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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43화 (43/110)

00043  짐승, 우리 안으로  꽃을 들이다  =========================================================================

왕따 괴롭히는 방법,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서 가방에 몰래 넣어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 참 고전적이기도 하다. 어쩜, 그렇게 창의력이 없는지……. 사실, 내가 연우일 때 우리 반 애들도 이런 유치한 짓은 안했었다.

화연은 이들과 길게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런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시고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누구입니까?”

“뭐가 말입니까?”

“제 시비가 물건을 훔친 것을 봤다는 사람 말입니다. 설마, 없습니까?”

공 혜민이 거만한 표정으로 나섰다.

“제 시비가 봤다고 했습니다.”

“오호, 그렇습니까? 기해가 짐에 물건을 훔쳤다면 혼자 시비숙소에 있었다는 말인데 그걸 또 다른 시비가 혼자 숨어서 보셨다고요? 뭐, 그렇다고 하지요. 그럼 짐 안에 넣는 것을 봤다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건, 제 시비가 봤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남궁 진류다. 가지가지들 하는 구나…….화연은 코웃음이 나왔다.

“훔쳐가서 짐에 물건을 넣는 것까지 보고도 가만히 계시다가, 오늘에서야 짐 수색을 해보니 물건이 나왔다는 말씀이시지요? 나, 참…….어이가 없어서……. 제가 한번 맞춰볼까요? 훔쳐갔다는 물건은 기류 미란님 시비의 물건이겠네요?”

“…….그, 그렇습니다. 그냥 물건도 아니고, 기류 미란님께서 직접 하사하신 귀한 물건이라고,”

화연이 손을 들어 올려 공 혜민의 말을 끊었다.

“무슨 패물이나 장신구, 맞지요?”

“......”

기류 미란은 당황스런 기색을 빠르게 갈무리 하고 천연덕스럽고도 뻔뻔하게 대꾸 했다. 뒤에 죄진 사람 마냥 고개 숙이고 서있는 시비들 하고는 참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네, 제가 시비에게 선물로 내린 장신구입니다. 잘 아시는 군요. 설마 직접 꾸미신 일은 아니시겠지요?”

“이!”

기해가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걸 화연이 막았다. 기해의 손은 저년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세차게 돌려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매의 발톱처럼 잔뜩 구부러져 있었다.

화연은 이들이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다. 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다 큰 처녀들이 이게 무슨 짓인가. 애들아, 너희들이 벌여놓은 이 함정 같지도 않은 함정에는 아주 크나큰 오류가 존재한단다. 차라리 보지는 못했는데 짐을 뒤져보니 나온 거라고 하지 그랬니. 그럼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을 텐데 말이야…….내가 잡아 땔까봐 확실하게 하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을 맞춘 것은 알겠지만…….

“그럼, 제가 질문을 하나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

그들의 머릿속에 얼마 전 식당에서 대놓고 망신당했던 일이 떠오르면서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뭐, 뭡니까?”

“훔치는 것을 봤.고. 가방에 넣는 것도 지.켜.봤.다.고 하시니 묻겠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너무나 신기한 일 이라 서요.”

그들이 서로에게 눈짓을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하루 종일 저와 함께 있으면서 식사도 같이하는 기해가 시비 숙소에 두 번이나 혼자 남아있었다고 하니 그거 정말 신기해서 말입니다. 혹시 제가 교육받다 쓰러지지는 않을까 싶어, 부르면 가장 빨리 올수 있도록 교육관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는 것 모두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번 예법시간 후에 기류 미란님께서 저에게 하셨던 말씀 기억 안 나십니까? 시비를 교육관 앞에 대기시켜 놓을 정도로 그렇게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가 잠이나 자라고 하셨잖습니까?”

기해가 내 옆에 꼭 붙어 있기 때문에 저들이 기해의 짐에 물건을 넣어두기 쉬웠겠지. 어쩌면 저렇게 앞만 생각하고 뒤는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화연은 허탈한 웃음을 삼켰다.

“……. 시, 시비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꾀고 있는 것도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 시비는 볼일도 안 본답니까?”

“당연히 보겠지요. 그럼 하나 더 묻죠.”

“......”

“물건을 넣는 것을 봤다는 시비가 누구입니까?”

남궁 진류가 자신의 시비를 매섭게 노려봤다. 잘못 대답하면 치도곤을 낼 것 같은 그녀의 눈초리에 시비가 잔뜩 주눅이 들어 앞으로 나왔다.

“저, 전데요...”

“언제 보았나요?”

“네, 네?”

“제 시비가 짐 안에 물건을 언제 넣었냐는 말씀입니다.”

“어...잘...기억이...”

“이곳에 온지 한 달이 된 것도 아니고 일 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고작 엊그제 일을 기억 못합니까? 이거, 이상한데요?”

“빨리 말 하지 못해!”

남궁 진류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윽박지르니 시비가 어깨를 잔뜩 움츠러뜨리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제...밤에...저녁식사 후...”

그렇지. 예진과 같이 있는 시간을 말하면 안 될 테니 밤 아니면 아침을 말하겠다 싶었는데 밤을 말하는 것 보니, 바로 어제 밤에 기해의 짐에 물건을 넣어놓았나 보군.

“확실합니까?”

시비는 이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남궁 진류의 눈치를 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마, 맞아요.”

“음……. 어제 밤, 저녁 식사 후라면 기해가 제 다리를 주물러 주느라 함께 있었는데 말이죠…….어떻게 된 일일까요?”

기류 미란이 이 정도는 예상 했다는 듯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코웃음을 쳤다.

“시비를 감싸주려고 괜한 말씀은 하지 마시죠. 화연님. 그렇게 감싸고도시니까 더더욱 의심스러운 게 아니겠습니까?”

“제 말은 못 믿으시겠다니, 그럼 제 3자의 말은 믿으시겠네요.”

그들은 서로 눈빛을 재빨리 주고받더니 기류 미란이 입을 열었다. 아마 이렇게 말하기로 사전에 말을 맞춰 놓은 것 같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가까이 지내시는 예진님이나 그 시비의 말도 믿을 수는 없지요.”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기류 미란의 안색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예진이 아닌 다른 사람과 있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사람이 있었다는 겁니까?”

“네”

“누구…….”

기류 미란의 말을 막고 공 혜민이 나섰다.

“그 시간까지 누구와 같이 계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연릉각에 들어오면 시비 외에는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다는 거 모르셨습니까?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명 상궁님에게 말씀을 드려...”

화연은 걸렸다는 듯 득의양양하게 말하는 공 혜민의 말을 중도에 끊었다.

“저라고 말 안했는데요?”

“...뭐...라고요?”

“다른 사람과 같이 있었던 사람은 제가 아니고 제 시비라고요.”

기해가 머뭇거리다 뒤에서 화연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끌면서 작게 소근 거렸다.

“아기씨…….저 어제 아무도 안 만났어요…….”

화연은 기해의 말을 못들은 척하고 말을 계속 이었다.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 시간에 시비숙소에 있었던 사람은 기해가 아님이 밝혀지겠네요. 그렇지요?”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말해드리기 전에 우선,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말입니까?”

“제 시비가 범인이 아님이 밝혀진다면 어떻게 하실 거냐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다행인 거지요. 사과라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사과 하세요. 제 시비한테”

“!! 아니 세상에 누가 시비 따위에게 사과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런 경우는 이제껏 본적이 없습니다.”

“부모라 할지라도 잘못을 했으면 자식에게 사과를 하는 법입니다만. 제 시비에게 사과를 못하시겠다는 말씀이시지요?”

“당연하지요! 손이나 발에게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그래요? 그럼 저한테 하십시오.”

“뭐라고요?”

“제 손과 발에게 사과를 못하시겠다면 저한테 하시라고요. 그러면 되시겠네요.”

“뭐, 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을 데려올까요? 그리고 저에게 사과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쯤에서 그냥 돌아가시겠습니까? 그냥 가신다면 제 손발을 제 허락도 없이 불러내고, 허락도 없이 손찌검을 하고, 허락도 없이 흙바닥에 꿇어앉힌 상식 없는 천한 짓거리는 용서해 드리기로 하지요. 저는 사실 그 사람을 데려 와 누가 제 시비에게 그따위 되먹지 않는 누명을 씌워 뺨까지 얻어맞게 했는지 낱낱이 밝히고 노 상궁님에게 고했으면 하는 심정이지만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

화연은 아무 말 없이 노려보기만 하는 그녀들을 가만히 마주보았다. 이것이 그들의 맹점 이었다. 얘기 자체가 거짓말이니 그 시간에 기해가 누구와 만나고 있었을지 알 수가 없다는 것. 없을 것 같지만 그것만 믿고 선뜻 데려오라고 말하지는 못 하겠지. 나에게 사과하기도 싫고 노 상궁에게 알려지면 곤란해 질 테니까.

화연은 대답 없이 입술만 깨물고 있는 기류 미란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이 일은 여기서 매듭짓는 걸로 알겠습니다. 한마디 더하자면, 처음부터 저한테 적대적으로 행동하시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어서 말입니다. 왜들 그러시는 겁니까? 혹시 제가 태자비라도 될 것 같아서 그러시는 겁니까?”

“......”

“그렇다면 이렇게 행동 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진짜 태자비첩지를 받으면 어쩌시려고요? 제가 이런 수모도 참고 넘길 정도로 착해 보이나요?”

이렇게 까지 했으면 앞으로는 자중하겠지. 화연은 기해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해야, 가자. 예진님도 가시지요.”

“예! 아기씨”

“풋- 그래요. 이런 구경을 더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기가 아쉽기는 하지만, 더 있을 필요는 없어 보이네요.”

화연은 좋아라 하며 팔짱을 냅다 끼는 기해의 밝아진 얼굴을 보며, 굳은 채 서있는 그들 옆을 천천히 지나가다 멈춰 섰다.

“그리고 말입니다. 앞으로 누군가를 모함 하시고 싶으실 때는 좀 꼼꼼하게 생각해 보시고 실행 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뭐 엄청난 함정이라도 준비해 두셨는지 알고 잔뜩 긴장했었는데 이거, 너무 실망인데요. 좀 유치하기도 하고요. 어린 아이들도 요즘엔 이런 짓은 안한다던데 말이죠.”

웃으며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마치고 지나가는데 기류 미란의 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더 약을 올려줄까 고민하다가 이쯤에서 그만하자 싶어 피식 웃는데 뒤에서 크게 웃으며 따라오던 예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화연님!!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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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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