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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93화 (93/110)

00093  짐승, 꽃과 함께 사라지다.  =========================================================================

류 충은 핏발선 눈을 부릅떴다.

......가 다시 감았다.

“저, 아버지......아무래도 이 근처에서 쉬시는 게......”

“안 돼!!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연이는 멀어지고...... 있을 텐데......그러다......그......아......이.......”

류 충의 말이 점점 느려지다 이내 끊겼다. 말 위에서 비틀비틀 거리는 폼이 저러다 낙마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 류 강연은 조마조마해 볼 수가 없었다. 자신도 피곤해 기절할 지경인데 류 충까지 신경 써야 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류 충의 머리통이 까닥거리며 이리저리 바쁘게 노를 젓다 드디어 푹 숙여지더니 스르르 몸이 기울었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말과 부딪칠 것만 같아 류 강연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음......응?......어, 어!!”

말에서 떨어지기 일보직전, 류 충은 아슬아슬하게 고삐를 채며 중심을 잡았다. 그 바람에 말이 놀라 갈기를 휘저으며 울었다.

히이이잉-

“워, 워!!”

마주오던 말이 놀라 급하게 멈춰 섰다. 뒤 따르던 말들과 마차가 서둘러 멈춰서면서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뭐야? 이 미친 늙은이! 말 그딴 식으로 몰 거야? 죽으려면 혼자 죽던가!”

류 충은 핏발선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에 탄 젊은 남자를 노려보았다. 삼일동안 잠도 잘 못자고 밥도 말위에서 주먹밥으로 때웠다. 피곤에 찌들대로 찌들어 신경이 바늘처럼 곤두서 있던 류 충은 지금 눈앞에 뵈는 게 없었다. 물론, 자신의 잘못까지도.

“그래. 어쩔 테냐.”

“뭐, 뭐......요?”

“계속 이딴 식으로 몰 건데 어쩔 거냐고.”

“어, 아니......”

“니가 어쩔 거냐고!!!”

류 충의 살벌한 기세에 남자가 움찔 거렸다. 분명히 잘못한건 자신이 아닌데도 기세가 어찌나 흉흉한지 도리어 밀리는 기분이었다.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주눅이 들기도 한 남자가 우물쭈물하면서 대답도 잘 못하고 있는데 류 충 뒤에서 똑같이 눈에 핏발이 선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더니 남자를 둘러쌌다.

“뭐야. 이놈은.”

“감히 어르신에게 그 따위로 말을 하다니.”

"위아래도 없냐? 네놈은? 싸가지는 집에다 두고 왔어?"

“어느 안전이라고 말이 반 토막이야? 혀가 토막이라도 났냐? 엉?”

"이 새끼, 눈 안 깔아? 확 뽑아버릴라.”

“캭!! 뒈지고 싶어 환장을 했나본데. 너 오늘 잘 걸렸다.”

처음에는 그나마 곱게 나갔던 말이 어느순간 급물살을 타면서 사정없이 거칠어 졌다. 그러더니 쌍둥이인 듯 똑같이 생긴 두 남자가 말을 몰아 가까이 다가오면서 목을 좌우로 꺾었다.

우드득 우드득-

똑같이 벌건 눈알을 한 그들이 가까이 오자 땀내가 훅- 풍겼다. 눈 밑은 어둑하니 퀭했고 입술을 허옇게 일어나 있었다. 옷과 머리는 땀과 흙먼지에 얽어 붙어 원래 색을 알 수가 없었고 얼굴은 꾀죄죄했다. 어디 땅 구덩이에라도 파 묻혔다가 겨우 빠져 나온 것처럼 행색은 구질구질하고 초라했으나 기세는 살벌했고 눈빛은 형형했다.

“그냥 콱 죽여 버릴까.”

“아냐. 시체치우기 귀찮아... 혀만 잘라버리자.”

“안 돼! 그건 너무 약해. 이빨도 뽑아 버리자.”

“형. 그걸 언제 다 하고 있어? 그리고 쟤는 이도 안 닦을 거 같어. 도구도 없는데 손으로 하게? 더럽잖아.”

“그럼 혀랑 손가락. 어때?”

"형도 가만 보면 일하기 참 좋아해. 손가락도 열 개나 되잖아. 뭐 하러 일일이 자르고 있어? 그냥 혀랑 손목 해. 간단하게."

"오오. 그래. 그럼 되겠다."

주 아랑과 주 해랑이 씩- 웃으며 남자에게 다가가는데 류 강연이 큰소리로 참견했다.

“야! 이 아둔한 것들. 피곤하니까 머리가 안돌아 가는 거냐. 입안에 돌을 가득 집어넣고 몇 대 쥐어 패면 한 번에 해결 되잖아. 아니면, 땅에 내리치던가. 쯧쯧쯧.”

“아! 그 수가 있었구나. 역시 대장님이셔.”

류 충은 서릿발 같은 엄격한 표정으로 대원들에게 말했다.

“잠깐 쉬었다 가는 것도 좋겠지. 어서 시작들 하거라.”

백주대낮에, 심지어 자신은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졸지에 혀도 잘리고 이빨도 죄 뽑히게 생긴 남자는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마차 안에서 이들을 주시하던 탐호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혀를 찼다. 저 머저리 같은 놈이 이 급한 와중에 일을 사서 만든다며 구시렁거리다 발치에 있는 화연을 내려 보았다.

두건을 쓴 그녀는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재갈도 했고 팔도 묶여 기절한 상태라 별일은 없을 테지만 모르는 일이다. 괜히 깨어나서 난동이라도 부려 상처라도 생기면 골치 아프다. 게다가 한시바삐 경매장으로 옮겨야 했다. 경매 시작도 하기 전, 일찍 방문하겠다는 후원자의 기별이 있었다. 어서 가서 행사 준비하고 후원자에게 이 검은머리도 보여주고 나머지 상품도 준비시키려면 시간이 빠듯한데 수하라는 놈이 발목을 잡는다.

“하여튼 저 멍청한 놈! 조용히 가자니까 이목이란 이목은 죄다 집중시키는 구나. 쯧”

탐호는 일이 커지기 전에 서둘러 마차 밖으로 나왔다. 벌써부터 행인들은 무슨일인가 싶어 호기심서린 얼굴로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탐호는 팍-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가다듬고 류 충에게 다가가 목례를 했다.

“죄송합니다. 아랫것이 뭘 잘 몰라 무례를 범했습니다. 아직 어려서 말이지요. 제가 대신 사과 드릴터이니 춘부장께서는 가시던 길......응?”

탐호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세우면서 류 충을 보다 눈을 크게 떴다. 멀리서 봤을 때에는 잔뜩 충혈 되어 그런지 눈동자가 붉어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검푸른 색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먼지를 잔뜩 뒤집어 써 그 본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지만 머리도 검푸른 색 같았다.

황궁 근처에도, 류 현(縣)에도 가본적은 없지만 류 가(家)의 혈족의 특징이 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관청에서 일하는 지라 주워들은 게 있었던 탐호는 류 가(家)의 혈족 중에도 이정도 나이를 가진 인물은 단 한사람 밖에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실제로 보니 정말 진한 검푸른 색이군.

그나저나......재상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지?

“저......혹시, 류 충 어르신 아니십니까?”

“......나를 아나?”

“그럼요! 검푸른 색이면 류 가(家)의 상징 아닙니까. 게다가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저도 관청에서 근무하는지라 그 정도는 압니다. 그런 그렇고. 하마터면 큰 무례를 저지를 뻔 했지 뭡니까. 행색이 너무 더러...초라...구질......고단해 보이셔서......흠, 흠. 아무튼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재상어르신, 저는 탐호라고 합니다.”

“으음......그래?”

류 충은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랜 세월 궁궐 안에서 아귀다툼 같은 정치를 해 왔던 감으로 단언할 수 있었다.

이 새끼......

음, 피곤하니 말이 거칠게 나오는군.

이놈은 나쁜 놈이다.

얼굴에 비열함과 잔인함이 줄줄 흐른다.

구리 구리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관청에서 근무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양민들의 고혈을 빨아 쳐드셨을 관상이다. 이런 대낮에, 그것도 남자가 말도 아니고 마차는 웬 말인가. 게다가 이 호위하는 인원 좀 보소. 혼자서 얼굴 내놓고 다니기는 힘든가 보지? 어지간히 해먹었나 보다. 평소 같았으면 뒷조사를 시켰을 텐데 강행군으로 지친 머리는 다른 생각을 하길 거부했다.

담하, 그놈이 옆에 있었으면 이런 때 시켜먹기 딱 좋았을 텐데 괜히 공현(縣)으로 보내서.....쯧. 없으니 아쉽구먼.

“헌데, 어르신께서는 예까지 어인일이시온지......”

“뭐......찾을 게 있어서. 여기쯤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어르신. 이곳은 제가 꽉 잡고 있습니다. 자세히 알려주시면 제가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무엇을 찾으십니까?”

류 충은 말하기도 귀찮고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 게 있어. 자네는 알거 없네.”

자신의 힘을 빌리면 편할 것을 굳이 직접 찾으려고 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타인에게 말하지 않고 직접 하려는 것을 보니 사적이고도 은밀한 일이다.

게다가, 그 뭔가가 여기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탐호의 머리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빛의 속도로 돌아갔다. 머리를 굴리다 류 충에 대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 낸 탐호는 눈을 번쩍 빛냈다.

재상이 혼자 된지 10년이 넘었다!

탐호의 입 꼬리가 쓱- 올라갔다.

늘그막에 회춘하기 위해 어린여자라도 구하나 보군. 청렴결백하다는 것도 다 옛말인가 보지? 몸이 닳긴 닳았는지 직접 움직인 게로군. 경매가 여기에서 열린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아가지고 말이야. 하긴,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관료들은 뒷구멍으로 다 알음알음 아는 사실이니까.

큭큭큭. 이거 잘하면 우리에게 또 한 명의 막강한 후원자가 생길수도 있겠는데.

속으로 쾌재를 부르던 탐호는 주변을 휘- 둘러 보다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들어 올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어르신. 혹시 ...을 찾고 계십니까?”

“응?”

“어이구...그렇다면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뭐, 꺼려지기는 하시겠지만요. 그 마음 제가 이해는 합니다. 다들 그러시니까요. 암요. 큭큭큭큭큭.”

“......뭐?”

“지금은 좀 그렇고......일단, 저기 앞에 홍하객사(紅霞客舍)에 묵으십시오. 이 근방에서는 저기가 가장 좋은 객사입니다. 그 객사 최고 종업원을 찾으셔서 탐호의 소개로 왔다고 말씀하십시오. 아마 최고로 모실 겁니다. 저기 붉은 간판 보이시지요?”

“......”

“많이 피곤해 보이시니 가셔서 피로를 좀 풀고 계시면 제가 초대장을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드님 세분과 같이 오셨나요?”

“......아니, 둘. 근데 그건 왜?”

“어르신. 초대장 없으면 아무도 못 들어오십니다. 저희가 보안이 얼마나 철저한지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걱정 말고 가 계십시오. 오늘이 지나가면 또 몇 달을 기다리셔야 했을 텐데 다행히 딱 맞춰서 오셨네요. 어르신께 행운이 따르는 모양입니다. 큭큭큭.”

“......”

“자주 열리는 행사가 아니긴 합니다만 찾아오셨던 분들 중에 후회하셨던 분들은 단 한분도 없었습니다. 저희가 수준이 아주 제대로 높거든요. 다른 나라에서도 찾을 정도이니...... 이정도면 아시겠지요?”

“......”

“10년 동안을 혼자 지내셨으면 이제는 찾으실 때도 되셨지요. 그것도 꽤 오래 참으신 겁니다. 저라면 하루도 못 참았을 겁니다. 인내심이 아주 기똥차십니다.”

“......”

“이왕 오신 김에 아드님들 마음에 드시는 상품도 구매하시면 좋겠네요. 입맛에 딱 맞춰 찾아드릴 수 있습니다. 저만 믿어 보세요.”

“......”

탐호의 입을 바라보는 류 충의 눈은 느리게 깜빡거리고는 있었지만 초점 없이 흐리멍덩했다.

사실, 류 충은 탐호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제 딴에는 비밀스럽게 말하려고 저렇게 목소리를 낮추나 본데 잘 들리지도 않았다. 바쁘게 주절거리는 입모양을 보고 있으려니 눈이 절로 감기면서 잠이 솔솔 왔다.

이놈이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구나.

저 느물거리는 눈짓은 또 뭐란 말인가.

한 대 확 때려 줄까보다.

아, 피곤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시진만 죽은 듯 자고 싶다.

우리 연이는 얼마나 더 가야 만날 수 있을까.

주먹밥은 이제 더 이상 보기도 싫은데.

딴 생을 하다 그것조차 귀찮아진 류 충은 탐호가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무시하기로 마음먹고 류 강연을 불렀다. 반쯤 졸고 있던 류 강연은 천근같은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렸다.

“아버지....제발 쉬었다 가시죠. 기해는 기절한지 오래에요. 이러다 사고 나겠습니다.”

“......안 돼. 우리 연이가......”

“쉬었다가 빠르게 쫒아 가는 게 더 효율 적입니다. 이렇게 가서는... 연이를 만나더라도...... 빼올 수는 없을 걸요......? 아시지 않습니...... 짐승의 힘.......”

류 강연의 말이 점점 느려지더니 말을 끝맺지도 않고 눈을 뜬 채로 고개를 꾸벅거린다.

류 충은 가물가물한 눈을 돌려 경호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말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몇몇은 말 등 위로 침까지 질질 흘렸다. 류 상연의 등 뒤에 엎어져 포대기로 칭칭 묶여있는 기해는 아예 의식을 잃고 죽은 거 같이 보이기도 했다.

결국 류 충은 탐호에게 물었다. 저 놈이 한 쓸모없던 말 중에 유일하게 귀에 꽂혔던 한가지였다.

“홍......그거, 어디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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