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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109화 (109/110)

00109  짐승, 드디어 꽃을 물다  =========================================================================

“후우......”

“왜 그래? 어디 불편해? 배 아파?”

무영은 화연의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마자 배를 문질러 주었다. 크고 따뜻한 손이 배 위를 어루만지니 아까부터 간헐적으로 느껴지던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 해, 화연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하아......아녜요. 괜찮아요. 조금 당겨서.”

“그러니까 왜 요즘 들어 부쩍 몸을 움직이고 그래. 가만히 있으라니까. 그러다 잘못되면 어쩌려고.”

“원래 산달이 다가올수록 몸을 많이 움직여 줘야 해요. 그래야지 아이가 쉽게 나오거든요. 힘들다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안 된다고요.”

“누가 그래?”

화연은 멈칫했다.

애를 한번 가져본 적 있는데요. 그때 알아둔 거예요.

......라고 말 할 수 없었던 화연은 고개를 돌려 무영의 시선을 피하며 우물거렸다.

“......어디서 들었어요......”

화연이 들었을 만한 곳이야 뻔했다. 기해를 포함한 화연의 사가에서 온 여자들은 요새 모이기만하면 그런 얘기였다. 오다가다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다. 게다가 침방소속도 아니면서 배냇저고리는 지들이 왜 만들어? 무영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네 상궁들이 그랬지?”

“어......예......”

“걔들이 애를 낳아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

“......어의께 물어봤겠지요.”

“어의도 마찬가지야. 산실청(産室廳)에 드는 사람은 따로 있잖아.”

“......그, 그래요?”

“당연하지. 남자는 산실청에 절대 들어갈 수 없어.”

“당신도?”

“나도.”

“.....그럼 누가 들어가요?”

“청화궁 최고 상궁과 산실청 소속 의녀 3인. 순산을 도운 적이 있는 조산부. 산실청이 만들어 지는 순간 이미 배정이 다 끝나 있어.”

“아, 그렇구나. 와- 별걸 다 아시네요. 이제 다른 사람 말고 당신에게 여쭤보면 되겠어요. 그죠?”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존경스럽다는 듯 자신을 보는 화연의 눈초리에 무영은 으쓱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응. 이제 나한테 물어봐.”

“알겠어요. 앞으로 꼭 당신에게 여쭐게요.”

“응”

휴우......

다행히 넘어갔구나.

화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코끝을 들어 올리는 무영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산달이 보름 남았다.

태동은 점점 심해지고 배도 자주 뭉쳤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들뜬다. 드디어 그와 나의 결실을 직접 보게 되다니 가슴이 설레어 어쩔 때는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면 어김없이 붉은 머리를 가진 남자아이가 보였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며 품에 답삭 안겨 젖가슴을 만지작거리는데......이 아이가 꼭 연우일 때 잃어버린 사랑이 같아 꿈이 라는 것을 아는데도 마음이 찡해지고 눈물이 왈칵 솟았다.

그 꿈을 꾸고 일어나면 항상 눈물로 베개가 젖어 있었다. 무영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다 눈물을 닦아주곤 했는데. 그러면 왠지 서럽고 안타까운 기분이 더해져 그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곤 했다.

화연은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볼 수 있어. 아가야, 조금만 더 기다려 주렴.

무영은 화연의 배를 가만히 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숨을 쉬었다.

요즘 화연의 신경은 온통 뱃속의 아이에게 쏠렸다.

그 좁은 곳에서 어찌나 꿈틀대는지 어쩔 때는 화연이 태동에 놀라 숨을 들이킬 정도였다. 제 손으로 만져보아도 발길질이 느껴질 정도인데 화연은 얼마나 놀랄까. 그래도 그때는 다행히 아프지는 않은 모양이라 잠자코 있었지만 요즘에는 정말 심기가 불편해 졌다.

내일 모레면 산실청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배가 불러 거동도 힘든데 애가 저 난리를 피우니 자다가도 일어나고 잠도 깊게 못자는 것 같았다. 어쩌다 자더라도 무슨 꿈을 꾸는지 눈물을 흘리는데 보고 있으면 애간장이 닳는 기분이었다.

이런 상황인지라 무영에게는 신경을 덜 쓰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힘들어 하는 화연에게 왜 나는 신경 써주지 않냐 며 투정을 부릴 수는 없는 일. 무영은 이 분한 마음을 뱃속의 아이에게로 돌렸다.

너 일단 나와서 보자.

무영은 화연 몰래 배를 노려보며 두고 보자를 곱씹다가 일어서서 자신을 멀뚱히 보는 화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금 걸을 수 있겠어?”

“네? 아이 참, 방금까지는 뭐라고 하셨으면서.”

“산실청 소속 의녀에게 물어보니 많이 걷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고.”

“벌써 물어 보셨던 거예요? 제가 아까 말했을 때는 아니라고 하시더니.”

그것 뿐 아니라 배가 당길 때 마사(摩挲, 손으로 주물러 어루만짐)하는 방법까지도 죄다 물어 꾀고 있었다. 지금 무영은 직접 애를 받아도 될 정도로 정통했다. 무영은 짐짓 엄격한 표정으로 화연의 손을 꽉 쥐었다.

“걔들이 하는 말을 무조건 믿지는 말라는 거야. 전문가가 아니니까.”

살포시 웃은 화연은 끙짜- 하며 일어서 배 아래를 한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무영에게 꽉 잡힌 손을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알았어요. 그럼, 우리 산책 갈까요?”

“응.”

마주 잡은 손을 흔들며 천천히 걸어 가 도착한 곳은 작은 전각이었다. 높다란 담장 위로 뾰족이 들린 처마가 보인다. 이곳이 어딘가 싶어 두리번거리던 화연은 문 위에 걸려있는 편액을 읽고 눈을 크게 떴다.

-련위각(蓮瑋閣)-

연을 진중히 여기다.

편액의 의미심장한 뜻을 몇 번이고 되 집어 보던 화연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 뭐예요?”

“나무가 더 자라면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때까지 못 기다릴 거 같아서.”

“......”

“들어가자.”

화연은 무영이 이끄는 데로 걸음을 옮기다 문득 멈춰 섰다.

벽에는 용이 그려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날아 올라갈 듯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 용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입에 여의주가 아닌 꽃을 물고. 하얀 연꽃을.

그 옆에서 무영이 직접 문을 열어보라는 듯 비켜선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문을 활짝 연 화연은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와.......”

앙증맞은 크기의 연못과 작은 정자. 그리고 주변에 늘어서있는 파루안 나무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은빛의 나무들이 정자 주변을 감싸 안듯이 둘러싸고 있었다.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파루안 나무가 햇빛을 받으니 전각 안이 온통 은빛으로 반짝 거려 눈이 부셨다. 마치, 지금 무영의 눈동자처럼.

실타래 같은 청색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쏴- 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흔들 춤을 춘다. 나무가 뿜는 빛은 연못에 반사되어 화연의 얼굴로 쏟아졌다.

화연은 홀린 것처럼 천천히 걸어 연못으로 다가갔다.

연못 속에는 팔뚝만한 잉어 두 마리가 여유롭게 노닐었다. 일반적인 비단잉어가 아니었다. 특이한 모양새가 어디선가 본 것도 같다. 서로의 꼬리를 툭툭 치며 장난을 치는 잉어를 자세히 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곁에 다가온 무영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저번에 먹었던 크기만 한 건 못 구했어. 조금 더 크면 잡아먹자.”

“잡아 먹......아! 이거 구름잉어예요?”

“응.”

“저 파루안 나무들은......”

“네가 저번에 그랬잖아. 황궁 안에도 파루안 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이걸 다......?”

무영은 화연의 볼을 잡아 시선을 맞췄다. 꿈을 꾸듯 몽롱한 검푸른 눈이 자신을 향한다. 무영은 그 떨리는 눈동자를 마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황위에 오르게 되면......아마, 이제까지처럼 황궁 밖으로 출입은 거의 불가능 할 거야. 그렇게 된다면 너도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있어야겠지.”

“......”

무영은 가람지방으로 여행에서 화연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도 신기해했었고 흔하디흔한 들꽃을 보면서도 감탄 했었다. 하루라도 크게 웃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매일 신나고 활기차 보였다. 그렇다고 황궁에서 시무룩하니 풀이 죽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영은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 때의 생기 넘치던 화연을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바로 양위를 할 거야. 그러면 우리 같이 여행을 다니자.”

“......”

“그때까지는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참자. 대신......네가 밖에서 보고 기뻐했던 것들을 황궁 안으로 가져와 줄게. 가져와서 네 손에 쥐어 줄게.”

“......”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뿐이야.”

“......”

무영의 금안을 올려다보던 화연은 뜨끈해지는 눈시울을 애써 감추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발끝을 세워 무영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제 빠르게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갖다 대는 무영의 볼에도 입을 맞춘 화연은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음......이 선물로 십년정도는 참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십년?”

“응. 십년.”

“......그 뒤에는?”

“다른 선물 주세요. 그때 봐서 마음에 들면 연장해 드릴 게요.”

“......만약에......마음에 안 들면......?”

“그러면......풋-”

뭐가 그리 불안한지 답지 않게 말끝까지 흐린다.

의뭉스럽게 대답을 하려던 화연은 결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큰 호선을 그리며 가늘어진 눈 사이로 검푸른 눈동자가 저 파루안 나무보다 빛났다. 무영은 그 눈동자를 넋 놓고 보다 가슴을 간질이는 맑은 웃음소리에 피식- 따라 웃었다.

가지런한 이빨을 죄 내 보이며 크게 웃는 화연의 얼굴이 그 무엇보다도 곱다. 무영은 참을 수 없는 기분에 화연의 얼굴을 끌어 당겼다.

입술과 입술이 만나고, 그때까지도 웃음을 그치지 않는 얄미운 입술을 무영은 혼을 내듯 잘근 물었다. 웃음소리가 겨우 잦아들고 습윤한 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 했을 때 쯤 화연이 문득 미간을 접었다.

“윽!”

“응? 왜 그래?”

“어.....?”

입술을 떼며 배를 감싸는 모습에 무영의 표정이 심각해 졌다. 어디 아프냐고 되물으려는 순간 무심코 내린 시선에 무영은 입을 꾹 다물고 화연을 품에 안고 뛰었다.

화연이 서있던 그 자리는 짙게 물들어 있었다.

*

“황제폐하 납시오!”

“비켜! 왜 앞을 막고 지랄이야!”

소식을 듣자마자 가마도 없이 뛰어 오느라 면관(冕冠)도 삐뚤어 졌다. 진 내관 등짝을 냅다 밀치고 바람같이 나타난 연제는 산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류 충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충! 어찌 된 일이야! 아직 보름이나 남은 게 아니었어?”

류 충의 표정은 허옇게 질려 있었다. 그도 화연이 산실청에 들어서고 나서야 소식을 듣고 달려온 참이라 정황을 알지 못했다. 류 충은 정신없는 날뛰는 가슴을 퍽퍽 두드리다 겨우 대답했다.

“저,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럼 조산이라는 게야? 응? 응?”

“......그, 그러,”

“아, 저리 비켜봐! 태자야! 이게 어찌된 일이냐!”

연제는 당황한 심정이 역력해 말을 잇지 못하는 류 충을 옆으로 밀어버리고 산실 앞에 묵묵히 서있는 무영에게 다가갔다.

“보름 정도 앞당겨 졌을 뿐, 조산은 아니라더군요. 첫 몸을 푸는 경우,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의외로 침착한 무영의 태도에 연제는 안심이 되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저놈이 평온한 것을 보니 위험한건 아닌가 보다. 다급했던 표정이 이제야 차분히 가라않는다.

“휴우......다행이구나. 다행이야.”

그때, 산실의 문이 열리고 비단으로 된 두터운 가림막이 올라가더니 의녀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 사이로 화연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의......헉! 폐하! 만세, 만세, 만만,”

어의를 부르다 말고 자신을 보고 예를 올리려는 의녀의 태도에 연제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와중에 무슨 쓸데없는 예란 말이냐.

“됐고, 무슨 일이냐! 무슨 일 있어? 왜 나온 게야!”

“그, 그것이 아니옵고, 아기님 길이 좀체 열릴 기미가 안보여 불수산(拂手散, 분만촉진제)을......”

“어의!”

연제는 의녀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어의를 불렀다. 한쪽에 모여 대기하고 있던 어의들 중 박 준명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불수산을 의녀에게 건넸다.

약그릇을 받은 의녀가 다시 산실로 들어가고 몇 시진 지났을까. 초초한 마음을 달래며 산실 앞을 지키고 서있는데 화연의 비명소리가 본격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가림막이 어느 정도 방음 역할을 했었는지 잘 들리지 않았었는데 이제 소리의 크기가 한도를 넘어 선 것 같았다.

그 소리를 신호로 산실밖에 서있는 세 명의 남자가 일제히 표정을 굳힌다. 안절부절 우왕좌왕 불안에 떠는 모습에 곁에 있던 어의들까지 불안스럽다. 이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라가 흔들릴 판이다.

“아아악! 하아, 하아......아윽!!”

화연의 비명소리에 맞춰 발을 동동 구르던 류 충은 결국, 눈물을 글썽 거렸다. 할 수만 있다면 대신 아파줬으면 좋겠다.

“연아! 내 딸! 흐윽......제발, 버텨다오. 제발.”

“충, 너무 걱정 말게. 아무 일도 없이 무탈할 터이니.”

눈물까지 보이는 류 충이 안쓰러워 연제는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류 충은 말없이 연제의 손을 마주 잡았다. 평소에는 미워 죽겠는데 이런 때에는 힘이 된다.

“하악! 아아악! 흐흑......아, 아......아아악!! 무영!!!”

무표정한 얼굴로 화연의 비명소리를 고스란히 듣던 무영이 갑자기 산실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연제와 류 충 뿐 아니라 어의와 궁녀 모두 무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류 충이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쓱 닦으며 물었다.

“전하, 뭐하시는 겁니까?”

“들어가 보려고요.”

“......예?”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 들어가 봐야지요.”

“......저, 전하!”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류 충은 이내 화들짝 놀라며 무영의 옷자락을 틀어잡아 있는 힘껏 당겼다. 겉으로는 줄곧 차분해 보였었는데 아니었나보다. 실제로는 훼까닥 하기 직전이었던 게야! 어쩐지, 너무 침착하다 싶더라니.

류 충은 산실 문이 열리기 직전, 무영의 허리에 매달려 소리를 질렀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산실에 남자가 들어가다니요! 부정 탑니다! 큰일 난다고요! 어서 그 문고리에서 손을 떼시지요! 어서요!”

저 놈이 사실은 눈알이 돌아가 있었구나.

이제야 깨달은 연제까지 무영의 손을 잡고 당겨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도무지 문고리에서 손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이놈아! 이거 놓아라! 어서 놓으래도!”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용을 썼지만 무영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류 충의 생각대로 훼까닥 하기 직전인 그의 머릿속에는 부정이고 금기고 아무것도 없었다. 화연이 자신을 부른다는 것. 오직 그거 하나 뿐 이었다. 무영은 자신의 허리를 당기다 아무 소용이 없자 산실을 막고 서있는 류 충에게 말했다.

“연이가 저를 부른단 말입니다!”

“침착하시옵소서. 전하! 저 소리는 전하를 부르는 것이 아니옵니다!”

류 충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듣고 있었던 것처럼 화연의 비명이 다시 터져 나왔다.

“아아악!! 전하! 하흑! 으흑! 아, 아......하아아악!”

“......그, 그렇게 들릴 수는 있사오나......저건 부르는 게 아니고......”

“흐흐흑!! 아아악! 무영! 무영!!...... 하악, 아악!”

“......”

부, 부르는 건가?

근데 왜 하필이면 이놈을 부르는 게야.

연아, 차라리 부르려면 이 애비를 부르려무나. 제발!

이 놈 지금 거기 들어가게 생겼다고!

류 충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무영의 가슴을 밀었다. 하지만 돌덩이 마냥 단단한 가슴은 그 자리에 박혀있는 것처럼 밀리지가 않았다. 류 충은 연제에게 눈짓을 보냈다.

류 충과 연제는 무영에게 사력을 다해 매달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류 상연, 류 강연도 부를걸 그랬다. 괜히 법도에 따른다고 사가의 인물을 들이지 못하게 했더니 늙은이 둘만 죽어나가게 생겼다. 저 어의나 궁녀들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뒤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손도 까딱 안하면서 전하, 아니 되옵니다! 고정하시오소서! 입만 나붓거리지 하등 도움이 되질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던 연제와 류 충이 이제 더는 못 버티겠다. 하고 손을 들려는데 산실문이 열리고 가림막이 올라가더니 백자를 품에 안은 의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틈 사이로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의녀는 백자를 들어 올리며 연제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태 항아리가 백자인 것을 보니 공주가 아닌 원자였다.

“폐하, 경하 드리옵니다. 원자아기씨께서 탄생하셨습니다.”

“폐하, 경하 드리옵니다.”

원자의 탄생에 산실청에 있던 사람들 모두 연제에게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류 충 또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헉, 헉. 오오- 드디......어이쿠!”

진이 다 빠진 연제가 가쁜 숨을 겨우 가라앉힌 뒤 감격을 표하려는데 무영이 연제를 밀치더니 문을 벌컥 열고 가림막 사이로 쏙 들어갔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 누구도 막을 세가 없었다. 태항아리를 받아들려던 연제는 입만 벌리고 있다가 무영이 산실로 사라지고 나서야 고함을 질렀다.

“헉! 태자! 태자! 어서 이리 나오지 못하겠느냐!”

“전하! 삼칠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무슨 망동 입니까! 전하! 전하!!”

뒤늦게 손을 들어 올려 보지만 이미 사라진 무영의 옷자락이 잡힐 리 없었다.

*

이게 미쳤나. 저렇게 문을 벌컥 열다니.

그 소리에 아기씨 깨어나시면 지가 책임질 거야!

8시진 이상을 바짝 긴장해있었더니 몸이 축 쳐지고 신경이 바늘 끝처럼 날카로웠다. 화연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방울을 톡톡 찍어내던 기해는 얼굴을 야차처럼 구기며 고개를 획 돌렸다. 눈을 한껏 부라려주려던 기해는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제 눈을 의심했다.

“......저, 전하?!”

무영은 기해를 아랑곳 하지 않고 한쪽에 곱게 접혀있던 명주 천을 몸에 둘렀다.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와 화연의 머리맡에 앉았다.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의녀들과 상궁들 사이에서 제일먼저 정신을 차린 기해는 한숨을 쉬며 미령에게 눈짓을 보냈다. 눈치 빠른 미령이 뜨거운 물을 대령하고 무영은 그 물에 손과 입을 씻었다.

무영은 화연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이마의 땀이 신경 쓰여 기해 손에 들려있던 수건을 뺏어 손수 닦아주었다. 고통을 참으려 즈려 물었는지 창백한 안색에 입술만 온통 울긋불긋 했다. 무영은 피가 비치는 입술 위를 조심스레 더듬다가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것 같지 않게 축축하고 차가운 볼이 낯설다. 무영은 불안한 마음에 화연의 귓가에 고개를 숙이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연아......”

“......”

“연아......”

“......”

하루 꼬박 고통에 시달리다가 기절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부른다고 대답하겠니.

기해는 물 대야를 치우면서 한숨을 폭 쉬었다.

“전하, 아마 깨어나지 못하실 겁니다. 너무 지치셔서 지금은 푹 주무시는 것이 좋고요. 그러니,”

“......무영?”

기해의 말이 무색하게 화연의 눈꺼풀은 조금씩 올라갔다. 혼곤한 검푸른 눈동자가 허공을 잠시 헤매더니 무영의 눈을 올려본다. 지친기색은 역력했지만 초점이 점점 또렷해졌다. 화연은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 있는 무영의 손을 안심시키듯 마주 잡았다. 그제야 느껴지는 거대한 안도감에 무영은 틀어막고 있던 거친 숨을 내쉬었다.

화연은 기해가 이불속으로 꼭꼭 여며주었던 무거운 손을 들어 무영의 볼을 쓰다듬었다. 볼에 흐른 따뜻한 물기에 화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울지 말아요.”

“......”

“응?”

끄덕.

무영은 착한 아이처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화연의 손등에 입술을 눌렀다.

화연의 비명소리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돌아버리는 기분이었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화연의 목소리만 들렸다.

화연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지가 부들부들 떨렸었다. 그녀가 잘못 될까봐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그녀 혼자 저 고통을 겪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싫어 스스로 목을 조르고 싶었다.

비로소 이제야 저 깊은 무저갱 속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공포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더 빨리 들어와서 곁에 있어줬어야 했는데. 그깟 금기가 뭐라고...... 무영은 점점 따뜻해지는 화연의 손등에 화흔을 남기다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화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장난스럽게 콧등을 움츠리던 화연이 불현듯 눈을 빛냈다.

“우리 아이 봤어요?”

“아니”

“아직도? 왜요?”

“......그냥......”

사실, 아이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화연 외에는 안중에 없는 무영에게 아기라고 예외일수는 없었다. 화연을 아프게 한 아이를 굳이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화연이 너무 기대하는 눈치인지라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었다. 때 맞춰 기해가 비단 강보를 건넸다. 제가 낳은 아이 마냥 지쳐있었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참 헌헌하시지요? 마마 힘드실까봐 울지도 않으시고. 어찌나 듬직하신지.”

“......”

붉은 머리가 참 수북하게도 나있다.

태열이 남아있는 아이는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았다. 그저, 다른 생물체 같았다. 그것도 털이 수북하게 나있는.

무영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이건 뭐야?

뭐 이렇게 못생겼어? 화연을 닮은 곳이 전혀 없잖아.

못마땅함을 담은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가다 뭔가를 발견하고 다시 내려왔다. 태어 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똥말똥 뜨고 있는 아이의 눈동자는 화연의 그것과 같이 짙은 검푸른 색이였다. 심지어 눈동자 속에 금빛 별무리까지 닮았다. 무영은 그 눈동자를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흠......눈이 닮았군.”

기해는 제가 칭찬받은 것처럼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다.

“그렇지요? 우리 아기......마마의 눈동자를 아주 빼다 박으셨어요.”

그것 말고는 볼 곳도 없다. 이런 것 때문에 화연이 그렇게 고생을 했던가.

심드렁한 표정을 한 무영이 아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화연을 보며 방긋방긋 웃으며 빛나던 아이의 눈동자가 무영에게 향했다. 무영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의 눈썹사이가 좁아진다. 그러더니 그 작은 입술 한쪽 끝을 실룩거렸다.

“쳇”

“......응?”

“왜 그러십니까. 전하?”

“......지금......얘가 나 한테......쳇......이라고......”

“어머! 오호호호호! 전하께서도 참. 우리 원자아기씨께서 아무리 빠르시더라도 어찌 벌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

아니다. 분명히 들었어. 나를 못마땅하듯이 위 아래로 흘겨보면서 쳇! 했단 말이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화연까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는 바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여기서 더 말했다가는 자신만 바보 될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이놈이 그걸 노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영은 발끈하는 마음을 삭히며 아이를 노려보았다.

아이의 한 쪽 입가가 비스듬하게 올라갔다.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 안에 금빛 별무리가 사정없이 반짝거리는데 그 모습이 참 낯익다.

이놈 이거 어디선가 본 것도 같은데......

무영은 이놈이 앞으로 자신을 엄청나게 방해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환제국 29대 황제이자 무영의 최대 맞수, 선제(璇帝)는 이렇게 태어났다.

*

그리고

다시는 아이를 갖지 말아야지.

...라는 무영의 다짐이 무색 하리 만큼 화연은 첫째아들, 하영을 나은지 여섯 달 만에 둘째아들, 유영을 회임하게 된다.

내가 또 다시 애를 가지면 사람이 아니다.

...라는 무영의 결심으로 한 동안 잠잠하나 싶었지만.

결국 2년쯤 뒤, 셋째 딸 아영이 태어나게 되고, 아영의 탄생을 크게 기뻐한 연제는 보오(寶奥)라는 호를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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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짐승은 짐승일 뿐, 사람이 아니다.

수험생 여러분들 고생 많이하셨습니다.

수능을 언제 봤는지 까마득해 기억도 안나는 저지만 그 날 긴장을 엄청 했는지 되게 체했다는건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엄청 추웠다는 것도.

그때에 비하면 그리 추운것도 아니라 날씨때문에 고생하시지는 않으셨을거 같아 다행입니다.

수능얘기 하다 쌩뚱맞긴 하지만.

우리모두 분리수거를 잘 합시다.

환경오염이 심각합니다.

......

아무튼,

앞으로 1회 남았습니다!

처녀작이라 그런지 엄청 떨립니다.

저의 손을 잡아 주세요.

발을 잡아 주셔도 됩니다.

......

아무튼,

아아...기분이 요상해요...

보내고 싶기도 하고 보내고 싶지 않기도 한 이 기분...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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