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2 외전 -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
경매가 있는 날이면 취루는 으레 문을 닫고 휴업푯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취루의 기녀들은 한데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자신들과 같은 처지가 될 여자들을 위해. 서글픈 자신들의 처지도 위로하기 위해. 흥을 돋우는 풍악도 없고 즐거운 수다도 없다. 넓은 접객 실에는 간간히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와 기나긴 한숨소리만 들려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데 자정 쫌 안 되서 엄청난 폭음이 들렸다. 창이 바르르 떨리고 연등이 흔들거릴 정도의 굉음에 여자들은 벌떡 일어섰다. 삼삼오오 모여 밖을 내다보니 뭔가가 터졌다거나 무너졌다거나 하는 광경은 보이지 않았다. 놀랐는지 길바닥에 주저앉은 행인들도 꽤 보였다.
별일은 없는 것 같은데......어디서 들린 소리지?
응......? 저 사람들은 뭐지?
어디?
저기 안보여? 저 남자들 말이야.
어.....저 남자들 아까부터 저기 있었어.
수군수군 거리며 두리번거리던 그녀들은 한 무리의 남자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손에 긴 칼을 들고 취루 바로 옆에 있는, 그 빌어먹을 건물 입구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여자들 사이에 있던 취루의 루주, 주화는 입에 물고 있던 장죽을 뱉으며 고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또 지들 끼리 싸움이군. 내가 보기에는 그놈이 그놈이다. 서로 누가 더 더러운지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쯧.
“다들 방으로 올라가.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마.”
괜히 모여서 구경하다가 불똥 튈 수도 있다. 게다가 이긴 놈들이 축배를 든답시고 주루에 몰려들어 난장을 치는 것도 질색이다.
오늘 휴업하기를 잘했군. 누가 이기든지 어차피 똥에서 똥으로 바뀔 뿐 강제로 묶여있는 자신의 처지는 나아지는 것이 없다. 그냥 죄다 죽어버렸으면......
한숨을 쉰 주화가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입을 막으며 몸을 훌쩍 들어 올린다. 없던 애도 떨어질 정도로 놀란 주화는 본능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손을 휘두르고 별 짓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입을 막고 있는 손의 힘만 더 거세졌다. 턱이 부서질 것 같은 악력에 반항을 포기한 주화는 남자가 자신을 들고 바로 옆 객실로 들어가자 눈을 크게 떴다.
이놈, 이거......강간범 아냐? 보는 눈은 있어서.
다시 발버둥을 치려던 주화는 심장이 멎을 것처럼 놀랐다. 객실 안 장의자에 두 사람이 사이좋게 앉아있었고 자신을 데리고 온 남자는 그들 앞에 주화를 내려놓았다. 주화는 땅에 발이 닿자마자 털썩 무릎을 꿇었다.
“태, 태자 전하...... 여, 여긴 어인일로......”
“네가 이곳의 루주인가?”
“예? 아, 예......”
“옆에 건물과 이어져 있는 지하통로. 출구가 어디야.”
“예? 무, 무슨 말씀이신지......”
“취루와 경매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잖아. 그 지하통로 어디냐고.”
“......예?!!”
“명.”
명은 바닥을 짚고 있던 루주의 손바닥을 고정시키고 소도를 높이 치켜들었다.
금방이라도 칼날이 손등을 꿰뚫을 것 같아 루주는 숨을 삼켰다.
자신의 생각처럼 같은 놈들끼리의 영역다툼이 아니었다. 저 인간쓰레기 같은 놈들이 드디어 발각됐구나. 바라마지않던 일이었지만 이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황궁의 외부 감찰단에서 두어 번 나오긴 했었지만 워낙 여기저기 연줄이 많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통에 웬만해서는 찾아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무영이 말한 ‘연결’이 단순한 ‘연결’ 인지 모르고 ‘협조’라고 생각한 주화는 그토록 소망하던 일이 이루어 졌는데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신만은 좋아서 협조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호하게 거절 했었는데 틈만 나면 장사를 못하게 할 거라는 둥, 데리고 있는 애들을 다 팔아버리겠다는 둥, 하도 협박을 해대는 통에 배겨낼 수가 없었다. 어디 끈이라도 있는지 온간 트집을 잡아 영업정지 당하기도 수차례, 애들하고 다 같이 굶어죽게 생겨 결국에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거기서 팔리고 남은 여자들을 최대한 싼값에 데리고 와서 풀어주는, 그 정도뿐이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황궁에 직접 상소를 올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상소를 올린다고 황제에게 직접 가는 것도 아니다. 결국 누군가를 거치게 될 텐데 어디에 끈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밀고 했다가 자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하고 애들은 모두 팔려나가겠지.
이도저도 못한 채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그 분하고 억울했던 마음을 누가 알까. 붉게 칠한 루주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전하! 제가 하고 싶어서 했겠습니까? 살기위해 했지! 제가 데리고 있는 년들만 해도 몇 명인 줄 아십니까? 저희도 입에 풀칠은 해야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 하는 년들은 그냥 다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주화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화연은 이내 의미를 파악하고 엄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신고를 하셨어야지요.”
“신고요? 허! 싹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는데도 호소 할 곳 하나 없습디다. 보호막이 되 주어야 할 관료들이 죄다 그놈을 편인데 어디에다 신고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당신이 떳떳하다는 건가요?”
“그래요. 제가 협조했습니다. 그건 인정합니다. 그 욕지기나는 놈들에게 협조해 주면서 저도 제 나름대로 최대한 여자들을 빼돌렸습니다. 사면초가인 상황에서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보호해 주는 이 하나 없이 나름대로 발버둥 쳐 살아남은 것도 죄라면... 그럼 마음대로 하십시오. 제 손을 자르시든 목을 자르시던 마음대로 하시되 대신, 천한 년 소원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뭔데요?”
“저를 시작으로 그 썩은 관료들의 모가지도 죄 잘라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애들은 살려주세요. 얘들은 아무 죄 없습니다.”
류 충 일행이 와있는지 모르는 화연은 급할 게 없었지만 무영은 언제 류 충이 쫒아올지 몰라 마음이 급했다. 시간도 없는데 이 여자는 왜 묻지도 않은 이런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거지? 스스로 협조했다고 실토까지 한다. 지하통로 출구의 위치가 듣고 싶었지 여자의 애절한 사연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화연도 아닌 다른 여자의 말을 들어줄 생각도 시간도 없다.
어떤 사연이건 간에 결국 그놈들과 한패라는 소리인데 그냥 죽여 버릴까?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하라고 하려다 자신을 보는 화연의 얼굴에 목까지 차오른 말을 꿀꺽 삼켰다.
여자에게 미소를 보내다 자신을 바라보는데 그 눈빛이......뭔가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닥치라고 윽박지르거나 죽여 버리는 것은 확실히 아니다. 꼭, 이러 이러한 사정을 들었으니 현명하게 판단을 해주길 바라는 표정이다.
거슬리면 죽이고 거슬리지 않으면 죽이지 않는다. 이분법으로 살아왔던 무영은 조금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사리에 맞게 판단해주고 이런 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하기도 싫고. 차라리 어떻게 하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흐음......네가 협조한 사실은 인정한다는 거지?”
“네. 인정합니다.”
“그러면......”
무영은 화연의 눈치를 흘끔 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지하의 출입구를 폐쇄 해.”
“예. 알겠습니다.”
언감생심 사정을 이해해 줄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저 같이 천한 년 말 한마디에 관료들의 목을 쳐 줄 거란 기대도 없다. 협조한 것은 사실이니 그저, 죽기 전에 이 억울했던 마음을 토해내고 싶었을 뿐이다. 가슴에 맺혀있던 말을 그냥 윗사람도 아니고 황족에게 풀었으니 더 이상 미련은 없었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던 주화의 눈빛은 담담했다.
이제 벌을 내리시겠군.
내가 한 짓이 있으니 달게 받자.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
“......?......”
뒷말을 기다리던 주화는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화연도 말없이 가만히 있는 무영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의아해하는 두 여자의 눈빛에 무영은 뭔가를 더 말해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다 말 한 건데......이제 할 말 없는데......
급하니까 머리도 잘 안 굴러 간다. 무영은 되는대로 말을 꺼냈다.
“그리고......음...... 오갈 데 없는 여자들을 위해 살아. 경매장에서 나온 여자들을 보살피던지...... 아무튼, 이런 주루 같은 거 말고 그런 거 있잖아.”
“예......? 그러면......”
“아! 나비 있으면 두어 개 주고.”
“......나비요?”
“없어?”
나비가 없으면 당장 변장할 도구가 없어 난처해진다. 무영의 미간이 씰룩거리는 것을 본 주화는 문갑의 서랍을 열어 곱게 접혀있던 나비를 꺼내 명에게 건네주었다.
“저, 여기.....”
“주먹밥이라 던지 말 위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당장 준비 돼? 시간 걸리면 필요 없고.”
“어......저희가 먹으려고 안주로 준비한 게 있습니다만.......그거라도 괜찮으시면.......”
“빨리 준비해.”
“......예......”
주화는 접객실로 달려가 보자기에 전과 몇 가지 음식을 포장해 명에게 건네주고 다시 꿇어앉았다.
“왜 다시 앉아?”
“예?”
“지하실 안막아?”
“막긴......막을 건데요......저에 대한 처벌은 이게 전부입니까?”
“아쉬워? 팔이라도 잘라줘?”
“아, 아니옵니다.”
떨리는 눈으로 무영을 보던 주화는 머리를 깊게 숙였다.
역사에 길이 남을 성군이 되시겠구나.
벅차오르는 감동에 목소리가 절로 떨렸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무영은 바닥에 닿을 듯 내려가는 주화의 머리꼭지를 보다 화연을 곁눈질 했다.
자신을 보는 눈빛에 존경과 애정이 가득 담겨져 있다. 다행히 자신이 한 말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런 거 좋아하는 구나. 무영은 씰룩거리며 올라가는 입 꼬리를 내리기 위해 애쓰다 벌떡 일어섰다. 화연의 저 시선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화양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인이 언제 그 벌건 눈을 부릅뜨고 쫒아올지 모른다.
“아무튼, 갈 곳 없는 여자들은 이쪽으로 보내라고 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지하통로는 확실하게 막아둬. 무슨 짓을 해도 열리지 않도록. 누군가 거기로 탈출하는 그 순간, 모든 것은 백지로 돌아가는 거야.”
“전하, 걱정 마십시오. 이 천녀도 그 통로는 꼴 보기 싫은걸요. 아주 문을 메워버리겠습니다.”
무영은 주화의 말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화연의 몸을 들어 안았다. 달리다 시피 빠른 걸음으로 접객실을 나가려던 무영은 문 앞에서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며 주화에게 물었다.
“혹시, 남는 말 있나? 빨리 달리는 놈으로.”
*
“한조야, 상품에 입힐 옷들은 다 준비 된 게야? 시간 다됐다. 준비 시켜야지......응?”
준비실에 들어가 보니 한참 옷이며 화장도구며 이것저것 챙기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야 한조가 보이지 않았다. 상품 준비 일을 보조하는 여자들만 모여 있다가 화들짝 놀랜다. 탐호는 평소 같았으면 거의 벗은 거나 마찬가지인 그녀들을 희롱하면서 음담을 했을 텐데 오늘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척 봐도 준비가 끝난 상태가 아니다. 륜국 황자의 거만한 행동 때문에 안 그래도 짜증났었는데 거기다 기름을 붓는구나.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이 꼴이야? 이제까지 준비도 안하고 뭣들 하는 거야? 한조 이 새끼 어디 갔어?”
“저, 저기에......”
오만 짜증 다 섞여있는 탐호의 목소리에 여자들은 어깨를 움츠리다 휘장 뒤 수많은 옷들이 죽 걸려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더니 말끝을 흐렸다.
저기에는 왜 들어가 있는 거야?
또 자빠져 자고 있는 거 아냐?
이 미친놈이......
씩씩거리며 휘장을 확 젖히니 아니나 다를까 한조가 누워 있었다.
“허......”
코고는 소리 참 요란하다. 이를 박박 갈면서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것이 악몽이라도 꾸나보다. 있던 정도 다 떨어지게 생긴 그 얼굴에 탐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또......야!! 안 일어나?!! 너는 왜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처자고 지랄이야?”
평소 같았으면 야! 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꿈쩍도 안한다. 누가 보면 세상일 다 저 혼자 하는 줄 알겠다. 지가 무슨 일을 얼마나 한다고 틈만 생기면 쉴 생각이나 하고. 안되겠어. 저 새끼 잘라버리던가 해야지.
“빨리 안 일어나?”
탐호는 발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발끝에 실린 분노가 한조의 옆구리에 파고들어갔다. 몸이 움찔 밀리는 강도였다. 당연히 죽는다고 난리치면서 데굴데굴 굴러야 하는데 눈조차 뜨지도 않는다.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탐호는 쪼그리고 앉아 한조의 볼을 두드렸다.
“뭐야......야! 한조야! 한조야! 일어나 봐! 야!!”
볼이 붓도록 때리는데도 깨어나지 않았다. 이건 자연스럽게 잠든 것이 아니다. 누군가 수를 쓰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다. 탐호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행사가 순조롭게 흘러갈 것 같지가 않았다. 탐호는 잔뜩 주눅들은 채 서있는 여자들에게 물었다.
“이곳에 누가 들어왔었나?”
“아, 아니요......아무도......”
“그럼 한조 혼자 들어왔다고?”
“예......들어오셔서 조금 있다가 졸리다 하시더니......”
수면제인가?
재상을 마중 나갈 때 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언제 당했지?
머리를 굴리던 탐호는 몸을 일으켰다. 이 일을 지부장들에게 알리고 범인을 찾아야 한다. 누가 한조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놈의 목적은 오늘의 행사를 망치는 것. 그것임이 분명했다.
“일단, 너희들은 어서 상품 준비시켜. 지금도 늦었어. 빠르게 움직여. 어서!”
“예. 예!!”
콰콰쾅!!
“꺄아아아악!!”
“으억!! 뭐, 뭐야!!”
여자들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나가려는데 거대한 폭음과 함께 바닥이 흔들렸다. 겁에 질린 여자들이 옷을 내팽개치며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탐호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며 자세를 낮췄다. 어디서 이런 폭발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꽤 가까운 곳인가 보다. 천장이 갈라지면서 잔해가 떨어졌다. 우르릉- 건물 어딘가가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에 여자들이 기겁을 하며 구석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이곳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하지만 방을 나가려고 해도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는 여자들로 인해 나갈수가 없었다. 초점 없이 멍한 눈에는 살고자 하는 본능만 가득했다. 제한된 곳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던 그녀들이었다. 이곳에 잡혀온 뒤 입구 쪽은 가보지도 못했다. 이 미로 같은 곳에서 입구 찾아 나갈 수 없을게 분명했다. 게다가 난화로 길들여져 둔해진 머릿속이 공포로 가득 차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타, 탐호님!! 저희도!! 제발 저희도 살려주세요!”
“제발요!! 죽고 싶지 않아요! 탐호님!!”
“꺄아아악!! 사, 살려줘.....아악......!!”
“이, 이년들이.....이거 못 놔? 이거 놔!!”
탐호는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여자들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인정이 생겨서가 아니다. 미치면 힘이 장사라더니 어찌나 억세게 붙들고 있는지 옴짝달싹도 못하겠다.
이 순간에도 크고 작은 폭음은 연달아 들렸다. 이제 천장에서 떨어지는 잔해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더 시간을 끌다가는 다 같이 죽게 생겼다. 탐호는 하는 수 없이 여자들과 같이 방을 빠져 나왔다. 옷자락을 질질 끌며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을 이끌고 겨우겨우 걸음을 옮겼다.
다음부터는 난화를 써서 길들이는 건 고려해 봐야겠군. 쓰더라도 양 조절을 해야지 이거 원. 고분고분해지는 건 좋은데 너무 멍청해 진다. 이런 때 도와줘야지 왜 이렇게 매달리는 거야! 무거워 죽겠네.
헉헉 거리며 떨어지는 잔해를 피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복도를 지나니 저 앞에 출구가 보인다. 아아, 다 왔어. 공포에 질린 여자 다섯을 끌고 오는 게 너무 힘들었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난다. 입구로 달려 나가는 장정이 보여 손을 들었지만 부르지도 못했다.
탐호는 진이 다 빠져 가쁜 숨만 내쉬며 천근같은 발을 움직이다 우뚝 멈춰 섰다. 입구로 나간 장정들이 나가자마자 누군가에게 붙잡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장정들에게 겨눠지는 칼끝은 확실히 보였다. 한두 개가 아니다. 어림잡아도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칼날이 장정들을 빙 둘러 싼다.
저 놈들이 한조에게 수면제를 썼군. 폭발도 저놈들이 낸 거야. 굴에 연기를 피워 도망 나오는 사냥감을 잡는다. 사냥꾼들이 쓰는 단순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손쉬운 것도 없다. 어떤 머저리가 그런 틈을 줬는지 알아내기만 하면 곱게 죽이지는 않겠다. 탐호는 이를 갈다가 소매에 매달려 있던 여자의 뺨을 후려쳤다.
“정신 차려!”
맞은 여자뿐 아니라 다른 여자들까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린다. 탐호는 그 틈을 타서 입구를 가리켰다. 여자들의 시선이 입구로 모였다. 입구를 보고도 멍한 표정으로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그들에게 탐호는 낮은 소리로 윽박질렀다.
“이 멍청한 년들아! 저기가 입구잖아! 저기로 나가면 살 수 있다고!”
“이, 입구......”
“그래! 입구! 빨리 나가!!”
여자들의 멍한 눈에 초점이 점차 돌아온다. 그들은 잡고 있던 것을 놓고 입구로 천천히 걷다 이내 뛰기 시작했다.
탐호는 여자들이 자신의 옷을 놓기가 무섭게 몸을 돌려 준비실로 달려갔다. 저 곳이 막혔으면 뒷문도 마찬가지다. 남은 곳은 지하통로뿐. 말로만 들었을 뿐 이용한 적은 없었지만 그곳으로 나가려면 열쇠가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조가 열쇠를 하나 파준다고 했을 때 받을 걸. 후회스러웠지만 이미 늦었다. 탐호는 한조의 열쇠꾸러미에서 그 열쇠를 본 기억을 되살리며 준비실로 들어갔다.
탐호는 이 소동이 벌어지는데도 자고 있는 한조의 모습에 혀를 차면서 몸을 더듬었다. 안주머니에 절그럭 소리가 들려 손을 넣어보니 열쇠꾸러미가 만져진다. 탐호는 열쇠꾸러미 안에 섞여 있던 제일 큰 검은 열쇠를 찾았다. 이것이 바로 지하통로의 열쇠다.
그 것을 손에 꼭 쥐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려는 찰라, 천정에서 커다란 돌이 툭 떨어져 한조의 얼굴을 덮쳤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확 튀었다.
피를 옴팡 뒤집어 쓴 탐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구나. 돌이 떨어진 자리가 자신이 있는 자리와 한 끗 차이다. 내게 행운이 따르려는 모양이군. 그럼 그렇지. 내가 쉽게 죽을 팔자는 아닌 게지. 굵직굵직한 잔해가 떨어지는 데도, 금방이라도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데도 준비실을 나가는 탐호의 등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 여유는 지하 통로 끝에 있는 문이 아무리 열쇠를 돌봐도, 아무리 밀고 두드리고 난리를 쳐대도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끝이 났다.
여유가 사라진 그는 다시 통로를 지나 되돌아 왔지만 마찬가지로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열쇠는 돌아가는데 뭔가에 가로 막힌 듯 열리지가 않았다. 한참동안 용을 쓰니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아 기뻐하기가 무섭게 거대한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살짝 벌어진 문틈으로 엄청난 먼지가 밀려들어오더니 뭔가에 떠밀려 쿵 하고 닫혔다. 그리고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지하 통로, 아무 것도 없는 그곳에서 탐호는 자신의 똥오줌을 먹으며 버텼다. 자다가 일격에 죽은 한조를 그렇게 부러워하면서도 자살할 용기는 없었던 그는 결국, 탈수와 허기로 고통 받다가 10일째 되던 날 비참하게 굶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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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호, 안녕.
처음부터 얘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너무 쉬우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은 첫번째가 타죽는것이고
두번째가 갇힌 공간에서 혼자 굶어 죽는것이거든요.
둘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리고 끊임없이 고통스럽지요.
첫번째 방법은 불을 낸 누군가가 있기때문에 혼자는 아니겠지만
두번째 방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혼자지요.
해서 두번째로 선택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좀 길게 묘사하려다 뭐, 좋은거라고. 하며 세줄로 끝냈습니다.
아쉬우신 독자님들께서는 상상력을 발휘해 보세요.
어둡고 좁은 공간에 혼자 있다는 상상을.
음식은 커녕 물 한 모금 없다.
먹을거라고는 자신이 배출한 대소변 뿐인 이 곳에서 과연 당신은 어떻게 할것인가.
참!!
미리 보기로 보시는 분들 중 만 19세 이상 이신 분들을 위해 알려드립니다.
다음 편은 자체검열로 삭제된 부분이 있으니 미리보기로 보지 마시고 아예 노블로 가셔서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