 꾸며도 꾸밀 것입니다.”

윤현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헌은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

그러곤 뒷짐을 진 채,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깊은 우물 같은 눈동자에 파란 하늘이 담겼다.

어쩐지 그 속에 뜨거운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그자가 어찌할 것인데.”

“저하…….”

“초간택에서 반드시 떨어뜨리겠다, 다짐하며 사주단자를 올렸겠지.”

“…….”

“하나, 어찌 되었는가. 한 규수는 보기 좋게 초간택에 통과해 재간택에 임하게 되었지.”

젖혀졌던 그의 고개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활인서 안을 훑는 그의 눈길이 다시금 거세졌다.

“그 누구도 내 뜻을 꺾어놓지 못할 것이다.”

성대를 긁으며 흘러나온 그 목소리는 싸늘하기만 했다.

이윽고 헌의 눈앞에 보은군과 소진의 다정한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그의 가슴에 투기심이 뜨겁게 일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한 규수를 얻을 수 없을 것이고.”

자신의 유일한 기억을 알고 있는 여인.

그 여인을 결코, 누구에게도 빼앗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

“이제 이 일을 어찌해야 합니까?”

영의정의 사가에는 ‘재간택주의보’가 내려졌다.

이미 영의정과 최씨 부인은 죽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비보는 두 사람을 시름시름 앓게 했다.

“통과라니……. 재간택 명단에 올랐다니……!”

영의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서안을 내려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최씨 부인 역시 깊이 한숨을 내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까딱하다가는 소진이 세자빈으로 간택이 되는 것은 아닐까, 속이 바짝바짝 탔다.

“대감마님, 상궁 마마님 드셨사옵니다.”

소진의 간택 수업을 도맡았던 상궁이 간택 통과 소식을 듣고 영의정의 사가를 찾은 것이었다.

“뫼시어라.”

영의정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곧, 상궁이 그의 앞에 앉으며 장옷을 거두었다.

“대감마님, 일이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실수를 연이어 했다고 하던데, 대체 왜.”

“아무래도 마지막에 세자 저하께서 간택장에 납시셔서 직접 현장을 살핀 것이 연유인 듯싶습니다.”

“저하께서 무슨 권한으로 간택장에 끼어들었다는 말입니까?”

영의정이 불같이 화를 내며 눈빛을 번뜩였다.

그러자 상궁은 고개를 조아리며 난감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간택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 상궁들의 의견이었습니다.”

“…….”

“다만 감독 역할로 저하께서 간택장에 참관하였을 뿐, 간택은 채점 결과와 상궁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내어놓았다고 하니…… 결과를 뒤집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싶습니다.”

“하면 우리 소진이는 이제 어쩝니까……?”

최씨 부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상궁을 돌아보며 물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상궁은 그런 그녀를 지그시 응시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걱정하실 것 없사옵니다. 재간택에 오른 여인들 모두, 이번 간택에 열의를 보이는 규수들입니다.”

“…….”

“또한, 재간택은 초간택보다 더욱 심층적으로 진행되니 사소한 실수 하나라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궁의 말에 영의정이 미간을 잔뜩 구긴 채, 버럭 반문했다.

“그러다 또 저번처럼 저하께서 간택장에 드신다면?!”

하지만 그럴 일 없을 거라는 듯, 상궁은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상궁을 응시하는 영의정의 눈길은 거세기만 했다.

곁에 앉은 최씨 부인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상궁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다신 그럴 일 없을 것입니다. 저하께서 초간택 장에 드신 이후로 대신들 사이에서 여러 잡음이 들려오기도 했고, 대비전에서 그날 하루만 저하께 대신 참관할 자격을 주신 것이니.”

“…….”

“다음부터는 대비전에서 직접 납시시어 간택을 참관하실 것입니다.”

그 말에 최씨 부인은 더욱 걱정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지만 대비마마께서 직접 참관하신다면…… 더욱 소진이에게 불리하지 않겠습니까?”

“…….”

“대비전에서 염두하고 계신 세자빈 후보가 우리 소진이라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애초에 이 간택에 사주단자를 올린 것이 잘못이었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영의정의 눈길이 조금 전보다 더 거세졌다.

처음부터 이번 간택에 거동이 불편한 대비가 직접 참관은 없을 거라고 쐐기를 박았었다.

그것 때문에 영의정은 조금이라도 안심하며 소진의 사주단자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대비가 직접 참관을 할 수도 있다니.

모든 것이 예상을 뒤흔들며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것 같아 영의정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대비전이 참관하신다니요.”

영의정의 목소리가 옅게 갈라졌다.

“걱정하실 것 없사옵니다. 오히려 대비마마께서 직접 납시신다면 더욱이 한 규수의 간택을 반대하실 것입니다.”

“…….”

“기대했던 후보가 알고 보니 왈가닥에 그 자질이 다른 규수들보다 떨어진다는 판단이 선다면.”

“…….”

“그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서서 한 규수를 떨어뜨릴 것입니다. 대비마마에게 있어 이번 세자빈 간택은 단순한 손주 며느리를 보는 자리가 아니니까요.”

“…….”

“힘을 잃어가는 전하와 자신의 뒷배를 지켜줄 수 있는 영민하고 똑 부러지는 세자빈을 얻기 위한 것이니…… 그리 허술하게 세자빈을 간택하지 않으실 겁니다.”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가문이 탐나는 규수라 할지라도 자질이 부족하다면 간택하지 않을 대비였다.

영의정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삼간택까지는 절대 안 됩니다.”

“예……. 최선을 다해 재간택 지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부를 세자 헌과 대비의 얼굴이 떠올라 영의정은 성질이 났다.

삼간택에 오른다면 꼼짝없이 후궁으로 입궐할 수도 있을 테였다.

감히 영의정의 여식이 후궁이라니.

이건 있을 수도, 또한 일어나서도 아니 될 일이었다.

***

“많이 드세요. 먹기 싫어도 억지로 씹고 삼켜야 병세를 훌훌 털 수 있답니다. 많이 먹고 얼른 나아야 더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식구들과 오순도순 살죠.”

“예, 아씨.”

“꼬맹이. 너도 남기지 말고 싹싹 긁어먹어야 한다? 이 죽 내가 직접 끓인 거야. 알았지?”

소진은 손수 병자들에게 죽을 나누어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복면을 쓴 헌이 그 모습을 멀찌감치서 보고 있다, 그녀를 따라 피식 미소 지었다.

처음에는 그저 오지랖만 넓은 여인인 줄 알았지만, 그 속은 백성 모두를 끌어안고도 남을 만큼 넓고 깊은 여인인 듯했다.

‘한 규수가 재간택에 올랐다라…….’

윤현이 했던 말을 곱씹던 헌은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세자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소진.

그는 그녀가 세자빈이 되어 제 곁으로 오는 상상을 해보았다.

지나치게 똑똑하고 목석처럼 딱딱하게 굴어 피곤할 때도 있을 터.

소진은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어여쁜 여인이니,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자신과 한마음 한뜻으로 백성을 돌보며 조선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흐뭇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그때…….

“한데 의원님하고 저 아씨하고 부부여요?”

웬 여자아이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헌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 말에 죽을 나눠주던 소진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소진과 헌의 시선이 부딪쳤다.

“방울아! 탕약 먹으라니까 왜 약 사발을 들고 돌아다녀. 그러다 의원님께 쏟으려면 어쩌려고! 송구하옵니다, 의원님.”

여자아이의 엄마인 듯 초라한 차림의 한 여인이 다가와 고개를 조아려 보였다.

그러자 헌이 괜찮다는 듯 다정하게 웃으며 허리를 구부려 방울이라는 여자아이의 어깨를 짚었다.

“방울이? 이름이 참 어여쁘구나.”

“저 아씨가 더 어여뻐요.”

여자아이는 생긋 웃으며 소진을 가리켜 보였다.

헌은 아이의 손끝을 따라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는 소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와 다시금 눈이 마주친 소진은 서둘러 시선을 피하며 열심히 죽을 담았다.

“그렇지? 저 아씨 참으로 어여쁘지?”

헌이 빙그레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얼른 커서 저 아씨처럼 예뻐질래요!”

“그러려면 죽도 많이 먹고 약도 많이 많이 먹어야 하는데?”

“약은 너무 쓴걸요……?”

“얼른 커서 저 아씨처럼 어여쁜 여인이 되고 싶으면 쓴 약도 잘 먹어야지.”

헌의 말에 아이는 꾸물거리며 약사발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곤 결심한 듯 꿀꺽꿀꺽, 탕약을 삼키며 인상을 썼다.

그 모습을 멀찌감치서 보고 있던 소진이 웃음을 머금고서는 아이에게 다가왔다.

“잘 먹네. 이제 방울이도 이 언니처럼 쑥쑥 자랄 수 있겠다.”

그렇게 말하며 아이의 입에 설당 과자를 쏙, 집어넣어 주었다.

아이는 헌과 소진이를 번갈아 쳐다보다 헌을 향해 그 작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우리 아부지가 그랬어요.”

“응?”

“아부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내라고요.”

갑작스러운 그 말에 헌과 소진은 얼떨떨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선에서 제일 어여쁜 어머니를 색시로 얻었으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대요. 하니 의원님께서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지요?”

“뭐라?”

“우리 어머니보다 더 어여쁜 아씨를 색시로 뒀으니까요!”

그 말에 소진의 얼굴이 화르륵 붉어지고 말았다.

“얘, 방울아……!”

방울의 엄마는 당황한 듯 아이의 손을 잡아끌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헌은 재미있다는 듯 소리 내어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그런데 어쩌지? 저 어여쁜 아씨는 나의 색시가 아닌데.”

“예? 색시가 아니어요?”

“응. 색시가 아니라……. 흠, 이리 가까이 와보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소진이 헌을 빤히 내려다보았는데 헌은 아이의 귀에 무언가를 은밀히 속삭였다.

“…….”

무어라 속닥거리던 헌이 흠흠, 헛기침하며 아이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아이는 쪼르르 소진에게 다가와 이번에는 그녀의 옷깃을 작게 잡아 당겼다.

“어……?”

그러곤 소진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려는 듯, 까치발을 들고서 낑낑거렸다.

소진은 등을 돌리고 있는 헌을 한 번 바라보고는 무릎을 굽혀 아이의 입술에 제 귀를 갖다 댔다.

그러자 아이가 산들바람처럼 간질거리는 목소리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소진의 뺨이 다시금 잘 익은 능금처럼 붉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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