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을 문 짐승-64화 (64/110)

00064  짐승, 우리 안으로 꽃을 들이다  =========================================================================

어제 어의 박 준명의 목소리는 기해가 숨어있던 곳까지 들렸었다. 그 뒤로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오해가 어느 정도는 풀린 듯, 오늘 화연의 표정은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기해는 상전의 기분이 좋은데도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역적 짓을 한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꽃 같은 아기씨를 제 손으로 짐승 아가리에 물려주다니…….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 지 눈앞이 막막했다.

기해는 화연을 쳐다보았다. 연릉각으로 돌아와 얼마 자지도 못했는데 얼굴이 반지르르한 게 때깔이 아주 좋아보였다.

그래…….사랑이 좋기는 좋지…….

“오해는 풀리신 거예요?”

무슨 생각 중이었는지 볼을 붉게 물들이며 미소를 짓고 있던 화연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기해의 얼굴을 살폈다.

“어…….아니…….어제 정신을 차리지는 못하셨어.”

“근데 뭐가 그리 좋으세요. 말씀을 나누신 것도 아닌데. 제 입으로 ‘잘못했다. 용서해다오’ 혹은 ‘내 마음에 있는 정인은 바로 너다‘ 이런 말을 들으신 것도 아니라면서요.”

“그건 아닌데…….저번에 내가 물에 빠졌을 때 말이야…….그때 어의께서 오신 적 있었어?”

“있었지요. 부르지도 않았는데 궁의도 아니고 어의께서 새벽같이 오셔서 놀랐었어요. 왜요?”

“…….태자전하께서 보내주신 거래.”

“근데요?”

“어?”

“아플 때 지가 직접 고쳐준 것도 아니고 어의 보내준 것뿐인데 뭐 그리 감동이라고 그러세요?”

“그때…….어의에게…….미, 미래의 화, 화, 황후라고…….하셨다고…….”

“그래서요?”

“뭐가?”

“확실하게 태자비 첩지를 받은 건 아니시잖아요. 설마, 그 말 한마디 전해 들었다고 다 풀리신 건 아니시지요?”

“그게 아니고……. 생각해 보니까 저, 저, 정인으로 나를 생각하고 계셨던 것 같아서...전에 무, 태자전하께서 나한테 하셨던 말씀들도 기억이 나고…….”

“뭐라고 하셨는데요?”

“…….어…….빠, 빨리 받아들이라고…….자기는 인내심이 부족하니까…….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맞는 거잖아. 그렇지?”

“......뭐......”

그래서 얼굴에 홍조가 폈구먼. 진즉 좀 기억 해내시지…….

“그럼, 태자전하임을 속인 것은요?”

“그건…….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너무 싫어하시니까 어쩔 수 없이…….”

기해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화연의 손을 잡았다.

“아기씨, 갑자기 마음이 한 없이 너그러워지면서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세상이 막 아름답게 보이고 뭐, 그러세요?”

“아, 아니…….그런 건 아닌데…….처음부터 태자전하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거든. 정인이 있다는 게 문제였던거지…….게다가 며칠간 연락도 뚝 끊겨 너무 걱정했던 참이었어.”

“연락 없이 며칠 못 봤다고 그게 그렇게 속상하셨어요?”

“응. 불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대체 왜요? 언제부터 그렇게 연락하고 지내셨다고…….아기씨, 일반적인 연인 사이에도 매일 만나고 연통을 보내고 그러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한 집에 사는 부부조차도 일이 생기면 며칠간 못 볼 때도 있는걸요?”

화연은 뜨끔한 속을 가리며 어이없어하는 기해의 시선을 피했다.

“어......? 하, 하여튼……. 싫어. 그리고 자신이 누군지 말씀 안하신건 속상하긴 하지만…….전하께서는 그 동안 얼마나 말씀하시고 싶었겠니.”

허이고, 행여나! 할 수만 있었다면 죽을 때 까지 숨겼을 걸?

“류 가(家)에 성녀 한분 나셨네요.”

기해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낱같은 희망이 날아갔다. 진짜 그 짐승이 우리 아기씨를 날름 삼키려 마음먹고 흉계를 꾸몄었나 보다.

짐승 혼자만 좋다고 난리치는 거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기씨를 빼돌릴 텐데 저렇게 서로 좋다는데 억지로 때어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저 얼굴에 꽃 핀 것 좀 보소…….아마 가주 어르신께서도 아기씨의 저 얼굴을 보시면 아무 말씀도 못하실 게다. 나만 달달 볶으시겠지. 일이 이렇게 됐으니 앞으로 내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었다.

이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아기씨께서 태자비첩지를 받아 입궁하실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따라오는 수밖에 없었다.

류 가(家)에 남아 있다가는 제명에 죽지 못 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특히 상이도련님께서는 어떤 약을 써야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을지 고민하시겠지. 그 무서운 침묵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어휴-그럼 태자전하께서 빨리 일어나시는 일만 남았네요.”

화연이 눈을 반짝거렸다.

“있잖아. 내가 어제 무여…….태자전하의 귓가에 빨리 일어나시라고 속삭였더니…….글세, 손가락을 움찔거리시지 뭐야…….그것도 여러 번! 이제 조금만 있으면 깨어나실 것 같다고 어의께서 말씀하셨어. 내 목소리가 도움이 되는 것 같데. 정말 신기하지 않아?”

“정말 신기하긴 하네요…….”

그동안 말하고 싶어 어떻게 참으셨는지 그게 제일 신기해요. 어제까지만 해도 실연당한 여자의 몰골로 눈물 콧물로 뽑으셨던 일은 기억에서 사라지셨나 봐요.

기해는 속에서 올라오는 쓴물을 도로 삼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그래서 말인데…….오늘은 태자전하에게 언제.......어?!”

화연이 슬금슬금 기해의 눈치를 보면서 오늘은 청룡궁에 언제 갈 수 있냐고 물어보려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금위를 대동한 감찰 상궁과 궁녀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더니 다짜고짜 주위를 에워쌌다. 가만히 앉아있다 봉변을 당한 화연은 영문을 모른 채 살벌한 기세의 그들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놀란 기해가 벌떡 일어서면서 화연 앞을 막아섰다.

“당신들은 누구신데 남의 처소를 함부로 들어오시는 거예요? 이분이 어떤 분이신지는 알고 이러시는 거예요?”

서늘한 얼굴로 방안을 둘러보던 감찰 상궁이 호통을 쳤다.

“그 입 다물라! 믿을 만한 제보가 들어와서 수색중이니 너는 조용히 하거라. 자네들은 그걸 이리 가져오게.”

감찰 상궁의 지시에 따라 궁녀들은 침상 옆 협탁을 들어 감찰 상궁 앞으로 옮겨 놓았다. 감찰 상궁은 서랍을 일일이 다 꺼내더니 안에 있는 물건들을 죄다 바닥으로 탈탈 털어냈다. 그 서슬에 서랍 안에 들어 있던 면경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감찰 상궁은 발로 물건들을 이리저리 흩어놓더니 옆에 있는 궁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에 있다고 하시지 않았느냐?”

“예. 침상 옆 협탁에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큰 낭패를 볼 것이야. 위치를 옮긴 듯 하니 방 안을 샅샅이 뒤져라. 어서!”

“예, 마마님”

궁녀들은 각각 흩어져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기해가 주먹을 틀어쥐고 발을 굴렀다.

“왜들 이러시는 거예요! 뭘 찾는 건데요!”

기해는 대답도 없이 방안을 헤집기 바쁜 그들을 보다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감찰 상궁 뒤를 쫓아다니면서 물었다.

“누가, 무슨 내용으로 제보를 했다는 거예요? 말씀을 좀 해주시라고요!”

감찰 상궁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기해를 있는 힘껏 밀었다.

“네 이년! 방해하지 말고 어서 비키지 못하겠느냐!”

거세게 밀려 비틀거리던 기해는 몸을 바로 하더니 감찰 상궁을 독기어린 눈으로 노려보다가 화연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아기씨. 저 재상어르신께 다녀올게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 사람들 안 되겠어요. 우리 아기씨께서 어떤 분이신데 감히 이런 짓들을 하는지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요!”

“기해야! 잠깐…….”

기해가 방을 뛰쳐나가려는데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금위가 기해를 붙잡았다.

“이거 왜 이래요?! 이거 안 놔요? 놓으라고요!”

기해는 금위에게 잡힌 팔을 뿌리치기위해 몸부림을 쳤다. 화연은 기해의 팔을 꽉 움켜잡고 있는 금위에게 큰 소리로 나무랐다.

“힘없는 여자에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놔 주십시오. 나가지 않을 테니 놔 주란 말입니다!”

기해는 자신을 잡고 있는 금위의 힘이 슬며시 빠지는 것을 느끼자마자 팔을 휘둘러 빼내고 표독스럽게 쏘아봤다.

“찾았습니다!”

옷장을 뒤지던 궁녀가 검은 비단주머니를 찾아 그 안을 보고 반색을 하면서 외쳤다. 그 주머니를 잡아 채 안을 들여다보던 감찰 상궁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는지 눈이 휘둥그레 졌다.

“이건…….미르의 눈물 이잖느냐. 분명히 미리내의 별이라고 하셨는데…….어떻게 된 게야?”

“마마님, 미리내의 별이면 어떻고 미르의 별이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같은 황실의 보물인데요. 서두르셔야 합니다.”

그야 그렇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감찰 상궁은 이내 입술을 들어 올렸다. 연지를 짙게 바른 입술이 비스름하게 올라갔다. 그녀의 눈짓을 받은 궁녀 한명이 처소를 빠져나갔다.

“꿇려라.”

“왜들 이러십니까!”

궁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주춤거리는 화연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더니 강제로 꿇어 앉혔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날카로운 면경 조각들이 그녀의 양 무릎 안으로 파고들었다. 화연의 입에서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윽-”

“아, 아기씨! 아기씨!!”

화연에게 달려들려는 기해를 금위가 다시 붙잡고 막아섰다.

감찰 상궁은 화연을 거만한 표정으로 내려 보더니 주머니를 내밀었다.

“이것이 네 것이냐.”

고통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던 화연은 침착하게 말했다.

“예, 제 것이 맞습니다.”

“네 것이 맞다......? 하! 이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다니 참으로 맹랑하기 짝이 없구나.”

“그것이…….무엇인데 이러시는 겁니까. 제 것을 제 것이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감히 가질 수 없는 것을 소지하고 있으니 당연히 큰 문제가 되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이런 천인공노 한 짓을 저지르고도 낯짝 한번 두껍구나.”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오해가…….”

감찰 상궁이 화연의 말을 끊고 고함을 질렀다.

“오해? 오해라……? 네 이년! 네가 이것을 훔쳤다는 것을 내 모를 줄 아느냐! 누굴 속이려 들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훔치다니요? 제가 말입니까?”

“이렇게 떡 하니 증거가 있는데도 발뺌을 하겠다는 게냐? 그래. 지금이야 그렇게 말하겠지. 허나, 금옥에 갇혀 고신(拷訊)을 받다 보면 싫어도 실토 하게 될 터! 어디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 보거라. 뭣들 하느냐 어서 끌어내라.”

궁녀가 화연의 양팔을 잡아 일으켰다. 치마의 무릎부분에는 피가 붉게 번져 있었다. 기해는 잘 걷지도 못해 질질 끌려가는 화연을 보며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을 쳤지만 금위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기씨! 아기씨! 이거 못 놔?! 놔!! 우리 아기씨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예요! 재상 어르신의 따님 이란 말이에요! 그런 분께 이따위로 행동해도 무사할 것 같으세요! 어서 그 손 놓지 못해요?! 아기씨!!”

감찰 상궁은 기해를 가소롭다는 듯 보더니 이내 얼굴을 굳히고 싸늘하게 일갈했다.

“폐하께서 황가의 보물을 훔친 도적놈은 누구든지 막론하고 육시를 내겠다고 엄포하셨다. 재상의 위치가 폐하의 어명보다 위에 있다는 말이더냐?”

기해의 얼굴이 단번에 당황스럽게 변했다.

“보, 보물? 보물이라니? 그게 무슨 말 이세요! 무슨 보물을 훔쳤다고 이러는 거예요! 절대 사실이 아니에요! 아니란 말예요! 우리 아기씨는 그런 일을 하실 분이 아니라구요! 연릉각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실 수 있겠어요!”

“흥! 금옥에 갇혀서도 계속 그렇게 말 할 수 있을지는 내 두고 보겠다. 뭘 꾸물거리는 게냐! 저 년도 같이 끌어내라!”

“악!! 놔! 놓으라고!”

사력을 다해 버둥거리는 기해와 식은땀을 흘리며 절뚝거리는 화연이 각각 금위와 궁녀에게 잡혀 끌려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누군가 조용히 따라갔다.

*

주 해랑과 주 아랑은 교대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너무 많은 일을 겪어 더욱 피곤한 것 같았다. 게다가 아침인데도 어둑어둑하니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날이라도 밝으면 좀 나을 텐데 밤처럼 어두우니 졸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천근같은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다가 어제 봤던 그 귀신형상의 아가씨가 이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오자마자 허리도 펴지 못하고 헐떡거리면서도 다급하게 말했다.

“류 대장님을 만나야 합니다. 급해요!”

“어젯밤에 오셨던 그 아가씨 아니십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길게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화연아가씨가 큰 화를 당하게 생겼다고 전해 주세요! 어서요!”

“화연아가씨? 그럼 대장님께서 그렇게 자랑하시던 동생 분 말씀이십니까?”

“예! 그렇다니까요. 지체할 시간 없으니 어서 전해주세요.”

“저를 따라 오십시오.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더 빠르실 겁니다.”

주 아랑은 호림과 함께 청룡궁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혼자 남겨진 주 해랑은 갑자기 들리는 천둥번개소리에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꾸물꾸물한 하늘은 시커멓게 물들어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 같았다. 으스스한 느낌에 잠이 홀딱 깬 주 해랑은 팔을 쓸어 내렸다.

*

“류 대장님, 누가 찾아 오셨습니다. 급한 일이라고 하시는, 자, 잠깐!”

호림은 주 아랑의 말이 끝날 때 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그의 옆구리를 비집고 들어가 문을 활짝 열었다. 무영을 살펴보며 어의와 대화중이었던 류 강연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봤다. 그에 당황한 주 아랑이 화급하게 팔을 끌어 당겼다.

“여긴 태자전하의 침소입니다.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나가서 기다리십시오!”

류 강연은 소란스럽게 들어서는 주 아랑과 호림을 보더니 멈칫했다. 어젯밤과는 반응이 사뭇 달랐다. 그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응? 어……. 호, 호림이 아니야……? 여기는 왜…….근데, 이 새끼가…….야! 너 그 팔 안 놔? 이게 죽으려고…….흠, 흠. 호림아 무슨 일로…….”

“서둘러 금옥으로 가셔야 해요. 화연아가씨와 기해가 금옥으로 잡혀갔어요. 빨리요!”

왠지 부끄러운 기색이었던 류 강연의 얼굴이 대번에 살벌하게 변했다. 호림에게 되묻는 그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무슨 보물이 화연아가씨 처소에서 발견됐다고 하던데…….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일단 가셔야 해요. 아가씨께서 다치신 것 같았다구요. 치마에 피가 묻어 있던데…….그러고 있지 마시고 빨리 가시라니까요!”

“이것들이 쥐약을 처먹었나. 감히 누굴......! 주 아랑, 넌 지금 행궁으로 가서 아버지를 금옥으로 모셔와. 당장!”

“네!”

“호림이 넌 돌아가.”

“예? 왜요? 저도 같이 갈래요.”

“안 돼. 금옥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 인줄 알아? 여자가 갈 곳도 못돼. 연릉각으로 돌아가 있어. 어르신, 전하를 부탁드립니다.”

류 강연은 호림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어리둥절해 하는 어의에게 목례를 한 뒤 굳은 표정으로 나가버렸다.

덩그러니 남은 호림은 류 강연을 따라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팡질팡 하다가 불안해하던 예진의 얼굴이 떠올라 연릉각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처소를 나왔다.

하도 급박하게 일이 벌어지니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 어안이 벙벙한 채로 앉아있던 어의는 무심코 시선을 내리다 눈을 크게 떴다.

당장이라도 눈을 뜰 것처럼 무영의 동공이 눈꺼풀 안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미간이 깊게 파이면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천천히 벌어지는 눈꺼풀 사이로 싸늘한 황금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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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호림과 강연

얘네 둘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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