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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39화 (39/110)

00039  짐승, 우리 안으로  꽃을 들이다  =========================================================================

“아으…….뻐근해…….근육이 뭉친 것 같아…….”

“어휴, 아기씨 다리 땅땅해 지신 것 봐! 무슨 절을 이렇게 목숨 걸면서 한데요? 아기씨한테는 필요하지도 않는데……. 그냥 대충 하시라니까 그러셨어요. 발도 부었네. 속상하게”

“으윽! 기해야. 아파!”

“아기씨 아파도 조금만 참으셔요. 지금 안 풀어 놓으면 내일 걷지도 못 하실 테니까요. 아! 이럴게 아니라 식당가서 물 좀 데워 올게요. 따순물에 족욕(足浴)좀 하시면 나으실 거예요. 잠깐 기다리셔요.”

“응…….”

오후 교육 기간에는 온종일 예법에 대해서 배웠다.

앉고 일어서는 기본적인 것부터 걷는 방법, 절하는 방법, 심지어 고개를 돌리는 것까지 모두가 예에 포함되어 있었다. 수십 번을 앉았다 일어나고, 수십 번 절을 올렸다. 온 몸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기해가 방을 나가고 화연은 침상에 앉아 다리를 살살 주물렀다.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종일 걷느라 종아리에 알이 배겼고 목도 뻐근했다. 절도 수십 번을 반복 하느라 허리를 계속 구부리면서 꿇어앉았더니 무릎에도 멍이 들고 허리까지 쑤시는 것이 자고 일어나면 근육통 꽤나 앓을 것 같았다.

톡톡…….

톡톡톡톡톡

“헉!”

화연은 창 두들기는 소리가 나자마자 고개를 획 들어 올렸다. 창을 바라보니 하얀 붕대를 감은 남자의 손이 보였다.

“어휴! 내가 미쳐!”

저 남자는 부끄러움도 없는지 어제 그러고 갔으면서 오늘 또 왔다. 기해도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데…….저 남자가 겁도 없이!

화연은 절뚝거리며 다가가 서둘러 창을 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 남자를 막아서고 소리 낮춰 빠르게 말했다.

“안 돼요! 기해가 언제 들어올 지도 모른다구요! 얼른 돌아가세요! 얼른요!! 아니, 도대체 여기까지는 어떻게 올라오시는 거예요?”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남자는 엉뚱한 말을 꺼냈다.

“다리 다쳤어?”

“에? 아뇨? 갑자기 무슨…….이, 이게 아니지……. 돌아가시라고요. 정말 이러다 큰일 나요!”

“왜 다쳤어?”

말 안 해 주면 해줄 때까지 여기에 이대로 있을 거야, 남자의 표정을 읽은 화연은 속이 터져 한숨을 내 쉬었다.

“어휴, 정말! 다친 건 아니고요…….예법교육 받느라 다리가 좀 아파서 그래요. 이제 됐죠?”

“......”

“절하느라 다리에 근육통이 생겼다고요!”

“절?”

“그래요!... 뭐하세요? 다 말씀드렸잖아요. 어서 나가세요. 기해 금방 들어 올 거예요.”

화연은 움직일 생각도 안하는 태평한 남자가 답답하기도 하고, 기해가 언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급한 마음에 남자의 배를 손으로 세게 밀었다.

“빨리 가시라……!”

순간 남자의 단단한 복근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져 흠칫 놀라 손을 때려는데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화연이 입을 꾹 다물고 손을 빼내려 안간힘을 써 봐도 꿈쩍 할 수가 없었다.

“왜, 왜 이래요. 이거 좀!......좀, 놔보세요!”

무영이 화연의 손목을 잡아 허리 뒤로 끌어 당겼다. 그녀가 훌쩍 가까이 오자 특유의 꽃향기가 달려들었다. 무영은 그 향기를 깊숙하게 들이마셨다.

그의 손에 이끌려 안기다 시피 가까이 다가가자 화연의 가슴은 다시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잡힌 손목을 이리저리 비트는데, 무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생각해 봤어?”

“뭐, 뭐를요…….이것 좀 놓고 말씀하세요. 아프다구요.”

무영은 손에서 힘은 살짝 뺐지만 잡고 있는 손목을 풀어주지는 않았다. 창틀을 잡고 있던 손으로 그녀의 볼을 살며시 감쌌다. 그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붉었다. 그 모습이 활짝 펴 나비를 유혹하는 꽃 같기도 하고, 적당히 익어 최고의 맛과 향기를 내는 과일 같기도 했다. 무영은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충동을 내리눌렀다.

“더 기다려줘?”

“…….어, 어제 일인데…….하루 만에 어떻게…….”

“어제부터 아니야. 한 참 전 부터야.”

“......”

무영의 눈길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화연이 대답을 피하면서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무영은 화연의 얼굴을 집요하게 따라가던 시선을 거두고 한숨을 쉬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내가 참을성 강한 사람으로 보여?”

“…….아니요. 전혀요”

“그럼…….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하고 있는 거야?”

무영이 붙잡고 있던 화연의 손목 안쪽을 엄지로 슬그머니 쓸었다. 그 은밀한 손길에 화연은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터질듯 뛰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작게 속삭이며 오물거리는 그녀의 입술이 단번에 무영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내가 뭘?”

“이런 거…….말예요”

“이런 거라니, 난 아무 짓도 안했는데”

“…….손 좀……. 놔주세요.”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다 못해 무영에게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무영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초초해 보이는 기색이 가득한 붉은 얼굴을 천천히 감상 하다 불현듯, 어떠한 확신이 생겼다.

저 모습으로…….저, 붉은 입술을 작게 오물거리면서 나에게 뭔가를 바란다면 나는 절대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누구를 죽여 달라고 해도, 무엇을 가지고 싶다고 해도……. 이 나라를 달라고 한다 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겠지.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그녀에게 기꺼이 가져다 줄 것이다.

무영의 입가에 자신에게 보내는 비릿한 조소가 그려졌다 빠르게 사라졌다.

이건 주인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짐승의 꼴과 다를 바 없군…….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 주인이 화연이라면 뭐라 해도 상관없었다.

더군다나 그녀가 나에게 목줄을 걸어줬으면 하는 바람은 지금도 시시각각 눈 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중 이었다. 인내심이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화연은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겠고, 얼굴은 부끄러워서 터질 것 같은데 이 남자는 바로 앞에서 구경만 하고 있고, 기해는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고……. 어찌할 바를 몰라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데 남자가 드디어 손목을 놔줬다.

화연이 손목을 어루만지면서 가만히 서 있자 무영이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화연에게 내 밀었다. 검은색 비단으로 만들어진 주머니였다.

“…….뭐예요?”

무영은 아무 말 없이 주머니를 쥔 손을 그녀의 코앞에 내밀었다.

자신이 받지 않으면 밤새도록 그러고 있을 것 같아, 코앞에 내밀어진 주머니를 머뭇거리다가 받아 들었다. 주머니 안에는 동그란 모양의 딱딱한 무엇인가가 들어있었는데 조금 무거웠다. 뭐지? 하고 주머니를 열어보려는데 남자가 말을 툭 던지면서 창틀에 걸치고 있던 몸을 뒤로 물렸다.

“내일 올게.”

“네? 어…….잠시 만요!”

그 말에 심장이 철렁해 주머니를 탁자에 던지듯이 내려놓고 가려는 그의 옷을 붙잡으려는데, 그가 몸을 돌리더니 전각 아래로 훌쩍 몸을 날렸다.

“……!!”

3층에서 뛰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나올 것 같아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서둘러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전각 아래를 살펴보았다. 다행이 전각아래에는 구겨져 널 부러진 그의 시체도, 핏자국도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이 밤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어제도 이렇게 뛰어내렸단 말인가?

“어디로 간 거야…….”

“뭐가요?”

“엄마야!”

화연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기해가 그 모습을 보더니 들고 있던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고 빠르게 다가왔다.

“왜 그러세요. 아기씨! 어디 아프신 거예요?”

“아, 아니야…….뒤에서 갑자기 말이 들려서 놀라서 그래. 아무 것도 아니야…….정말 깜짝 놀랐지 뭐야”

화연은 기해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일어나 구겨진 치마를 털었다. 기해는 아무 의심 없이 같이 치마를 털어주며 화연이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다 화연을 의자에 앉히고 대야를 화연의 발밑에 놓으면서 잔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침상에 그대로 누워 계시면 될 것을……. 몸도 안 좋은데 고새를 못 참고 움직이셨어요? 창은 또, 왜 열고 계셨어요?”

화연은 대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따뜻한 물속으로 발을 넣으면서 더듬거렸다.

“어? 어…….조, 조금…….더운 것 같아서…….”

기해가 화연의 발을 주무르다 고개를 들어 화연의 얼굴을 보니 진짜 얼굴이 붉은 것이 열이라도 나는 것 같았다. 우리 아기씨에게는 하등 필요도 없고 쓸모도 없는 궁중예법 따위를 배운답시고 병이라도 얻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면서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그 예법이란 것이 뭐가 중요하다고 사람을 이렇게 잡냐고요! 그리고 지금 예법이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엄한 사람 앉혀 놓고 이렇게 혹사 시키냔 말예요! 지금 이 황궁 안에서 그 누구보다 시급하게 예법을 가르쳐야 할 사람은 짐! 아니, 태자전하시잖아요! 그 분의 예법 수준은 딱 짐…….아니, 백지수준이란 말예요. 정작 필요한 사람 앞에서는 벌벌 떠느라 아무 말도 못하면서, 무슨…….어이구, 속 터져”

화연은 기해의 신경이 다른 곳으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다 문득 탁자 위를 보니 그 남자가 놓고 간 비단 주머니가 보였다. 다급하게 기해의 눈치를 보니 아직 이것을 못 본 것 같았다. 화연은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끈을 잡아 당겼다. 기해의 눈치를 살피면서 소리 나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 천천히 끌어당기고 있는데 그때 까지 구시렁거리던 기해가 화연의 다리를 주무르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건넸다.

“근데, 아기씨. 탁자위에 있는 둥그런 주머니는 뭐예요? 처음 보는 건데?”

“어? 봐, 봤어?”

“방금 들어오면서요. 아까는 없었는데 어디서 꺼내셨어요?”

이런 매의 눈을 가진 여자 같으니라고…….화연은 기해에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머리까지 아파왔다.

“비단이 여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아니던데…….어디서 받으셨어요? 누가 주신 거예요?”

“어? 어…….”

“누구요?”

화연이 눈동자가 맹렬하게 떨렸다. 어, 어떻게 하지…….

“음…….”

“나도 참…….이런 주머니를 선물하실 분은 예진아가씨 밖에 없는데 뭘 또 물어보고…….형부상서 어르신께서는 무척 검소하다고 하시던데 그래도 자식한테는 팍팍 쓰시나 봐요. 하긴, 우리 가주 어르신이나 도련님들만 봐도, 좋은 거라면 죄다 아기씨에게 가져다 드리잖아요. 나중에 가세가 기울어도 아기씨 받은 것만 있으면 온 식구가 평생은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걸요? 오죽하면 보물성의 공주님이란 소문이 돌겠어요…….자, 어때요? 다리는 좀 괜찮으세요? 더 주물러 드릴까요?”

다리를 열심히 주무르던 기해가 고개를 들어 화연을 쳐다봤다. 화연은 서둘러 눈을 피하면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나 이제 괜찮아! 조, 좀 피곤해서 눕고 싶은데…….”

“아이고! 물 튀어요. 아기씨, 다시 앉으세요. 제가 발 닦아 드리면 그때 일어나셔요.”

화연은 조용히 다시 앉았다.

“어…….”

화연의 발을 꼼꼼히 닦은 기해가 대야를 치우고 일어서서 화연의 안색을 살폈다.

“아기씨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안색도 안 좋으시고…….쯧…….어서 누우세요.”

“응…….”

기해는 침상에 누운 화연의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고 대아를 들고 나가면서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한마디 던졌다.

“아기씨 창 열지 마셔요. 밑에서 금위들이 연초를 피우는지 냄새 들어와요. 이 사람들이 경비나 잘 설 것이지……. 제가 한마디 하던지 해야지 안 되겠어요. 아침에도 방에서 연초 냄새나더라고요.”

기해는 화연에게서 아무 말이 없자, 아기씨가 고단하긴 하셨는지 고새 잠드셨나 보다. 예법인지 뭔지 배우다 사람 잡겠네. 아휴 속상해…….어르신께 연통이라도 하나 보낼 수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그것도 못하고……. 기해는 한 숨으로 등불을 끄고 조용히 나갔다.

이불속에서 자신의 손목을 감싸 쥐고 있던 화연의 얼굴은 다시 붉어져 있었다.

**********************************************************************무영은 짐승입니다. 후각이 아주 예민하죠. 특히 기해의 냄새는 기가 막히게 알아챕니다.

Q. 저 연초 냄새의 주인은?

1. 금위

2. 무영

3. 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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