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을 문 짐승-67화 (67/110)

00067  짐승, 우리 안으로 꽃을 들이다  =========================================================================

국문이 벌어질 금옥 뒤뜰에는 땅을 치며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거기에 남궁 평과 공 형문까지 합세하자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집무실에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금군에게 급하게 끌려 온 남궁 평과 공 형문은 동틀에 강제로 앉혀져 사지를 포박당하면서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무엄하다! 이 쳐 죽일 놈들!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게냐! 머지않아 국구(國舅, 황제의 장인)가 될 몸이시다! 이거 놓아라! 어서 놓으래도!”

“악! 이놈들! 무슨 작당을 하고 이러는 게냐!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러는 게야!! 당장 풀지 못하겠느냐! 태자전하께서 아신다면 너희들을 모조리 도륙 내실 것이다! 태자전하를 불러다오! 전하를 뵈어야겠다!!”

그때 국문장으로 유유히 들어오던 대학사 기류 명률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쓰러져 계신 태자전하는 뭐 하러 찾누.”

남궁 평과 공 형문은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어, 어르신!!”

“대학사 어르신!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 저희를 겁박하시는 겝니까!”

기류 명률은 국문장 위편에 놓여있는 좌석에 앉아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건 자네들이 더 잘 알지 않은가?”

“어르신!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저희를 시기하는 무리들의 모함이 분명합니다. 태자전하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어르신!”

“그러니까 그 태자전하께서 지금 인사불성으로 자리보전하고 계신데 어찌 뵙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겐가. 그리고 혹여 오신다 하더라도 소용없을 거라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역모는 태자전하께서도 어찌하실 수 없는 일 아닌가. 아니 그런가?”

“!!”

역모라니......!!

소란스럽던 국문장은 일제히 조용해 졌다.

자신이 국문장에 왜 끌려왔는지 영문을 몰라 소리소리 지르며 반항하던 사람들까지  그 엄청난 죄목에 겁에 질려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돌아가는 형국인지 단번에 눈치 챈 공 형문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면서 악을 썼다.

“대학사!! 어찌 내게 이럴 수 있소! 그동안 뒤를 봐준 것이 얼마인데 은혜를 원수로 갚겠다는 것이오! 내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것 같소?!”

이제야 자신이 기류 명률의 함정에 걸려든 것을 깨달은 남궁 평 또한 절대 혼자 죽지 않겠다며 고함을 질렀다.

“조용! 이제부터 쓸데없는 말로 귀를 더럽히는 죄인들은 혀를 자르겠다. 말할 사람은 많으니 어디 한번 실컷 떠들어 보거라.”

동틀이 부서져라 몸을 흔들면서 욕을 퍼붓던 남궁 평과 공 형문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류 명률이 허허-하고 사람 좋게 웃었다.

“조용해 졌군. 그럼, 시작해 볼까.”

그는 품안에 놓여있던 서찰을 꺼내 흔들었다.

“이 서찰이 기억나는가?”

남궁 평과 공 형문의 눈이 서찰과 함께 흔들렸다. 서찰을 주고받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닌지라 그냥 봐서는 무슨 서찰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눈치를 살피면서 말없이 가만히 있자 기류 명률이 서찰을 내관에게 건네주었다.

“가져다 주거라. 저들도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야 할 테니.”

내관이 금군에게 서찰을 건네주자 금군은 남궁 평과 공 형문의 눈앞에 펼쳐 주었다. 내용을 읽던 그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허옇게 질렸다.

서찰에는 남궁 평과 공 형문이 국구의 위치에 나란히 오르게 되면 류 재상을 실각시키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자는 내용이 구구절절 적혀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서찰이 늘 그렇듯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유출에 대비해 대상이 명확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적혀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말 그대로 어떻게 해석 하냐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바뀔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당황한 공 형문은 눈을 심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 이건......이건......대학사! 이건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 않소! 서찰에서 말하는 대상이 재상임을 알면서도 어찌 이런단 말이오!”

“류 재상? 갑자기 류 재상은 왜 들먹이시오? 거기 그런 말이 적혀 있소?”

자신들이 오도가도 못 할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은 남궁 평의 마음도 타들어 갔다.

“어, 어르신!!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저, 저희가 뭘 섭섭하게 해드려서 이러시는 겁니까?”

기류 명률이 갑자기 대소를 터트렸다.

“그럼 그 서찰을 자네들이 썼다는 것은 인정하나 보군. 그렇지? 일이 참 쉬워지겠군. 난 자네들이 끝까지 잡아떼면 어쩌나 싶었는데 말이야.”

“!”

공 형문은 눈을 질끈 감고 침음성을 흘렸다.

뼈아픈 실책이었다.

서찰이고 뭐고 절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어야 했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자신들이 보낸 서찰이라고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렸으니 이제는 고스라니 누명을 뒤집어  쓰는 수밖에 없었다.

남궁 평은 패색이 짙은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공 형문과 시종일관 기분 좋은 얼굴을 하는 기류 명률을 번갈아 보았다. 어떻게든 빠져 나가야 하는데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 어르신! 어르신께서도 저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허, 그게 무슨 말인가? 급하니 나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건가?”

“사실이지 않습니까. 어르신께서 분명히 저희와,”

“증거가 있나?”

“예?”

“내가 자네에게 서찰이라도 남겼냐는 말일세.”

“......”

생각해 보니 기류 명률은 할 말이 있으면 사람을 보내던지 자신들을 불러들였을 뿐 단 한 번도 자신들에게 서찰을 보내지 않았었다. 그때 눈을 감고 있던 공 형문이 조용히 물었다.

“다른 증거는? 서찰 하나로만 우리에게 역모를 뒤집어씌운다는 것은 무리였을 터. 또 다른 증거가 있소?”

“허허허. 역시 자네는 눈치가 빠르군. 당연히 있지 않겠나? 자네들이 요즘 사가로 불러들이는 엄청난 인력들과 뒤로 빼돌린 막대한 자금. 더 할 말이 있나?”

인력이야 국구의 자리에 걸맞은 세가증축을 위한 노동력을 모은 것 뿐 이었다. 나랏돈을 빼돌린 것은 맞지만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대학사는 한술 더 떴다. 그걸 이렇게 갖다 붙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오늘이 내 제삿날이 되겠구나.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이제 제 세상 만나 활개 치면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류 명률이 절망에 빠진 그들의 얼굴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는데 국문장 입구가 소란스러워 지더니 사람들이 넙죽 넙죽 엎드리기 시작했다. 눈살을 찌푸리며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던 기류 명률이 벌떡 일어났다.

“저, 전하...”

무영이 진 내관과 금군을 대동하고 국문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기류 명률 앞에 서서 뒤따라오던 금군에게 턱짓을 했다.

금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기류 명률을 끌어내더니 어느새 놓여있던 동틀에 앉혀 사지를 포박했다.

“억! 왜, 왜 이러는 게냐! 전하! 죄인은 저들인데 왜 저를 핍박하시는 겝니까! 이 일이 얼마나 중한 일인지 모르신다는 말입니까! 역모는 전하께옵서도 관여하실 수 없는 일임을 유념하여 주시옵소서!”

공 형문과 남궁 평의 얼굴은 이제 살았다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서로 앞 다투어 자신들의 무죄를 외치기 시작했다. 공 형문 또는 남궁 평과 관련이 있다 해서 끌려온 사람들도 중구난방으로 억울하다며 아우성이 일어났다.

무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묵묵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한 참을 사력을 다해 소리 지르던 사람들이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하나둘씩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무덤덤하게 보였던 무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사납기 그지없었다.

툭-

국문장이 쥐죽은 듯 조용해지자 무영은 기류 명률 발 앞에 뭔가를 던졌다. 하얀색의 동그란 비단주머니였다. 주머니 부분이 볼록한 것을 보니 안에 뭔가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주머니로 모아졌다.

“열어라.”

무영의 명령에 옆에 시립해있던 진 내관이 내려와 주머니를 열어 안에 있는 것을 꺼내들었다. 비라도 쏟아질 듯 어둑어둑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주머니 안에 있던 그것은 번쩍번쩍 푸른빛을 뿜었다.

“!!”

저게 왜 여기에 있는지 영문을 몰라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기류 명률은 눈을 부릅떴다. 저, 저것은 류 화연의 처소에 있다고 했던 미리내의 별이 아닌가...분명히 명 상궁이 저것을 류 화연의 처소에서 봤다고 했었다. 헌데, 저것을 왜 태자가 가지고 있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럼 감찰 상궁이 류 화연의 처소에서 발견했다는 보물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저, 전하...그것이...왜...”

“오늘 새벽. 대학사의 사가를 수색했던 금군이 가지고 온 것입니다.”

“예?! 그게 무슨...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제 사가에서 황궁의 보물이 나오다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럴 리는 없고말고요. 이건 뭔가 잘못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르의 눈물까지 대학사께서 가지고 계셨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무영의 말을 듣자마자 이들이 명 상궁과 합세하여 자신을 궁지에 몰기위해 일을 꾸민 것이라 생각한 기류 명률은 이를 악물고 공 형문과 남궁 평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들을 구명해주러 온 줄만 알았던 무영에게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을 듣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럼...그 씹어 먹을 놈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황실의 보물을 황족도 아닌 자가 손댔을 경우 역모에 준하는 엄벌에 처한다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전하! 제가 한 일이 아니옵니다! 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이, 이, 이것은 모함이 분명합니다. 맞습니다! 누군가 제 집에 그것을 몰래 숨겨놓고 저에게 덮어씌우려는 음모가 분명합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대학사 말씀이 맞습니다. 누군가 모함을 하려고 벌일 일 일수도 있겠네요.”

“전하! 그렇사옵니다! 정확하신 판단이시옵니다!”

“허나, 증인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예? 즈, 증인이라니요...?”

“진 내관.”

“예, 전하. 여봐라. 증인을 들여라!”

무영의 명을 받아 진 내관이 크게 외치자 금군이 누군가의 양팔을 잡고 질질 끌고 와 바닥에 꿇어 앉혔다. 기류 명률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며, 명 상궁...”

다 죽어가는 저 여자는 도대체 누군가 했던 남궁 평과 공 형문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명 상궁은 평소 얼굴은 찾아볼 수 없이 망가져 있었다. 기류 명률이 아니었으면 누군지도 못 알아볼 뻔 했다. 인두로 지져 졌는지 벌겋게 익은 얼굴에는 물집이 가득했다. 군데군데 찢어진 옷 사이로는 살이 움푹 파여 뼈까지 드러난 채 피가 흐르고 있었고 붉은 길을 만들며 끌려오는 모습을 보니 다리는 이미 쓸 수 없이 망가진 것 같았다. 크게 부풀어 눈알이 있는지 없는지도 분간할 수도 없는 눈 대신 비교적 멀쩡한 눈에서는 끝없이 눈물이 흘렸다.

차라리 목숨을 끊어주는 것이 더 자비로울 것 같은 그 비참한 모습에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마 더는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명 상궁의 거친 숨소리와 간간히 내뱉는 신음소리를 듣던 무영은 태연하게 말했다.

“명 상궁. 다시 말해보겠나.”

명 상궁은 정신이 혼미해 말하기 힘든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영의 목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헉, 헉...대학사...께서......류 화연아기님....처소에... 미르의...눈물을...헉, 헉...가, 가져다...놓으라고......그 뒤...감찰상궁에게...수색하라...하셨...으흑...전하......원하시는...대로...했으니...이제...이제, 제발......주, 죽여....주...시옵...소서...제발...흑”

명 상궁은 말을 끝내자마자 바닥에 엎드려 흉측하게 뭉그러져있는 두 손을 억지로 내밀어 빌기 시작했다. 자비를 베풀어 그만 죽여 달라는 그 처절한 음성에 모두는 얼어붙었다. 그 모습에 무영이 피식 웃었다.

“뭘 이정도로 놀라고 그러십니까. 시간이 없어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요. 너무 겁먹지는 마십시오. 제가 원하는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그것만 유념해 주신다면 적당한 때에 끝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기류 명률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감찰 상궁이 화연의 처소에서 발견했다고 한 보물이 정녕 미르의 눈물이란 말인가? 그런 보물은 본적도 없었다. 진정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기류 명률은 덜덜 떨리는 손을 꽉 쥐고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저, 전하...! 결단코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저, 저 년이 거짓 자백을...”

“바로 그것입니다. 잘하셨습니다. 절대로 자백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구나. 죽이려고 작정한 게야.

비로소 기류 명률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웠다.

죽기 직전까지 고신을 당하다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자신이 눈앞에 그려졌다. 다문 입 안으로 딱딱, 이가 부딪혔다.

“...전하......제, 제발...사, 살려...”

흐느낌처럼 세어 나오는 기류 명률의 말을 끊고 공 형문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전하! 저희는 결백하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역모라니 저희는 절대 모르는 일입니다. 저 치가 저희를 모함했습니다. 저 놈이 모두 꾸민 계략입니다! 전하!”

“예, 예. 맞습니다. 저 쳐 죽일 도적놈이 저희를 시샘해서 저지른 일입니다! 저희는 이제 풀어주시는 거지요? 전하...저, 우리 진류가 애비 걱정으로 피가 마를 겁니다. 제 딸 진류가, 말입니다.”

“제 딸도 지금 저를 애타게 찾고 있을 겁니다. 전하! 우리 혜민이 성정이 얼마나 고운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공 형문에 이어 남궁 평까지 서로 자기 딸을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말을 조용히 듣던 무영의 입에서 갑자기 커다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렇게 크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본 남궁 평과 공 형문은 잠시 머뭇거리다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한참을 이어지던 웃음소리는 별안간 뚝 끊겼다.

“그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진 내관. 오래 기다리게 했군. 데려와.”

이번에는 또 누구를 반송장으로 만들었을까. 사람들의 시선이 국문장 입구로 모아졌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시선을 돌리던 남궁 평과 공 형문 그리고 기류 명률은 머리를 강타당하는 충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례대로 들어오는 금군의 어깨에 짐짝처럼 얹어 있는 처참한 모습의 여자들은 아무리 봐도 자신의 여식 같았다. 손발이 죄 묶여 흙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그들은 입에 재갈을 문 채 끙끙 거리면서 버러지처럼 꿈틀거렸다. 남궁 평의 여식 남궁 진류는 움직임조차 없었다. 그들이 누워있는 흙바닥은 금세 붉게 변해갔다.

“진류야!! 이게 어찌된...... 전하!! 제 딸 진류를 심중에 두신 것이 아니셨습니까?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가까운 사이 맞지 않습니까? 명줄을 손에 쥐고 있는 사이인데 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

말문이 막혀 제 자식들을 멍하니 보고만 있는 그들에게 무영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직 죽지는 않았습니다. 말씀드렸다 시피 시간이 없었거든요. 사실, 저는 누가 보물을 훔쳤던지, 역모를 꾸몄던지 관심 없습니다. 당신들이 제 것만 건들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주절거릴 필요도 없었겠지요.”

죽은 듯이 엎어져 있는 제 딸을 보던 남궁 평의 눈에서 눈물이 흘렸다. 자신들이 언제 태자의 것을 건드렸다고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전하! 억울하옵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무영은 그들의 절박한 얼굴을 한명 한명씩 쳐다본 뒤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정말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제 실책으로 인하여 화연이 다치지만 않았다면 완벽 했을 텐데... 무영의 얼굴에 살기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류 화연.”

뜬금없는 무영의 말에 어깨를 들썩거리며 통곡을 하던 남 궁평의 눈이 크게 뜨였다.

“류...화연이라니요...?”

“당신들이 한 짓이 기억 안 나십니까? 대학사께서는 당연히 기억하시겠지요?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도 있으니 말입니다.”

기류 명률은 말없이 눈을 감았지만 공 형문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고함을 질렀다. 억울한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로 무영에게 호통을 쳤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전하! 그 아이가 뭐라고 저희를 이렇게 핍박하시는 겁니까! 저희는 환 제국의 고위관료입니다! 한낱 여자아이 때문에 이런 취급을 받을 이유는 없다는 말입니다! 폐하께옵서 이일을 아신다면 아무리 태자전하라 하셔도 엄벌을 면치 못 할 것입니다!”

“제 걱정은 마십시오. 아바마마께서 직접 명하신 일입니다. 실은 며느리에게 그런 짓들을 한 놈을 직접 쳐 죽이겠다며 노발대발 하시는 것을 겨우 말리느라 힘들었습니다.”

공 형문과 남궁 평의 귀에는 다른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며느리? 며느리라니...?

폐하의 며느리라면 태자비 아니던가. 공포로 머리가 굳어 이게 무슨 소린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던 남궁 평이 말을 더듬거렸다.

“...며, 며느리라니요? 누가 말입니까? 설마...설마, 류 화연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제 옆에 있을 단 한사람. 그녀가 바로 류 화연입니다.”

“!!!!”

“황족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도 능지처참 당할 대역죄 인 것 알고 계시지요? 그럼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신 걸로 알겠습니다.”

무영이 더 이상 시간을 끌 지 않고 고신을 시작할 것만 같아 공 형문은 동틀이 부서져라 버둥거리며 급하게 외쳤다. 공포에 질린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저, 전하! 그 아이는...아, 아니, 그 분은 아직 황족이 아니십니다! 첩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어떠한 호소를 하건 간에 무시할 것만 같았던 무영이 고민하는 표정으로 턱을 쓸더니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흠, 그렇긴 그렇군요...... 선택을 받았어도 첩지를 받기 전까지는 황족이 아닌 건 맞으니까요......어쩔 수 없군요. 그 죄목은 없었던 걸로 하겠습니다.”

수틀리면 모조리 죽여 없앨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치에 맞게 판단까지 해주다니...

그럼, 그렇지. 한낱 여자 하나 때문에 우리를 쉽게 죽일 수는 없을 거야. 아직 태자비도 아니잖아. 잘하면 오늘 죽지는 않겠구나. 목숨만 붙어있으면 훗날을 도모 할 수 있다. 공 형문과 남궁 평의 얼굴에 다시 희망이 번졌다.

“저, 전하!! 성은이 망극,”

“그럼, 제 기분이 더러워서 라고 하지요.”

“에......예......?”

“황족위해죄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황족의 심기를 거스른 죄로 하겠습니다. 다른 죄목 중 맘에 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시던가요. 어차피 역모로 잡혀온 것 아닙니까? 그러니 더해지는 죄목 정도는 마음대로 하십시오. 마지막인데 그 정도는 맞춰드려야지요.”

공 형문의 얼굴은 까맣게 죽었다. 대학사가 뒤집어씌운 역모 죄까지 그대로 덮어 쓸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문은 이제 끝이다.

“......여, 역모는......누명이라는 것을....”

무영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고위 관료를 죽이려면 죄목이 명확해야 한다더군요. 게다가 웬만한 죄목으로는 자식들까지 싸잡아 죽일 수는 없다지 뭡니까. 역모나 황가의 보물 정도는 훔쳐 줘야 가능하다니...그냥 죽여 버리면 될 걸 뭐가 이리 복잡한지. 무시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저는 여러분의 가문이 대역죄를 저지른 가문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라서 말입니다. 그래야 혹시라도 살아남을 지도 모르는 당신들의 후손이 제가 없는 먼 훗날까지 죽어지낼 거 아닙니까.”

“......”

“대학사가 당신들에게 칼을 겨누게 하기위해 하기 싫은 짓까지 해야 했으니 제 심기가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계획 때문이기는 했지만 제 것에게 준 정표까지 가져와야 해서 기분이 더더욱 좋지 않았지요. 더군다나 모두 가져왔어야 했는데......제 실수로 인해 제 것이 화를 당해 지금 제 속은 아주 엉망입니다. 누군가를 산채로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요.”

“......”

“그 동안 오늘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모르실겁니다. 부디, 제 기분이 풀릴 때 까지 저와 어울려 주시기 바랍니다.”

국문장 안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내용과는 달리 화를 내지도 않고 흥분을 하지도 않는다. 무영은 하루일과를 읊조리듯 낮은 목소리로 여상스럽게 말할 뿐이었다.

남궁 평이 앉아있는 동틀 밑으로 소변이 줄줄 떨어졌다.

미칠 것 같은 공포로 전신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보던 무영은 좌석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한쪽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손으로 괴고 붉은 입술을 비스듬하게 올렸다. 가늘어진 황금색 두 눈은 기이하게 번들거렸다.

“이제, 모두 입을 다무십시오.”

무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

12시에 다음 편...

몸을 찢고 비틀고 뽑고 자르고 하지 않아도

잔인하단 말 들어 보고 싶었어요...

잘 표현했지는 모르겠지만...ㅜㅜ

원래 저런 말은 존대로 하는게 더 무섭...

고문은 여기서 끝. 뒤는 독자님들의 상상에 맞기겠어요.

수위가 간당간당하다는 말을 들어서...ㅡㅡ;;;

작가는 조아라의 규정을 준수합니다. 쿨럭...

소리도령님, 랑뷰님 사이좋게 후원 연참 해주셨네요.

어제 작가는 연참을 안했는데...ㅜㅜ 꾸벅.

하늘에 아이님 후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