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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85화 (85/110)

00085  짐승, 꽃과 함께 사라지다.  =========================================================================

식사를 마치고 어스름해질 때까지 강변을 걷던 무영과 화연이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거기, 머리색 희한한 총각하고 나비 쓴 처녀. 이리 좀 와보게. 내가 애정운 하나는 아주 기가 막혀. 아, 어여 와 보라니까.”

화연은 자신을 부르는 건가 해서 두리번거리다 구부정한 어깨에 카울을 걸치고 있는 노파를 발견하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반면 무영은 노파를 보더니 눈을 빛냈다.

“어머......저 분......여기서도 보네요.”

“희한한 인연이군. 가 볼까?”

노파 앞에 다가간 무영은 안고 있던 화연을 의자에 앉히고 그 옆에 털썩 앉았다.

다리가 아파서 저렇게 안고 다니나 싶었는데 처녀는 멀쩡해 보였다.

노파는 팔불출 마냥 여자에게 홀딱 빠졌다는 걸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는 듯 한 무영의 행동에 혀를 찼다.

“어이구...나 원 참. 남우세스러워서......쯧. 애정운 볼 거지?”

무영은 그 작은 간이의자에 용케도 다리를 꼬며 비스듬히 앉았다.

“무슨 점쟁이가 그래? 내가 이렇게 안고 다니는 거 보면 모르겠어? 우리는 애정운 같은 거 필요 없어.”

저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자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연장자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치도 찾아 볼 수 없는 무영의 말투에 화가 난 노파는 앞에 있던 간이 탁자를 손으로 내려치며 삿대질을 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손님 한번을 못 받고 이렇게 죽치고 있는 것도 열 불나 죽겠는데 처음 온 손님이란 것들이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니...삿대질 하는 노파의 손가락 끝에는 오늘 하루 종일 쌓였던 분노가 응집되어 있었다.

“아니, 그럼 왜 왔냐! 그냥 땅 끝까지 쭉 안고 다닐 것이지 여기는 왜 왔어? 엉? 지금은 죽고 못 살지 몰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의 운이야! 뭐 알지도 못하면서......정말, 내가 이 꼴 보기 싫어서 수도에서 예까지 내려 온 건데 말이지......하여튼 요즘 젊은 것들은......가만. 이 싸가지 밥 말아 먹은 듯 한 말투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투인데.......어디서 들었더라?”

“점 안 봐?”

생각이 날듯 말듯 해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노파는 무영의 말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놈이......연애운 안본다면서!”

“응. 그건 필요 없어.”

“그럼, 남녀 둘이서 연애운이 아니면 무슨 운을 본다고 그러냐? 금전운이라도 봐주랴? 흥! 그건 보나 마나 황이다. 하는 행동을 보니 너 인생에 돈 없어. 있다가도 나가. 거지팔자라는 거지.”

“훗- 정말?”

“아, 그렇다니......”

무영을 보면서 신경질을 부리던 노파는 말끝을 흐렸다. 관상을 대충 훑어 봐도 거지팔자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가만히 있어도 돈이 꼬이는 팔자였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노파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성의 없이 말했다.

“......뭐, 꼴에 거지팔자는 아니구나.”

“흐음......”

미심쩍은 듯 한 무영의 표정에 노파는 괜히 성질을 부렸다.

신은 저 놈에게서 싸가지를 가져가시고 금복을 내려주셨나 보다. 그게 너무 배알이 꼴려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아, 그래! 너는 앞으로 나라제일의 부자가 될 팔자다! 됐냐? 됐어?”

“보기보다는 좀 용한데?”

화연은 가만히 있으려고 했지만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무영이 반갑다는 표시로 일부러 더 저러는 것은 알지만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노파에게는 그냥 예의 없는 젊은이일 뿐이었다.

“할머니 죄송해요. 이이가 좀......그래요. 당신도 그만 하세요.”

무영이 보기에도 더 이상 하다간 노파가 뒷목을 잡고 쓰러질듯 했다. 그것도 재미있기는 하겠지만 화연이 화를 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그만하려던 차였다.

“이봐, 부부운 같은 건 없어? 그런 건 못 봐?”

노파는 니들은 억만금을 가져와도 점 안 봐준다고 소리를 지르려다 화연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어제 그 용꿈이 예사롭지 않았잖아. 그래서 나오기 싫은데 새벽같이 목욕재계까지 하고 나온 거고. 오늘 첫 손님인데 조금만 참자.

어휴...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까지 내려와 사서고생을 하는지......

“그 성격에 어떻게 성혼은 했냐? 새댁이 큰일을 했구먼. 큰일을 했어. 그 정도면 안고 다닐 만 하다. 암, 그렇고말고. 자네, 평생 새댁 발에는 흙도 묻게 하지 말고, 손에는 물도 묻게 하지 말아야해. 그 정도는 말 안 해줘도 알지?”

“알아.”

“그래도 주제는 아는구나. 오른손 좀 내놔봐.”

무영이 내민 오른손을 가만히 보던 노파는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면서 자세하게 들여다봤다. 그러다 퍼뜩 고개를 들어 무영의 얼굴을 살피던 노파는 다시 손바닥을 뚫을 듯 쳐다보았다.

이내 노파는 무표정 얼굴로 무영의 손을 던지듯 내려놓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점쟁이한테는 거짓말 하시면 안 됩니다.”

“거짓말?”

“아직 대례식도 치루지 않았는데 무슨 성혼을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것 봐라?

자신이 누군지 눈치 챘음에도 불구하고 뻣뻣하기 이를 데 없는 노파의 태도에 무영의 미소는 점점 짙어졌다.

“흠......정말 잘 보는데? 머리색도 바꿨는데.”

“그까짓 머리색 조금 바꾼다고 타고난 용의 팔자가 변한답디까? 그건 그렇고...예까진 어인일이십니까? 반려까지 모시고.”

“반려인줄은 어떻게 알았지?”

노파는 차라리 귀신을 속이라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팔자에 여인은 단 하나. 그냥 여인도 아닌 인연이 내세에까지 이어질 정도로 귀애하는 여인인데 한눈팔 리가 없지요. 잠시도 떨어져 있으면 몸이 고달플 텐데 모시고 온 게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근데 말이야......태도가 너무 건방지지 않아?”

“전하, 이 나이 되도록 점을 치다보니 비록 자신에 대한 점사는 보이지 않지만 서도 여기가 내 무덤인지 아닌지 정도는 읽힙디다. 게다가, 변장까지 하고 오신걸 보니 신분의 노출을 꺼려하시는 거 아니십니까? 저는 거기에 맞춰 드렸을 뿐입니다. 뭐, 맘에 안 드신다면 죽이십시오.”

무영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연의 눈치를 흘끔 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 반려와 인연이 있으니 그건 넘어 가기로 하고. 그럼......흠, 흠......뭐......내가 가장 바라는 일이 언제 이루어진다던지 그런 건 몰라?”

“전하......점쟁이가 무슨 신입니까? 뭘 바라시는지 정도는 말씀하셔야지요. 선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런 거엔 조금도 관심 없어. 그거 말고 있잖아.”

“아, 뭐를 말씀하시는 겝니까! 말씀을 해보세요. 말씀을! 왜 속 시원히 말......”

노파는 열심히 화연을 가리키는 무영의 눈동자를 보며 말을 멈췄다.

왜 저렇게 반려를 향해 은밀한 눈으로 가리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네.

나 원 참......흉측하게 왜 저런담. 눈알 돌아가겠네.

가만, 혹시......

“전하......혹시, 아직도.......”

“흠......”

얼씨구. 그 성정에, 그 혈기에, 그 정력에 용케도 참았구나.

노파는 참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전하. 그걸 제가 어찌 압니까? ...께서 허락할 마음이 들어야 ...하겠지요. 저는 점쟁이지 독심술사가 아닙니다. 이럴 때는 그냥 나죽었소...하고 기다리시는 게 상책입니다. 조급해 한다고 ...가 된답니까?”

노파의 말을 경청하던 무영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소리가 나오자 짜증스럽다는 듯 고개를 획 돌렸다.

“쯧!”

“어이구, 진짜......손 좀 다시 줘 보십시오.”

“왜? 그것도 모른다면서 손은 뭐하게?”

“아! 좀, 줘보시라고요!”

“......”

무영은 혹시나 해서 손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무영의 손을 들여다보던 노파는 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머리를 갸웃거리던 화연의 손까지 잡고 한참을 보았다.

화연의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노파는 어디서 많이 본 손금에 고개를 갸웃 거렸다. 분명 어디서 이것과 비슷한 손금을 봤었는데......역시 나이가 드니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구먼.

“전하, 물의 기운이 강한 날입니다.”

“뭐?”

“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물의기운이 강한 날 뭐가 어떤데요?”

저 성정에 묵묵히......는 아니고 아슬아슬하게 참아내는 무영이 기특하기도 하도 불쌍해 보이기도 해 이들의 첫째자식에게 풍기는 물의 기운을 읽고 그날은 거사를 치르겠구나 싶어 말한 것뿐. 그날이 이들의 첫날밤이 될지 백날 밤이 될지는 노파가 신도 아니고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노파는 이런 내용을 대놓고 고스란히 말해줄 수도 없어 화연에게는 그날에 경사가 있을 거라는 말이죠....라고 흘리며 무영에게 눈짓을 보냈다.

거사는 그날 이루어진다.

눈짓을 받은 무영은 화연을 슬쩍 보더니 노파에게 눈을 부라렸다.

물의 기운이 강한 날이 하루 이틀이야?

노파는 무영의 손을 획 내팽개쳤다.

“......전하, 다시 말씀해 드릴까요? 저는 신이 아닙니다! 그냥 아주, 아-주 용한 점쟁이일 뿐!! 다른 점쟁이는 이정도도 못 읽는다고요!!”

“그럼 언제 비가 내릴지 점쳐봐.”

“......”

그냥 저 머리통을 한 대 확 쳐버릴까 보다.

결국 노파는 무영의 말을 가뿐하게 무시하고 그때까지 잡고 있던 화연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마마의 손금은 참 특이하군요. 두 개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특이한데 그게 겹쳐져 있으니 저도 이런 손금은 처음 봅니다. 이런 경우 불행이 겹쳐져 결국 세상에서 도태되거나 묻히기 마련인데 마마께서는 뒤를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분이 여기계신 전하시고요. 성정이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일편단심, 평생을 애지중지 해드릴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주 품에서 내려놓지를 않으시지요? ”

“어......네......”

조금 부끄러워진 화연은 볼을 발그레하게 붉히고 고개를 약간 숙였다.

“뭐, 마마께서 어디를 가도 그런 취급 못 받겠습니까마는......이미 코가 꿰였으니 도망가기에도 늦었습니다. 그냥 인연도 아닌 혼에 각인된 인연이기 때문에 떼어내고 싶어도 안 될 겁니다. 아주 그냥 거머리처럼 찰싹 붙어 있을 텐데 징그럽더라도 그냥 나라를 구하는 셈 치고 데리고 사신다면 그럭저럭 괜찮으실 겁니다......응?”

갑자기 말을 흐리며 손금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노파 심각한 표정에 무영과 화연도 덩달아 심각해 졌다.

“할머니...왜 그러세요? 뭐가 안 좋은가요?”

“마마, 지금 어디를 가시는 겝니까?”

“어......가람지방에요. 왜 그러세요?”

“음......다른 나라로 넘어가시는 건 아니시지요?”

“네, 거기만 갔다 바로 환궁할거에요.”

“그럼 별일 없겠군요. 나중에라도 타국으로는 가지 마십시오. 가시려거든 대례식 다 끝나고 이삼년 뒤에나 가십시오. 아셨지요?”

“예? 왜요......?”

“아무리 전하께서 뒤를 단단히 지키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운명이지요. 그러니 대례식 이전에는 전하와 함께 계신 것이 아니라면 우리나라라 하더라도 타국인, 특히 타국의 황족들은 쳐다보지도 마십시오. 이 늙은이의 말씀을 꼭 명심하셔야 합니다.”

“어...예...”

노파가 엄격한 표정으로 신신 당부를 하자 화연은 얼떨떨한 기분임에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끝난 것 같던 노파의 말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전하, 비가 언제 올지 말지 지금 그런 걸 생각하시기 보다는 마마께 선물을 하나 해 주시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선물?”

“예, 위급 시 호신용으로도 쓰이는 비녀가 이 근처에서는 아주 인기랍니다. 바로 저 앞에서도 수두룩하게 팔고 있지 않습니까.”

“......호신용......?”

“예. 뭐, 호신용이라고는 하나 전하께서 계시는데 그런 문제가 생길 리는 없겠지요. 이 지방 특산품이니 하나 정도는 기념품으로 사두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나중에 보면 참 잘 샀다고 하실 겁니다. 물건들이 워낙 좋더라고요.”

“......”

서로를 마주보는 무영과 노파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눈치 채지 못한 화연은 주위를 바쁘게 둘러보다 비녀를 파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진짜 저기 있어요. 안 그래도 기해한테 줄 선물 하나 사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저기 가 봐도 돼요?”

노파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무영은 돈주머니를 간이탁자에 올린 뒤 화연을 품에 안고 일어섰다.

“다음 달 말쯤 궁으로 들어와.”

“......저는 나라 밥 먹을 팔자가 아닌 데요.”

“자기 자신의 운명은 못 본다며?”

“......”

“오라면 와.”

노파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무영은 몸을 돌렸다.

그런 무영의 뒷모습을 보던 노파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나라끼리 엮인 큰일의 시작만 아니라면 언급해 드려도 될 텐데......빌어먹을 천기누설 피하자고 사람들만 수두룩 죽어나가게 생겼네......죽을 놈들이 죽는 거야 아깝지는 안지만......뭐, 알아서 하시겠지. 어휴...... 이거, 괜한 불똥 튀기 전에 다른 현(縣)으로 넘어가 있어야겠구먼.”

누구도 듣지 못한 소리를 중얼거린 노파는 주섬주섬 일어서더니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잰걸음으로 돌아갔다.

*

비녀를 하고 나비를 쓰니 머리꼭지가 뽈록하게 올라온 게 참 우스꽝스러웠다. 그 튀어나온 부분을 톡톡 치면서 무영에게 안겨 숙소로 돌아가던 화연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눈에 익은 사람을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어?”

“왜?”

“아닌가?”

“뭔데 그래.”

“......아는 사람을 본 것 같아서요.”

무영은 화연이 시선을 주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라도 궁에서 명 말고 누군가 또 따라 붙었나 하고 사람들의 얼굴을 면밀하게 살폈지만 눈에 띠는 얼굴은 없었다.

“누굴 봤는데?”

“아는 사람이라고 하기는 그런데......음......지금은 안보이네요. 잘못 봤나?”

화연은 두리번거리면서 다시 찾아보려 했지만 많은 사람들 틈에서 그 얼굴은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때 그 강렬했던 구취와 꺼림칙했던 삼백안의 기억이 강하게 남은지라 잘못 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미 인파 사이로 사라진 뒤였다.

“말을 해봐. 누구 말하는 거야.”

“그 관청에서 일한다는 그 사람말예요. 수도 근처 현(縣)에서 봤던 사람. 기억나세요?”

“음......”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화연에게 치근거리던 그 변태 남색가 새끼.

그 놈에게서 나는 난화(亂花, 환각작용이 있는 꽃. 주로 말려서 향로에 태워 그 연기를 마시거나 담뱃잎과 섞어 피움)의 냄새가 워낙 짙었기 때문에 기억을 안 하려 해도 안할 수가 없었다. 난화는 전쟁터에서나 사용할 수 있지 일반사람들이 사용하는 건 금지되어 있었다. 특히 환제국에서는 엄격하게 금지하며 발각 시 처벌 또한 강하게 하는지라 구하기도 힘들었을 텐데도 그렇게 냄새가 짙었다는 것은 보나마나 뻔했다.

그 놈은 엄청난 중독자다.

들키면 목이 잘릴 것을 알면서도 밀수로 들여올 만큼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되어 있겠지.

그것도 관청에서 근무한다는 새끼가.

무영은 화연이 보던 쪽을 다시 살폈다.

가까이 있었다면 난화 특유의 향을 맡았을 텐데 거리가 제법 있었는지, 아니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인지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점쟁이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연아”

아직까지 그 남자를 찾고 있던 화연은 무영의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예?”

“많이 피곤해?”

“어......왜 그러세요?”

“여기서 하루나 이틀쯤 묵으면서 쉬려고 했는데 그냥 출발할까 싶어서.”

“......왜요?”

“어차피 여기는 볼 거 다 봤잖아. 더 있어 봤자 그게 그거야. 근데 그렇게 하면 니가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별거 아닌 듯 가볍게 하는 말투와는 다르게 무영의 표정은 가라앉아 있었다. 화연은 그런 무영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 웃었다.

“아녜요. 어제 푹 자서 전혀 피곤하지 않아요. 잘됐네요. 저도 여기가 지겨워 지려고 하던 참이었거든요. 지금 바로 출발할까요?”

어제 하루 종일 말을 타 피곤한 기색이 보이는데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자신의 말을 흔쾌히 따라준다.

무영은 화연의 눈을 마주보며 나비위로 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괜찮겠어?”

“걱정 하지 마세요. 저한테 준 인삼 기억 안 나세요? 그거 때문에 저 이제 완전 튼튼해 져서 이정도 가지고는 끄떡없어요.”

“그래.”

무영의 품에 안겨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화연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동안 정말 궁금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해소하자 싶었다.

“아, 말이 나왔으니까 물어보는 건데요. 그 인삼 오래된 거 맞죠? 그때 기해의 반응이 정말 이상했거든요. 꼭 길가다 금덩이라도 주은 것처럼 말예요. 얼마나 된 거예요? 십년? 이십년?”

“뭐......그 정도(의 백배)”

“정말이에요?”

“응”

“.......그럼 왜 그렇게 좋아했던 거지? 그 정도면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이상하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 화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무영이 은근슬쩍 화제를 바꿨다.

“말 타는 거 배워둬야지.”

“어머! 정말 가르쳐 주실 거예요?”

곰곰이 생각에 빠졌던 화연이 얼굴을 밝히며 급히 물었다.

이제 드디어 따로 말을 탈수 있겠구나!

처음에는 말을 같이 타는 게 부끄러워서 따로 타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긴 다른 커다란 문제 때문에 화연은 정말 절실히 따로 타고 싶었다.

말을 타면 엉덩이에 느껴지는 그, 그것.

그것은 감현(縣)에서부터 부쩍 선명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모르면 다행이겠지만 화연은 애도 아니고 그것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혼자 유난을 떨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 등 위에서 어디 도망칠 곳도 없어 화연은 그때마다 울고 싶어지는 기분을 억지로 참느라 참 힘이 들었더랬다.

기대로 빛나는 화연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무영은 나비위로 입을 맞추며 씩- 웃었다.

“응. 당연히 가르쳐 줘야지. 배우고 싶다면서?”

“네! 정말 배우고 싶었어요. 언제 가르쳐 주실 건데요? 여기에서 가르쳐 주실 거예요? 객사 뒷마당이 꽤 넓던데......아, 바로 출발하신다고 했지......그럼, 다음 장소에서 가르쳐 주실 건가 보다. 그죠?”

“아니.”

“예? 그럼 어디서......”

“궁에 돌아가서.”

“......궁에......돌아가서요?”

“응.”

“......”

궁에서 말 탈 일이 뭐가 있겠니.

짜게 식은 얼굴을 한 화연을 안고 무영은 객사로 빠르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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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스포 : 화연은 평생 말 타는 법 따윈 배우지 못한다.

손해님, 방판의여왕님, 청송이님, yuna1ov님, 아리화님,  HYEJI 님 후원 감사합니다.

뭐라도 드리고 싶은데

드릴 건 없고......

비루한 제 사랑이라도......

거절은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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