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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47화 (47/110)

00047  짐승, 우리 안으로  꽃을 들이다  =========================================================================

그 날을 생각하던 노 상궁이 눈을 뜨고 침중한 표정으로 무영을 마주 보았다.

“큰 탈 없었습니다. 묻어두시지요.”

“듣고 판단하겠습니다.”

무영의 표정을 살피던 노 상궁은 그냥 넘어가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 상궁은 한숨을 삼키고 차분하게 말했다.

“정확한 경위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저도 어제 밤이 돼서야 아기님께서 발을 헛디뎌 빠지셨다는 소문을 들었으니까요. 알아봤었습니다만 당사자인 아기님께서는 입을 열 상태가 아니시고 시비에게 묻고 싶어도 아기님 옆에서 도통 떨어지지를 않더군요. 다만 아기님을 상궁처소로 모셔드렸던 금위대원이 말을 하긴 했는데…….”

노 상궁은 말끝을 흐리며 무영의 얼굴을 살폈다. 무영이 말없이 가만히 있자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

“아기님의 실수로 그렇게 된 거라고 하더군요. 평소 아기님의 성정을 봤을 때 앞뒤가 맞지 않아 아기님과 가깝게 지내시는 아기님을 따로 불러 여쭈어 보니, 그 자리에 다른 아기님들도 같이 계셨다는 말씀과 함께 실수는 절대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자세한 내용은 말씀하기 꺼려하셔서 더는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만히 서있던 무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거칠어진 목소리에는 서릿발 같은 기운이 묻어 나왔다.

“빠지다니요?”

“…….모르셨습니까?”

아뿔싸!

노 상궁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가렸다. 당연히 무영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무영의 차디 찬 표정에 스무 해 넘게 무영을 봐왔던 노 상궁조차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빠지다니, 어디에 말입니까”

“......”

“스승님”

“......연릉각 후원의……. 련주(聯珠)연못입니다.”

“련주연못? 그 차가운 얼음물에 빠졌다는 겁니까? 그 깊은 곳에?”

“전하, 고정하세요. 아기님 무탈 하십니다. 전하!”

무슨 일이 생겨서 다친 줄만 알았지, 설마 이 겨울에 발이 닿지도 않는 깊은 연못에 빠졌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거기다 련주연못은 황궁 안에 있는 연못 중 차갑기로 유명한 연못이다. 맑고 깨끗한 이 못은 한 여름에도 데워지는 일이 없어 황궁 안 궁녀들이 새벽마다 즐겨 찾는 연못이기도 했다.

무영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화연이 죽을 뻔 했다니…….

어제 밤 봤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혼곤한 눈으로 자신을 보던 흐릿한 눈동자, 쉿 가루를 집어 삼킨 것 같던 목소리, 힘없던 그 미소…….그런데 무탈하다고?

무영에게서 살벌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기에 예민한 경호 대원들이 깜짝 놀라면서 동시에 3층을 쳐다볼 정도로 폭사되는 기운이 엄청났다. 그 기운을 바로 앞에서 받고 있던 노 상궁은 버티다 못해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무영의 살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류 강연은 단숨에 3층까지 뛰어 올라놨지만 섣부르게 들어서지는 못하고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노 상궁이 걱정이 되어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어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방안에는 쓰러져 있는 노 상궁 앞에 아직까지 살기를 날리는 무영이 바위처럼 서 있었다.

“전하! 무슨 일이시옵니까. 마마님!”

류 강연이 무영 앞을 막아서 쏟아지는 기운을 제 몸으로 막으면서 쓰러져 있는 노 상궁을 일으켜 세워 품에 안았다.

“마마님! 괜찮으십니까? 마마님!”

“…….전…….괜찮, 괜찮습니다.”

“전하! 고정하시오소서! 스승님 이십니다! 전하!”

무영은 사색이 되어있는 노 상궁을 감흥 없는 얼굴로 내려 보다가 기운을 갈무리 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 무영의 발목을 노 상궁이 붙잡고 매달렸다.

“전하! 제발 고정하시고 차분하게 생각하십시오. 노여움을 가라앉히셔야 합니다. 나중을 생각하셔 야지요”

나가려던 무영이 몸을 돌리고 피식 웃었다. 붉은 입술을 비스듬하게 올리고 눈동자를 노랗게 빛내는 무영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화가 나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무영을 봐온 노 상궁은 그가 지금 격렬한 분노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가 뭘 어쩐다고 그러십니까? 스승님. 지금 당장 그 년 놈들을 싸잡아 육젓이라도 담글 것 같아 그러십니까? 아니면 사지를 도륙 내어 사방팔방에다 흩어 놓을 것 같아 그러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자제하기로 했으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당분간은요.”

겁에 질려 말문이 막힌 노 상궁에게 무영이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입술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따로 없었다.

“그 때 까지 이일은 아바마마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십시오. 온전히 제 몫입니다. 이 점 명심하십시오.”

“전하! 제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 중 누군가,”

“그들 중 누군가 자진해서 이 일의 전모를 밝힌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요.  허나, 장담하는데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차가운 미소를 남긴 무영이 방을 나가려는데 노 상궁이 급히 불러 세웠다.

“전하! 아직 그분 일에 나설 만한 자격이 있지 않으십니다. 나중에 이 일에 대해서 아신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수도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무영이 걸음을 멈추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금속성의 거친 목소리가 잔뜩 옥죄어 나왔다.

“제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제가 제일 잘 압니다만……. 다시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무영이 그대로 나가 버리고 노 상궁의 입에서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가뭄에 논바닥처럼 메말라 갈라져 있던 무영의 심장을 그 아가씨가 촉촉하게 적셔놨으니 아끼는 마음이야 크겠다 싶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건, 단순히 옆에 두고 싶은 것과는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꼭 목숨 줄이라도 위협받은 마냥 날을 세우는 저 모습을 보니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나겠구나 싶어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화연은 연못에 빠지고 나서 잠깐 괜찮은가 싶었는데 갑자기 열이 오르더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도 차도가 없으니 이러다 우리 아기씨가 또 잘못 되는 건 아닌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기해의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처소 궁녀에게 궁의를 모셔와 달라고 부탁하고 열꽃이 오른 화연의 얼굴과 손발을 찬 수건으로 닦으면서 기해는 눈에 쌍심지를 켰다.

“우리 아기씨 잘못 되기만 해봐.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고 꼭 네년들 다 데리고 가고 만다. 이대로 넘어갈 줄 알아?”

독기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쏘아보던 기해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 년들 머리끄덩이라도 한번 휘둘러 줬어야 했는데 원통하고 분해서 눈물이 절로 나왔다.

그때, 방문이 살짝 열리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의 예진이 들어왔다.

“기해야, 화연님 좀 어떠니?”

기해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뭐, 아직도 이러고 계시죠. 열이 내려갈 생각을 안 하네요. 어제 밤 열이 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을 때 바로 궁의어르신을 모셔 왔어야 하는데…….”

예진이 의자를 끌어와 침상 옆에 놓고 조용히 앉아 화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궁의어르신은 아직 안 오셨어?”

“아침나절에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의께서 헐레벌떡 오셨더라구요. 갑자기 얼음물에 들어가서 몸이 열을 내는 거라며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내려갈 거라고 하셨긴 했는데…….아니, 왜 어의께서 오신지는 모르겠지만 어르신 얼굴이 허옇게 질린 것이 진맥 잡는 손도 풍 걸린 마냥 벌벌 떠는데다 더듬거리기는 왜 그렇게 더듬거리시던지, 보고 있는 제가 다 폭폭스러워서 원. 하여간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게다가 우리 아기씨 몸이 워낙 약하시잖아요. 방금 처소궁녀에게 다른 분으로 다시 모셔와 달라고 부탁하고 오는 길이예요”

“그래, 잘했어. 너무 걱정하지 마. 곧 일어나실 테니.”

기해가 화연의 손을 수건으로 꼼꼼히 닦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당장이라도 가주 어르신에게 달려가 고해 받치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아기씨께서 금하셨으니 속이 답답하다 못해 뭉그러지는 것 같아요.”

“나도 그래. 하지만 화연님께서 그렇게 당부하셨잖아. 일어나시면 그때 다시 얘기해 보자. 화연님만 허락하신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지금 전각에서는 화연님의 실수로 연못에 빠졌다고 소문이 났어. 내가 그거 듣고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기해가 들고 있던 수건을 바닥에 내 팽개치면서 예진의 팔을 잡았다.

“아가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아기씨께서 실수 하신 거라니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래요? 누가 그래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나도 어처구니가 없지 뭐야. 우리가 화연님 옆에 있는 사이 벌써 소문이 그렇게 나버렸는걸 어떻게 하겠니. 나도 사실을 말하고 싶어 가슴이 답답하더라.”

“그 아가씨 들이 잡아 땐다는 말씀이세요?”

“그럼 지들 입으로 내가 그랬소, 그러겠니? 오늘 교육 시간에만 해도 처신을 잘못해서 교육을 못 받는 사람은 자격이 없으니 미리 탈락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당당히 말 하더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내가 분통이 터져서”

“그, 년…….아가씨들은 그렇다고 쳐도 우리 아기씨 옮겨준 금위대원이 있잖아요! 그 사람은 다 봤을 텐데 아무 말도 안했데요?”

예진도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주항서에 갔다 오더니 무슨 말을 들었는지 화연님 실수로 빠진 거라고 했대. 내가 생각하기에는 입막음을 당한 것 같아. 처음에는 그 금위가 사실대로 말할까봐 지들도 사색이 되어있더니 나중에는 무슨 작당을 했는지 떳떳한 얼굴로 화연님이 방정을 떨다가 화를 자처했다며 낯 색 하나 안변하고 거짓말을 하는데…….내가 그 얼굴들 죄다 긁어 놓으려다 화연님 생각해서 참았잖아.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기해는 강 해인의 말을 듣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저 때문이에요…….저 때문에 거기까지 와서 그 변을 당하셨는데 이제는 그런 오명까지 덮어 쓰다니…….우리 아기씨가 뭐가 부족해서…….내가 그 아가씨들…….아니지! 그 년들 가만두나 봐라! 아기씨 일어나기만 하시면 당장 어르신께 말씀드려서 그 금위까지 모두 치도곤을 안겨줄 거예요! 꼭 그러고 말 거라 구요! 아기씨…….”

기해가 울먹이면서 소리를 지르다 결국에는 화연이 누워있는 침대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었다.

“그래, 화연님 일어나시면 그때 얘기해 보자. 지금은 화연님만 생각해. 기해야…….너무 울지 말고. 간호하는 사람이 기운을 차려야지”

예진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기해의 어깨를 쓰다듬어 줬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창밖에서 지켜보던 검은 신형은 얼마 후 황궁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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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는 어디로 가는 걸까.

1. 뒷간

2. 도박장

3. 주점

사이다는 시원할 때 먹어야 제 맛.

아직 미적지근 함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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