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7 짐승, 꽃과 함께 사라지다. =========================================================================
류 충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애써 감추며 의자에 앉았다.
방안에 들어와서 두리번거리는 남자는 탐호가 아니었다. 평범한 키에, 평범하게 생긴 평범한 남자였다. 류 충은 멀뚱히 그를 보다 물었다.
“자넨 누군가?”
“아, 예. 저는 한조라고 합니다. 탐호님 밑에 있습죠.”
“그가 직접 올 줄 알았는데......이거, 대접이 영 시원치 않고만? 안 그러냐. 아들들아?”
벽에 비스듬하게 서있던 류 강연이 시정잡배마냥 껄렁껄렁하게 걸어와 한조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 옆으로 류 상연이 천천히 걸어와 우뚝 서서 노려보았다.
“그러네요. 아버지. 우리를 너무 박대하는 거 같은데요? 이놈 그냥 죽여 버리면 그 탐호라는 놈이 오지 않을까요? 그럼 우리에 대한 대우도 올라 갈 거구요.”
“죽여.”
껄렁껄렁한 류 강연보다 밑도 끝도 없이 죽이라는 류 상연이 더 무서웠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한조는 서둘러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게 아니오라......탐호님께서는 오늘 자정 있을 행사 때문에 지금 자리를 비우지 못하십니다.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아무튼 저, 절대 그런 게 아니니 부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뭐? 중요한 손님? 우리보다 더 중요한 손님이 어디 있어? 앙? 어디 다른 나라 황족이라도 왔다는 거냐? 노여워할 짓을 하지 말아야 할 거 아냐? 이것들이 우리가 누군 줄 알고......한번 죽어 볼 테냐?”
“죽여.”
류 강연, 저 사람은 군인이라고 하던데 하는 짓은 바닥에 침을 뱉으면서 가진 거 다 내놓으라고 하면 딱 어울리게 생겼다. 류 상연......저 사람은 도무지 정체를 모르겠다. 그냥 무섭다.
아니......내가 뭘 어쨌다고 이러시나.
류 재상의 아들들이 예의바르다는 소문과는 달리 개차반들이구만. 역시 소문은 믿을게 못돼.
한조의 어깨가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들었다. 안 그래도 왜소한 그를 사이에 두고 키 큰 장정 둘이 둘러싸고 있으니 그의 머리는 보이지도 않았다.
“아들들, 너무 겁주지 말거라. 저러다 또 오줌이라도 싸면 골치 아프다. 거기, 한조라고 했나? 온 용건이나 말하고 빨리 가게. 우리 아들들이 성격이 좀 거칠어서.”
“예, 예. 어르신. 이거......”
한조는 굽실굽실하다가 류 강연과 류 상연을 번갈아 보더니 들고 온 꾸러미를 류 강연에게 내밀었다.
류 강연은 꾸러미를 획 채서 류 충에게 넘기고는 다시 한조를 씹어 먹을 듯 노려보았다. 아까부터 재상의 아들 둘이 왜 자꾸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지 알 수 없었던 한조는 잔뜩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꾸러미를 풀어 본 류 충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웬 나비인가? 이 금패는 뭐고?”
꾸러미 안에는 작은 금패와 검은 색 나비가 들어있었는데 똑같은 꽃무늬가 새겨져있었다.
류 상연의 눈치를 보던 한조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 나비와 금패는 무조건 가져 오셔야 합니다. 나비는 저희 매장에 오시는 분들에게만 지급해 드리는 겁니다. 간혹 잊어버리시고 다른 나비를 가지고 오시는 분들 계시는데 절대 입장이 안 됩니다.”
“이 금패가 있어도?”
“예. 금패와 나비의 무늬가 일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걸 뺏거나, 뭐 하여튼 그렇게 하면 되지 않나?”
“그, 그것도 불가능 합니다. 손님마다 지정된 무늬가 서로 다르셔서요. 혹시라도 모를 위변조를 막기 위해서지요. 어...그리고 저희가 알려드리는 암호가 따로 있습니다. 세 개가 모두 일치해야 입장이 가능하시죠.”
류 충은 꾸러미를 뒤적거리다 물었다.
“암호는 여기에 없는데?”
“암호는 첫 번째 문을 통과하시면 알려드립니다. 거기에서 얼굴을 확인하고 나비를 쓰시면 암호를 알려드릴 겁니다. 그럼 두 번째 문에서 암호를 말씀하시면 입장하시는 거지요.”
그곳에 들어가는 다른 놈을 몰래 때려 눕혀서 패와 나비를 뺏을 생각이었던 류 충의 미간이 살짝 접혔다.
“문이 두개 나......아주 철저 하구만......”
짜증나게 스리......
누가 봐도 류 충의 미간은 짜증스럽게 구겨져 있었지만 한조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실실 웃었다.
“예! 저희가 보안을 생명으로 여겨서 말입니다. 다른 장사치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지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고 오시면 됩니다.”
“......그래......음......근데, 나비가 세 개네?”
“원래는 두 분 이상 출입도 불가능하지만 탐호님께서 특별히 세분 모두 입장 가능하도록 조취를 취해드렸습니다. 경매가 시작하는 시간은 자정입니다만 입장은 그 전에 하셔야합니다. 한 시진 정도 뒤에 취루 앞으로 오시면 제가 마중 나가겠습니다.”
“......알았네. 헌데 말이야. 거기가 넓은가?”
“예?”
“그 경매가 시작한다는 그곳 말이야. 구질구질하고 더럽거나 좁아터지는 않냐 고.”
“아휴- 어르신. 요즘에는 그렇게 해놓으면 아무도 안 오십니다. 예전에야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어느 최고급 객사 못지않게 꾸며 놨습죠. 넓기도 넓고 깨끗하니 그런 고민일랑 전혀 하지 마십시오.”
“......넓다고?”
“그럼요.”
“여기보다?”
“여기에 3배는 족히 될 겁니다.”
“......가봐.”
“예, 예. 어르신.”
땅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인사를 한 한조는 류 강연과 류 상연의 눈치를 쭈뼛 쭈뼛 보다 헐레벌떡 문을 여는데 류 강연이 뒷목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히익!!”
“혹시 말이야......우리 여ㄴ......상품에 상처가 있거나 하지는 않겠지? 만약 우리 여ㄴ......상품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너희들을 어떻게 할 거 같아? 응?”
류 상연이 반쯤 열려있는 문을 밀어 닫았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
류 가의 형제들에게 둘러싸인 한조는 목을 자라처럼 집어넣고 고개를 바짝 숙였다.
“저,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저희에게 소중한 상품인데 흠집을 낼 리가 있나요......”
“그럼 막 다루거나, 막 욕을 하거나, 못살게 굴거나, 손을 대거나, 가까이 가거나, 말을 걸거나. 응? 그런 일이 없을 거란 말이야? 이게 거짓이라면 우리 기분이 참- 안 좋을 거 같은데 말야. 그렇게 되면 우리가 어떻게 할 거 같아?”
“산채로 태워 죽이겠다.”
일단 상품으로 들어온 이상 손을 대는 건 자신들도 꺼려하는 일이지만 가까이 가서 말도 걸지 말라니.....어처구니없었지만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음산한 말을 지껄이는 류 상연에게 겁먹은 한조는 손사래까지 치면서 변명했다.
“어......저, 절대 건드리지 않습니다. 말 걸 일이 뭐가 있나요. 전혀 없지요. 암, 그럼요. 저, 저......늦었는데......이만 가보면......”
“......흠......가봐.”
“어......문 좀......”
류 강연은 문에 기대서서 한조를 묵묵히 노려보는 류 상연에게 눈짓을 보냈다. 울상을 하던 한조가 도망치듯 객실을 나가고 류 강연이 한숨을 쉬다 고개를 저었다.
“놈들이 여간 철두철미한 게 아니군요.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상이 그리고 저 이렇게 셋만 들어가야겠네요.”
“상이가 수면초를 가지고 있으니 그걸 믿어 봐야지. 분진을 쓰면 좋은데 아무데서나 쓸 수도 없고......여차하면 연이만 들고 도망치는 수밖에.”
“저렇게 경계가 심한데 정체모를 약초나 가루를 과연 가지고 들어가게 해줄지.....게다가 그렇게 넓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쓸지도 문제구요...연이가 어디 있는지도 알아내야 하는데.”
“내가 잠입하면 돼.”
욕실에서 나오며 하는 무영의 말에 류 강연이 다시 한숨을 폭 쉬었다.
“휴...그건... 그 근처에 가서 생각해 봐야겠어요. 얼마나 경계를 하는지 봐야지요. 너무 철통같으면 어쩔 수 없이 두 번째로 말씀드렸던 그 방법을 쓸 수밖에요. 일단 밀서먼저 확인해 보시죠.”
밀서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류 충과 류 상연까지 가까이 다가 왔다.
무영은 주머니에서 꺼낸 밀서를 혹시라도 찢어질까 조심스럽게 펼쳤다. 자그맣게 접힌 밀서를 펴보니 두 장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1.
꼬치 나지 대미다.
남자가 마니 오서 꼬치 암저나개 구주나기 어러움미다.
그애서 조자가미다.
꼬츤 만차애 이어스미다.
발강 내츤 건무 여애 하양 삼츤 건무 아애 드어가미다. 가가 으미다.
나가 만차 민애 부어서 으어가미다.
조온이 오심시오.
-명-
2.
이어은 말 앙아어오 하느대
도저이 하므수가 엄스미다.
아친애 꼬치 시능소이가 나서 자간 반스미다.
애 자구마 꼬치 아흐개하미까.
애 자구 무느거미까.
애 자구 입을 입으로 마그미가.
그마아라고 하느대 애 개손 하미가.
나가 이거은 해아에게 다 말 하미다.
마주지 아애스미다.
꼬치 어룽이가 대스미다.
꼬츠 개로이명 앙대미다.
-명-
“니미......”
쥐 죽은 듯이 고요한 방안에 류 충이 나지막한 욕설을 내뱉었다 .
무영과 류 상연까지 미간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몇 번을 다시 읽어 봐도 밀서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읽을 수가 없었다. 두 장 다 그랬다.
화가 치밀어 오른 무영이 밀서를 와작- 구기려는데 류 강연이 그 손을 턱 잡아 막았다.
“제가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장에서 이런 밀서 한두 번 받아본 게 아니라 서요. 군인들 중에 글 모르는 놈들 많지 않습니까. 이런 놈 수두룩합니다. 줘 보세요. 제가 보겠습니다.”
“......”
무영은 손에 준 힘을 풀고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밀서를 류 강연에게 넘겼다.
“어휴....이거 시간 좀 걸리겠는데요? 이건 뭐...적진의 암호로 적힌 밀서보다 더 해석하기 힘들겠네요.”
류 강연은 밀서를 자세히 보면서 신중하고도 차분하게 해석을 시작했다.
“그림자 이름이 명 입니까? 음......보자......꼬치......고추는 아니겠고, 아무래도 꽃을 뜻하는 것 같은데 이건 연이를 말하는 거 같네요. 꼴에 밀서라고 은유법까지......음, 연이는 나지...?문맥상 납치가 맞겠네요. 연이는 납치 됐습니다. 음......남자가 많이 와서...놈들의 수가 많아서 연이를 안전하게 구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그래서......어?! 명이라는 그림자가 연이 뒤를 쫒은 거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류 충의 얼굴이 화색을 띄었다. 류 상연, 무영도 류 강연에게 바짝 다가왔다. 무슨 소린지 당췌 알 수 없는 저 글을 읽다니, 그들의 눈초리에 감탄이 섞여 있는 걸 발견한 류 강연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에헴......만차......? 막차? 아, 마차에 탄 연이는 내층......이건 좀 자신이 없네요. 일단 4층으로 해석하겠습니다. 4층으로 된 빨간 건물 옆, 3층짜리 하얀 건물 지하로 내려갔답니다. 그림자는 마차 민에 부어서...? 밑에 붙어서 같은데 아마, 숨어서 따라들어 갔나 봅니다. 가까움.....여기서 가까운 건물인가 보네요. 조용히 찾아오랍니다. 제 예상대로 혼자서는 연이를 구출하기는 힘든가 보군요. 그리고 두 번째 거는...”
“그리고? 그리고 또, 뭐? 계속 해보 거라.”
“참 아버지도......이게 보기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나 되니까 이정도로 해석하지요. 다른 사람은 엄두도 못 낼 겁니다. 제가 본 밀서 중에서도 최악의 밀서 3위 안에 들어가네요. 기다려 보세요. 근데 왜 두 장으로 보냈지? 한 장만 쓰려다 추가 한 건가? 음......연이가 시능소이......?......이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네요. 흐음......싫은 소리를 말 하는 건가? 아닌데......아니면......아! 혹시, 그건가? 신으ㅁ.....................응?”
“왜 그러느냐?”
“......응?”
“해석이 안 되는 게냐?”
“......으응?!!”
“뭔데 그러는 게야?”
“.......으으응?!!!!!!!!!”
갑자기 표정이 이상하게 굳더니 점점 붉어지는 류 강연의 얼굴을 보고 류 충은 안달이 나 닦달을 했다.
“왜! 뭐라고 적혀 있는데 그러는 게야? 왜 하다 말어! 우리 연이가 어쨌는데? 어디가 잘못됐다더냐? 혹시 다쳤다고 하느냐? 아, 뭔데! 말을 해보라니까!! 애비 속 터져 죽는다니까!!”
류 강연은 말없이 밀서를 와작- 구겨버리더니 무영을 노려보았다. 꽉 쥔 주먹이 덜덜 떨렸다.
무영은 류 강연이 해석하는 밀서의 내용을 들어보니 명, 이놈이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일찍 돌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히 화연에게 죽을 먹이기 전 까지만 해도 기척이 안 느껴졌었는데......
설마 아침에 그 모습을 본건 아니겠지......
하지만.
류 강연의 굳게 닫힌 턱과 벌건 눈알을 보니 그 설마가 틀림없는 것 같았다. 본 것만 해도 눈알을 뽑아버릴 대역죄인데 거기다 한 술 더 떠 그 내용을 저 빌어먹을 밀서에 남겼나 보다. 아침에 화연에게 집중하느라 다른데 신경을 못 써 그 놈이 돌아온 줄도 몰랐다. 뼈저린 실책을 깨달은 무영은 류 강연의 씹어 먹을 듯 쏘아보는 눈빛을 은근슬쩍 피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그리 잘못한건 아니지만 괜스레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뿌드득-
류 강연의 입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나왔다. 무영과 류 강연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류 충이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화를 버럭 내려는데 류 강연이 악문 이 사이로 말을 뱉었다.
“아버지, 그런 거 아닙니다. 연이는......괘, 괘, 괜......찮습니다. 거, 걱정 하실 일 없......지는......”
“뭐? 아니, 이놈이 뭐라는 거냐. 아까부터. 그러니까 연이는 괜찮다는 거지?”
“......납치당할 때 다친 곳은 없다는 군요.”
그 전이 문제지.....
“그런데 왜 그래?”
“아닙니다. 그, 그냥......그나저나, 전하......”
“......왜......”
“우리 연이......후욱, 후욱......침착하자. 구하러 가신다고요?”
“응.”
“저희랑 같이 들어가실 수는 없는데 어떻게 들어가실는지?”
“......숨어서......”
“그러다 들키면요? 경계가 보통이 아닐 것 같은데 그러다 우리 연이......우리 연이......우리 연이......크흑!......괜찮아. 괜찮아. 이럴 줄 알았잖아. 예상하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울지 말자. 울지 말......큭!!”
“......”
“후우, 후우......들켜서 우리 연이 다치면요? 안 그래도 애가 어, 얼룩......크흑......이 짐승!!!!”
“......”
예상은 미리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증거가 떡 하고 나오니 그 충격과 분노가 말도 못했다. 눈앞에 있는 저 짐승을 당장이라도 때려잡아 가죽을 몽땅 벗기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 울화가 치밀었다. 결국 짐승에게 잡아먹히고 만 꽃 같은 제 동생을 생각하니 류 강연의 벌건 눈알에 습기가 차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류 충과 류 상연은 뜨악한 얼굴로 류 강연을 바라보다 얼굴을 찌푸렸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보기가 엄청 흉했다. 혼잣말을 하든지 질문을 하든지 아니면 그냥 속 시원하게 울던지... 하나만 해줬으면 좋겠다.
무영은 손톱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가라앉히며 시선을 돌렸다.
“......안 들킬 자신,”
“됐고요, 제게 묘안이 있습니다.”
“......뭔데?”
“아까 잠깐 언급했던,”
“싫어.”
형형하게 빛나는 류 강연의 눈빛에 무영은 아까 언급 했던 방법이 뭔지는 몰라도 무조건 싫다고 거절하려는데 재빠르게 다가온 류 강연이 그의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얹었다. 그리고 조용하게 속삭였다.
“나는 오늘 아침에 니가 한 짓거리를 다 알고 있다.”
“......”
“......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전하?”
“......”
“여기서 그냥 죄다 부는 수가 있습니다. 진정 우리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고 싶으신 겁니까?”
“......”
“아니면 상이의 맹독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고 싶으신 겁니까? 곰도 쓰러트리는 맹독이라 하니 전하께서도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정신을 잃고 누워계시다가 아버지께서 연이 홀랑 들고 가시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예? 예?”
“......”
“대례식이고 뭐고 이번에야말로 전하 모르는 곳에다 연이를 숨길수도 있습니다. 그건 아시죠?”
“......”
불량배처럼 짝 다리를 짚고 비스듬하게 서서 무영의 어깨에 손을 척 올리고 귓가에 협박의 말을 쏟아 붓던 류 강연은 무영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무슨 일이건, 어떤 짓이건, 군말 없이 무조건 따라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전하. 우리 연이를 이렇게나 아껴주시다니 참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목소리는 서늘했고 눈빛은 더 차가웠다. 싫다고 하기만 하면 여기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의지로 가득한 그 서릿발 갈은 기세에 무영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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