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쁜 짓이라도 할까 봐?
2020.11.16.
웬 가마인가 싶어, 헌이 조금 경계하며 물러났다.
윤현 역시, 그를 호위하며 가마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이내 가마꾼들이 가마를 내려놓자 누군가가 가마 안에서 내렸다.
“아?”
곧 소진이 뾰로통한 얼굴로 헌의 앞에 우두커니 섰다.
그 어느 때보다 해사하고 어여쁜 차림새의 그녀였다.
오기 싫다고 하더니 예쁘게 꾸미고 온 그녀의 모습에 헌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가마까지 타고 오시었습니까, 낭자.”
그러자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향해 고개를 까딱 숙여 보이고는 가마꾼들을 돌아보았다.
“두시진 정도 후에 이쪽에서 다시 탈 것이오. 두시진 후에 뵙도록 하지요.”
“예, 아씨.”
가마꾼들이 물러나고.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던 헌은 낮게 미소를 그리며 슬그머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허리를 굽혀 그녀에게 속삭였다.
“두 시진 동안 나랑 같이 있으려고요?”
“…….”
“나랑 어디서 무얼 할지, 계획까지 다 짜온 모양입니다.”
그러자 소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를 한번 올려다보다 피식, 콧방귀를 꼈다.
“그럴 리가요?”
그녀는 치렁치렁한 장신구들이 거슬린다는 듯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외출 금지를 당해 하마터면 못 나올 뻔했습니다. 그래서 규수들과 다과 모임이 있다고 둘러대고 나오는 길이라.”
“아.”
“해서 옷차림도 이렇고…… 약속이 두시진 뒤에 끝이 난다고 일러 가마꾼들을 그때 부른 것입니다만?”
괜히 그가 자신을 만나러 나올 생각에 한껏 치장하고 온 것이라 오해할까 싶어 서둘러 둘러댔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헌은 외출 금지라는 말에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였다.
“외출 금지라니요?”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혹, 세자에게 찍혔다는 사실을 영의정 대감께서도 아신 것입니까?”
그의 말에 소진이 그 동그란 눈을 연신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소인이 저하께 찍혔사옵니까?”
“여러 의미에서 찍혔지요?”
“아…… 예. 뭐,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아직 모르십니다. 초간택 때 있었던 일을…….”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슬쩍 헌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곤 찍혔다는 말에 소진은 심란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뭐 제가 찍힌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리 거짓을 고하면서까지 저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왔으니 그간의 무례함을 좀 봐주십시오.”
그녀는 새초롬하게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그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곤 고운 치맛자락을 질끈 움켜쥐며 앞서 걸었다.
헌은 윤현에게 물러나 있으라는 듯 고갯짓을 해 보이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온 것이 맞습니까?”
“하면요?”
앞서 걷던 소진이 빙그르르 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여아일언중천금. 그렇게 말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러 나온 것이 아니고?”
그 말에 소진은 마음을 들켰다는 듯, 핏 웃고 말았다.
“뭐, 겸사겸사요……?”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두 사람의 서먹서먹하게 벌어진 사이로 보드랍게 지나갔다.
헌은 부지런히 걷는 그녀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어쩌다 외출 금지를 당한 것일까, 궁금함은 가시지를 않았다.
“어쩌다 외출 금지를 당한 것인지 물어도 됩니까?”
“간택이 한창 진행 중이라 그런 것도 있고. 또 제가…… 번번이 밖으로 나가 말타기를 하고 활도 쏘니 아버지께서 걱정이 되셔서 그리하였습니다.”
그녀는 대체 그것이 뭐가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 그렇군요.”
“해서 오늘 규수들과의 다과 모임이 있는 날이라 거짓으로 둘러대고 이렇게 어머니가 골라주신 비단옷으로 얌전한 요조숙녀처럼 차려 입고 나서야 나올 수 있었지요.”
“그 때문에 가마까지 대동한 것이고.”
“예.”
어쩐지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녀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소진은 늘 보던 다른 여인들과 확연히 달랐다.
그래서 아마 그녀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힘든 걸지도 몰랐다.
다른 여인이었더라면 벌써 그가 그려 준 용모화(容貌畵)에 홀딱 마음을 주었을 터.
그는 소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여인을 어찌해야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헌은 그녀와 나란히 걷는 와중에도 생각이 많아졌다.
“그런데 다과 모임을 이리 입고 하십니까?”
“예. 뭐……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참석 할까 말까, 합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거든요.”
“다과 모임이…… 불편합니까?”
“말이 다과 모임이지. 그냥 시답잖은 수다 모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어요.”
“여인네들은 수다로 피로와 우울감을 떨친다고 들었습니다. 한데 어찌, 불편하다 하시는지요?”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 하였다.
오늘 그녀를 만나자고 한 것은 소진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을 파악하기 위해 그녀와의 약속을 잡은 것이었다.
소진은 꼬치꼬치 묻는 헌을 의아하다는 듯이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대수롭지 않게 시선을 돌리며 두런두런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 아버지가 청국에서 사 온 저고리가 어떻다, 비단은 어떻다. 탄신일에 선물 받은 노리개와 가락지 좀 보아라, 한양에 몇 안 되는 문양이다……. 비단옷과 장신구들을 한가득 치장해 와서 자랑을 벌이는 것으로 다과 모임이 시작된답니다.”
“……아.”
“그러다 자랑 놀이가 끝나면 옆 동네 누구 도령 보았느냐, 요즘 따라 부쩍 그 도령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한양의 사내들 이야기로 분주해지지요.”
그녀의 말에 헌은 물끄러미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상상만 해도 따분하다는 듯 소진의 이맛살이 슬쩍 찌푸려져 있었다.
“그러면 곧, 정인들과의 연애 상담으로 판은 무르익는답니다.”
“그것이 보통 여인들의 수다 주제가 아닐는지요?”
“해서 그런 보통 여인들과 모임을 꺼리는 것입니다.”
“하면…… 낭자는 보통 여인이 아닙니까?”
소진은 그의 물음에 가만히 걷던 걸음을 멈추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평소와 달리 화려한 제 차림새를 내려다보며 피식, 헛웃음을 뱉어냈다.
“보통 여인이지요, 뭐. 저라고 다를 게 있겠습니까? 다만.”
“…….”
“수를 놓는 것보다, 활을 쏘는 것이 더 좋고. 수다를 떠는 것보다 서책을 읽으며 내 자신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
“또한, 이리 화려한 옷을 입고 치장품과 장신구 이야기를 하며 가만히 차를 마시는 것보다 편안한 옷을 입고 말을 타고 무술을 배우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헌은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가만가만 느리게 말을 하던 소진이 멋쩍은 듯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곱게 포개졌다.
“각자 흥미를 느끼는 바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요. 괜히 흥미에도 없는 모임에 부모님 눈치 본다고 끼어, 분위기만 망치느니 차라리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몰래라도 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그러다 영의정 대감에게 혼쭐이 나고?”
“어쩔 수 없지요.”
소진이 나지막이 웃자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헌도 그녀를 따라 생긋, 웃었다.
도통 속을 가늠할 수 없는 여인이었지만 알면 알수록 흥미가 생겼다.
장신구보다 활을 더 좋아하는 여인이라.
그는 그제야 자신이 건넨 용모화에 그녀가 꼼짝달싹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라리 그때, 잘 만든 활을 선물했더라면…… 낭자가 내게 마음을 열었을까.”
“예?”
“하면 오늘의 만남도 아바마마께서 납시셨다는 거짓말 없이도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겠지요?”
헌의 말에 소진은 그가 제게 주었던 용모화를 떠올려 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소진은 내심 그 용모화가 꽤 마음에 들었었다.
지금도 고이 접어 방에 가지런히 놓아두고는 한 번씩 생각날 때마다 꺼내 들여다보고는 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닙니다. 그 용모화는 좋았습니다.”
“…….”
“꽤 마음에 들었거든요. 공들여 그리신 것 같아 기분도 좋았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화난 얼굴이라도 완성해 보내드릴 걸 그랬습니다.”
“보은(報恩)을 위한 성의였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이야기를 더 나누어보니 왈가닥일 것 같던 그녀는 생각보다 차분하고 학식이 깊은 것 같았다.
헌은 소진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에 홀로 감탄하기도 하고 마음에 새겨두기도 하며 조금씩 그녀에 대해 알아갔다.
“한데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 것입니까?”
두 사람이 꽤 저잣거리까지 나왔을 때, 소진이 헌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녀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이 무언가 재미난 일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따라와 보시면 압니다.”
사실 그녀가 활을 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왕실 전용 사냥터에 그녀를 데려갈 요량이었다.
오늘은 사냥터가 비는 날이었기 때문에 무리 없이 소진과 활을 쏠 수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다 보면 아무래도 조금 더 친해질 수도 있고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기에.
부지런히 걸음을 움직이는 헌을 따라, 소진은 어디로 향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한창 저잣거리를 지나, 한적한 숲길로 들어섰다.
고즈넉한 숲속이 펼쳐지자 소진이 머뭇거림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숲길을 살피는 그녀의 동공이 슬쩍 의아함으로 물들어갔다.
“가보시면 압니다.”
“아무리 세자 저하시지만 지금 가는 곳이 어디인지 정도는 알고 따라가야겠습니다.”
소진의 말에 헌이 낮은 웃음을 터뜨리며 재미있다는 듯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웃음에 소진은 괜스레 코끝을 만지작하며 슬쩍 물러났다.
“내가 어디 으슥한 곳이라도 데려가 나쁜 짓이라도 할까 봐?”
웃음기가 어린 목소리였지만 긴장하게 되는 말이었다.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괜히 입술을 삐죽이며 새침하게 시선을 돌렸다.
“어찌 압니까? 기방 문턱이 닳고 닳도록 넘나든 세자 저하이신데?”
“어허……. 내가 고작 그대에게 그것밖에 안 되는 세자입니까?”
“사실이지 않습니까? 자고로 기방, 노름방 앞 기웃거리는 사내와는 상종도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까? 하면 난 반은 상종해도 괜찮은 사내겠군.”
그렇게 말하며 헌이 소진을 지그시 내려다보다, 다시금 그 입술을 달싹였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기방은 사정이 있어 그리한 것이지, 여인네들과 술잔이나 기울여 보려 그리 한 것이 아닙니다.”
“뭐 상관없지 않습니까? 내 서방도 아닌 것을요.”
헌의 변명에 소진이 생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더니, 홀로 앞서 걸었다.
또 당했다, 하는 얼굴로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서방이…… 될 수도 있지?”
뒷짐을 지고서 그녀의 뒤를 따르던 그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소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는 줄곧 정면만 바라보며 걸었다.
철저하게 그의 말을 무시한 것이었다.
“참, 왕세자의 말을 무시하는 여인이라…….”
그의 중얼거림에 그녀가 그제야 그를 홱 돌아보며 말했다.
“이럴 때만 꼭, 왕세자 저하이시지요?”
퉁명스러운 얼굴이었지만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헌은 자신이 세자라는 것을 알고도 전과 다름없이 자신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대부분 제게 잘 보이기 위해 내숭을 떨기에 급급한데.
헌은 세자라는 자신의 말에도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모두 내뱉고 보는 소진이 신기했다.
그래서 보은군이 아마 그녀를 벗으로 삼고 곁에 두는 모양이었다.
그때, 숲속 안으로 들어서자 큰 못이 나타났다.
한 쌍의 오리가 못 위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소진의 눈길이 절로 멈추었다.
그녀의 말간 뺨 위에 눈 부신 햇살이 곱게 내려앉았다.
그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 살며시 입술을 뗐다.
“교태전의 궁인들이 최근에 대폭 바뀌었다고 합니다.”
헌의 말에 소진은 크게 놀라며 그를 돌아보았다.
“예? 방금 그 말은…….”
그러자 그가 물끄러미 그녀를 응시하고 있던 시선을 거두어 못 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제로 들어와 궁녀가 된 이는 없다고 합니다.”
“알아……보신 것입니까?”
“예. 하니 낭자께서 뭘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닙니다. 봉희는 궁녀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아녀자가 어찌 궁인이 된답니까? 또한, 그때 본 궁녀는 제 벗이 확실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확신에 찼다.
하지만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니 헌도 상황이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확실하다고 하니…… 더 알아는 보겠지만. 정식으로 절차를 밟고 들어온 궁인들이라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중전마마께서 만삭이시니, 곁에서 보필해야 할 아녀자들이 필요했던 걸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제로 마을의 여인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하긴, 그렇지요.”
소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속상하다는 듯이 입술을 꽉 악물었다.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니, 넌.”
벌써 봉희가 사라진 지도 보름이 훌쩍 넘었으니.
이러다 그녀를 영영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소진은 밤마다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교태전은…… 쉬이 넘볼 곳이 아닙니다.”
“중전마마께서 태교에 전념하시느라 많이 예민하시겠지요?”
“그걸 떠나서. 아무튼, 그렇습니다.”
“……예.”
“해서 벗을 정녕 찾고 싶은 거라면 보은군에게 했던 청은 거두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를 소진이 올려다보았다.
“어찌 그러십니까?”
“중전마마께서 행여 알게 된다면 벗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아시겠지만 보은군은 교태전과 교류가 없었습니다. 또한, 민 소용이 나서서 교태전을 들락날락할 만큼 두 분의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니.”
“…….”
“괜히 보은군이 이번 일에 나섰다가 눈치 빠른 중전마마께서 무언가를 감추시려 한다면, 일은 복잡해질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의 말도 맞았다.
자신이 섣불리 보은군에게 도움을 청해 행여 그를 난처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또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다 일을 더 그르치는 것은 아닐까, 소진은 생각이 많아졌다.
그녀는 깊이 한숨만 내쉬며 괴로운 듯 뺨을 쓸어내렸다.
“벗은 꼭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낭자가 이리 고군분투하고 있질 않습니까?”
“벗이 사라지기 전날, 모질게 말을 했어요.”
“…….”
“참 착하고 성정이 곧은 벗이었는데. 제 신경질에도 그저 맑게 웃기만 했거든요.”
“아.”
“그래서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습니다.”
소진은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매단 채 힘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반드시 찾을 겁니다. 우리 봉희…… 제가 반드시 찾아요.”
그리고 그때, 소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저 멀리서 동네 꼬마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몰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다섯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들이 이쪽을 향해 우르르 달려왔다.
“술래잡기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방해가 될 듯싶으니, 속히 자리를 비켜주지요.”
헌의 말에 소진도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앞서가는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는데…….
“……!”
어느샌가 소진의 곁에까지 달려온 아이들은 서로 대장을 하겠다며 나뭇가지 하나를 두고 싸우고 있었다.
“내가 할 거라니까?”
“내가 할 거야! 아까 네가 했잖아!”
“이거 놔! 이번에는 내 차례야!”
못가 근처에 서서 아이들이 줄다리기하듯 나뭇가지를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위험해 보여 소진이 서둘러 아이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얘들아, 여기는 너무 위험 하…… 어?!”
그때였다.
아이 하나가 나뭇가지를 놓치며 뒤로 휘청, 넘어졌는데 그만 못가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동시에 뒤에서 아이들을 말리던 소진 역시, 아이와 함께 떠밀려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헌이 미처 소진을 잡을 새도 없이.
“……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