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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92화 (92/110)

00092  짐승, 꽃과 함께 사라지다.  =========================================================================

침상위에 죽은 듯 누워있는 화연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던 무영은 조용히 일어섰다.

화연은 도저히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며 몸을 일으켰다. 무영은 그런 화연의 어깨를 밀어 침상에 다시 눕혔다.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만지작거리다 어느새 끼고 있는 반지를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이거 그렇게 맘에 들어?”

“그럼요. 제 보물 1호예요.”

화연의 목소리는 고뿔에라도 걸린 사람 마냥 까슬까슬 하다. 그 목소리를 들은 무영의 눈에 다시 열기가 서렸다.

“흠......”

천근같이 느껴지는 몸을 반쯤 일으킨 화연은 옷을 다 갖춰 입은 무영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디 가시려고요?”

“응. 잠깐 밖에 나갔다 올까 했는데...”

“어디를요? 저도 같이 가요.”

무영의 말에 화연이 몸을 일으키면서 가슴 위를 이불로 감싼다. 울긋불긋한 쇄골과 팔에 눌리면서 생긴 가슴골로 시선을 내리던 무영은 갈등하기 시작했다.

굳이 지금 안가도 될 거 같은데...

조금 있다가 가도...

“음......가지 말까?”

“예?”

눈을 살짝 크게 뜨면서 고개를 갸웃한다. 검은 머리카락이 등 뒤로 넘어가면서 숨기고 있던 가녀린 어깨가 드러났다. 무영의 눈이 동그란 어깨를 핥듯이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조금 있다가 가지 뭐.

보석상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무영은 겉옷의 매듭을 풀었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비단 장옷이 미끄러지듯 조용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헉!”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하는 무영을 보고 화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러다 무영의 눈에 서려있는 정염의 기운을 읽고 화들짝 놀라며 이불을 꽉 부여잡았다.

“......어, 어디 가신다고......”

“생각해 보니 그리 급한 일은 아닌 것 같아. 조금 있다가 가도 되겠어.”

“조, 조금?......”

“응. 한 시진 정도 늦출까.”

“예? 하, 한 시진......씩 이나...요?”

‘ㅇ’자로 작게 벌어진 입술과 그 안에 보이는 붉은 혀까지 본 무영은 생각을 바꿨다.

“음......아니다. 오늘은 그냥 객실에 있어야겠어. 내일 가지 뭐.”

“자, 잠깐만요!”

“으음......”

말을 하면서도 착실하게 옷을 벗은 무영은 어느새 바지 하나만 남겨 두고 침상에 거침없이 뛰어 올라가더니 화연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다짜고짜 깨무는 이빨의 감촉에 화연은 어깨를 움츠리며 그의 팔을 잡았다.

“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건 안 좋은 버릇이에요.”

“꼭 오늘 해야 할 일 아니야.”

발갛게 자국이 난 부분을 어루만지며 무영이 입을 맞춰온다. 혀로 입술을 적시듯 핥더니 부드럽게 빨아들인다.

“으읏......”

“하......연아......”

그의 낮고 거친 목소리가 귓가를 적신다.

몸이 오싹해 지면서 마음이 들떴다. 화연은 또 꼼짝없이 그의 뜻대로 말려들어갈 것임을 알았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좋기는 좋았지만 힘들기도 했다. 연우일 때도 태형이 이렇게 쉬지 않고 달려든 적은 없었다.

화연은 12시간을 쉬지도 않고 달린 것처럼 온몸에 진이 다 빠졌다. 제 입안으로 들어오는 무영의 혀를 급히 밀어내며 그의 입을 막았다.

“자, 잠깐......잠깐만요. 하아......”

은사가 춤추는 회색 눈동자가 화연의 눈을 뚫을 듯이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을 막고 있는 손바닥 위에 입을 맞춘 뒤 손금 사이사이를 꼼꼼히 혀로 핥는다. 화연은 그의 눈동자 속에 있는 그 붉은 기운에 흔들리려 하는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저 너무 힘들어요. 조금......쉬었다가......으응......하, 하지 마세요. 정말 힘들어서......아......”

“......”

무영은 말없이 혀를 화연의 손목으로 옮겼다. 깃털이 지나가는 듯 간질거리는 느낌에 화연이 주먹을 꽉 쥐었다. 가느다란 손목 가운데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그 부분에 무영의 이빨이 자국이 다시 새겨진다.

“아.....그럼 약속해요.”

“뭘.”

“이, 이번이 마지막으로.....내일 까지는......아, 안 하기로.”

젖은 길을 만들며 위로 기어 올라가던 무영의 혀가 움직임을 딱 멈췄다.

“내일까지?”

“나 힘들어요. 정말로. 그러니까 내일까지는......응?”

팔을 살며시 잡아 흔드는 화연의 애교스러운 행동에 무영의 마음은 더 급해졌지만 가만히 있었다. 화연의 얼굴이 진짜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조차도 참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지만. 일단 참았다.

“......지금 좀 쉬면......밤에는......”

한풀 꺾여 보이는 무영의 말에 화연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좀 자고 나면 밤에는 멀쩡해질 거 같아요. 지금은 졸리기도 하고 힘들어서 그래요. 한, 두 시진밖에 못 잤잖아요. 조금 쉴 시간을 주면 좋겠는데......”

“......”

“안돼요?”

“......돼.”

가만히 생각하던 무영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지금 짧게 하는 것보다 밤에 길게 하는 게 더 좋아서가 아니다.

내일까지 건드리지 못해서도 아니다.

단지, 화연이 너무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 그거뿐이다.

지금 객실에 같이 있으면 결국 화연은 쉴 수가 없을 것이다. 무영은 침상 아래로 내려가 옷을 다시 입었다.

“그런데 어디 가려고 하신 거예요?”

“뭐 좀 사러.”

“조금 있다가 같이 갈까요?”

조금 더 있다가는 오늘 아예 밖을 못 나갈 거 같아 무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이 열기를 잠재울......수는 없겠지만 화연은 쉴 수 있겠지.

“아냐. 금방 갔다 올 거야. 절대 어디 나가지 마. 푹 자고 있어. 밤에는 무조건 말짱해 지도록. 알았지?”

다리가 후들거려 나갈 수도 없어요.

눈앞이 노랗다고요.

화연은 대답할 기운도 없어 풀썩 누워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 기운 없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무영은 이불을 잘 덮어준 뒤 화연의 뜨뜻한 볼에 입을 맞추고 방을 나섰다.

약재상에도 들렀다 와야겠다.

이런 곳에도 설삼이 있나?

무영이 구매할 목록이 하나 더 늘었다.

잠시 누워있던 화연은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몸을 일으켜 옷을 입고 머리를 틀어 올렸다. 무영이 오기 전 목욕이라도 해둘까 싶어 금줄을 당기고 종업원을 기다렸다.

잠시 후 바로 찾아온 종업원에게 목욕물을 부탁하고 창가에 앉았다.

눈을 감고 화창한 봄볕과 깨끗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던 화연은 피식 웃었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보다.

저렇게 자신을 끊임없이 원한다는 것이 눈에 보일정도로 강한데 싫을 리가 없었다. 눈빛, 손짓하나하나에 사랑한다는 속삭임이 가득한데 어찌 싫을 수 있을까.

다만, 너무 감당하기가 벅차서 그렇지.

어제 그 배안에서부터 화연은 마음먹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와 하나가 될 때가 왔다는 것이.

그동안 그는 자신에게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내색은 안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같은 침상에 누운 그가 몇 번이나 뒤척거리며 잠을 못 이룬 다는 거, 모를 수가 없었다. 말은 하지 않지만 태울 듯 보는 그 강렬한 시선은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목말라 있는 그 마음이 보이는데도, 조급해 보이는 그 눈빛을 하고도 한 번도 나에게는 재촉하지 않았었다.

어쩔 수 없이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제외하고.

마음만 나눴을 때 보다 더 충만하게 차오르는 것 같았다. 서로에게 완전하게 속해 있는 기분에 가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

더 빨리 허락할걸 그랬어.

다만, 조금만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꼭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달라붙으니 힘들어 죽겠다.

탁-

피식 피식 웃으며 해바라기를 하다 갑작스럽게 들린 소리에 눈을 뜨니 바닥에 뭔가가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응?”

어지럽게 빙빙 돌던 그것은 둥글납작한 모양이었는데 손바닥보다도 작았다. 검붉은 색 나무로 된 동그란 뚜껑에는 작은 종이가 붙어있었다.

-바흐새오-

그것을 집어 종이에 적힌 글을 읽은 화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흐새오? 바흐새오가 뭐지? 상표이름인가?

하지만 상표라고 하기에는 글씨가 너무 이상했다.

꼭 어린 아이가 쓴 것 같았다.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힘주어 또박또박 쓴.

객실에는 이런 게 분명히 없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나무뚜껑에 붙어있는 종이를 떼던 화연은 순간 멈칫했다.

종이는 누런 밥풀로 붙어있었다.

“......?......”

......왜 밥풀로......

의심쩍은 표정으로 종이 뒷면에 뭉개진 밥알을 보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여니 청량한 풀냄새와 함께 쓴 냄새가 확 풍겼다.

“어......? 이거......”

말캉말캉해 보이는 연녹색 액체는 점성을 띄고 있었는데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화연은 번뜩 든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은 연못에 빠졌을 때 생긴 팔의 상처에 궁의가 발라줬던 그 연고와 냄새도 색깔로 비슷했다. 이 연고 이름이 바흐새오인가보다.

이게 어디서 들어왔나 싶었지만 문도 닫혀있고 열려있는 곳은 창밖에 없었다. 잘못 던진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화연이 있는 객실은 3층으로 우연히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힘든 높이다.

그럼 누군가 일부러 던져줬다는 건데.

누군가 화연 또는 무영이 이걸 발라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그이도 그렇고 나도 이런 걸 발라야 할 만한 상처가 없는데......

누가 왜 이런 걸 일부러 던졌지?

하고 생각하던 화연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흡사 껍질이라도 벗겨진 것 같은 그 따끔한 느낌에 무심코 손을 가져가려다 얼굴을 삽시간에 붉혔다.

자신에게는 상처로 오해받을 만한 곳이 많았다. 아니, 오해가 아니라 상처가 맞긴 한데 그런 상처는 아니고......사실, 겉보기에는 다친 상처가 아니라 전염병의 반점에 더 가까웠지만. 아무튼 무영이 장난으로 창 밖에서 이걸 던져 넣은 게 분명했다.

이 남자가 정말!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을 감싸며 발을 구르다 서둘러 밖을 내려다보았지만 무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만 던져 넣고 내가 화내기 전에 몸을 피했나 보다...

화낼만한 짓이라는 건 아나 보지?

샅샅이 훑었지만 무영의 얼굴은 보이지 않아 한숨을 쉬는데 대신 객사 입구에 잔뜩 서있는 말들이 보였다. 한 열 마리 정도의 말 사이에 마차까지 서있었다. 1층 입구에 길게 처진 천막 안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 들어간다. 어디 지체 있는 댁에서 단체로 여행이라도 왔나 싶어 마차의 문장을 유심히 보고 있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섰다.

“손님, 물 준비되었습니다. 욕실에 있는 문을 열어주세요.”

“아! 맞다.”

물을 벌써 준비했단 말이야?

아침이라서 미리 데워놓았나 보다.

이 객사는 욕실에 따로 나있는 문으로 종업원들이 들어와 욕간통에 물을 채워주었는데 다른데 정신이 팔려 깜빡하고 그 문을 열어 놓지 않았었다.

연고를 주머니에 넣은 화연은 생각보다 빠르게 준비해준 종업원에게 감사의 표시로 줄 은자를 꺼내기 위해 짐을 뒤적여 봤지만 무영이 가져갔는지 돈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주머니 몇 개 있었던 거 같은데...

짐을 뒤지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손님.”

“잠시 만요.”

하는 수 없이 나중에 챙겨주기로 하고 뒤적거리던 짐을 대충 집어넣는데 문소리가 또 들린다.

“손님, 빨리 열어주세요!”

왜 저러지?

저렇게 여러 번 재촉한 적이 없어 화연은 문 쪽을 가만히 보다 일어섰다. 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던 화연의 걸음이 덜컥 멈추었다.

문 틈새로 지독한 연초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이건 기억에 있는 냄새다.

그 때 꺼림칙했던 그 남자의 연초냄새.

위기감이 엄습했다.

이 문은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

얼어붙어 있던 화연은 조용히 뒷걸음질을 쳤다. 고개를 돌려 창을 흘끔 쳐다보았다. 아까 내려 보았던 이곳의 높이를 떠올렸다. 높았지만 밑에 천막도 있고 비가 와서 땅도 무르다. 잘하면 크게 다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결심을 한 화연이 창을 향해 뛰려는데.

쾅-

소리와 함께 잠금쇠가 활짝 벌어지면서 문이 열렸다.

“안녕, 도령. 오래간만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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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놋북과 폰을 주섬주섬 챙기며 슬며시 일어난다) 전 이만... 바, 바빠서.......

독자 : (작가의 뒷목을 갈고리 손으로 움켜쥐며) ......장난 하냐?

작가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사실, 괴롭히는 건 저놈들 보다 무영이 더......

독자 : ......

작가 : 몸 좀 보라고요. 얘가 지금 잡아먹히게 생겨서......

독자 : ......

작가 : 요양 겸 휴, 휴가 간 셈 치면......길지도 않을 텐데......

독자 : ......

작가 : ......사, 살려주십쇼.

......쿨럭.

꽃짐 작품소개를 보면 이런 말이 적혀있습니다.

[동양/개그/로맨스]

꽃짐은 개그로맨스지 액션범죄스릴러로맨스가 아니라는거죠.

작가는 개그를 사랑한다고 수줍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잉.

그러니까,

거, 거기...... 돌 좀 내려놓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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