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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24화 (24/110)

00024  짐승, 몸을 일으키다  =========================================================================

류 강연은 굳게 결심했다.

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아가씨와 잘되게 해주리라!

이것은 태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궁 안의 평안을 위해서라도 꼭 완수해야할 숙명과도 같은 임무였다.

그래, 어차피 죽이지도 못하는데 고삐라도 채워야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상종 못할 짐승을 만들어 놓으셔서 이런 엄청난 시련을 주시는 거냐고 하루에도 열두번씩 신에게 따져 묻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조련사까지도 안배해 놓으셨다니...역시 신은 공평하셔. 조금만 더 빨리 보내주시지.

“전하, 신중히 하기위해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말해”

“며칠 전만 해도 연심은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잖습니까? 그런데 바뀌신 겁니까?”

“......”

“아닙니까?”

“지금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해”

“확신이 없는데도 그 아가씨와 잘되고는 싶으신 거구요?”

“......”

“어떻게 하고 싶으신 겁니까? 단순히 안고 싶기만 하신 것은 아니시지요?”

“매일 오면 좋겠고. 밥도 같이 먹고, 무릎베개도 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머리도 만져주고. 뭐, 이 정도?”

그걸 다 해주든? 간이 보통 큰 아가씨가 아니군. 그런데도 연심은 아니라고? 참 내.가만, 그럼 아버지는 연제와 괜한 씨름을 하시는 거잖아? 이제는 우리 연이를 위해서라도 꼭 성사시켜야 하겠군. 류 강연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쁘신가요?”

“내 수준 아직도 몰라?”

하긴, 예전에 기생집 한참 드나들 때에도 아무리 그 짓을 잘하는 명기라고 소문이 났어도 예쁘지 않으면 거들떠도 안 봤었지. 짐승주제에 눈은 높아서.

“얼마나...”

“이제껏 본 사람 중에서 제일.”

우리 연이가 있기 때문에 그 말에 동의 할 수는 없지만 제 눈에는 그렇다니까.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18세라던데”

“성정은 어떠하십니까.”

“차분해. 조용하고, 얌전하지”

오오, 아주 좋아. 딱 좋아. 이제 귀천도 상관없어. 천민이라도 할지라도 반드시 너와 엮어주마.

류 강연은 자세를 바로하고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하, 차라리 같이 살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같이 밥도 먹고, 같이 잠도 자고. 어떠십니까?”

“나야, 뭐......그런데, 그래도 될까 싶은데...”

자신을 흘낏 보며 말을 흐리는 짐승의 얼굴을 보니 알만했다. 그렇게 좋으니?

“안될 것이 뭐 있겠습니까? 태자전하신데요. 그리고 예쁜데다 성격까지 좋은 아가씨를 누가 가만히 두겠습니까? 전하. 그 아가씨도 전하께 마음이 있어 뵈니 외간남자에게 뺏기기 전에 태자비로 간택하시는 건 어떠시겠습니까?”

“태자비라...”

“네. 5세차이긴 하지만 선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 반대를 한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천민은...”

천민이라면 호적에 내 딸로 올려서라도 신분 상승 시켜주마.

“아니야. 하지만 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 것 같던데”

하긴, 궁 안에 천민이 들어올 리가 없지. 그럼 이제는 누워서 떡먹기군.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단 태자비 후보로 선별되어 교육 받으시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하의 마음이십니다. 어떠십니까? 아가씨와 같이 살고 싶으십니까?”

“응”

“같이 사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어”

짐승의 눈이 가늘어 지면서 은실이 마구 반짝였다.

“이제 떨어져 있는 상상을 해 보십시오.”

“싫어”

류 강연은 그런 태자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한번 같이 살 생각을 하니 이제는 따로 사는 생각은 하기도 싫으시죠?”

끄덕

“다른 남자가 눈독 들이기 전에 얼른 데려오고 싶으시죠?”

끄덕

“같이 살면서 보고 싶을 때 보고, 입 맞추고 싶을 때 마음껏 입 맞추고, 안고 싶을 때 얼마든지 안고 그러고 싶으시죠?”

끄덕끄덕끄덕

짐승이 고개를 맹렬하게 끄덕거렸다.

“아무리 예쁜 아가씨를 보더라도 그 아가씨만 눈에 보이시는 거 맞죠?”

“다른 여자는 필요 없어.”

류 강연은 그래도, 혹시라도, 만에 하나 라는 게 있으니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동생은 보신 적 있으신가요?”

무영은 류 강연의 동생을 본적이 있었다.

“응”

셋째 동생을.

“네? 보신 적 있으시다 고요? 언제요?”

“전에 너네 집 놀러 갔을 때 봤어.”

류 강연은 기억을 되짚어 봤다. 태자가 전에 몇 번 놀러 오긴 했었다. 그때 누워있던 연이를 본 건가?

“어떠셨습니까?”

“뭐가?”

“예쁘다던가, 안고 싶다거나, 같이 살고 싶다거나 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전혀. 내 취향 아닌데”

6척 장신에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류 가(家)의 셋째는 자신의 취향도 아닐뿐더러, 자신은 남자와 그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류 강연은 환호성을 날리며 짐승을 끌어안고 입맞춤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무서워서 그러지는 못하고 얼굴을 환하게 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딱 한 발자국만.

“자! 그럼 됐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태자비 간택문제로 말들이 많았는데 한시름 덜었군요. 걱정 마십시오. 태자전하, 제가 말끔히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일단 그 아가씨 처녀단자를 받아 후보로 올리는 거죠. 입궁 후에 초, 중, 삼간택을 넘어 서야하는데 그건 저에게 생각이 있으니 염려치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아가씨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무영은 생에 최초로 난처하다는 말이 무슨 뜻 인지 알 수 있었다.

“......”

“?”

“나한테 말한 적은 없어”

이름이 뭔지는 알지만.

“전하, 그럼 이제까지 상대방의 이름도 모르시고 만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내 이름도 말 안 해줬는데”

“태자전하와 같습니까? 어느 누가 감히 태자전하의 존함을 부른답니까? 그럼, 어느 집안의 자제분인지 그 정도는 아시는 거죠?”

“......”

알고 있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답답한 무영의 심정도 모르고 류 강연이 대답을 재촉했다.

“네? 어느 집안 입니까?”

“......”

“그것도 모르시는 겁니까?”

이러면 해결방법이 있는데도 그 방법을 쓸 수가 없잖아! 류 강연은 가슴이 답답해 목소리가 커졌다.

“전하! 이름도 모르고 어느 집 여식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같이 사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처녀단자를 받아 후보로 불러들여야 간택을 해서 같이 살던지 말든지 하죠!”

“18살이라니까”

“그럼, 우리나라 18세 처녀 단자를 다 받으란 말씀이십니까? 후보 추리다 세월 다 지나 갈 텐데요?‘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말짱 도루묵인데...류 강연은 마음이 조급해 졌다.

“전하, 그 아가씨에 대해서 더 알고 계신 건 없으신가요? 뭐든지 좋으니 잘 좀 생각해보세요.”

“예뻐”

이 썩을 놈이...

류 강연은 순간 태자의 머리를 후려 칠 뻔했다. 손이 반쯤 올라가는 걸 두 눈을 꼭 감아 충동을 이겨내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거 말고요”

무영은 망설였지만 아무래도 이정도 까지는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음...아버지가 행정부 쪽 관료래”

“!! 정말입니까! 행정부? 아니 그걸 왜 이제 말씀 하십니까? 그럼 됐습니다. 어차피 관료들의 자녀라면 처녀단자를 다 받을 테니 다 후보로 올리면 되겠군요...음하하하하하하핫. 이제 그 아가씨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처신만 잘하신다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전하”

“어떻게”

“첫째, 사람을 함부로 죽이시면 안 됩니다. 그 아가씨가 기겁을 하며 도망기라도 하신다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모르게 하면 되잖아”

“안 됩니다! 궁에는 벽에도 눈과 귀가 있다는 말 들어보셨지요? 끝까지 가는 비밀이란 없습니다.”

“눈과 귀까지 없애면...”

그렇게 까지 해서 죽이고 싶냐! 으이구, 이 화상!

“그것도 안 됩니다. 황궁 안의 사람이란 사람은 죄다 죽여 없애 버리실 겁니까?”

“......”

“이럴 때 일수록 자중하셔야지요. 살기를 뿜는 것도 자제하시고요. 아가씨 마음 변하지 않게 잘 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면”

“뭐니 뭐니 해도 선물이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선물을 주면 100이면 100 모두 좋아합니다.”

“선물?”

“네. 선물 말입니다. 한창 기방에 다니셨을 때 기녀들에게 이것저것 뭐 주셨을 거 아닙니까?”

“응”

“네, 그런 거 말입니다. 그때 뭘 주셨습니까?”

“돈”

“돈......은 빼고요. 주면 기뻐하면서 엄청 좋아하던 것이 있지 않았습니까.”

“몸”

태자의 몸을 훑어 봤다. 그래, 기뻐했겠지...

“...몸도 빼고요.”

“그럼, 없어”

“후...그럼, 장신구라든지, 옷감, 분첩, 보석 같은 것을 선물하세요. 비싸면 비쌀수록, 번쩍거리면 번쩍거릴수록 더 좋아합니다. 꽃신 같은 건 선물하지 마세요. 그거 신고 도망간답니다.”

“번쩍거리는 거...”

“네, 그리고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시는 것도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다정다감하게?”

“네. 아까 잘 되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셨죠? 잘되려면 다정다감하고 부드럽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얘기도 잘 들어주고, 해달라는 건 다 해주시라는 겁니다. 알아들으시겠습니까?”

돈지랄을 하던지, 그 미끈한 얼굴로 유혹이라도 하던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녀를 잡아.

“응”

류 강연은 고개를 끄덕이는 무영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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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제 글에 후원까지 해주시는 분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코멘에 남기기는 했었는데 못 보실 것 같아 이곳에 수줍은 감사의 인사를 드려 봅니다.

또한, 선추코 해주시는 모든 분들 사, 사, 사랑 합니다.

- 근데 제 보물 -쿠폰- 그거 어떻게 사용하는 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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