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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58화 (58/110)

00058  짐승, 우리 안으로 꽃을 들이다  =========================================================================

화연은 이른 아침 중간택을 통과하였다는 궁녀의 전갈을 받고 입이 한자는 튀어나온 기해를 달래어 식당을 내려갔다.

탈락을 억울해 하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처녀들과 그들을 난감한 표정으로 달래는 시비, 이와는 대조적으로 얼굴 가득 안도한 표정으로 서둘러 짐을 꾸리는 시비들과 그들을 옆에서 도와주는 화색만발 한 처녀들로 연릉각 안은 벌집이 터진 마냥 소란스러웠다

식당에 들어서니 대여섯 명의 처녀들만 띄엄띄엄 앉아 있었는데 그들 중 남궁 진류가 시비의 시중을 받으면서 혼자 꼿꼿하게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여기요, 화연님! 이쪽으로 오세요.”

식당 한 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예진의 목소리가 들려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예진과 여전히 창백한 안색의 호림이 같이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다.

“헉! 아, 아기씨…….저는 시비식당에서…….”

“왜? 너……. 설마 호림씨 때문이야? 아직도?”

“어, 어…….그렇다고 하면 그렇고,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

“기해야. 난 기해 네가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편협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편협…….뭐, 그렇게 까지 말씀하실 필요는…….기해는 볼을 부풀리면서 부루퉁한 표정으로 화연에 끌려 예진에게 다가갔다.

“화연님, 중간택을 통과하셨네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축하드립니다.”

화연은 미적거리면서 앉지 않으려고 버티는 기해를 억지로 자리에 눌러 앉히면서 화답했다.

“예진님도 축하드립니다. 기쁘시겠어요. 장서각을 더 이용하실 수 있으셔서”

예진이 입을 가리고 곱게 웃으면서 자리를 권했다.

“네, 사실 저는 그것이 제일 기쁘네요. 어서 앉으세요. 기해야, 너는 안 좋아?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

음산하게 웃으면서 아는 척을 하는 호림에게 우는 듯 웃어주던 기해가 예진의 말에 화연의 눈치를 힐끔 보았다.

“예, 저는…….별로…….”

예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왜? 설마, 화연님께서 태자비첩지를 받으시는 게 싫은 거야?”

기해가 말해도 되나 하는 얼굴로 화연을 보니 화연이 웃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초간택에서 탈락되시기만을 바라왔거든요. 헌데, 우리 아기씨를 위험에 빠뜨린 그 녀…….아가씨들을 생각하면 아기씨께서 중간택까지 오르신 게 건 잘 된 일이기도 하고…….마음이 참 심란 한 것이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탈락되기를 바랐다고? 아니, 왜?”

“저 뿐만 아니라 가주 어르신을 비롯한 류 가(家)식솔들은 죄다 바라는 일 이예요. 우리 아기씨야 당연히 중간택에서 선택되실 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크게 충격을 받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 만은 않네요.”

“어머…….왜 싫은 건데?”

“그야, 태자마마의 성정이 워낙 미ㅊ...지ㄹ...거치시잖아요. 예진 아가씨는 형부상서 어르신에게 아무것도 못 들으셨어요?”

“본가가 산간 오지에 있어 너무 머니까 아버지께서만 따로 황궁 앞에서 기거하시거든.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힘들어. 오시더라도 워낙에 과묵하셔서 황궁에 대한 말씀도 잘 안하시고……. 음, 그러고 보니 그건 좋아서가 아니셨나?”

“뭐가요?”

“내 처녀단자가 선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셨다는 얘기를 들었거든…….난 좋아서 그러신 줄 알았는데…….”

“에휴…….그 어르신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네요. 저희는 장원도 황궁 근처라서 소문이 아주 빠르거든요. 흉흉한 소문일수록 더 빨리 퍼지는 거 아시죠? 가주 어르신께서도 전-혀 과묵하지 않으시고요. 게다가 우리 아기씨를 얼마나 애지중지 하시는데요. 그런 짐...태자마마께 절대 못 준다고 간택령 떨어지기 전에 얼마나 난리였는데요.”

“풋-재상어르신의 딸 사랑이야 누구나 다 알지. 난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네. 태자마마께서 성정이 아주 엄청나신가봐?”

기해가 기다렸다는 듯 태자에 대한 욕을 잔뜩 꺼내려는데 화연이 기해의 입을 막았다.

“기해야, 황궁에서 태자마마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다가 소리 소문도 없이 금옥에 갇히고 싶니? 얘가 참, 겁이 없어.”

기해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을 막고는 자신의 말을 들은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살펴보았다.

“예진님, 소문은 소문일 뿐 직접 대면하지 않고서는 사람 됨됨이를 다 알 수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기해의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얘도 그렇고 제 아버지나 오라버니들 모두 제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그렇답니다. 아직도 제가 병상에 누워있는 어린 아이처럼 느껴지시는 거지요.”

“그건 그렇지요. 사람은 직접 겪어 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법이지요. 저도 화연님을 뵙기 전에는 이런 분인지 몰랐지 뭡니까. 태자비로 간택되지 않더라도 화연님과 친구가 된 것 만으로도 저는 참 만족스럽습니다.”

화연은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활짝 웃으며 예진을 따스하게 쳐다보았다. 이 따사로운 광경을 거무튀튀한 눈으로 보던 호림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근데요…….”

“어마! 깜짝이야! 야!!......너, 너는 기척 좀 낼 수... 없니...?”

난데없이 들려오는 호림의 스산한 목소리에 기해가 화들짝 놀라며 윽박지르려다 말끝을 흐렸다.

“나…….아까부터 여기 앉아 있었잖아…….바로 니 앞에”

“아…….그, 그랬지…….아휴- 너 있는 걸 깜빡했지 뭐야. 하도 존재감이 없어서…….”

“기해야!”

화연이 엄한 표정으로 기해를 쳐다보는데 예진이 웃으면서 말렸다.

“화연님, 저도 잊고 있었는걸요. 뭐.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 많이 들어서 괜찮아요. 호림아 왜? 무슨 말 하려고 했어?”

호림은 정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냈다.

“중간택을 통과한 사람 중에 공 혜민도 있다던데요.”

화연의 눈길에 시무룩해졌던 기해가 눈을 왕방울 만하게 뜨면서 무섬증도 잊고 호림에게 되물었다.

“뭐! 그게 정말이야?”

“어. 아까, 간택을 고하던 궁녀들끼리 얘기하는 걸 들었어. 지들도 놀랐다나 뭐라나.”

예진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넌 또 그걸 어떻게…….아니다. 됐다. 정말 그런 얘기를 들은 거야?”

“아침에 뒷간가다 들었어요.”

기해가 잔뜩 분개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 혜민 만은 분명히 탈락할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말이다…….화연님, 이렇게 되면 참으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거네요. 이거, 잘하면 심사의 공정성 까지 의심 받을 수 있겠는데요?”

침착한 태도로 곰곰이 생각하던 화연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다른 처녀들은 내막을 정확하게는 모르지 않습니까. 기류 미란님이나 남궁 진류님 정도만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헌데, 기류 미란님께서 안보이시는데요? 탈락하셨을까요?”

예진이 식당 안을 한 번 휘 돌아보더니 작게 소근 거렸다.

“궁녀가 각자의 처소로 방문해 알려준 터라 누가 탈락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식당 안에 없는 걸 보면 탈락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리 잘못된 심사는 아니겠군요.”

호림의 스산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기류 미란, 통과했습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니.”

“뒷간에서 기류 미란의 시비를 봤어요. 어디서 얻어 터졌는지 얼굴이 찐빵이 되어있던데요.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다며 혼자 울고 있었어요. 그럼 통과한 거잖아요.”

“너 있는데서 울었다고?”

호림은 허공을 응시하면서 시커먼 눈을 껌뻑거렸다.

“음…….아니요. 저 있는지 모르는 것 같던데요.”

“그래…….잘 했어. 어서 밥 먹어.”

호림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던 예진은 화연에게 시선을 돌려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되면 그 원흉들이 모조리 통과했다는 말 아닌가.

“예상이 다 빗나갔네요. 화연님께서 그 화를 당하시면서 꺼내들은 계책인데 성과가 없어 그게 참 아쉬워요.”

화연은 싱긋 웃으며 예진의 손을 잡았다.

“예진님 걱정하지 마세요.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의 고통은 더 큰 법입니다. 지금은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좋아요. 그래야지 나중에 효과가 더 클 거예요. 그리고 이로써 그들에게는 공공의 적이 생겼네요.”

“공공의 적이라니요?”

“분명히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공 혜민님께서 통과하셨으니 첩지를 받을 인물이 그분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하겠지요. 그럼 그들에게는 공 혜민님이 공공의 적이 될 겁니다. 각자 자신이 그 인물이라도 생각하는 것이 더 좋기는 하지만…….뭐, 우리는 가만히 구경만 하면 됩니다. 너무 염려치 마시고 식사하죠.”

그들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도중 식당으로 공 혜민이 들어섰다. 도도한 표정의 공 혜민은 남궁 진류쪽으로 곧장 다가갔다. 남궁 진류는 물을 마시려다 식당에 들어선 공 혜민을 발견하고는 작은 눈을 부릅떴다. 무슨 심각한 얘기를 나누는지는 몰라도 처음에 조용하게 대화하던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화연이 앉아있는 곳까지 말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이러는 겁니까! 지금!!”

공 혜민은 남궁 진류의 냉담한 목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도도한 표정 그대로 코웃음을 쳤다.

“벌써 기류 미란님에게 이미 다 듣고 오는 길입니다. 그렇게 뒤통수를 쳐도 유분수지. 흉계가 아주 대단하십니다.”

앉아있던 남궁 진류가 마시기 위해 들고 있던 물 잔을 식탁에 탁 내려놓더니 벌떡 일어섰다.

“흉계라니요!! 말씀이 너무 과하신 거 아닙니까? 기류 미란님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들으셨는지 몰라도 지금 큰 실수 하시는 겁니다!”

남궁 진류의 거대한 몸집에 압도되어 움찔하던 공 혜민은 곧 표정을 수습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그래서 사과 한마디 하기가 싫어 끝까지 발뺌을 하시겠다…….이런 말씀이십니까?”

남궁 진류는 팔짱을 끼더니 코웃음을 치며 공 혜민을 코끝으로 내려 봤다.

“노 상궁에게 문서를 누가 보냈는지는 몰라도 제가 그랬다는 증거 있습니까? 그리고 사실, 틀린 얘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당당해 할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일은 그 쪽이 다 저질러 놓고 왜 저한테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이래서 격 떨어지는 것들하고는 상종을 말았어야......!!”

남궁 진류와 공 혜민을 지켜보던 화연과 예진은 너무 놀라 비명이 나올 것 같은 입을 가렸다.

공 혜민이 식탁위에 놓여 있던 물 잔을 집어 들더니 그대로 남궁 진류의 얼굴에 뿌린 것이다.

공 혜민은 물 잔을 식탁위에 거세게 내려놓은 뒤 졸지에 물에 빠진 생쥐꼴...아니, 물에 빠진 돼지 꼴이 된 남궁 진류에게 비웃음과 함께 말을 건넸다.

“네가 감히 누구 앞에서 그따위 건방을 떠느냐! 이 몸이 어떤 자리에 오르게 될지 아직도 깨닫지 못했단 말이냐! 그 비대한 몸처럼 미련스럽기 짝이 없구나! 지금은 그간의 정을 생각하여 이정도로 끝내지만 나중에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다. 그 동안 너의 오만방자하고 간악하기 짝이 없는 못된 행동들을 내 눈여겨 봐왔었다. 앞으로 오래 살고 싶으면 자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완벽한 하대로 말을 마친 공 혜민은 고개를 휙 돌리더니 이번에는 화연을 향해 다가왔다. 기해가 놀라 화연의 앞을 막아서기 위해 일어나는데 화연이 기해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예진이 입을 가리면서 조용하게 말했다.

“정말 첩지를 받을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군요. 참, 경솔하기 이를 데 없네요. 보기가 민망할 정도에요.”

고개를 한껏 쳐들고 납작한 코를 들어 올리며 도도한 표정으로 도도하게 걸어온 공 혜민은 도도하게 식탁 주위를 훑어보더니 기해와 호림을 보고 못마땅한지 눈썹을 들어 올렸다.

“다음부터는 식당 안에 시비 따위와 같이 식사 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하네. 그게 무슨 꼬락서니인가? 채신머리없게 스리…….그러니 아랫것들이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닌가. 내 저번에 신세진 것이 있어 이번에는 그냥 넘어 가지만 다음부터는 내 뜻에 따라주는 것으로 알겠네.”

어이가 없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거구나…….화연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조차 나지 않았다.

“왜요?”

“왜라니?”

화연은 정말 궁금해 죽겠다는 듯 고개까지 갸웃 거리며 물었다.

“제가 제 시비와 밥을 같이 먹겠다는데 그것에 대해서 왜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시는 거냐는 말입니다. 공 혜민님께서 무슨 자격으로요?”

공 혜민은 발끈하려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쯧쯧쯧…….아파서 누워있다더니 그 얘기는 못 들었나 보군. 시비가 상전 눈치를 보느라 말을 안했나 본데 나중에 한번 물어보게.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런 사항이라…….아무튼 일이 그렇게 됐으니 너무 억울해 하지는 마시게. 황궁구경 하는 셈 치면 되지 않겠는가? 이제 앞으로 황궁에 올 일도 없을 텐데 말일세.”

예진이 화연과 눈짓을 주고받다가 끼어들었다.

“그럼…….공 혜민님께서는 앞으로 황궁에 올 일이 자주 있을 거란 말씀이신가요?”

“자주라니? 이제 여기가 내 집이 될 터인데? 어흠,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니 나머지는 시비에게 물어보시게. 내가 아까 말한 것 명심들 하고.”

식탁에 앉아있던 모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 혜민의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언사 때문이 아니었다. 얼굴에 물기만 대충 닦은 남궁 진류가 손수건을 패대기치더니 이쪽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훗-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눈치를 챈 모양이군. 주눅이 들어 겁을 집어 먹은 이들의 표정에 흡족해진 공 혜민이 크게 웃으며 화연의 어깨를 두들겨 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너무 겁먹지 말게. 저번에 내가 신세진 것이 있지 않은가. 내가 그런 계산은 확실...!! 꺄아악!!!”

남궁 진류가 말을 하고 있는 공 혜민의 뒷머리를 움켜쥐더니 앞뒤로 사정없이 휘둘렀다. 화연들의 시선이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공 혜민의 머리통을 따라 같이 움직였다.

“캬악!! 이거 못 놔?! 아악- 이 년이 감히! 누구 머리를…….악!! 야!!”

“이런 상 미친년이 다 있나. 너야말로 감히 누구 안전에다 물을 뿌리는 것이냐! 갑자기 그 커다란 머리통이 훼까닥 돌기라도 한 것이냐!”

남궁 진류는 쥐고 흔들던 공 혜민의 머리채를 사정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한 주먹 뽑힌 공 혜민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씩씩 거리던 그녀는 손을 탁탁 털고서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를 정돈했다. 그리고 바닥에 나자빠져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공 혜민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았다.

“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내 알바는 아니지만,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하도 가관이라 내가 한마디 안 해줄 수 없구나. 잘 들어라. 너는 네 아비를 봐서 운 좋게 통과한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니까 헛물켜지 마라. 그 인물은 너 따위가 아니고 바로 나니까! 네 그 몰골로 그분 옆에 선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분수 정도는 알아야지!! 그 자리에 어울릴 사람은 나 밖에 없어!!”

남궁 진류는 아직까지 바닥에 엎어져있는 공 혜민에게서 시선을 획 돌려 화연을 쳐다보았다.

“내 말을 들으셨으면 무슨 뜻인지 대충은 알겠지요? 나도 화연님에게는 별다른 유감은 없습니다. 허나, 시비와 함께 겸상을 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 한마디 하려고 생각은 했었습니다. 앞으로…….”

남궁 진류는 계속 해서 입을 나불거려 어쩌고저쩌고 말을 늘어놓았지만 화연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어…….”

기해가 입을 벌리고 멍하게 있다가 손가락으로 남궁 진류의 뒤를 가리켰다.

공 혜민이 조용히 일어섰다. 귀신 산발을 하고 옷은 잔뜩 구겨진 데다 신 한 짝은 어디로 날라 갔는지 주선만 신은 맨발이었다. 그 처참한 몰골로 남궁 진류의 뒤통수에다 원독의 눈빛을 쏘아대던 공 혜민은 그대로 발을 굴러 훌쩍 뛰어 올랐다.

화연은 연우였을 때 봤던 영화의 유명한 장면이 떠올랐다.

<매트릭스 1>

공 혜민은 정말 매트릭스에 나온 그 여자주인공처럼 열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린 채 두 팔을 쫙 벌리면서 뛰어 오르더니 화연을 향해 한 참 설교 중이던 남궁 진류의 널찍한 등에 올라타고서 두 손으로는 남궁 진류의 머리카락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꺄아아아아악-”

남궁 진류의 비명소리가 식당에 울려 퍼졌다.

바닥에 쓰러진 둘은 이제 쌍욕과 비명을 번갈아 지르면서 식당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화연들 뿐 아니라 식당 안에 모든 처녀들이 누가 볼까 두려운 이들의 꼬락서니에 넋이 나가 구경만 하고 있는데 호림은 예진 몫으로 놓여있던 밥그릇까지 끌고 와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꿀맛이 따로 없었다.

“으흐흐흐- 너무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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