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4 짐승, 꽃과 함께 사라지다 =========================================================================
추영은 팔을 들어 기지개를 쫙 피며 하품을 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태자내외께 올릴 진지를 준비하려면 지금도 늦었다. 어서 가서 또 얼토당토않은 음식을 준비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해 봐야지.
첫날, 마을 아낙들이 알아서 하겠다며 준비한 진지를 떠올린 추영은 하품을 하다 풋-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작고 가난한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야 뻔했다. 평생 황궁구경은커녕 이 마을을 나간적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황가에서 진지를 어떻게 드시는지 알게 뭐람.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은 자기네들의 순박한 반찬 그대로 올렸다.
쇠로된 볼품없는 그릇에 담겨있는 알 감자와 나물무침, 아침에 든든히 먹어야 하루 종일 일이 잘된다며 끓인 벌건 고깃국(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한 대접과 머슴밥. 그래도 나름 신경 썼는지 귀한 생선까지 구워 다소곳이 올려져 있었다. 비록 크기가 손바닥만 했지만.
그 음식을 가만히 보던 추영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국만 바꾸자고 했었다. 궁에서는 아침으로 붉은 빛깔의 국은 먹지 않는다고 하니 다들 표정이 요상하게 변했었는데.
전에 오셨을 때야 침수만 들고 가셨으니 몰랐었는데 태자께서는 참...... 편식이 심하셨다. 진지를 보자마자 인상을 팍 찌푸리시는데 찬 가짓수가 너무 적어서 그런 줄 알고 조마조마 했었다.
하지만 찬이 문제가 아니라.......아니, 찬이 문제긴 했지.
결국, 고기반찬이 하나도 없다는 것. 그거였다. 앞으로 다른 찬 다 필요 없으니 고기 하나만 올리라는, 고기 없으면 안 먹어! 하는 다섯 살배기 어린애나 할 소리에 멍하니 입만 벌렸다.
생선이면 모를까 고기를 구하려면 하루를 꼬박 걸어 나가 화양주로 가야 한다. 아니면 가축을 잡아야 하는데 이런 가난한 마을에는 가축이라도 해봤자 공동으로 사육하는 소 몇 마리가 전부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돌보긴 하지만 모두가 자식같이 생각하며 이름까지 붙여 애지중지 기르는 가축이다. 그런데 그런 가축을 어떻게 잡으라고 한단 말인가.
자신의 난처한 표정을 보신 태자비마마께서 태자께 뭐라고 속삭이시자 갑자기 말씀을 바꾸셨다. 아니란다. 그냥 되는 데로 올리란다. 고기도 생선도 있으면 올리고 없으면 무리해서 올리지 마란다. 예? 하며 되물으니 태자께서 시무룩하게 중얼거렸었다. 다른 배를 채우려면 고기는 포기할 수밖에......뭐, 이렇게 말하셨던 거 같은데......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허공을 보며 머리를 갸웃거리던 추영은 고개를 저으며 탁자위에 무언가를 덮고 있던 천을 걷어냈다. 어젯밤에 재어놓은 산적이었다. 그 시무룩했던 태자의 표정이 걸려 숨겨두었던 쌈짓돈을 꺼내 일부러 사다달라고 부탁한 고기였다.
처음에는 하도 고기 고기하기에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었다. 음, 그래. 고기를 안 먹으면 현기증이 나거나 힘을 못 쓰는 사람도 있으니까. 궁에서 얼마나 귀한 음식만 잡수셨겠어. 귀한분이니 성심성의껏 대접해 드리자.
......이 생각이 딱 하루 갔다.
고기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고?
아니, 밥을 못 먹는다면 수척해 져야 정상 아니야?
헌데 어쩐 일인지 오히려 신수가 훤했다. 얼굴에 윤기가 반지르르 한 게 어찌나 빛이 나는지 고기가 아니라 무슨 전설에 영약이라도 드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 자체가 변한 것 같기도 했다.
분명히 저번에 봤을 때에는 말도 걸 수 없을 정도로 냉랭해 보였는데...분위기만 봐서는 얼굴만 같은 다른 사람이다. 며칠 전 자신이 한 농담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셔서 농담 한 줄도 몰랐다. 황족에게 농을 걸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피식거리며 웃기도 잘 웃으시고......한 번씩 별채 밖으로 나오실 때면 마을 아낙들이 눈을 떼지 못했다. 가끔 태자비를 품에 안고 산책 겸 걷기도 하시는데 그때, 태자비를 보며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은 남자인 자신이 봐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요염? 색기?... 남자에게 이런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런 날이면 밭일이 진도가 안 나간다. 아낙들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얼굴을 붉히고 한숨을 푹푹 내쉬느라 도통 일을 안했다. 태자내외가 마을로 온 뒤 부부싸움이 급격하게 늘었다는 소문도 있다. 어젯밤 옆집 중호애비가 얼굴에 다섯 개의 손톱자국을 달고 찾아와서 넌지시 물었었다. 언제쯤 가실 거 같냐고...
반면에 태자비 마마는 파리하시던데. 걸음도 좀...요상하시고 살도 쭉쭉 빠지시는 것 같고. 저번에는 허리를 퉁퉁 두드리시던데. 고기 못 먹은 한을 태자비께 풀기라도 하는지 그 가녀린 체구가 더 여리 여리해지는 게 저러다 픽 쓰러지지나 않을까 싶어 보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하다. 쓰러질까봐 항상 안고 다니시는 건가? 음...그런가 보군. 어휴. 그냥 덜 괴롭히시면 될 것을.
추영은 혀를 차다가 나무대접을 들어 올려 냄새를 맡았다.
“이게, 양념이 배었을라나 모르겠네.”
고기를 드리는 일이 과연 태자비 마마를 도와드리는 일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준비는 했으니 드리자.
추영은 겉옷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앞에 펼쳐져있는 광경에 너무 놀라 나무 대접을 놓치며 펄쩍 뛰었다.
“뭐, 뭐야!!”
그 수가 몇 백은 훌쩍 넘어 보이는 군인들이 바닥에 빼곡하게 널브러져, 눕지 못하면 벽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왔는데도 기척은커녕 소리도 못 들었다. 언제 이렇게 온 거지? 원래 군대가 주둔하면 이것저것 요구를 많이 한다는데 온지도 몰랐으니......아마, 마을사람들 자는데 방해될까봐 조용히 들어와 막사도 짓지 않고 그냥 쓰러져 잤나보다.
그러고 보니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하게 차있는 그 남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수척했다. 또, 너무 더러웠다. 며칠은 물 구경도 안했는지 얼굴에는 땟구정물이 무늬처럼 그려져 있고 머리는 떡이 졌다.
허연 먼지로 감싸여있는 의복은 그 본래 색이 보이지는 않지만 모양새를 보니 꼭 군복 같았다. 누군가 자다가 답답했는지 잠결에 시커먼 주선을 벗어 탈탈 털더니 손에 꼭 쥐고 다시 잔다. 꼬릿 꼬릿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쩝쩝거리는 소리와 코고는 소리 뿐, 얼마나 고단했는지 뒤척이지도 않는 남자들을 보고 추영은 입을 열었다.
“허......”
이들은 누구인가.
“킁, 킁......맛있는 냄새.”
추영이 나갈 엄두도 못 내고 넋을 놓고 서있기를 잠시, 가까운 곳에 있던 누군가가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주섬주섬 일어섰다. 군복한쪽은 바지 밖으로 나오고 신은 신지도 않았다. 손에 쥐고 있는 주선을 이게 뭐지? 하는 눈으로 멀뚱히 보던 남자는 냄새를 맡더니 흠....뭐, 아직 괜찮군. 하며 다시 신었다.
자다가 주선을 벗던 그 남자였다.
시커멓게 늘어져 이루 말할 수 없이 찝찝해 보이는 것이 넣는 순간 발이 썩어 들어갈 것만 같은 주선을 아무렇지 않게 신는 그 모습에 추영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남자는 주변에서 기절한 모양으로 자고 있는 수백 명의 남자들을 둘러보더니 시간이라도 가늠하려는 건지 해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추영과 눈이 마주쳤다.
“......”
“......”
“아......하하하.”
“......”
지가 생각해도 지들 꼴이 말이 아니었는지 겸연쩍게 웃던 남자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조용히 일어서 신을 신고 다가왔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
“너무 겁먹지는 마십시오. 보시다시피 저희는 황제폐하의 군사들입니다.”
“보시다......시피?”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추레한 거 아냐? 똑같은 옷을 입은 거지 떼라면 모를까. 그래서 그런지 이 많은 장정들이 있는데도 위압감도 없다.
추영의 미심쩍은 눈초리에 남자가 자기 꼴을 보더니 하하 웃으며 옷을 툭툭 털었다. 뭉게뭉게 일어나는 먼지와 퀴퀴한 땀내에 추영의 눈이 더욱 세모꼴로 변했다.
추영의 인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털어대는 통에 가슴에 수놓아져있는 자룡이 겨우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황가의 문장을 눈으로 직접 봤는데도 믿기지가 않았다.
추영의 불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슴을 탁탁 친 남자는 가슴을 넓게 펴면서 고개를 정중하게 숙였다.
“긴급한 사안으로 강행군을 하느라 말입니다. 군인의 삶이란 황제폐하의 명령을 따르다 죽을 뿐.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
거, 연연 좀 해야 쓰것다.
딴에는 늠름하게 보이려는 모양인데 뒤에서 시체처럼 자는 남자들을 배경으로는 전혀 태가 안 났다.
뒤쪽을 물끄러미 보는 추영의 시선에 딱딱하게 굳힌 남자의 표정이 살짝 허물어 졌다.
“모습이 좀......그렇긴 하지만......정말 폐하의 군대 맞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못 믿겠다면 울 기세라 추영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고 치고......황제폐하의 군사들이 이곳엔 무슨 일이시오?”
“아! 제가 중요한 얘기를 깜빡했군요. 태자전하 이곳에 계시지요?”
“......태자전하는 왜......”
“황궁에 보내주신 전갈을 받고 왔습니다. 여기에 계십니까?”
“흐음......”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긴 하지만 폐하의 군대가 맞긴 한 것 같다. 이 외진 곳을 용케 알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전갈을 보낸 것도 맞는 것 같고. 전하께 해를 끼치지는 않겠구나 판단한 추영은 남자에게 말했다.
“계시오. 며칠 전에 오셔서 묵고 계시지.”
“아! 여기가 맞긴 했군요! 아아, 다행입니다. 워낙 오지라서 잘 찾아왔는지 걱정스러웠는데. 휴.....늦으면 다 모가지를 잘라버리시겠다고......흠흠. 너무 급하게 부르셔서 말입니다.”
“......아직 기침을 안 하셨을 텐데.....기별을 넣어드리오?”
“아닙니다. 기다리겠습니다.”
하도 뛸 듯이 기뻐해서 당장이라도 만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남자는 의외로 단호히 거절했다. 추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시겠소? 헌데 조금 늦을지도 모르오. 급하게 왔다고 해서 당장 뵈어야 하실 줄 알았는데...괜찮소?”
“예! 괜찮습니다! 군인의 삶이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군인의 삶에 대해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추영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몸을 돌려 들어가려는데 남자가 옷자락을 잡았다. 그 손길에서 뭔가 다급하고 처절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해하는 그런 느낌이 풍겼다.
“저......”
“?”
“음......”
“.....뭐요?”
“흐음......”
말을 늘어뜨리면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마치 첫날밤을 맞은 새색시 마냥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영 봐주기가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싶었던 추영이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남자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저희가......급하게 오느라.....식사를......”
방금까지만 해도 군인의 삶을 들먹이던 우렁찬 목소리가 개미 목소리처럼 기어들어갔다. 답답한 나머지 추영의 목소리가 대신 커졌다.
“배고프다고?”
“그, 그렇지요...”
“쯧쯧쯧. 군인의 삶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밥도 못 먹고 다닐 정도면 그리 좋은 것도 아니구먼. 도와주고 싶지만 이 많은 인원을 먹일만한 식량이 없어서 말이오. 작고 가난한 마을이잖소. 보시다시피.”
남자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반짝반짝하는 눈이 태자전하께서 이곳에 계신다고 했을 때 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고개를 획 돌리더니 손짓을 했다. 추영이 남자와 대화하는 사이에 주섬주섬 일어나서 이쪽을 조용히 주목하고 있던 수백의 남자들이 일제히 환호를 지르며 양쪽으로 쭉 갈라섰다.
이윽고, 수레의 행렬이 시작 되었다.
어디 시장을 통째로 털어왔는지 쌀부터 고기, 음식재료라 할 만한 것들은 모두 보였다. 종류도 많았지만 양이 어마어마했다. 수백의 군사가 아니라 수천의 군사라도 먹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양의 음식이 수레에 실려 들어오는데 당황한 추영이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이 많은 군량은 가져왔는데 요리병은 안 왔소?”
수레가 일사분란하게 정렬되어가는 것을 엄격한 눈을 지켜보다 아, 이 새끼야! 거기 삐뚤어 졌잖아! 제대로 안 해? 군장매고 이 마을 한번 돌아볼까? 라고 고함을 지르던 남자는 추영을 보며 미안한 듯 웃었다.
“하하.....군량 아닙니다. 저 음식들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현지공수 해 온 겁니다. 군량과 비전투 인원은 보급부대로 따로 올 겁니다.”
“그렇소? 그보다, 여기에 오래있을 예정이시오? 무슨 음식 양이......우리 마을에 있는 아낙들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 같은데.....”
“일하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저희가 손이 되고 발이 될 터이니 명령만 내려주시면 됩니다. 사실, 마을 밖 공터에 애들이 조금 더 있습니다. 원래는 저희도 그 공터에서 취침하려고 했는데 좀 좁아서 들어온 거거든요. 혹시라도 깨실까봐 말들은 모두 거기에 두고 왔습니다.”
“공터? 어디를 말하는 거요? 우리 마을에는 공터가 없는데......서, 설마......옥루(玉塿)를 말씀하시는 건지......”
마을밖에는 공터가 없다. 옥루라고 불리는 넓디넓은 언덕이 있을 뿐.
“거기를 옥루라고 부릅니까? 어쩐지 조금 경사가 있다 했습니다.”
“......거기가 좁아서 들어왔다는 말씀이시오?”
“옙!”
추영은 정말 묻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알아야 뭘 해주던가 말든가 하지.
“......몇 명인데......?”
“아, 선발대로 먼저 온 거라서 얼마 안 됩니다. 기마대원들만 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가 기마술이 정말 끝내주거든요. 그쪽으로 특화되어있다고나 할까. 비록, 군인의 삶이란 여러 가지의,”
추영은 손을 들어 쓸 대 없이 말을 돌리며 시간을 끄는 남자의 입을 막았다.
“군인의 삶이고 뭐고. 그러니까 몇 명이냐고.”
진중한 표정으로 군인의 삶을 말하려던 남자, 기마대의 천인장 유윤은 추영의 시선을 은근히 피했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한......이, 이천 명?”
*
별채의 문이 열린 것은 점심때도 훨씬 지난 오후였다.
“쯧. 왜 이렇게 시끄러워.”
“전하! 인사드리옵니다. 천세천세 천천,”
별채의 문 앞에 앉아 아낙이 한주먹 쥐어준 누룽지를 아그작 거리던 유윤과 또 다른 천인장홍려는 무영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무영은 그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문을 서둘러 닫고 눈을 부라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동틀 무렵 기절하듯 잠든 화연이 깨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닥쳐.”
“넵!”
“몇 명이나 왔어.”
천인장이 둘이면 이천 명이지 뭘 물어보시나. 혹시,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시는 거 아냐?
“......저희 천인장입니다. 기억 안 나십니까? 같은 부대에 있었는데요.”
“기억 안나”
“......이천 명입니다.”
“그거밖에 안 왔어?”
이천 명 움직이는 게 말처럼 쉬운가?
사실, 처음에 무영이 보낸 밀서를 본 연제가 당장 내 며느리를 찾아라! 하며 전군을 비상사태로 만들지 않았다면 아직도 도착 못했을 것이다.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은 연제가 수도 군을 보내봤자 도착할 때쯤이면 모든 게 끝나있을 거라는 판단 하에 화양주 주변 현 소속 군을 움직였긴 했지만. 아무튼 당장이라도 출격할 수 있도록 만반에 준비를 해뒀었다. 그랬기 때문에 다음날 무영이 보내준, ‘륜국의 속국으로 들어가기 싫으면 가람지방으로 전군집결’이라는 연제를 두 번째로 진노하게 만든 전갈을 받고 지체 없이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윤는 아무런 변명 없이 고개를 숙였다.
“저희는 다음 날 아침에 보내주신 전갈을 받은 뒤 선발대로 출발했습니다. 보급부대를 포함한 후발대는 지금 오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출발하면 가람지방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릴까.”
“아무런 방해가 없다고 가정 했을 경우 이곳에서부터 4일 예상합니다.”
“생각보다 얼마 안 걸리는군. 후발대는.”
“7일에서 10일 예상합니다.”
“흠......”
앞으로 협상 일까지 7일이 채 안 남았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이삼일은 더 버틸 수 있었는데.....놈들 일을 류 충과 상의하기 위해서는 지금 출발해야 했다.
무영은 마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곳 사람들은 궁에서처럼 보기만 해도 벌벌 떨며 무서워하지 않는다. 차라리 신기하게 바라보면 모를까. 그나마 요즘 들어서는 신기해하지도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눈을 맞추며 말을 걸어온다. 아마 황족이 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알아도 너무 동떨어진 얘기라 실감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화연이 때 묻지 않고 소박한 이곳을 참 좋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영 또한 이 마을이 마음에 들었었다. 고기반찬이 없다는 것만 빼면.
생각 같아서는 이곳에서 영원히 화연과 둘이 살고 싶을 정도였는데. 어떻게 하면 여기서 하루를 더 있을 수 있을까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그걸 이틀이나 빼앗아가?
륜국, 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그 간을 아예 싹둑 도려내주마.
무영은 스산해진 얼굴로 명령했다.
“출발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