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0 짐승, 꽃과 함께 사라지다. =========================================================================
향분은 작은 화로를 가져와 탁자 가운데에 설치했다.
그 위에 오목하면서 얇은 돌 판을 깔고 동그랗게 말려진 떡갈비를 펴 올렸다. 그리고 돌판 주위에 윤기가 자르르한 갈색 빛 양념장을 부으니 치이익- 하면서 연기를 잠시 피우더니 금세 보글보글 끌었다.
“양념이 자작하게 줄어들면 그때 드세요.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르시고요. 몽요주는 여기에 두겠습니다. 어떻게 드시는지는 아시지요?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오.”
화연은 맛깔스러워 보이는 십 수 가지의 밑반찬 가운데에 있는 자색 열매를 가리켰다.
“추강열매가 이거예요?”
“응”
동그란 모양의 자색 열매는 얇게 썰어져 부채모양으로 예쁘게 놓여 있었다. 속살은 연두 빛으로 껍질의 색만 다를 뿐 꼭 라임 같기도 하고 레몬 같기도 했다. 하지만 냄새를 맡아보니 시큼한 냄새가 아닌 달달하니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냥 먹어도 맛날 것 같아요. 이걸 술과 같이 먹어요?”
“맛이 너무 강해서 그냥은 못 먹어. 술에 즙을 내서 섞어 마셔도 되고, 대부분 그냥 잘게 잘라서 넣어 먹어”
“그럼 더 맛나요?”
“......응”
무영은 화연 앞에 있던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추강 열매를 넣었다.
사실 추강열매를 술에, 특히 몽요주에 타먹는 때는 대부분 맛을 좋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몽요주는 약간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성분이 들어있는데 추강열매와 만나면 그 효과는 배가 되었다.
무영에게는 그 성분이 통하지는 않지만 화연에게는 잘 통할 것이다. 무영은 잔을 들어 올리는 화연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내가…….3일이 넘게 아무것도 못해서 이러는 건 아니야. 매일 밤을 뜬눈으로 새다시피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키우는 개도 때가되면 밥을 챙겨 주고, 화초도 주기적으로 물을 주잖아. 그런 거랑 비슷한 거지.
무영은 며칠 전 화연과의 깊은 입맞춤 이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말 달리는 속도를 빠르게 한 이후 화연은 숙소에 들어서면 지쳐 쓰러져 자기 일쑤였다. 심지어 발을 씻겨주는 도중에 잠이 든 적도 있었다. 한번 그 맛을 알아버린 무영은 고삐가 풀려버려 안달이나 잠도 잘 수 없었는데 화연은 타들어 가는 제 속도 모르고 쿨쿨 잘만 잤다.
무영은 화연을 아무 곳에서나 안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급한 불은 좀 꺼줘야지.
우리는 연인인데…….내가 무슨 수도승이냐고.
술은 붉은빛이 감돌았다. 그 위에 연두색 추강열매를 띄우니 화연이 보기에도 참 맛깔나 보였다. 조심스럽게 들어 향을 맡으니 정말 술 향은 나지 않고 달달한 과일 향 만 날뿐이었다. 어떠한 맛인지 궁금해진 화연은 혀만 살짝 담갔다 뺐다.
꿀꺽-
그 모습까지도 자극적이라 무영의 목젖이 꿈틀거렸다.
“음…….정말 술 같지는 않네요.”
“그치? 마실 만하지?”
살포시 웃던 화연은 이내 술잔을 내려놓았다. 술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지라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술은 당지기 않았다.
“왜?”
“안 마실래요. 술은 별로…….”
“......그래......”
잔뜩 기대감 서린 눈으로 보던 무영의 어깨가 축 쳐졌다. 시무룩한 얼굴로 제 앞에 있던 술을 한 번에 들이키면서 타는 속을 달랬다.
그때 화려하게 차려입은 한 무리의 여자들이 향분을 따라 3층으로 올라섰다.
맞춘 듯이 분홍빛깔의 옷을 입은 그녀들은 이제 열 일고여덟 쯤 되어 보였다. 그녀들은 자리에 앉더니 들뜬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종알거렸다. 그들 사이에 앉아있던 스물 대 여섯 살 되어 보이는 여자는 그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며 요염하게 웃다 진주선(眞珠扇)을 펼쳤다. 우아한 호선을 그리는 붉은 입술과 그 옆에 작은 점이 진주로 장식된 새하얀 접선으로 가려졌다.
향분은 재잘거리는 처녀들을 흐뭇하게 보다 웃으며 말했다.
“홍루주(紅樓主)께서 오랜만에 방문해 주셨네요. 이번에 머리 올리는 처녀들인가요?”
“네, 오랜만이네요. 이 아이들이 이번에 첫 꽃을 찍는답니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외출은 못할 것 같아 데리고 나왔어요.”
“어이구- 잘하셨습니다. 그럼 항상 드셨던 정식으로 드릴까요? 술은 뭐로 준비해드릴까요?”
“화호항주(花好恒酒)로 주세요.”
“아- 항상 이맘때면 드시는 술이군요? 데워드릴까요? 아님 이번에도…….”
“네. 차갑게 해서 주세요.”
월화는 향분에게 은자를 쥐어주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무심코 쳐다봤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면서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어? 루주님 왜 그러세요?”
종알거리던 처녀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월화는 그들의 말에 대꾸도 없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무영은 여자가 다가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얼굴만 봐서는 누군지 알 수가 없었는데 가까이 다가오자 어디선가 맡아봤던 향내가 났다. 아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어 서둘러 꺼지라고 말 하려는데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서방님?”
“?”
무영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화연은 물을 마시다 거나하게 내뿜었다.
“풉!!!! 쿨럭 쿨럭 쿨럭……! 흑! 쿨럭 쿨럭”
“연아! 괜찮아? 이거 마셔봐. 천천히.”
무영이 화연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물을 따라 입에 다시 대어줬다. 조심스럽게 물 잔을 기울여 주는 무영의 다정한 모습에 월화의 눈이 살짝 가느다랗게 변했다.
물을 마시던 화연이 잔을 내리고 무영에게 눈짓을 했다.
“아시는 분이세,”
“아니! 절대 처음 보는데.”
화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온 무영의 단호한 대답에 월화는 조급하게 말했다.
“서방님! 저 기억 안 나세요? 홍루에 월화. 정녕 기억에 없으십니까? 5년 전쯤 저를 보시기 위해 먼 길을 달려 오셨잖아요.”
“......”
금실로 수놓아져 있는 붉은 비단의 화려한 옷, 꽃 비녀로 느슨하게 틀어 올린 푸른색의 머리 아래로 낭창한 목선. 군침이 절로 나올 것 같은 보드랍고 하얀 어깨. 눈에는 교태가 흘러넘쳤고 육감적인 입술사이로 진주알 같은 치아가 살짝 보였다.
홍. 루. 에 월. 화. 라…….
그녀를 자세하게 보던 화연의 눈 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영의 안색이 쩡- 소리를 내며 굳었다.
여전히 여자는 기억에 없었지만 5년 전 홍루에 들렸던 일은 기억에 있었다.
자신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쳤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무영이 다시 강력하게 발뺌하려는데 월화가 아련한 눈빛으로 눈물을 글썽거렸다.
“서방님, 그 특별한 머리색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소첩, 그 밤의 기억이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답니다. 그 동안 서방님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이런 젠장!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환초를 마시는 모든 남자들은 머리색이 이렇게 변한다고 할 것을…….
무영은 아까부터 조용한 화연을 힐끔 보다가 말했다.
“나…….아, 아니야…….”
탁-
화연은 만지작거리던 물 잔을 거세게 내려놓으며 활짝 웃었다.
“앉으시지요. 우리 형님과 예사 인연이 아닌 것 같은데. 앉으셔서 편히 말씀 나누세요.”
글썽거리는 눈으로 무영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월화는 화연이 말을 걸어주기만을 기다린 것처럼 시선을 돌리며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이런 잘생긴 동생분이 계시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어디 여행 가시나 봐요.”
왠지 무영과 말할 때 보다 눈에 띨 정도로 얼굴을 환하게 밝히는 월화의 표정에 화연은 떨떠름한 기색을 힘겹게 감췄다.
“…….예…….남하강에 볼거리가 많다고 해서 형님과......”
“아! 그러셨구나. 남하강이면 화양주를 빼 놓을 수 없지요. 그곳에도 가십니까?”
“어…….예…….그런데......”
“제가 여행객들을 남하강까지 안내해주는 길잡이를 몇 명 알고 있습니다. 그쪽 맛 집이나 명소는 손바닥 보듯 꿰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저희 집에 오시는 귀한 손님들의 편한 여행을 위해 가끔 안내를 부탁드리고는 합니다. 소개시켜 드릴까요? 물론 비용은 저희가 다 부담하니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언제 봤다고 나에게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건지…….
십중팔구는 저 서.방.님의 아우라니까 잘 보이기 위해 그러는 거겠지만.
너무 과장스럽고 어딘지 모르게 사심이 담겨있는 것 같은 친절에 화연은 무영을 힐끔 노려보다가 손을 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건…….됐습니다.”
“그럼, 이럴게 아니라…….여기서 언제쯤 출발 하십니까?”
“예?”
“그 동안이라도 저희 집에 묵으세요. 이래봬도 제가 홍루의 루주랍니다. 다른 걱정은 하지 마시고 푹 묵었다 가세요.”
“괜찮습니다. 저희는 이미 잡아놓은 숙소가 있어서……. 게다가 내일 아침에 출발할겁니다.”
월화는 너무나도 안타깝다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 너무 아쉽네요. 어떻게 만난 귀한 인연인데 그냥 보내드릴 수는 없고…….그럼, 화양주 취루(取樓)에는 꼭 한번 들리십시오. 이 월화의 이름을 대면 그래도 마음껏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정말 꼭! 들러 주셔야합니다. 꼭이요.”
“......예. 그럴게요.”
안 들른다고 하면 울 기세다.
화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점점 표정 관리가 어려워져 술잔을 들어 입에 대면서 효과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월화는 술잔을 들어 올리는 화연의 머리에서부터 얼굴까지 세심히 살피다 묘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영의 잔에 술을 따르며 애처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서방님,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이 월화, 한 번도 보고 싶은 적은 없으셨나요? 소첩은 서방님이 그리워서 죽을 지경이었는데요…….너무 무정하십니다.”
그냥 죽어버리지 그랬어.
무영은 생전 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당장 저 년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3층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은데 화연에게서 퍼져 나오는 싸늘한 한기에 몸이 굳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 같았다. 더 늦기 전에 무릎이라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무영이 화연의 손을 슬그머니 잡으려다가 자신을 보며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면서 환하게 웃는 화연의 얼굴에 움찔했다.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항상 따뜻했던 눈에서 싸늘한 한기가 바늘처럼 쏟아졌다.
“…….여, 연아…….”
화연은 무영을 보면서 들고 있던 술잔을 기울여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획 돌려 월화를 쳐다보았다.
“형님과 참 친하셨던 모양입니다?”
월화가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훤하게 드러난 어깨를 살짝 움츠리니 쇄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약간 숙이며 소매로 입을 가리며 웃는 모습은 한 폭의 미인도 같았다.
화연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부끄럽습니다만…….서방님께서 제 머리를 올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연정을 고스라니 가져가셨지요. 저에게는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추억이입니다.”
아…….그러시구나…….하던 화연이 술을 마시는 무영을 흘끔 보다 물었다.
“그…….머리를 올려 주었다는 것은…….무슨 뜻인지......”
“푸웁-쿨럭쿨럭”
“어머! 서방님!”
이번에는 무영이 술을 뿜었고 월화가 벌떡 일어나 소매를 무영의 입으로 가져다 대는데 무영이 그 손을 사납게 탁- 쳐냈다. 상처받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월화에게 화연이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괜찮으세요? 형님이 조금 예민하셔서…….아, 아까의 질문은 제가 산속에서 자라 물정을 잘 몰라서 묻는 말이니 실례가 됐다면 대답 안하셔도 됩니다.”
“그다지 실례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인걸요. 아직 어린 도련님께 말씀을 드려도 될 런지 모르겠지만…….제 첫 꽃을 서방님께서 취하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를 스쳐지나간 인연은 많았지만 아직까지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분은 서방님뿐이지요. 그만큼 특별합니다.”
“…….첫…….꽃……?”
화연의 눈이 가늘어 졌다.
설마, 설마 했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그 의미가 맞는 모양이다.
아버지께서 무영이 어렸을 때 기방을 밥 먹듯이 돌아다녔다고 하시는 소리를 듣긴 들었는데 그동안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전혀 다른 사람 얘기 듣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어차피 지나간 일인데다 자신을 만나고 나서 그런 것도 아니라 그것에 연연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그와 함께 밤을 보냈어요. 참 아름다운 밤이었답니다…….라고 하는 여자가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화연은 이제 제 손으로 술을 따라 홀짝 홀짝 마셨다. 마시고 있는 것이 물인지 술인지 분간도 안 갔다. 자신이 없던 과거의 일일 뿐인데도 속이 쓰리고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5년 전이라면 무영이 18살 일 때다.
황궁에서 여기까지는 말을 타고 꼬박 닷새거리.
기생을 만나러 18살에 말을 타고 닷새거리를 달려왔단 말이지.
결론.
너 미쳤니?
훗-
화연의 미소가 최고조에 달했다.
“......그랬구나…….저…….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술을 마셨더니 조금 어지럽네요. 특.별.한. 인연이신데 말씀 더 나누셔야지요.”
무영의 손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일어서 밖으로 나가는 화연을 붙잡지도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이 여자는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이런 엄청난 사태를 야기하는지. 아까 불길한 기분이 들었을 때 죽여 버렸어야 했다. 지금 심정으로는 홍루까지도 박살내 가루로 만들고 싶었다.
무영은 화연을 붙잡으러 나가려다 말고 월화에게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죽고 싶냐?”
“예......?”
“아니면 미친 거야?”
재회의 기쁨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던 월화의 표정이 당황스럽게 변했다.
“서, 서방님…….왜......”
무영이 탁자를 내리치며 낮게 윽박질렀다.
“입 닥쳐! 누가 너 서방이야!”
“...!!...”
월화가 울먹거리면서 무영에게 손을 뻗었다. 무영은 행여 그 손끝에라도 닿을까 벌떡 일어서서 그녀를 내려 봤다. 자신을 보는 눈빛이 꼭 하찮은 벌레 보듯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었다. 월화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또 내 앞에 나타나면 죽여 버린다. 멀리서 보더라도 알아서 피해가라. 다시는 볼일도 없겠지만.”
세상이 무너진 듯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는 월화를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노려보던 무영은 탁자에 돈주머니를 올려두고 서둘러 주점을 나갔다.
애처롭게 울먹이던 월화는 무영이 나가자마자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 싸늘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멍청한 놈. 이 월화가 제까짓 놈을 진짜 그리워하기라도 했는지 아나 보지? 너 같이 사내냄새 풀풀 나는 놈은 내 취향이 전혀 아니다. 차라리 5년 전이었으면 모를까. 저 여자가 아니었으면 먼저 말이라도 걸었을 성 싶으냐? 흥! 첫정을 가져간 놈이라 불쌍하니 기회를 줄까 했건만 제 발로 차버리는 구나. 한 번은 용케 그물을 빠져 나갔는지는 몰라도 두 번은 없을 텐데…….쯧쯧쯧. 뭐, 지가 살기 싫다는데 어쩔 수 없지.”
화연은 이제는 한산해진 주점 앞 작은 공터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손가락으로 바닥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는데 무영으로써는 처음 보는 모양 이였다. 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무슨 글자 같기도 했다.
무영이 다가가면서 머리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화연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화가 잔뜩 나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무영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무영은 화연 앞에 쪼그려 앉으며 눈치를 보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연아…….어…….너 깨어나기 훨씬 전 일이라 진짜 기억도 안 나는 여자야. 기루를 갔던 건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일부러 간 것도 아니고 지나가다가......”
돌멩이로 글인지 뭔지를 진하게 덧그리던 화연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흠…….그래요? 뭐…….상관없어요. 어차피 지나간 일인데요.”
“…….정말……?”
“예. 전혀 신경 안 써요. 당신도 신경 쓰지 마세요.”
“......”
화내면서 토라지면 대체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걱정이 태산 같았다. 오히려 신경을 안 쓴다고 하니 다행이긴 한데...
그런데.
무영의 미간에 미세한 실금이 생겼다.
어쩐지 이것도 엄청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화를 내는 것 보다 오히려 더 마음에 안 들었다.
아무리 자신이 없었을 때 일어난 일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무신경한 거 아냐? 적어도 토라지는 시늉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무리 과거의 일이지만 내가 다른 여자를 안았다는데 신경 쓰이지도 않나? 난 누가 너의 이름을 입에 담기만 해도 화가 나는데.
“정말 신경 안 쓰여?”
“예.”
“하나도?”
“예.
“조금도?”
“그렇다니까요.”
“......”
내가 네 정인이라며! 넌 왜 투기도 안 해!!
…….라고 버럭 외치려는데 화연이 두 팔을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
“업어주세요.”
“…….뭐……?”
“술 마셔서 그런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요. 못 걷겠으니 업어주세요.”
“......알았어.”
생글생글 웃으며 애교부리는 화연의 얼굴을 멍하게 보던 무영은 방금까지 자신이 화내려 했다는 것도 잊고 냉큼 등을 돌려 들이밀었다.
등에 따뜻하고 푹신한 그녀의 가슴이 느껴졌다. 화연을 이렇게 업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자극적이었다.
흡-
무영은 저도 모르게 단전에 힘을 꽉 주면서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손끝만 봐도 흥분하는 자신에게 이것은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었다.
여기서 숙소는 꽤 떨어져 있는데…….
그것이 기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해 무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일어섰다.
화연을 업은 무영이 떠나가고 한산한 거리에는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는 그림만 남아 있었다.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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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크크
복수는 시작되었다.
짐승, 넌 오늘 좀 울어야겠다.
단호박22님, 미요lady님, dungji님, gadrile님, 쇼셜사랑님, willow66님, 전차왕님, 연철맘님, 펠포님, 메릴랜드님, 나래의꿈님 후원 감사합니다.
풍년일세! 풍년이야~후원 풍년일세~
근데 어케 쓰는지는 아직도 모르고...ㅡㅜ
payaso님 제일 처음으로 완벽하게 해석하신 분으로 당첨 되셨습니다.
약속대로 선물 나갑니다.
저에게 쪽지로 카톡 아이디를 남겨주시면 따땃한 음료 기프트콘 쏴드리겠습니다.
품목 정하셔도 됩니다.
쪽지 보내실 때 원하시는 종류를 말씀해 주세용~
ex.
난 카페베x의 '바리깔레보 블랑 초코라떼' 아니면 안 먹어!
이렇게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