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 반려가 되었으면 하니까.
2020.11.09.
놀라 젖은 치맛자락을 털어내던 소진도 멈칫, 굳어버리고 말았다.
“예…… 저하?”
상궁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서는 세자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헌은 소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묵직하게 입술을 떼었다.
“방금 저 규수에게 다시 기회를 주게.”
“예?! 그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저 여인이 설령 부러 그리하였겠는가.”
“……아.”
“내가 있어 긴장을 한 모양인데, 다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도록 차를 다시 내어주도록 하게.”
“…….”
“그리고 지금부터 실수를 하는 규수들에게 모두 한 번씩,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면 형평성에는 문제가 없지 않겠는가.”
헌의 말에 상궁들이 잠시 술렁이다, 이내 소진에게 다시 차를 내어주었다.
자신의 앞에 새로 놓이는 찻잔을 보며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저도 모르게 헌을 향해 눈을 흘기다, 그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고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이번 거는 진짜 실수긴 하지만…… 호락호락하지가 않네.’
소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이번에는 젓가락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주문을 외우듯 속으로 읊조리며 젓가락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다소곳하게 경단을 집고 있던 젓가락이 휙, 어긋나고 말았다.
툭, 데구루루.
경단은 경망스럽게 간택장 바닥을 굴러가기 시작했다.
상궁들도, 그리고 간택에 참여한 규수들도 모두 놀란 얼굴로 소진을 바라보았다.
헌 역시, 발 너머에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에구머니나!”
난처하다는 듯 소진은 상궁들의 눈치를 보며 굴러가는 경단을 손으로 잡았다.
‘이래도 네가 날 간택하려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흐뭇한 얼굴로 헌을 슬쩍 돌아보았다.
그러자 상궁들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감점을 매겼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차를 엎지른 것도 모자라 경단까지 떨어뜨렸으니 재간택 참가 자격을 박탈당할 것이었다.
그녀는 그 뒤로 마음 편히, 다과를 즐겼다.
나머지 규수 중에서도 몇, 실수하는 이도 있었지만 모두 최선을 다해 과제에 임했다.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간택 종료를 알리는 상궁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상궁들은 최종적으로 초간택에 관한 결과를 의논하고 있었다.
규수들은 간택장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의 거의 다 나가고 소진은 보은군을 다시 만나러 가려 뭉그적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간택이 조금 일찍 끝나 시간을 벌어야 했다.
맨 뒤에 선 소진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간택장을 벗어나려는데, 뒤에서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그 짧은 두 글자가 그녀를 멈춰 세웠고 소진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헌이 굳은 얼굴로 발을 걷고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저하?”
헌은 성큼성큼 소진의 앞으로 다가와 다짜고짜 그녀의 앞을 가로 막고 섰다.
그러자 놀란 얼굴로 그녀가 헌을 올려다보다,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이제는 그녀가 함부로 시선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굳은 얼굴로 소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볼 수 있는 건 오직, 헌의 발끝뿐이었다.
궁인들도 모두 얼음이 되어 그와 소진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낭자, 잠시 실례하겠소.”
그 말을 툭, 던진 헌은 갑자기 소진의 오른쪽 손목을 지그시 잡아 올렸다.
그녀는 헌이 왜 이러나 싶어, 잡힌 손목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곧 소진의 눈만 집요하게 응시하던 헌의 입술이 벌어졌다.
“어허! 이러니 젓가락질에 서툴렀던 게지요.”
“……예?!”
“이리 손이 부었는데도 통증을 참고 끝까지 간택에 임하셨던 겁니까? 어쩐지 이상하다 했습니다.”
알 수 없는 헌의 말에 소진과 상궁들은 고개만 갸웃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그녀는 헌에게 손목을 잡힌 채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젓가락질이 서툴러 그런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시온지.”
“화상을 입었는데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니, 그대의 투혼 정신을 높이 사고 싶소.”
“……화상이요?”
그제야 소진은 빨갛게 부은 손등을 바라보았다.
언제 부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무런 통증도 없었는데.
그저 잠깐 뜨거운 것에 덴 피부 겉이 놀라 빨갛게 부은 것 같았다.
소진은 그에게 잡힌 손을 슬그머니 등 뒤로 감추며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화상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사옵니다. 아프지도 않은 것을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슬그머니 그의 뜨거운 시선을 회피했다.
심사하던 상궁들은 그런 소진의 손등을 유심히 살폈다.
‘어디서 피 같은 내 감점을 무효화 하려고 수작이야? 아무튼, 내 인생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세자라니까?’
그녀는 속으로 헌을 잘근잘근 씹으며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그의 반듯하던 입매가 핏, 일그러졌다.
“아프지 않다? 아무렇지도 않다……?”
그녀의 말을 되씹던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럼 부러 간택에서 떨어지려 그리하였단 말이오? 허, 간택에서 떨어지려 일부러 실수를 연발하는 규수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간택장으로 걸음을 하였건만.”
“……!”
“그대였소?”
그의 말에 소진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심사를 보던 상궁들이 술렁거리며 소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헌은 근엄하게 얼굴을 굳히고는 상궁들을 돌아보았다.
“최고 상궁, 오늘 간택 심사 채점표를 가지고 오게.”
“예, 저하.”
“아무래도 부러 실수한다는 소문이 영, 뜬 소문은 아닌 듯싶으니.”
난감해진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그를 향해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소인은 최선을 다해 간택에 임하였습니다.”
“한데 그것이 최선이었습니까?”
“긴장도 하였고…… 사실 손도 아, 아프기도 하였고……. 예, 손이 무지하게 아파 젓가락을 쥘 수가 없었사옵니다……!”
하는 수 없이 헌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궁들을 바라보던 헌이, 다시금 소진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이번 초간택은 헌 때문에 망한 듯싶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행여 헌이 자신을 부정행위자로 지목해 엄벌을 내릴까,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때, 상궁 한 명이 헌에게 다가와 채점표를 건넸다.
순간 소진의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만 같았다.
분명 자신이 실수한 것들을 보면 헌이 호통칠 것이 뻔했다.
‘이를 어쩐담…….’
그녀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곧 떨어질 그의 호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던 헌은 어쩐 일인지 상궁에게서 건네받은 채점표를 다시금 상궁에게 돌려주었다.
“퇴궐하는 길에 내의원에 들러 치료를 받으십시오.”
“예?”
“어찌하였든 나 때문에 긴장한 그대가 실수를 해, 이 사달이 난 것이니. 흉터가 남으면 안 되니, 꼭 내의원을 들르도록 하시지요.”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가버린다?
뜻밖의 전개에 소진이 놀란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상궁들 역시 고개를 조아리며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왜…… 그냥 가?”
실컷 사람 혼을 다 빼놓고는 왜 그냥 가버리는 것인지.
소진은 그저 얼떨떨한 얼굴로 멀어지는 그의 모습만 바라보았다.
한편, 뒤돌아선 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최고 상궁을 향해 은밀하게 입을 열었다.
“공정하게 채점을 해야 할 것이다.”
“여부가 있겠나이까, 저하.”
“나라면 저 여인에게 감점이 아닌 가산점을 부여할 것 같은데.”
“……그 말씀은.”
“똑같이 실수를 하고 똑같은 감점자가 나온다면, 저 여인을 간택하도록 하라.”
“…….”
“저리 화상을 입고도 아프다는 내색 없이 끝까지 간택에 임하는 자세, 대비마마께서도 아마 보시었다면 그 점을 높이 샀을 테니.”
그러고는 휘적휘적 간택 장을 빠져나가는 헌이었다.
그의 말에 상궁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리 큰 화상도 아니었고 조금 빨갛게 부은 정도였다.
‘낭자의 뜻대로 해줄 생각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헌은 피식,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
“하……. 간택도 봉희도 모두 틀렸어. 다 세자 그 자식 때문이야.”
소진은 얼굴을 찌푸리며 교태전 근처만 왔다 갔다, 배회했다.
숙자를 내보내고 다시 궁녀 옷으로 갈아입은 소진.
아무리 기다려도 보은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헌에게 그 모든 상황을 들키고 말았으니 처소에서 나오기 곤란한 모양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보은군이 보낸 사람인 듯 환관 하나가 서찰을 들고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혹…… 한 규수님……?”
“예?”
“보은군 대감마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하면…….”
“아.”
환관은 속히 사라졌고 소진은 그 서찰을 품에 안은 채 교태전을 돌아보았다.
장소를 옮겼다는 전갈일까, 그녀는 주위를 살폈다.
혼자 힘으로 저 안에 들어가 볼까, 몇 번이고 고민했지만 그건 무리일 것 같았다.
교태전 지리도 모르고 무턱대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전이라도 마주친다면 일은 커질 게 분명했으니까.
그녀는 아쉬운 마음으로 교태전을 돌아보며 그 서찰을 품에 안고서는 발걸음을 옮겼다.
소진은 궐 안에서 유일하게 아는 곳인 연못가로 터덜터덜 향하고 있었다.
행여 누가 볼세라 궁인처럼 한껏 고개를 숙인 채로.
***
<세자 저하께서 안 이상 당분간 눈에 띄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우선은 낭자는 낭자대로, 나는 나대로 벗을 찾기에 힘써보도록 합시다. 기회를 포착해 교태전으로 가, 낭자의 벗을 살필 테니 혹 무언가 알게 되면 바로 서찰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휴……. 그럼 그냥 돌아가야 하는 거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오늘은 봉희를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허탈함은 헌을 향한 원망으로 번져갔다.
갑자기 나타나 모든 것을 망쳐버린 것 같아, 그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소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서찰을 곱게 접어 품에 넣었다.
“오늘이 기회였는데……. 봉희를 만날 유일한 기회였다고.”
게다가 계획했던 대로 초간택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탈락할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세자만…… 나타나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아직 초간택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소진은 불안했다.
―낭자의 뜻대로 해줄 생각이 없습니다.
헌의 차갑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연신 울렸기 때문에.
그라면 정말 제 뜻대로 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 같았다.
자꾸만 한숨이 밀려오고 얼굴은 절로 구겨졌다.
그러다 문득 아까 차를 쏟아 빨갛게 부었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살짝 빨개졌던 손등에는 흐릿한 열기만 조금 남아 있을 뿐, 붓기도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괜찮기만 하고만……. 하여튼 사내자식이 호들갑 떨기는.”
소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손등 위에 남은 열기를 지워내려는 듯 후, 작게 바람을 불었다.
그런데 그녀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호들갑 떠는 사내자식, 불렀습니까?”
갑작스러운 그 말에 소진은 고개를 홱 돌렸다.
“헉……! 저하!”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토록 원망하던 헌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진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창백해졌다.
“……송구하옵니다, 저하. 제가 좀 혼잣말을 험악하게 하는 편이라.”
“괜찮습니다. 망나니 세자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데.”
그 말에 소진은 깊은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내의원에 들렀다, 약을 받고 가라 분명 일렀던 것 같은데.”
“…….”
“조선에서 이토록 말 안 듣는 여인이 또 있을까.”
그가 그녀의 손등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작은 붓기라도 제때 치료를 하지 않으면 흉이 지는 법. 혹 그것도 간택에서 떨어지려는 방법의 하나입니까?”
“……?”
“세자빈이 되기 위해서는 몸에 흉터 하나 없어야 한다, 이것을 노리고?”
“설마…… 제가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대꾸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자잘하게 떨려왔다.
“제 몸을 혹사해 가면서까지 간택에서 떨어지려 애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럴 거면 애초에 사주단자를 올리지 않았겠지요.”
그 말에 헌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교태전에서 보은군을 기다리겠다는 말이 생각나, 그곳으로 갔다가 없길래.”
“…….”
“혹시나 해서 이쪽으로 와보았더니 역시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소진의 차림새를 물끄러미 살폈다.
또 간택 복장을 벗어 던지고 궁녀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였다.
“한데 세자빈이 아니라 궁녀가 되기로 했습니까? 궁녀 복장도 제법 잘 어울리긴 합니다만.”
좀 전에 자신을 내려다보며 싸늘한 눈빛을 뿜어내던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어느 모습이 이 사내의 진짜 모습일까.
소진은 굳은 얼굴로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둘이니, 둘만 있는 것이니 그래도 그를 한껏 올려 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찌 그러셨습니까?”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에 원망이 그득 묻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헌이 피식,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간택 말입니까.”
헌은 단번에 그녀의 말을 알아차렸다.
“……어차피 저하께는 간택의 권한이 없지 않습니까?”
“해서 떨어지기 위해 초간택에 임해 부정행위를 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으라?”
“소인이 꼭 간택되어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자가 아무리 왕세자라 할지라도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소진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말을 이어갔다.
“입지도 않은 화상을 이야기하시며 저의 점수에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
“해서 제가 가산점이라도 얻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다른 규수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의문을 제기한 것이 아니지.”
“예?”
“그대가 그대의 입으로 초간택에서 떨어질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
“이미 거기에서부터 이 간택을 부정행위로 임하겠다는 낭자의 마음이 드러났는데.”
헌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그러곤 허리를 굽혀 지그시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훅, 다가온 헌의 근사한 얼굴에 소진은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말았다.
“의심이 아니라, 확신.”
“……!”
“확신을 갖고 그대를 제지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소진은 그에게서 한걸음 물러나며 표정을 더 딱딱하게 굳혔다.
이대로 물러날 그녀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 하나 때문에 저하께서 직접 간택장을 납시셨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그리고 초간택에 임한 여인 중, 떨어지기 위해 애쓴 여인이 비단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
“정말 부정행위를 잡고자 하셨다면 아까 차를 마실 때도, 그리고 경단을 먹을 때도 실수한 여인들이 몇 있었는데 왜 그 여인들을 가만히 두고 보셨습니까? 이것은 차별이 아닙니까?”
소진은 그렇게 되물으며 새초롬하게 눈을 깜빡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운 광경이었다.
한낱 궁녀가 감히 조선의 왕세자를 향해 똑바로 눈을 치켜뜬 채 제 할 말을 모조리 하는 모습이라니.
누가 보았더라면 혀를 내두르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헌은 그녀에게 무례하다, 경을 치는 것이 아닌, 나지막이 미소 짓는 것으로 대신했다.
말없이 핏, 웃음을 터뜨리던 그는 그녀가 물러난 만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차별이라…….”
가만히 그녀의 말을 입안에서 굴리던 그가 별안간 무심한 얼굴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차별.”
“……예? 차별이 맞다니요?”
소진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낭자만 차별하는 것이 맞단 말입니다.”
“어째서…….”
“그 이유, 아직 모르겠습니까?”
그러고는 오직 그녀만 들을 수 있도록 낮게 속삭였다.
“이유랄 것이 있사옵니까?”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소진은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자신을 뚫어지라 내려다보는 그를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단숨에 그녀를 집어삼킬 기세로 헌은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그 붉게 부푼 입술을 벌렸다.
“낭자가 내 반려가 되었으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