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9 짐승, 우리 안으로 꽃을 들이다 =========================================================================
회의가 끝났는지 신료들이 의전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류 강연은 의전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무영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전하, 회의는 잘 마치셨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 하신 적은 처음이시지요? 어떠셨습니까? 하실 만하셨습니까?”
“응”
4가지의 물음에 성의 없는 한마디로 대답한 무영은 류 강연을 지나쳐 청룡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아유, 이걸! 하는 표정으로 한 대 칠 듯이 손을 들어 올리던 류 강연은 앞서가던 무영이 손짓을 하자 얼굴을 싹 바꾸고 뒤에 바짝 붙었다.
“곧 가람지방에 갈 거야. 준비해”
“가람지방이라면…….”
“협상 자리에 내가 갈 거야.”
“......전하께서요?”
“응”
“협상자리에요?”
“그래”
“......”
륜국과의 전쟁에서 자신이 전장의 푸른 늑대로 유명했다면, 무영은 전장의 붉은 역귀(疫鬼)로 유명했다. 무영만 봤다 하면 한참 싸우던 적국의 병사들도 무슨 역병귀신 보듯 어마뜨거라! 하며 무기까지 집어 던지고 앞 다투어 도망가기 바빴는데 그런 사람을 협상자리에 내보내다니…….
류 강연은 연제께 묻고 싶었다. 진정 협상을 하고 싶긴 하신 거냐고.
“꼭…….가셔야 하는 겁니까?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는 것은…….”
“저쪽에서 황자가 나올 거야.”
…….이런 젠장. 재수 없으면 다시 전쟁터로 끌려갈 수도 있겠군. 자신의 모든 행운은 연이가 깨어나는데 다 쓴 모양이었다. 류 강연은 긴 숨을 삼켰다.
“가셔야겠군요. 언제입니까?”
“내달 말”
“그럼 넉넉잡아서 내달 초 중순쯤에 출발하시면 되겠네요. 남쪽이면 볼 것도 많은데다 내달이면 날도 많이 따뜻해 질 테니 운 좋으면 이른 꽃구경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번 귀궁 할 때에는 서두르느라 무식하게 말만 몰았지 구경도 제대로 못했잖습니까. 이번에는 팔자 좋게 유람하면서 갈수 있겠는데요.”
“어디가 볼만한데?”
전혀 관심 없을 것 같았던 무영이 뜻밖에 질문까지 던지면서 관심을 보이자 류 강연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자신이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을 말했다.
“남쪽은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이죠. 그리고 남쪽의 음식을 제대로 맛보시려면 빼 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남하강입니다. 남하강을 따라 내려가기만 해도 남쪽의 가볼만한 곳은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요. 맛 집이란 맛 집은 모다 남하강 주변에 몰려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번에 제가 올라오면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생선무침이 그렇게 유명하다고요. 그게 바로 남하강 주변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음식입니다.”
무영이 자신의 말을 너무나 열심히 들으면서 계속해 보라는 눈짓까지 보내자 류 강연은 신이 났다.
“생선튀김 종류는 무궁무진 하고요 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생선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란 음식은 죄다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식도락가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죠. 강을 따라 나있는 파루안 나무도 참 볼만 하고요. 강에 배도 띄울 수 있는데 밤이면 달빛에 빛나는 파루안 나무를 배경으로 뱃놀이라도 하면 그렇게 환상적이랍니다. 딱 거기서 밖에 볼 수 없는 장관이라 밤마다 연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더군요.”
“뱃놀이라…….흠…….괜찮군.”
“예?”
“아니야. 그게 다야?”
“당연히 아니지요. 참!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거기 파루안 나무는 베시면 안 됩니다. 금지되어있어 걸리면 바로 감옥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 화양주(花釀州)는 들어보셨지요?”
류 강연의 말을 집중해서 듣던 무영은 고개를 저었다.
“못 들어보셨다고요? 전하께서요? 예전에도요? 단 한번도? 전혀?”
“못 들어봤다니까.”
무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자 류 강연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크으- 그럼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질 뻔 했네요. 맛 집 다음으로 유명한 곳이 바로 화양주입니다. 아니, 거기를 가기위해 맛 집을 경유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남하강주변이 식도락가의 천국이면 거기는 즐거움의 천국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참 좋은 곳인데 말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네요. 이번에 가보시면 압니다.”
천국이라고…….하는 무영의 중얼거림을 들으면서 류 강연은 기대감에 입맛을 다시며 손을 비볐다. 그때쯤이면 간택도 다 끝났을 테고……. 화양주만 빼면 우리 연이를 데려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둘이 먹다가는 싸움난다는 생선무침을 이번에야말로 먹어볼 수 있겠네요. 흠흠…….우리 연이도 데려갈 수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전하, 그건 어려울까요?”
“흐음…….”
무영은 류 강연의 질문에는 대답하지도 않고 손을 들더니 손톱을 자세히 쳐다봤다.
밑도 끝도 없는 무영의 뜬금없는 행동에 류 강연도 옆에 서서 무영의 어깨 너머로 손톱을 살펴봤다. 차라리 붕대를 감고 있는 손바닥이면 모를까 거스러미 하나 없이 길쭉한 모양의 손톱은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손톱이 아프세요?”
“......아니”
안 통하는군.
화연이 딴청을 피울 때 가끔 하는 행동이었다. 그녀가 하면 그럴 듯 했는데 자신이 하니 먹히지 않았다.
“노 상궁을 불러와.”
고개를 갸웃하던 류 강연은 기대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
“간택 일정을 앞당기실 겁니까?”
“그래야지”
“앗! 그럼 예상했던 것 보다 간택이 더 빠르게 끝나겠군요?”
“…….그렇겠지”
“전하, 제가 아까 말씀드린 거 고려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뭘”
“우리 연이 말입니다. 경비는 다 제 사비로 할 거구요. 얌전한 아이라서 방해되는 일 절대 없을 테니 그건 전혀 걱정하지 마십시오. 걔가 깨어나서 집을 떠나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있어 봤자 황궁에 온 것이 답니다. 가엾게도 평생을 아프기만 해서 집 밖에 모르는 애에요. 이번에 데려가서 맛있는 것도 먹여주고 좋은 곳도 보여주고 뱃놀이도..........근데, 아까부터 자꾸 왜 그러십니까? 진짜 손톱이라도 아프신 겁니까?”
“......”
무영은 저도 모르게 들여다보고 있던 손톱에서 시선을 떼고 청룡궁으로 들어갔다. 경비 대원에게 노 상궁을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린 류 강연은 이상하네, 오늘따라 왜 저러냐…….하면서 뒤 따라 들어갔다. 아쉽게도 무영의 귀 끝이 발갛게 변한 것은 보지 못했다.
“전하, 노 상궁 이옵니다.”
“들어오십시오. 너는 나가.”
류 강연은 들어오려다 문턱에 멈춰서 무영을 바라봤다.
“……또요?”
“......”
“네…….”
입술을 실룩거리며 돌아나가는 류 강연을 미소 띤 얼굴로 보던 노 상궁이 무영에게 예를 표했다. 무영은 창틀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하고 노 상궁에게 답례를 했다.
헌데, 어쩐 일인지 노 상궁의 표정은 매우 어두워 보였다. 무영의 표정이 굳었다.
“연릉각에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노 상궁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 쉬었다.
“아기님에게는 아무 일도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다만…….휴…….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 겪어서 그럽니다.”
“무슨 일이신데 그러십니까.”
“아침 댓바람부터 그것도 황궁 안에서 다 큰 처녀 둘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웠답니다. 이게 무슨 망측스런 일이란 말입니까. 제가 정말 면구스러워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습니다. 후-”
화연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무영이 피식-하고 웃으면서 여유로운 태도로 창틀에 몸을 기대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 둘을 말리느라 궁녀 둘이 다치고 상궁 하나가 허리를 삐끗 했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이래서 교육시간을 빈틈없이 짜야 한다는 겁니다. 몸이 편하니 그런 해괴한 짓들을 벌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번에 혼쭐을 내주렵니다. 예가 어디라고 그런 짓들을 벌이는지…….쯧쯧쯧”
“흐음…….”
무영은 손가락으로 창틀을 톡톡 치다 말했다.
“그냥 넘기십시오.”
“예? 전하…….다른 묘안이라도 있으셔서 그러시는 겁니까?”
“네. 제게 생각이 있어서 그러하니 그렇게 해주십시오.”
“생각 같아서는 눈물 쏙 빠지게 혼을 내고 싶지만…….휴- 하긴, 그럴 힘도 없긴 합니다.”
“그리고 삼간택 전에 날을 정해 가족과 만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지친 표정이었던 노 상궁이 눈을 부릅뜨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전하! 절대 안 됩니다. 그런 경우는 이제껏 없었습니다. 사가의 인물들을 만나게 하는 건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란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잘 압니다.”
“아시는 분이 그러십니까!”
“법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전하!”
“이번 간택에서는 제 말에 따라주기로 하신 것, 기억 안 나십니까.”
“전하…….하지만, 그것은”
“솔직히, 만날 사람은 다들 만난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노 상궁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입궁 한 처녀들 대부분은 고위관료의 여식들이었다. 같은 황궁 안에 있으니 아무리 엄격하게 규정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만나려고 한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제 딸에게 불이익이 갈까 자제할 뿐이지만 어디서나 유난스러운 부모는 꼭 있었다. 류 충처럼 정식으로 요청하는 건 양반 축에 들었고 모르게 만나는 일도 가끔 벌어지고는 했다. 들킨다고 하더라도 외간남자를 만난 것도 아니고 부모가 하나밖에 없는 딸 너무 보고 싶어서 봤다는데 법도 아닌 규정을 어긴 것뿐이라서 처벌하기에도 난감했다.
가장 큰 불이익이라 해봤자 폐하께 올리는 처녀들의 생활기록일지에 안 좋은 평을 남기는 일이겠지만 그런 처녀들은 대부분 아비가 힘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것도 눈치가 보여 여의치 않았다. 이런 사정으로 지금에 와서는 연릉각 담당 상궁들도 어느 정도 눈을 감아주는 형편이었다.
무영이 노 상궁의 흔들리는 마음을 잘 아는지 쐐기를 박았다.
“뒤에서 쥐새끼처럼 몰래 만나는 것 보다는 날짜를 정해 대놓고 만나게 해주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이미 그런 짓을 했군…….
자신이 궁녀였을 때부터 태자비 간택만 세 번을 겪어 왔지만 이번 간택은 유난히 힘겨웠다. 나도 이제 늙었나 보구먼…….노 상궁은 다시 깊은 숨을 내쉬었다.
“스승님, 뭐든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아니겠습니까.”
“휴-, 알겠습니다. 날짜가 정해지면 연통을 드리지요.”
“그리고, 간택의 일정을 조정해야겠습니다.”
노 상궁도 바라던 바였다. 하루빨리 이번 간택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선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니, 그러시지요. 일정을 앞당기시겠습니까?”
“네, 앞으로 사흘 뒤 삼간택을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괜찮겠네요. 대면식은 삼간택 후 바로 하시겠습니까?”
“네.”
노 상궁은 무영의 얼굴을 조용히 마주보았다.
“아기님께 말씀은 드리신 겝니까”
“......”
“전하, 가장 치료하기 힘든 상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
“마음속에 난 상처입니다.”
“......”
“이 노부(老傅)의 말을 꼭 명심하십시오.”
노 상궁이 나가고 무영은 창틀에 기대어 앉아 긴 시간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날부터 화연의 창을 두드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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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기로 그 유명한 밀당 최고 신법
매일연락하다 뚝 끊기 시전
이제 간택도 내일로 끝나는군요.
Q. 무영의 귀가 빨개진 이유에 대해서 간략히 서술하시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