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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44화 (44/110)

00044  짐승, 우리 안으로  꽃을 들이다  =========================================================================

“그리고 말입니다. 앞으로 누군가를 모함 하시고 싶으실 때는 좀 꼼꼼하게 생각해 보시고 실행 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뭐 엄청난 함정이라도 준비해 두셨는지 알고 잔뜩 긴장했었는데 이거, 너무 실망인데요. 좀 유치하기도 하고요. 어린 아이들도 요즘엔 이런 짓은 안한다던데 말이죠.”

웃으며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마치고 지나가는데 기류 미란의 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더 약을 올려줄까 고민하다가 이쯤에서 그만하자 싶어 피식 웃는데 뒤에서 크게 웃으며 따라오던 예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화연님!! 조심...!!!!”

누군가 화연의 등을 거세게 밀었다.

몸이 연못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화연의 손을 잡고 겅중거리며 앞서가던 기해가 놀라 황급히 손을 끌어 당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대로라면 같이 연못에 빠질 것 같아 화연은 기해가 잡은 손을 털어내면서 그와 동시에 살얼음이 둥둥 떠 있던 연못 속으로 풍덩 빠졌다.

뼛속까지 시린 차가운 물이 단숨에 몸을 덮쳤다. 그 소름끼치는 냉기에 온 몸의 피부가 일제히 수축했다.

물에 빠지자마자 반사적으로 손과 발을 허우적거렸다. 물속에 어지럽게 나있던 이름 모를 줄기들이 사지를 휘감더니 입고 있던 옷까지 몸부림에 맞춰 흔들거리다 몸을 무겁게 내리 눌렀다.

발끝을 세워 버둥거렸지만 바닥에 닿지 않았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난 수영을 하지 못한다.

화연을 놓친 반동으로 기해는 뒤로 나뒹굴었다. 땅바닥에 손바닥과 무릎이 크게 쓸렸지만 아플 겨를이 없었다.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해 엉금엉금 기어 연못으로 다가 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예진도 사색이 되어 화연을 부르며 연못 앞으로 뛰어와 발을 동동 굴렀다.

“아기씨...... 아기씨!!!! 아기씨!!!!”

“아악! 화연님!! 화연님!!”

화연은 크게 허우적거리며 물 밖으로 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물풀에 감긴 무거운 몸은 축 처지기만 할 뿐 도저히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숨을 한계까지 참다가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입을 벌렸다. 얼음장 같은 물이 목안으로 벌컥 벌컥 넘어 와 목구멍을 삽시간에 얼어붙게 하고 전신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기류 미란과 남궁 진류는 금방이라도 비명을 지를 것 같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기류 미란이 비명을 지르는 시비들에게 닥치라고 차갑게 일갈한 뒤 공 혜민에게 속삭였다.

“어찌 하시려고 이러셨습니까! 이일이 알려지는 날이면...”

공 혜민도 자신이 벌인 짓에 놀라 넋을 잃고 멍하게 대답했다.

“저, 저도 모르게 그만...어, 어떻게 하죠?”

공 혜민이 벌벌 떨리는 손을 마주잡더니 그제 서야 사람을 불러오겠다며 뛰어 가려는데 남궁 진류가 붙잡았다.

남궁 진류는 시선을 돌렸다. 광인처럼 화연을 부르짖으며 막무가내로 연못에 뛰어 들려는 기해와 그런 기해의 허리에 매달려 들어가지 못하게 막느라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못하고 있는 예진이 보였다. 그녀는 슬그머니 올라가려는 입가를 내리눌렀다.

“우리가 그럴 것까지야 있습니까? 지금 사람을 부르면 일을 더 크게 만들 뿐입니다. 필요하면 저들이 부르겠지요.”

공 혜민이 멈칫 하더니 예진과 기해를 불안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나중에 강 예진님과 저 시비가...”

“시비 따위의 말을 누가 듣는 답니까. 우리는 강 예진님만 상대하면 될 테니 걱정 마십시오. 누명을 씌우는 거라고 잡아 때면 그뿐 아니겠습니까? 아버지께서 뒤를 봐주실 겁니다.”

남궁 진류의 말에 기류 미란이 좋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산이 끝나 있었다. 류 화연의 죽음은 전적으로 공 혜민 책임이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조용히 있다가 중간택이나 삼간택 까지 공 혜민이 통과한다면 그 때쯤 익명으로 사실을 밝힐 생각이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최대의 경쟁자를 둘이나 손 하나 안 대고 처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찾아왔는데 어찌 놓칠 수가 있을까. 주위에 사람만 없었다면 이게 웬 떡이냐며 웃음이라도 크게 터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공황상태인 공 혜민을 사이에 두고 남궁 진류와 기류 미란은 서로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 상황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 금위대원 조 이남은 후보자들 간의 단순한 알력싸움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잘하면 콧대 높은 아가씨들끼리 머리끄덩이 잡는 모습까지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었는데 어 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조 이남은 가서 구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슬그머니 몸을 돌렸다. 다른 처녀들은 모르겠지만 떠민 아가씨는 중서사인어르신의 여식이 틀림없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인맥 넓기로 유명한 그 어르신에게 밉보일까 두렵기도 하고 차가운 얼음물 속에 들어가는 건 더더욱 싫었다. 못 본 척하기로 마음먹고 자리를 뜨려는데 재수 없게도 그 움직임이 눈에 띤 건지 주변을 급하게 둘러보던 예진과 눈이 딱 마주쳤다.

“이보시오!!!! 여기 좀 도와주시오!! 여기요!! 빨리 와주시오! 빨리!!!”

예진은 손을 마구 휘두르면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조 이남을 불렀다. 그 목소리가 자신보다 멀리 떨어져 있던 다른 금위의 귀에도 들렸는지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이쪽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해 계속 모른 척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런 썩을! 오늘 일진이 더럽더라니!

“네!! 갑니다! 무슨 일이 십니까!”

조 이남의 목소리에 기류 미란과 남궁 진류는 낭패한 표정으로 울먹거리는 공 혜민과 시비들을 끌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고 조 이남은 재수 더럽게 없다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연못으로 달려갔다.

화연은 더 이상 손발을 휘저을 힘이 없었다. 몸이 물속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니 눈앞에 붉은 물이 안개처럼 일렁거렸다. 어딘가 다친 것 같았지만 얼음물에 마비된 몸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멀리서 기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직...그 남자의 이름도 모르는데......

화연은 무거운 눈꺼풀을 내려 감았다

주항서인인 남궁 평은 느긋하게 점심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태자비 후보들이 묶고 있는 연릉각 쪽에서 명 상궁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아닌가. 딱 보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명 상궁은 헐떡이면서도 작고 빠르게 말했다.

“지금 류 재상의 자녀 류 화연이 연못에 빠져 상궁 처소로 옮겨졌습니다. 의궁으로 가면 시끄러워 질것 같아 금위에게 궁의를 모셔오라고 명(命)하고 오는 길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뭐? 누가 연못에 빠져?”

“류 화연입니다.”

“아니, 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금위의 말을 들어보니 그 자리에 기류 미란과 공 혜민, 남궁 진류, 강 예진 그리고 류 화연의 시비가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남궁 평은 듣자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의 딸 남궁 진류가 이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죽었나?”

“예?”

“류 화연 말이야. 죽었냐고.”

“아, 아니요...아까까지는...”

아쉽군...차라리 죽어주면 일이 편한데. 남궁 평은 안타까운 마음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러게 왜 맘대로 궁의를 부르나? 쯧. 다음부터는 나와 꼭 상의하고 일을 처리하게. 일단 궁의와 금위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입단속을 단단히 시키고, 진류를 조용히 불러오게. 무슨 일 인지 확인하고 처리방안을 생각해 보지.”

어처구니없는 말이었지만 명 상궁은 잔말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주항서와 내정은 땔 레야 땔 수 없는 관계라 밉보이면 자신만 손해였다. 게다가 남궁 기류의 생활일지에 좋은 평만 써주기로 약조하고 받아 챙긴 돈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한배를 탄 거나 다름없었다.

“예. 어르신”

남궁 평은 자리에 앉아 한숨을 깊게 쉬었다. 질투심 많은 자신의 딸이 또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졌다.

워낙에 여아가 태어나는 것도 드물고 빨리 죽기도 일쑤라 환제국 대부분의 사가에서는 여식들을 애지중지 키웠다. 여아를 가지려고 2~3명씩 낳는 건 기본이고 그렇게 해서 어렵게 낳은 아이가 여아라면 동네 찬치 까지 벌일 정도로 기뻐했다. 사 남 일녀 중 셋째인 남궁 진류 또한 남자들 밖에 없는 집에서 혼자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오냐오냐 커 제멋대로인 경향이 있었다.

남궁 평은 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더 귀엽기만 했다. 맘에 안 든다고 자신의 수염을 다 잡아 뜯어 놨어도 허허 웃고 말 정도였다.

헌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안하무인인 행동이 너무 심해지면서 일 년을 버티는 시비가 없고, 고용인들까지 남궁 진류 때문에 못살겠다며 넌더리를 치면서 그만두는 일까지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말을 했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지 속마음을 숨기지를 못했다.

한번쯤 혼을 내주고 싶어도 눈물을 글썽이는 딸을 보면 도저히 혼을 낼 수가 없었는데 이제 와서 후회가 됐다. 안 그래도 요즘 태자비 후보 선정 문제로 뒷돈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아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운데 하나밖에 없는 딸이 거기다 불까지 붙이니 가슴이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려면 좀 제대로 하던가.

“아버지!”

남궁 진류가 집무실로 뛰어 들어오더니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남궁 평의 불룩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남궁 평의 마음이 짠해지면서 혹시라도 이일에 연류가 되어있다면 치도곤을 내주려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진류야! 어떻게 된 일이냐. 무슨 일이 있었던 게야.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애비 마음 아프니 울지 좀 말고 차근히 얘기를 해 보거라.”

남궁 진류가 눈물 젖은 얼굴로 남궁 평을 억울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거렸다.

“아버지...흑흑...제가 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흑흑흑.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해요. 아버지 미워요...흑흑흑”

남궁 평이 안절부절 못하며 넓적한 손으로 남궁 진류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고 어깨도 쓸어주다 결국엔 품에 안고 도닥여줬다.

“애비가 미안하다. 애비가 미안해. 그래, 그래...니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지...뚝 그치 거라...어서, 뚝”

“아버지...”

“그래...눈물을 그치고 말을 좀 해 보거라. 거기에 왜 있었느냐?”

남궁 진류는 울면서도 정신없이 머리를 굴렸다.

류 화연이 죽어버리고 그 자리에 우리끼리만 있었다면 딱 잡아떼면 그만일 텐데 하필 그 자리에 금위가 있어 잡아 뗄 수도 없고...재상의 딸을 건드렸으니 재상이 펄쩍뛰고 난리 날 텐데 뭐라고 변명을 해야 자신이 무사 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어쩔 수 없지...나중에 써먹으려고 했는데 잘라낼 사람은 미리 잘라내는 것도 좋을 테지...

“공 혜민님이...”

“응? 중서사인의 둘째딸 공 혜민 말이더냐?”

“네, 그분이 류 화연님을 연못으로 밀었어요.”

“뭐? 아니, 왜! 너는 거기에 왜 같이 있었느냐!”

남궁 진류는 눈물을 훔치며 불쌍한 표정으로 남궁 평을 올려봤다.

“저도...가고 싶지 않았는데요. 기류 미란님이 시비에게 내리신 장신구를 류 화연님의 시비가 훔쳤는데, 그것을 제 시비가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가본 것 뿐 이에요. 기류 미란님이 증인이 꼭 있어야 한다면서...”

“뭐? 류 화연의 시비가 뭘 훔쳐?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숙소에서 제일먼저 나가서 제일 나중에 숙소로 들어온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저도 자세하게 알아보니까 시비가 잘못 본 것 같더라고요...그래서 제가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려서 오해가 잘 풀리나 싶었는데... 뒤돌아 걸어가는 류 화연님을 공 혜민님께서 밀어 버리셨어요.”

“도대체 그 아이는 왜 그런 경거망동을 했다는 말이냐! 덮어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인데!”

평소 자신과 친분이 있던 중서사인의 여식이었기 때문에 남궁 평은 장탄식을 터트렸다.

“저도 잘...평소에 공 혜민님이 류 화연을 많이 싫어하시는 것 같았어요. 아버지 뒷배와 얼굴 하나만 믿고 으스댄다고 꼴 보기도 싫다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거든요. 제가 보기에도 좀 그런 것 같더라고요. 아버지가 재상이라고 어찌나 콧대를 새우던지 모든 사람이 다 제 밑에 있는 것처럼 오만하게 굴더라구요.”

남궁 진류의 말을 철떡 같이 믿은 남궁 평은 류 재상을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다.

“지 딸 착하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더니만, 허긴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쁜 법이지...흥!...그래, 알았다. 그럼 너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란 게지?”

“네, 아버지 저는 전혀 상관없어요. 류 화연님은 공 혜민님이 밀어서 빠지셨어요. 정말 이예요. 아버지...저 믿으시죠?”

“그럼, 그럼! 내 딸 말을 아비가 못 믿어서야 되겠느냐. 너는 가만히 있거라. 애비다 다 해결해 주마. 알았지? 놀랐을 테니 어서 가 보거라. 누구한테 들키면 안 되는 거 알지? 조심히 가야 한다.”

“네, 아버지...헌데...공 혜민님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휴...일단은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겠지만...아마 출궁하는 것으로 처리 되지 않을까 싶다만...모르겠구나.”

“안타까운 일이네요. 아버지께서 힘을 좀 써주시면 안될까요?”

딸의 입에서 누군가를 위하는 말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는데 남궁 평은 이게 웬일인가 싶기도 하고 내 딸이 드디어 철들었구나 싶어 얼굴 가득 자랑스러운 미소가 퍼졌다.

“어이구...내 딸이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기특하기도 하지.  알았다. 애비가 힘을 좀 써 보마. 헌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말거라. 알았지?”

“너무 힘드실 것 같으시면 무리하지 마세요. 저에게는 아버지가 가장 소중하니까요. 아셨죠?”

감격스러운 표정의 남궁 평의 두툼한 허리를 꼭 안아준 뒤 곱게 인사를 한 뒤 뒤 돌아 나오는 남궁 진류의 표정은 웃음을 참으려는 것 같기도 했고 울음을 참으려는 것 같기도 했다.

류 화연 그년이 죽어버렸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좀 아쉽긴 하지만 늦기 전에 경쟁자 하나는 덜어 낼 수 있으니 이번일은 자신에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남궁 진류는 입이 귀에 걸리려는 걸 참느라 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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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절단신공으로 독자님들이 던지는 돌에 얻어 맞아 죽을뻔...

흑흑...안 그럴게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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