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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86화 (86/110)

00086  짐승, 꽃과 함께 사라지다.  =========================================================================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 류 충은 말을 타고 산길을 거침없이 달렸다.

그 놈이 화연을 납치해 간 뒤 하루하루가 편할 날이 없었는데 이제야 그 처 죽일 놈을 잡으러 간다고 생각하니 몸이 날아갈듯 편했다. 십년은 젊어진 것처럼 가벼웠다.

이제 이 산만 넘으면 내 금쪽같은 연이를 되찾는 거다.

드디어 내 목숨보다 소중한 내 새끼를 만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보물을 훔쳐간 도적놈에게는 정의의 철퇴를 내려 줘야지.

아주 강하게! 눈물콧물이 쏙 빠지도록! 아주 살려달라고 싹싹 빌게 만들어 주마!

천하에 둘도 없는 도적놈 같으니라고. 흥!!

“으하하하하! 이랴!! 달려라, 달려! 후딱 가서 짐승을 때려잡자!”

류 충은 눈앞에 무영이 서있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빛내며 말을 쉼 없이 채찍질 했다.

수염이 휘날리도록 하염없이 말을 몰고 있는데 저 앞에 10척 정도 되어 보이는 넓이의 개천이 보였다. 촉촉이 젖어있는 맨 질한 돌이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솟아 있는 걸 보니 가까이 가봐야 확실하겠지만 깊은 물은 아닌 것 같았다.

평소였다면야 천천히 돌아가거나 건너더라도 위험하니까 말에서 내려 조심히 건넜을 텐데 지금 류 충은 몸이 너무나 가벼웠다.

저 정도야 뛰어 넘어가면 되지.

“응? 저건......”

말의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한 번에 뛰어 넘을 생각이었던 류 충은 개천에 가까이 다가가가 눈에 들어온 것 때문에 급하게 말을 멈춰 세웠다.

달려가던 속도로 한참 만에 말을 멈춘 류 충은 말에서 내려 서둘러 개천으로 다가갔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개천 바로 앞에는 한 아이가 주변에 있는 돌을 끙끙거리며 들고 와 물속으로 하나씩 집어넣고 있었다. 아이는 쪼그리고 앉아 물속을 들여다보다 한숨을 내쉬기까지 했다.

가까이 다가간 류 충은 작게 들려오는 귀여운 한숨소리에 피식 웃다가 아이를 불렀다.

“얘야.”

“응?”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이는 고개를 훽 돌리더니 류 충을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얼굴을 본 류 충은 너무 놀라 심장이 떨어질 뻔 했다.

너 댓 살 되어 보이는 아이는 화연의 어렸을 때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다만, 화연은 몸이 아팠는지라 저렇게 건강해 보이는 혈색도 통통한 볼도 없었지만 이목구비는 너무도 비슷했다. 심지어 눈동자 색깔까지 검푸른 색이었다. 누가 봤으면 분명히 류 충이 늘그막에 주책을 부려 늦둥이를 나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자 주변을 살폈다. 어떤 정신 나간 부모가 이렇게 어린 아이를 이런 깊은 산중에 홀로 놔두고 자리를 떴는지 보기만 하면 한소리 해줄 작정으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주변에는 이 아이와 자신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류 충은 아이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얘야. 엄마는 어디 있는 게냐. 아빠는?”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으로 돌멩이 만 만지작거렸다.

이곳에 버렸구나.

혹시라도 찾아올까봐 이런 산속에 버린 게야.

이 얼어 죽을 놈들이!

류 충은 쌍욕이 터져 나오려고 하는 걸 꾹 참으며 아이에게 활짝 웃어 주었다.

“그럼, 여기서 뭐하고 있었던 게야? 돌멩이 가지고 놀고 있었느냐?”

아이는 가만히 있다가 류 충을 슬쩍 쳐다보더니 물속을 바라보았다.

“......너무 깊어서 못 건너요.”

아이의 자그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류 충은 개천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인 무릎을 간신히 넘는 정도로 그리 깊지 않은 물에는 돌도 드믄 드믄 놓여있었지만 아이가 건너기에는 무리였다.

류 충은 네 말이 정말 맞다며 맞장구를 쳐주다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작은 머리와 아이 특유의 비단실 같은 머리카락이 느껴졌다. 정수리는 따뜻했고 젖내가 약하게 풍겼다. 부끄러웠는지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분가루 날릴 것 같은 하얀 볼에는 발그스름하게 물이 들었다.

하는 행동까지 우리 연이 어릴 때와 판박이구나.

어쩜 이리 귀여울꼬.

“그랬구나. 헌데, 저기는 왜 건너려고 했을꼬?”

“......엄마, 아빠한테 가려고......”

류 충은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개천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 아래로 흐르는 개천이라 유속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돌 위에는 이끼들도 잔뜩 끼어 있었다. 이런 곳을 저 어린것이 혼자 건너겠다고 그 고생을 했다니. 하필 물속에 넣어도 왜 저렇게 큰 돌만 넣나 했었다. 자신이 옮길 수 있는 가장 큰 돌을 넣어 징검다리삼아 건너려는 생각이었겠지. 고사리 같은 손에 생채기 가득생기더라도 부모를 만나기 위해서.

류 충은 아이의 부모를 치도곤 낼게 아니라 어떤 부모인지 확인해서 몹쓸 놈들 같으면...보나마나 뻔 하겠지만...아이를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건너게 해주련?”

“......어떻게요?”

“내가 타고 온 말에 네가 타거라. 그걸 내가 끌어 건너편에다 내려주면 되지 않겠니?”

“어......근데......말은 어디 있어요?”

“응? 저 뒤에......어?”

류 충은 고개를 돌려 말을 찾았지만 어떻게 된 노릇인지 말은 꼬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훈련된 명마라 제 마음대로 자리를 벗어나는 일이 없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자신이 당황하는 기미를 보이자 아이의 표정도 덩달아 근심스러워 졌다.

그래, 어차피 이 산만 넘어가면 되는데 말은 없어도 되지.

류 충은 말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말 없어도 너는 건너게 해줄 수 있단다. 걱정 말거라.”

아이는 의도를 가늠하듯이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한 참 뒤 머뭇거리면서 류 충의 손을 꼭 잡았다. 포동포동하고 연 두부 같은 아이의 손이 한손에 쏙 들어왔다. 너무 작아 뭘 잡은 것 같지도 않았다.

이렇게 작은 손으로 저런 돌을 옮겼다니......

류 충은 다시 한 번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면서 조심스럽게 아이의 손을 잡아 목에 걸치게 하고 안아 올렸다.

깜짝 놀란 아이가 숨을 들이쉬며 류 충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작은 동물 그 같은 행동에 류 충은 허허 웃으며 개천에 발을 담갔다.

발밑을 조심하면서 신중히 돌을 돌라 딛고 건너기를 얼마쯤 지났을까.

목에 매달려 있던 아이가 류 충의 귀에 속삭였다.

“할아버지.”

아이의 부름에 류 충은 다리에 힘이 쭉 빠지려는 걸 겨우 이겨냈다. 입이 귓가에 걸리면서 광대가 터질듯 부풀어 올랐다. 눈 꼬리가 절로 휘어지면서 가슴이 간질간질 해졌다.

“오냐, 오냐. 이 할아비한테 말해보렴.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게야? 응?”

“할아버지......아빠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응? 아빠라니?”

아...혹시 부모를 찾아가서 내가 혼쭐을 내줄 거라는 걸 눈치라도 챈 건가?

아직 어린데 참 영특하구나. 효심도 어쩜 이리 깊어.

이런 복덩이를 제 발로 차버리다니 멍청한 것들.

류 충은 이제 부모를 찾을 생각도 지워버렸다. 지들이 먼저 버렸으니 나중에 딴소리는 안하겠지.

그냥 이대로 집에 데려가야겠다.

맛난 것도 잔뜩 해 먹이고, 예쁜 꼬까옷도 바로 지어 올리라고 해야지.

머릿속에서 아이는 벌써 류 가(家)의 앞마당에서 뛰어 놀고 있었다. 류 충은 헤벌쭉 해지는 입가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러마.”

어차피 부모를 만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리고요...”

“응, 응. 그래, 그래. 또 뭐? 하고 싶은 말 할아비한테 모다 말해보련.”

“지금 가시는 곳이요......”

“응? 지금 가는 곳?”

“네, 할아버지랑 외삼촌이랑 지금 가는 곳 말예요.”

“응?”

조근 조근한 아이의 말을 듣던 류 충은 고개를 갸웃했다.

외삼촌?

무슨 외삼촌?

류 충은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아이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 일단 맞장구를 쳤다.

“아! 아, 아,  그, 그 곳 말이구나? 그래. 거기가 왜? 할아비랑 같이 갈까?”

“그게 아니고요...빨리 가셔야 해서요. 지금보다 더 빨리 가셔야 해요. 지금처럼 가면 안돼요.”

얘기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아이의 말은 쉽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류 충은 머릿속을 정리했다.

내가 지금 가는 곳은 우리 연이가 있는 곳이다.

그럼 아이의 말은 그곳으로 빨리 가라는 건가?

왜?

어느새 개천을 다 건넌 류 충은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며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얘야.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느냐? 할아비는 참 궁금하구나.”

아이의 검푸른 눈은 류 충을 곧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늦으면... 나 할아버지 못 만나요. 나는 할아버지 빨리 보고 싶어요. 근데...할아버지가 늦어서 오빠만 만나고......나는 못 만나고......나도 보고 싶은데.......”

두서없이 말을 하던 아이는 뭐가 그리 서러운 건지 큰 눈에 금세 눈물을 가득 채우더니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소리도 내지 않고 작은 입술을 떨면서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우는 모습도 우리 연이와 똑 닮았구나.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류 충은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기 바빴다. 아이가 한 소리는 당최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어 해석을 포기했다. 괜히 알아듣는답시고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가 아이의 눈에서 아까운 눈물만 뽑을 것 같았다.

끝없이 솟아나오는 눈물을 산적 같은 손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고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누군가 등 뒤에서 말을 걸었다.

“쯧, 울지 말랬잖아. 괜찮을 거라니까 말을 안 듣고 여기까지 나와 있어?”

류 충은 아이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지는 것을 보고 서둘러 몸을 돌렸다.

장신의 남자가 바로 뒤에 서 있었는데 그를 본 류 충의 눈도 아이처럼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헉!! 저, 전하......?”

남자의 얼굴은 무영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남자의 검푸른 눈이 짜증스러운 기색을 띠며 찌푸려졌다.

“아니거든요!!!.......아, 진짜.......아무튼, 할아버지 그 아이 저 주세요.”

“응?”

버럭 신경질을 부리던 남자는 류 충에게 안겨있는 아이의 몸통을 잡아 올렸다.

아이를 품에 안은 남자는 아이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고, 볼을 쓸어 눈물자국을 지워주었다.

“어디 갈 때 오빠랑 같이 가야 한다고 했잖아. 오빠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오빠 미안해......근데......”

“걱정하지 말라니까. 이번일 하고 전혀 상관없다고 오빠가 말했지? 잘못되더라도 조금 늦어지는 것뿐이야.”

“......늦는 거 싫은데......”

남자의 품에 안긴 아이가 손가락을 꼬물거리면서 풀죽은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다가 아이의 통통한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고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투는 엄했지만 눈빛은 절절 녹았다.

“알았어. 오빠들이 다 알아서 해줄게. 그것보다 너 이렇게 돌아다니면 안 돼. 그럼 건강하지 못하게 태어난단 말이야. 오빠들 걱정하는 거 또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아냐, 아냐.  오빠, 미안해.”

류 충은 이들의 얘기를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남자의 얼굴과 아이의 얼굴만 넋을 놓고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

남자는 아이를 한번 추슬러 안더니 류 충을 향해 씩- 웃었다.

“할아버지 일단 일이 이렇게 됐으니까 빨리 서둘러 주세요. 늦으면 그만큼 더 늦어져요.”

“응?”

“엄마랑 똑 닮은 손녀 보는 게 소원이라면서요. 정말 똑같이 닮았죠?”

“응?”

“우리 중에는 얘만 여자 애인데다 엄마랑 똑같아서 참 아끼고 있어요. 정말 예쁘죠?”

“응?”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조금만 빠르게. 아셨죠?”

“응?”

“아! 셋째 외삼촌 꼭 챙겨서 가시고요.”

“응?”

“그럼 이제 일어나세요.”

멍청한 얼굴로 대답만 되풀이 하는 류 충에게 남자는 할아버지에게 인사해야지? 하더니 아이의 팔을 잡아서 흔들었다. 그들이 연기처럼 사라질 때까지 류 충은 그들의 뒤통수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남자와 아이의 머리는 타는 듯 붉었다.

*

“으허허억!!!”

“아버지!”

류 충은 객사가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다 침상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허억!! 헉, 헉, 헉......”

객실 바닥에 두꺼운 모포를 깔고 쪽잠을 자고 있던 류 강연은 류 충의 비명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악몽이라도 꾸셨어요?”

침상에 앉아 거친 숨을 내쉬던 류 충은 목이 마른지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내밀었다.

“물 좀 다오”

류 강연이 준 물을 남김없이 들이켠 류 충은 가만히 생각을 하다 벌떡 일어섰다.

“상이는 감현(縣)에 있다고 했지?”

“예, 무전취식하다가 잡혀서 거기서 오도 가도 못한다고 기해가 전갈을 보내 왔었죠. 왜 그러세요?”

“짐 꾸려라. 당장 감현(縣)으로 가자.”

“예? 아버지....지금 동도 안 텄는데요?”

“아, 잔말 말고 어서!!”

“에.....예.....”

무슨 안 좋은 꿈이라도 꾸셔서 저러시나...하던 류 강연은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방금 전에 자신이 몇 번이나 아버지라고 불렀는데도 여느 때처럼 ‘아버지라니요? 실례지만 누구신지...?’ 라고 안하시는 걸 보니 이제 슬슬 용서해 주시려나 보다.

경호 대원들을 깨우러 가는 류 강연의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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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하늘 좀 그만 올려 보세요.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비가 오기만을 목이 빠저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임.

어휴...이 귀여운 독자님들...

사, 사, 사, 사정...아, 아니 아니. 실수. 실수.

흠흠, 사랑합니다.

youngae님, 레이니엘님, 삐쒸님, 방판의여왕님, HYEJI님, 라흐브르님 후원 감사합니다.

요즘 후원해주시는 분이 갑자기 많아져서........

작가는 훌라춤을 춥니다.

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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