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을 문 짐승-94화 (94/110)

00094  짐승, 꽃과 함께 사라지다.  =========================================================================

"뭐하는 거야."

문 앞, 바닥에 쪼그려 앉아 먼지를 쓸어 담던 종업원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가슴을 잡았다.

"아이고! 깜짝이야!! 소, 손님......어......왜 다시 오셨습니까?"

"뭐?"

“아까 손님 나가시자마자 일행 분께서 쫒아 나가셨습니다. 못 만나셨습니까?”

“무슨 소리야.”

“손님 나가시고 바로 짐 죄다 싸들고 나가셨는데요? 말까지 끌고 가시기에 밖에서 만나기로 하셨는지 알았는데요?”

“......말을 끌고 갔다고?”

“예, 그럼요. 짐이 무거워 보여 제가 직접 말에 실어들었는걸요. 두 마리 다 끌고 가셨습니다.”

“두 마리 다......?”

“그러셨으니 제가 밖에서 만나서 바로 다른 곳으로 출발하시려나 보다 했지요. 길이 엇갈린 게 아닐까요?”

“여기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예? 그럴 리가......”

놀란 표정이던 종업원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저......손님, 일행 분 오랫동안 아셨던 분이셨나요?”

“......”

무영의 침묵이 부정을 뜻한다고 생각한 종업원은 이내 혀를 끌끌 차더니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이그......쯧쯧쯧. 그거네 그거야. 당하셨네요. 아주 옴팡 당하셨어.”

“......”

“꽃뱀한테 당하신거라고요. 여기 그런 사람 꽤 됩니다. 같이 여행 와서는 홀라당 벗겨먹고 튀는 여자들이 좀 많아야지요. 저희 객사에서도 몇 분 당하셔서 빈 털털이로 돌아가셨지 뭡니까.”

무영은 말없이 객실로 들어서 깨끗하게 정리되어있는 실내를 훑어 보다 활짝 열려져 있는 창가로 다가갔다. 탁자위에는 가느다란 향이 피워져 있었는데 피운지 얼마 안 되었는지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영은 그 옆에 들꽃을 손수 꺾어 만든 하얀 꽃다발을 올려두었다.

“꽃뱀?”

비열하게 웃으며 무영의 행동을 주시하던 종업원은 무영이 돌아보자마자 표정을 바꾸며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요즘 아주 기승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나저나 어쩌시렵니까? 여비는 있으십니까? 말까지 훔쳐가서......이럴 줄 알았으면 말릴걸 그랬나 봅니다. 너무 얌전하게 생겨서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 뭡니까. 하긴, 그렇게 생긴 여자들이 더 한 법인데......하여튼 반반하게 생긴 것들은 믿을게 못된단 말이지요. 이거, 제가 다 죄송하네요.”

밖을 둘러본 뒤 객사 앞, 어지럽게 나있는 말발굽 자국과 마차의 것이 분명해 보이는 바퀴자국까지 훑어 본 무영은 창을 닫아 잠금쇠까지 걸었다.

"혼자였나?"

"예? 무슨......"

"혼자 나갔냐고."

"아, 그럼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손님 나가신 뒤로 혼자 나가셨습니다. 누구와 같이 나가셨다면 제가 단박에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요. 간지 얼마 안 되었으니 서둘러 쫒아 가시면 잡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려고 할 테니 어서 가 보시지요. 가셔서 잡으면 아주 치도곤을 내주십시오. 그런 년은 혼쭐이 나 봐야 정신을 차릴 겁니다. 어디 얼굴하나만 믿고 몸뚱이로 남자를 유혹해서 벗겨먹고 말이야. 그런 년들 보다야 차라리 기생이 낫지요."

“오늘 단체 손님이 왔었나?"

생뚱맞은 소리를 하며 객실 문 앞으로 걸어가는 무영을 보며 종업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단체손님이라니요?”

“"흐음......그렇군.”

탁-

여자를 쫒아 밖으로 뛰쳐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그가 문을 닫는 것도 모자라 잠그는 것을 본 종업원은 얼굴을 굳혔다.

"소, 손님......왜......그러십니까? 문은......왜......"

“이 방은 방음이 잘 되나?”

“예?.......그건 왜......”

“여기서 나는 소리를 너 말고 누군가 들었을 수도 있잖아?”

“아, 아이고, 난 또......하하하. 누구와 같이 있었을 거 같아 그러십니까? 문도 두꺼울 뿐더러 한 층을 통으로 쓰는데다 이 객실 근처로는 배정된 종업원인 저 밖에는 오지 못합니다. 아무나 기웃거릴 수가 없는 곳이지요. 제가 못 들었으면 아무도 듣지 못 한 겁니다. 헌데 분명히 그 여자 혼자 있었습니다. 나올 때에도 혼자 나왔고요.”

문에 기대고 선 무영은 다리춤에서 뭔가를 꺼내 손에 쥐고 빙빙 돌렸다. 종업원의 눈이 무영의 손에서 장난감처럼 놀아나는 그것을 보고 함지박하게 커졌다.

"그렇다면 참 이상하군."

"예?......뭐가......말씀이십니까?"

"그녀는 난화를 피우지 않아."

"에...예? 나, 난화라니......"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창을 활짝 열어두고 향까지 피웠나 본데 아쉽게도 냄새가 남아 있군. 내가 생각보다 빨리 돌아 왔나보지?”

“예? 아니, 그게......”

“그럼, 이건 누가 피운 걸까. 니가 피웠나?"

“그, 그럴 리가......저는 도통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난화...냄새라니요?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걸요? 저 향냄새와 혼동하시는 거 아닙니까?”

“난 한번 맡은 냄새는 절대 잊지 않아. 이건 난화냄새야."

“왜, 왜 그걸 저에게 따지십니까? 전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그, 그리고......솔직히, 그 일행분이 몰래 피웠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종업원의 말에 피식 웃던 무영이 크게 웃었다. 객실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한 웃음소리는 한순간에 뚝 멈췄다. 가늘어진 회색의 눈이 이상하게 빛났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면 올수록 온몸이 따끔거리더니 닭살이 투두둑 올라왔다. 종업원은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섰다. 등에 벽의 한기가 느껴졌지만 무영에게서 느껴지는 한기에 비하면 차라리 따뜻할 지경이었다. 오금이 저려왔지만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어느새 구석까지 밀린 종업원은 달달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소, 소, 손님.....거, 거기 서서.....말씀을,”

“그리고 말도 못 몰아.”

“소, 손님!! 저, 저는 보, 보, 본 대로......”

“게다가 돈은 나한테 있어. 혹시라도 나갈까봐 내가 다 가져왔거든. 짐을 다 가져가도 소용없다는 말이지.”

“저는......소, 손님......저는......”

“입 닫아.”

“!!”

“난 지금 니 목을 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 결심이 흔들리기 전에 입 닫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

"너에게는 총 다섯 번의 기회가 있어. 처음에는 손목, 그 다음에는 발목. 나머지 하나가 무엇일지는 알아서 생각하도록 해."

“......”

“그녀는 어디로 갔지.”

"예? 아, 아, 아......저, 저는......정말......"

"이제 네 번."

종업원 앞에 우뚝 선 무영은 그의 팔목을 낚아채 들어 올린 뒤 빙글빙글 돌리던 작은 비도를 그대로 내려 박았다. 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손목을 관통한 비도는 벽에 깊이 박혔다.

"크아아아아아악!!!!!!!"

남자의 고통어린 눈에 눈물이 고여 흘렀다.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무영은 부드럽게 속삭였다. 회색빛이었던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황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것을 훔쳐간 새끼가 도대체 누구지?”

*

류 충과 일행은 반쯤 빠져나간 영혼을 추슬러 홍하객사로 들어섰다.

최고 종업원인지 뭔지를 찾았지만 자리에 없었다. 결국 다른 종업원의 안내로 비몽사몽으로 반은 졸면서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류 강연이 제일 먼저 걸음을 멈췄고 뒤이어 대원들이 멈췄다.

류 강연은 눈을 감은 채 비틀거리며 앞서 걸어 나가는 류 충을 잡아끌었다. 기해를 업고 멍한 얼굴로 걷던 류 상연의 앞은 제갈 명이 막아섰다. 앞서 올라가던 종업원은 갑자기 멈춰서는 이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 왜 그러십니까?”

“여기는 손님식사 용 가축을 객사에서 직접 잡나?”

“에이, 그럴 리가요. 다른 곳도 그렇겠지만 저희가 음식만 파는 것도 아니고 냄새나서 절대 못합니다. 피 냄새는 잘 빠지지도 않거든요. 가까운 시장에서 다른 재료들과 함께 대량으로 주문해오지요. 헌데, 왜 그러십니까?”

“이 윗 층에는 뭐가 있지?”

“위층에도 객실이 있지요.”

“몇 개? 하나?”

“예. 한 층이 통으로 되어있어 저희 객사에서는 제일 좋은 객실이지요. 하지만 거긴 이미 손님이 계십니다.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왜 그러시는지 말씀을 해주시면......”

류 충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쩍 하더니 삐져나온 눈물을 소매로 쓱 닦았다.

“강아.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 애비 졸려 죽겠다.”

“아버지......잠시 만요. 뒤로 오세요.”

“응? 왜?”

류 강연은 말없이 류 충을 끌어 일행의 뒤로 보냈다. 그리고 칼자루를 단단히 잡았다.

처음에는 잘못 맡은 줄 알았다. 식당에서 돼지라도 잡나보다 했는데 어쩐 일인지 계단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냄새가 짙어졌다. 피 냄새는 아래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식당이 위에 있는 객사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살기 같으면서도 살기 같지 않은 그런 이상한 기운이 점점 강하게 느껴졌다. 살기치고는 너무 무겁고 커서 오히려 살기 같지가 않았다. 공기마저 움직임을 멈춘 듯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디서 많이 접해본 기운인데......

어디서 접했더라......

분명한건 위에서 누군가 죽어가고 있거나, 이미 죽었다.

류 강연은 볼에 순식간에 읽어난 닭살을 문지르며 제갈 명에게 눈짓을 보냈다.

제갈 명과 민 결이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서면서 칼을 뽑았다. 종업원이 후다닥 뛰어오면서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어, 어? 소, 손님들! 왜들 이러 십니까!!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큰일 난다구요!”

“쉿!”

제갈 명과 민 결이 앞장서고 류 강연과 나머지 대원들은 몸을 낮추며 벽에 붙어 계단을 올랐다. 류 충과 류 상연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숨소리까지 죽이며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한 층을 더 올라서니 확실했다. 이제는 류 충과 류 상연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피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눅눅해진 나무 냄새와 섞여 코끝을 찔렀다. 종업원도 이 지독한 냄새에 코를 틀어막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제갈 명과 민 결은 문 양 쪽에 서서 류 강연에게 눈짓을 보냈다.

류 강연은 문 앞에 서서 손가락 세 개를 차례대로 편 뒤 있는 힘껏 문을 발로 찬 뒤 벽으로 몸을 숨겼다.

부서진 문이 활짝 열림과 동시에 은빛의 뭔가가 쏜살같이 날아와 맞은편 벽에 가서 박혔다. 날 부분 뿐 아니라 자루의 반 이상 박힌 그것은 바르르 떨리더니 이내 멈췄다. 주 아랑은 자신의 얼굴 바로 옆에 박힌 소도를 보며 침을 삼켰다. 칼날에 스친 그의 머리카락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 아랑은 바닥에 흩어져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다 시선을 돌렸다. 방안에는 장신의 남자가 등을 지고 서 있었다.

그 남자의 어깨 넘어 쭉 펴진 누군가의 팔이 보인다. 양 손목을 관통한 소도가 벽에 깊숙이 꽂혀 팔을 고정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방으로 뛰어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주 아랑을 비롯한 다른 대원들은 장신의 남자가 내뿜는 기운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벽에 숨은 류 강연이 눈을 부라리며 재촉을 해도 이 엄청난 살기에 하얗게 질려 있을 뿐이었다. 거대한 해일을 바로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작은 칼날이 사방에서 쏟아질 것만 같은 느낌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온몸의 털이 바짝 일어서면서 뒷골이 움찔 떨렸다.

얼어붙어있는 그들의 한심한 꼬락서니에 류 강연이 혀를 차면서 몸을 돌려 칼을 겨눴다.

“멈추어라.”

“......”

“하던 짓 멈추고 천천히 뒤로 돌아서라.”

피식-

조용한 공간에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도를 여유로운 태도로 가볍게 던졌다 받던 남자가 조용하게 물었다.

“너희들도 한 패인가?”

“......뭐?”

“그래. 잘 됐군.”

“......”

“이놈 가지고는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던 참이었어. 뭐, 당연한 일이겠지만.”

“......”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말이지.”

“......”

“너희들은 내게 말해줄 것이 많았으면 좋겠군.”

“......”

“그럼, 이놈은 더 이상 필요 없지.”

남자는 높게 던진 소도를 잡자마자 한 바퀴 빙글 돌리더니 벽에 고정되어있던 종업원의 목에 박아 넣었다. 이미 죽어있었던 건지 기절해 있었던 건지 종업원은 한번 꿈틀거리기만 할뿐 비명도, 경련도 없이 그냥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본 류 강연은 칼을 높게 치켜 올리며 고함을 질렀다.

“네 이놈!!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계단 아래에서 남자의 목소리를 듣던 류 충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 목소리 말이지.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란 말이지.

한없이 낮고 거칠어 꼭 짐승이 으르렁 거리는 것 같은 이런 목소리는 흔한 것이 아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류 충의 고개가 번뜩 들렸다.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재수 없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딱 한명이다.

류 충은 대원들의 만류를 뿌리치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일단 그 놈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너 이놈 드디어 만났구나. 이 천하에 다시없을 못된 도적놈 같으니라고. 그 벌건 머리털을 죄 뜯어 주마!

씩씩 거리면서 올라간 류 충은 남자 앞에서 멈칫했다. 막상 뒷모습을 보니 체구는 비슷해 보였는데 머리색이 전혀 달랐다.

잘못 생각했나?

아닌데, 맞는 거 같은데.

류 충은 남자의 뒤통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그래도 확인은 하자 싶어서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자그맣게 불렀다.

“......전하......?”

너무 어처구니없는 생각인가?

“아, 아님 말고......”

주변에서 쏟아지는, 흡사 노망난 노인네를 보는 그 경악스러운 눈빛에 류 충이 슬며시 몸을 돌리려는데.

남자가 천천히 뒤로 돌았다.

머리카락부터 옷까지 빨갛게 물들인 남자는 황금빛 눈으로 류 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볼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쓱 닦는다. 점점이 묻어 있던 피가 뭉개지면서 볼 위에 붉게 번졌다.

꿀꺽-

누군가의 목에서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뜬금없는 류 충의 말에 설마 하며 남자를 자세히 살피던 류 강연의 눈이 이내 부릅떠졌다.

그의 머리색이 뿌리부터 점차 바뀌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발치에 고여 있는 핏물처럼 붉디붉었다.

“저,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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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로맨스라는 말에 일단 기다려 보는 듯한 분위기군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으며)미리 말하길 잘했지....

여담이지만.

92편 [바흐새오]에 대해 shadow11님과 방판의여왕님께서만 언급해주셔서 작가는 시무룩 했다는......명이 옆에 있냐는 독자분도 계셨음......ㅜㅜ

바흐새오 -> 바르세요

입니다.

이렇게 쓰는 놈은 명, 그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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