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1 짐승, 꽃과 함께 사라지다. =========================================================================
“이봐요! 이리 좀 나와 봐요.”
“에, 예?”
“할 말 있으니 좀 보자고요!”
“......예.”
하륜은 자신의 방문을 거세게 두드리더니 대꾸도 하기 전에 문을 벌컥 여는 화려한 차림의 여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여인은 문지방에 기대고 서서 하륜을 손가락으로 까닥까닥 불렀는데 그 기세가 어찌나 흉흉한지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쪼그라들었다.
“...왜...그러시는지......”
“후......당신 상전 말이야. 진짜 계속 그럴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기는 했지만 존댓말은 해줬었는데......
하늘같은 손님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 당신 이따위로 영업 할 거야?!!
......라고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동안 자신이...아니, 자신의 상전이 한 짓이 있기 때문에.
“또......그러셨나요?”
눈 꼬리가 잔뜩 올라간 여자는 장초를 입에 물어 깊게 빨더니 하륜의 얼굴에 후- 뱉었다.
“처음에 오자마자 술부터 음식에다 방까지 트집이란 트집 다 잡은 거. 그거까지는 내가 백보양보해서 이해해줄 수 있어.”
“쿨럭......”
이해심이 참 깊으시군요. 저는 그것도 이해 안 되던데...
“무슨 황궁에서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내오라고 하지를 않나. 황족들이나 드실 수 있는 술을 가져오라고 하지를 않나, 황궁에 버금가도록 방을 꾸며달라고 하질 않나......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지가 황제야? 아님, 황족이라도 돼? 그럼 황궁에 있지 왜 이런 기루에서 묵길 묵어?!!!”
“......”
“......라고 생각했지만, 이해해 줬다 이거야. 그리고 최대한 맞춰줄 수 있는 건 다 맞춰드렸어. 그치?”
“...그렇죠...”
“무슨 밥상 받는 것도 아니고 여자를 하루 세 번 이상 꼬박꼬박 바꾸는 것도......그래, 이거까지도 이해해. 이 장사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그런 놈들 가끔 있거든. 밝히긴 엄청 밝히는 주제에 같은 거 두 번 먹는 건 절대 싫어하는 놈들.”“......”
반말에다가 이제는 손님도 아니고 놈 이구나...
하륜은 가만히 고개를 수그렸다.
그의 얼굴을 노려보던 여자는 갑자기 손바닥으로 방문을 세게 내려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어떻게 여자를 매 시진마다 바꾸는 것도 모자라서 하나같이 뭐가 마음에 안 든다며 온갖 트집을 다 잡느냐 말이야!! 우리 집에 있는 애들 지금 당신 상전 방은 한 번씩 다 들어갔다 온 건 알아? 그것도 단, 이틀 만에?”
“그, 그랬습니까?”
“그래!! 그것도 꼭 일을 치르려고 하면 나가라고 하는 데 이건 무슨 심보야? 그것도 면박이만 면박은 다 주면서 말야! 당신 같으면 일을 치르기 직전, 갑자기 여자가 당신 얼굴이 못생겨서 흥이 안 난다고 내치면 좋겠어? 좋겠냐고!!?”
“......”
“목이 너무 짧다느니, 코가 너무 들렸다느니, 뭐? 어깨가 너무 넓다고? 이마가 너무 좁아? 얼굴이 커?......내가 어이가 없어서. 이봐! 화양주에서는 우리 집 애들이 최고야!! 우리 집 오신 손님들 중에 그딴 불평을 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이거 왜이래? 당신들도 다른 기루에 갔다 와 봤으니 알거 아니야!”
“죄, 죄송......”
“죄송? 죄송하다면 다야? 무슨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맞춰줄 거 아냐!! 지금 우리 애들이 당신 상전 때문에 일 못하겠다고 울고불고 난리치는 거 알아? 생긴 거 하나는 착하게 잘 생겼드만 말 그렇게 막 해도 되는 거야? 엉? 우리가 이런 장사 한다고 우습게 보여? 우리는 뭐 상처도 안 받는 돌덩이인줄 아냐고!”
“그런 게 아니라......”
“아, 됐고! 계속 이럴 거면 내 집에서 나가! 억만금을 준대도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그리고 내가 미리 충고해두겠는데 여기서 나가도 다른 기루는 못 들어갈걸? 이 동네에 당신들 진상 짓, 소문 쫙 났어. 이제 누가 받아주기나 할 거 같아? 다른 집 같으면 벌써 쫓아냈어! 나니까 봐주는 줄 알라고!”
“......네......”
여자는 서릿발 같은 기세로 하륜을 위아래로 훑다 장죽을 물고 사라졌다. 눈앞을 가리고 있는 매큼한 연기를 손으로 휘젓던 하륜은 이내 주먹을 불끈 쥐고 쿵쾅거리며 방을 나섰다. 목적지에 도착해 힘차게 문을 두드리려는데 방안에서 얇은 실처럼 흘러나오는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하륜은 문에 기대고 쭈그리고 앉았다.
“젠장......본국에서도 당하던 취급을 타국에 와서까지 당하다니.”
처량한 몰골로 신세한탄을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활짝 열려 뒤로 벌렁 나뒹굴었다.
“어이쿠! 어, 어......?”
“이건 또 뭐야?!! 여기서 엿듣고 있었어요? 당신 변태야? 진짜 상전이나 아랫것이나......별......쯧. 아, 저리 비켜욧!!”
겉옷만 대충 걸친 여자가 미간을 있는 대로 찡그리면서 하륜을 내려 보다 욕설을 내뱉으면서 발로 밀었다. 찬바람을 일으키며 고개를 확 돌린 여자가 옷을 여미면서 방을 나가 버렸다. 얇은 속치마 사이로 비치는 늘씬한 종아리를 가만히 보던 하륜은 머리를 흔들며 벌떡 일어섰다.
씩씩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서니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장침에 비스듬히 기대어있는 다언이 보였다.
비녀로 대충 틀어 올리고 있던 금실 같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흘러내려 탄탄한 가슴 아래에서 흔들거렸다. 앞섶이 벌어져 있는 바지는 기생이 손댄 그대로 제대로 여며있지도 않아 시선을 더 내렸다가는 절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될 것 같아 하륜은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창 밖 먼 산을 보고 있는 청록색 눈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흐릿했다.
하륜은 그 앞에 털썩 꿇어앉으며 눈썹을 늘어뜨렸다.
“다언님. 계속 이러시다가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여기서 쫓겨나게 생겼다구요!”
“널리고 널린 게 기루다. 다른 곳으로 가면 되지 뭐가 그리 걱정이야?”
“이번엔 뭐가 또 마음에 안 드셔서 그러시는데요?”
“피부색이 너무 어두웠어.”
“피부색이 너무 밝다. 입술색이 너무 흐릿하다. 눈썹이 굵다. 키가 너무 크다. 눈이 너무 작다. 너무 뚱뚱해, 너무 말랐어. 이렇게 몇이나 퇴짜를 놓으셨는지 아십니까? 말씀이라도 좀 가려서 해주시던가요. 아무리 기생이라도 여자 아닙니까.”
“쳇. 기생주제에 무슨......싸가지 없는 것들. 지들이 무슨 지체 높은 댁 규수라도 된다는 거냐?”
“그럼 처음부터 어떤 여자가 좋다고 명확하게 말씀을 하시던가요!! 매번 기생들을 품으려다 별 이유를 다 들어 내치시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것도 외모에 관한 것만 그렇게 콕 집어 말씀하시는데 상처를 받지 않으면 이상하지요.”
“흥! 난 틀린 소리 한적 없어. 다 할만 해서 한 것 뿐. 하여튼 못생긴 것들이 말은 참 많아.”
“이곳이 요 근방에서는 가장 좋은 기루 아닙니까. 그런 소리를 들어나 봤겠습니까? 괜한 트집 잡는다며 얼마나 도끼눈을 하고 쳐다보는 줄이나 아십니까? 뒤통수가 따가워서 돌아다니지도 못한단 말입니다! 방금 전에도 여기 루주에게 한 대 얻어맞는 줄 알았다고요! 이렇게 할 거면 당장 나가랍니다.”
“여기는 물이 영별로야. 텄어. 다른 데로 갈까......”
“이 주변에서 우리 받아줄 기루는 이제 없을 걸요? 진상 중에도 진상이라고 벌써 소문 쫙 났답니다. 오죽 까다롭게 구셨어야지요. 여죽 이 정도는 아니셨잖습니까.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제국치고는 여자 수준이 참 거지같아. 에이...입맛만 버렸어. 너무 실망스러워.”
“제가 보기에는 다 곱던데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던데요! 이럴 바에는 그냥 본국에서처럼 기루를 통째로 빌리시라니까요. 그럼 말이 안 나올 거 아닙니까.”
“안 돼. 그럼 그 기루에 있는 기생밖에 못 안잖아.”
“......”
무슨 여자에 환장한 것도 아니고......
어째 본국에 있을 때보다 더 심해졌다. 말처럼 기생마다 죄다 안는 것도 아니면서 바꾸기만 오지게 바꾼다. 그렇다고 여기가 수준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예전에는 잘만 끼고 놀던, 제가 볼 때는 그 보다 더 높은 수준인데도 모두 맘에 안 든다고 유난을 떨었다. 요 며칠사이 급격하게 늘은 상전의 진상 짓에 하륜은 한숨을 쉬면서 말을 말자고 중얼거리다 포기한 얼굴로 물었다.
“휴......알겠습니다. 그럼, 장소를 옮기시겠습니까?”
뭔가를 생각하며 장죽을 빨던 다언이 씩- 웃으며 하륜을 쳐다보았다.
“검은머리를 가진 기생이 있을까?”
“......결국, 그거였습니까? 검은머리?”
“거 참 이상하단 말야......잠깐 본 것뿐인데 눈에 계속 아른거려. 생각하면 가슴도 두근거리고. 아무리 미색이 곱다는 기생이 들어와도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게 된단 말이지. 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들이긴 했는데 막상 하려면 동하지가 않아.”
“......말씀만 들어서는 꼭 첫눈에 반한 것 같네요.”
다언의 눈이 놀란 듯 거지더니 이내 잔뜩 휘어졌다. 방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종국에는 웃다가 배까지 잡고 데굴데굴 구르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경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풋......! 푸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아, 진짜 웃기다. 큭큭큭......크하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아이고, 나죽네!! 하하하하!!”
“그게 그렇게 웃기십니까?”
“그럼 안 웃겨? 큭큭큭큭큭. 아, 진짜......복근 찢어지는 줄 알았네......아, 배 아파. 이거 눈물까지 나왔잖아? 어- 실컷 웃었네. 하륜아, 하륜아. 그런 건 멍청하고 별 볼 일 없는 못난이 들이나 하는 짓이야. 얼마나 여자가 없으면 처음 본 여자한테 한눈에 반하겠냐? 세상에 많고 많은 게 여잔데. 손가락만 까딱해도 안길 여자가 수두룩한데 내가 왜? 가만 보면 너도 참 이상한 부분에서 모자라게 굴더라.”
“......그러시군요.”
그것과 첫눈에 반하는 게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다언이 첫눈에 반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반박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큭큭큭큭큭......흠, 흠......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기루를 옮기는 건......보류. 다른 곳도 마찬 가지일 테니 옮겨 봤자 그게 그거지. 그리고 여기가 경매장과 제일 가깝다며?”
“그래도 여기는 나가시는 게......”
“지금부터 여자는 필요 없다고 전해. 그럼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예? 정말이십니까? 필요 없으시다고요? 왜요? 하루라도 여자가 없으면 못 주무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어차피 진짜가 아니면 필요 없어. 기다렸다가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미리 힘을 빼놓을 필요는 없지.”
“그러다 생각했던 그 분이 아니시면 어쩌시려구요?”
“말했잖아. 상관없다니까.”
“그렇게 말씀은 하셨는데......”
하는 짓은 전혀 아니니까 그러지.
하륜은 탐탁지 않게 다언을 바라보다 뒷말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다언은 상관없다는 듯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거리다 상체를 퍼뜩 세우며 물었다.
“그런데 내가 전하라는 말은 다 전했지? 머리색 희한한 남자랑 같이 다니는 여자. 그거 다 제대로 전했어?”
“......예.”
“흠...그래? 확실 한 거야? 뭐 빼놓은 거 없고? 남하강 가기 전, 산 초입 정자에서 봤다는 것까지 다 말했어?”
“그렇다니까요.”
“근데 왜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지? 경매 날이 코앞인데...옷을 뭐 입었다는 것까지 다 말해줄걸 그랬나? 아니지...옷은 갈아입으면 그만이니까. 아! 머리색도 바꾸면 그만인데.....그냥 여자의 생김새에 대해서 말해줄 걸 잘못했다. 음...그래. 그게 좋겠어. 하륜.”
“......예.”
“내가 말해 줄 테니 그들에게 여자의 생김새를 자세하게 전해줘. 하나도 빠짐없이......뭐해? 안 적고?”
“......적어야 할 정도로 깁니까?”
“당연하지. 내 눈썰미를 뭐로 보는 거야?”
“......지필묵을 가져오겠습니다.”
“얼른 가져와! 아, 이럴게 아니라 초상화를 그려줘야겠군. 내가 왜 그 생각을 미리 못했지? 이거 너무 늦은 거 아냐? 아니지......거리가 있으니까 아직 늦지는 않았을 거야. 응, 응. 맞아.”
하륜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호들갑을 떠는 다온을 물끄러미 보다 조용히 일어섰다.
거, 참 유난스럽기도 하다.
차라리 상관없다고 말하지나 말던가.
게다가 이제는 검은머리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여자 자체가 중요해 보인다.
저렇게 기대를 하는데 뜻대로 안되면 또 난리를 치겠지.
한번 꼬라지 부리면 아무도 못 말리는데......
저러다 된통 당해 봐야지 정신을 차리지...쯧쯧쯧.
하륜의 표정은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진 마냥 어둡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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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쟤가 그린 초상화가 실물보다 100배 예뻤기 때문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됐다는.
쟤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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