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1 짐승, 상태가 수상하다 =========================================================================
화연은 무영 앞에 앉아 반찬통을 늘어놓으면서 옷을 입혔...걸치게 했던 그날을 떠올렸다.
오늘은 편식을 한번 고쳐볼까? 그래, 한 가지씩 바꾸면서 사람 만드는 거야.
.....응?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은데?......어디서 들었지?
무영은 반찬 뚜껑을 열다말고 슬그머니 웃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화연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왜 그래?”
“네? 아, 아녜요. 식사 하세요.”
화연은 시침을 때고 밥을 떠 무영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무영이 기대가 약간 섞인 눈빛으로 화연의 얼굴을 자세하게 살피다 속으로 혀를 찼다.
‘오늘도 모르는군...’
무영은 화연이 이쯤 되면 자신이 누군지 알거라고 생각했다. 설마 이렇게 까지 눈치가 없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오늘은 눈치 채겠지, 내일은 알아채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화연은 눈치 챌 기미도 안보였다.
과거, 카울(후드가 달린 남성용 망토)을 두르고 기방에 가면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기생들도 모둘(카울 뒤에 달려있는 후드)만 벗으면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앞 다투어 서로 안기겠다고 싸우고, 앵앵거리는 교태도 잔뜩 부렸었다.
물론, 화연은 그렇게 까지는 안 할 것 같지만 적어도 수줍은 미소를 띠우며 살포시 안겨오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다.
때문에 지금, 무영은 무척 실망스럽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했다. 황족의 혈통=붉은 머리카락이라는 공식은 세 살 베기 꼬마도 다 아는 이 나라에서, 내 스스로 ‘내가 이 나라의 태자다’라고 밝혀야 하는 일이 생길 줄이야...
먼저 알아봐 주기만을 기다리다가는 영원히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 오늘 드디어 사실을 밝히기로 마음먹고, 무영은 운을 띄웠다.
“내가......”
무영이 말을 꺼내려는데 딴 생각을 하고 있던 화연이 턱을 손으로 받치면서 혼잣말을 했다.
“아이, 참...생각이 안 나네...”
“......뭐가.”
“제가 어떤 말을 들었는데,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서요.”
“무슨 말?”
화연은 당신을 사람 만들어 보려고 생각했다가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고 말할 수가 없어 얼버무렸다.
“...어, 별거 아녜요. 어서 드세요.”
화연이 뭔가를 자신에게 숨기려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한 무영의 눈이 가늘어졌고, 화연은 그런 무영의 눈치를 보다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게......누군가를 사람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말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들었거든요. 근데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당최 기억이 안나니 답답해서요.”
“사람......을 만들어 보겠다고?”
“네.”
“여러 번?”
“네.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기억이 안나요......누가 그랬지?”
“......”
저건 내 얘기다.
무영은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말을 한 사람은 류 재상이나, 류 강연 둘 중에 하나이거나...아니, 둘 다일 것이 분명했다. 보아하니 류 가(家)에서 자신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알만했다. 그런 기억은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지.
“별로 좋은 말도 아닌 것 같은데, 일부러 기억...”
“아! 맞다! 아버지와 오라버니께서 하신 말씀이셨지? 이제야 기억이 났네요. 아이고, 시원해.”
“오라비?”
“어머, 제가 말씀 안 드렸어요? 제 둘째 오라버니께서 태자전하의 경호대장이시거든요. 류 강연이라고...혹시, 아세요?”
“......알아.”
“어머, 아시는구나. 그럼, 태자전하에 대해서도 잘 아세요?”
“......왜?”
“왜긴요. 아까, 그 얘기가 태자전하......!!”
화연은 오라비와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사람이 태자라고 태연하게 말하려다 입을 막았다. 태자에 대한 험담을 그것도 황궁 안에서 이렇게 쉽게 말하다니 내가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 하면서 서둘러 말을 바꿨다.
“아, 아녜요. 어......아! 오라버니께서 근무하시는 전각은 어디 있어요? 여기서 가까워요?”
“......멀어.”
“그, 그렇구나. 제 말은 신경 쓰지 마시고요. 아까 하려던 말씀 계속 해보세요.”
“......됐어.”
무영은 말할 수가 없었다.
류 재상과 류 강연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화연이 자신이 태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좋아 할 거라고만 생각했지 싫어하거나 도망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적도 없었다.
골치 아픈 상황에 빠진 무영의 고민도 눈치 채지 못하고 화연은 미리 계획해 두었던 일을 위해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야채도 잘 드셔야 해요. 정말 나중에 큰일 나요. 고기만 먹으면 몸속에 세포...그러니까 나쁜 피가 생기기 쉬워요. 나쁜 피가 뭉쳐서 정상적인 피가 흐르는 길을 막을 수도 있어요. 저번에 말씀드렸었죠? 그게 바로 그거예요. 나쁜 피는 한번 생기면 없애기도 힘들고요, 나중에는 딱딱하게 변하면서 점점 커지다가 내장기관 여기저기에 막 번지면서 못쓰게 만들어 버려요. 그렇게 되면 손 쓸 틈 없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꼭 야채도 같이 드세요”
화연은 딱 6살에게 말하듯 부드럽게 설명하면서 나물반찬을 입에 가져다 댔다. 이정도 말 했으면 알아들었겠지...하지만 남자는 꾹 다문 입을 벌리지 않았다. 어휴...정말! 억지로 입을 벌릴 수도 없고.
“그럼, 그거 이제 안 해줄래요.”
무표정해 보였던 남자의 얼굴이 대번에 싸늘해지면서 거칠게 말했다.
“저번과 말이 다르잖아. 넌 왜 매번 말을 바꿔”
“그거야 제 마음이죠. 그리고 저번에 해당하는 건 그날 해줬잖아요.”
“그래? 이제 이거 찢어버려도 되겠네.”
“.....”
어깨를 들썩여 입고 있던 비단옷을 가리키며 찢겠다고 협박하는 그는 너무도 당당하고 거만해 보였다. 자기 좋으라고 입혀놨더니...
화연은 남자가 가늘어진 눈으로 자신을 보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보아하니 옷을 찢어버리는 것 같아 빠르게 말했다.
“먹으면 더 좋은 거 해줄게요.”
무영은 손을 멈추고 화연에게 의문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이제까지 태자라고 밝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었는데 일순간 싹 정리되더니 대신 다른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거...설마?
“거짓말 아녜요. 드세요”
“......”
“정말인데...아니면 다시는 이 얘기는 꺼내지도 않을게요.”
혹시, 색사를 말하는 건가?...음, 그렇지. 그게 더 좋은 거긴 하지. 훨씬 좋긴 한데...
무영은 슬쩍 창밖을 쳐다보았다.
아주 환했다.
방안에 떠다니는 먼지까지 샅샅이 보일정도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무영은 다시 화연을 쳐다봤다. 그렇게 안 생겼는데 보기보다 음란한 구석이 있나 보군.
환한 곳에서 먼저 다리를 벌리며 자신을 재촉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니... 음... 꽤 마음에 들었다.
가만히 있던 무영이 드디어 입을 벌렸다.
화연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기분 좋은 웃음이 번졌다. 눈동자 안에 은색의 별빛이 반짝거리며 어지럽게 빛났다. 이제는 그녀를 눕혀두고 이런 저런 짓을 하는 생각으로 바빴던 무영은 생각을 멈췄다.
무영은 그녀 얼굴의 움직임을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하나하나 눈에 새겨 넣었다. 저 모습을 평생 보고 있으라고 해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하고 가슴이 자꾸 간질간질한 게 어딘가를 마구 긁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며칠 전 류 강연과 이름 모를 경비 대원에게 들었던 말이 번갈아 생각이 났다.
화연은 무영에게 밥을 다 먹이고 입가심으로 쥬유차 까지 따라 준 뒤 다리를 포개고 앉아 허벅지를 탁탁 쳤다.
“?”
무영은 화연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여기로 누워보세요”
“...뭐?”
“제 다리를 베고 누워 보시라고요. 누군가 귀 청소 해 줄때 눕는 것처럼 요.”
“......”
“...어렸을 때 한 번도 안 해보셨어요?”
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연은 이제 그가 안쓰럽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었다. 이런 평범한 것도 단 한 번을 안 해봤다니...
“그럼, 이제 한번 해보세요. 자...어서요”
“...그게... 더 좋은 거라고?”
실망스러워진 무영의 얼굴이 탐탁지 않게 변했다.
“한번 해보세요. 안 해보셨다면서 더 좋은 건지 어떻게 아세요? 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거 해드릴게요. 그리고 야채 얘기는 두 번 다시 안 꺼내고요.”
“이거 별로면, 다른 거로 바꿔”
다른 거라면 머리 쓰다듬는 것 을 말하는 건가 보다. 훗... 정말 좋았나 봐. 화연은 미소를 띠었다.
“알았어요. 일단 해보세요. 얼른요”
무영은 일단 해보고 맘에 안 들면......무조건 안 들겠지만, 다른 걸 해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너무 센 걸로 하면 겁먹을 수도 있으니까 가볍게 내 무릎에 앉아 음란한 말을 속삭이며 깊은 입맞춤을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하는 정도로 할까...너무 약한가...아냐, 처음이니까 이 정도로만 하자. 자신의 너그러운 생각에 감탄하며 화연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그가 편하게 누울 수 있도록 다리의 자세를 약간 바꾼 뒤 허벅지에 놓여있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눈이 점점 가늘어 졌다. 얼굴 가득 맘에 든다는 표정이 흘러나왔다. 이러다가 저번처럼 그르렁거리는 거 아냐? 화연은 웃음을 꾹 참고 흡족해 하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눈을 거의 감고 있는 그의 얼굴은 대단한 매력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장인이 몇 만 번을 담금질하면서 혼신을 다해 만든 명검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기운이 풍기기도 했는데, 또 어떻게 보면 자신의 영역을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다가 내키면 거침없이 뛰어 다니기도 하는 야수 같이, 폭발할 것 같은 뜨거운 기운을 풍기기도 했다.
이렇게 잘생겼고 잘 타이르기만 하면 말도 잘 듣는 편인데 왜 부모님은 그를 사랑해 주지 않았을까...머리를 쓰다듬는 그런 쉬운 것 가지고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화연은 그가 어렸을 때 사랑한번 못 받고 자라 남들과의 접촉을 그리워하는 외로운 사람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철석같이 믿었다. 무영을 알고 있는 궁 안팎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연제까지도, 그게 무슨 얼어 죽을 소리냐며 고래고래 비명을 지를 만한 오해인지도 모르고 그녀의 믿음은 굳어지고 있었다.
특히 내관의 시체를 치웠던 류 강연이 들었다면, 피를 토하면서 쓰러질만한 엄청난 오해였지만, 아쉽게도 이곳에는 바로 잡아 줄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어떠한 오해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던 화연은, 문득, 연우였을 때 뱃속에서 아이가 심하게 발길질을 하면 배를 쓸면서 노래를 불러주던 일이 떠올랐다.
그럼 옆에서 안절부절 하던 그이도, 배를 차면서 심술을 부리던 아이도 금방 잠잠해 지곤 했는데... 미소를 띤 화영의 얼굴에 그리움이 차올랐다.
“맘에 들지요?”
“......”
젠장, 정말 맘에 들었다.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아니지...내가 언제부터 남 생각하면서 행동했다고.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나중에 맘에 안 들었다고 하면 돼.
무영은 자신의 생각이 맘에 들어 기분 좋게 눈을 감고, 화연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화연이 노래를 작게 흥얼거렸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이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찬 굴 바구니 머리에이고
엄마는 고갯길을 달려옵니다.
-[출처] 섬집아기
감고 있던 무영의 눈이 살짝 떠졌다.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무영은 코를 슬쩍 들었다. 그녀에게서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영은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오르도록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더니 그녀의 노랫소리와 섞여 금방 몸속을 가득 채웠다.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던 큰 포만감이 느껴지면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그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여자에게 연정을 품었다.
식사를 마친 뒤 귀가하기 위해 화연은 일층으로 내려갔다. 그런 화연의 뒤에 무영이 찬합을 들고 조용히 따라갔다.
민 결과 제갈 명은 움직이지도 않고 1층으로 내려온 그들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짐승이 아가씨를 데려다 주려다 주기라도 하려는 건지, 밝을 때는 생전 내려오지도 않는 입구 앞 까지 나와서 어슬렁거리는데 무서워 죽을 것 같았다.
걸친 저고리 사이로 보이는 무시무시해 보이는 흉터와 남자가 보기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미끈한 복근을 보고 있으려니 모골이 송연했다.
입구 옆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자신들을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보는데 아까 아가씨가 우리와 얘기를 나눈 것을 틀림없이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노려보는 눈 속에 무언의 경고가 진한 냄새를 풍겼다.
얘한테 또 친한 척 하면......알지?
둘은 고개가 떨어져 나가라 끄덕거렸다. 그 모습을 주시하며, 본보기를 보일까 말까 고민하던 무영은 자신의 입을 손가락으로, 화연을 눈짓으로 가리키고는 시선을 돌렸다.
앞으로 얘한테 말도 걸지마. 이번 한번만 봐줄게.
무영이 보내는 무언의 경고를 들은 그들은 침을 꼴깍 삼킨 뒤 가슴을 쓸어 내렸다. 오늘도, 짐승은 아가씨 때문에 기분이 좋은 상태인가 보다. 앞으로 남은 몇 시간동안만 아무도 건들이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우린 교대하면 끝이다.
하긴, 그 누가 건드릴 수 있을까. 그럼 오늘하루도 잘 넘어갈 수 있겠군. 그리고 내일 다시 아가씨가 오시겠지. 그럼 짐승은 다시 기분이 좋아질 테고...두 대원은 이 행복순환의 일등공신이신 아가씨를 연호하며 기쁨의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도 못 건드릴 거라고 생각는데 바로 앞에 있는 이 아가씨가 건들일 줄은.
화연은 무영에게 찬합을 받아 들고 생글거리면서 말을 꺼냈다.
“저 당분간 못 올 거예요.”
“......왜?”
“저희 모레하고, 글피 이틀 동안 잔치하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에이 참...저 때문에 치르는 잔치인데 당연히 제가 있어야지죠. 준비도 도와줘야 하고요. 그때에는 아버지도 집에 있으라고 하셨어요.”
“......”
“아! 그리고 잔칫날 오실 수 있으시면 놀러오세요. 음식 맛난 거 많이 준비할거에요.”
“......”
“그럼, 그 동안 잘 계세요. 식사 잘하시고, 옷도 꼭 입고 계세요. 다음에 봬요. 아저씨들도 안녕히 계세요.”
찬합을 양손으로 안아 들고 자신들에게 까지 예의바르게 인사한 아가씨는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도 없이, 연인에게 보내는 애틋한 눈길도 없이 그대로 휙 돌아서 걸어갔다.
한 번쯤 뒤 돌아볼 만도 한데, 단 한번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민 결과 제갈 명은 서로에게 눈짓을 했다
어쩜...아가씨가 그래도 정신이 있긴 있으신가 보다. 그리 빠지신 건 아닌가 봐. 혹시 짐승만 혼자 좋아하고 그러는 거 아냐? 에이, 나도 참 별 생각을 다해. 설마...
서로 바쁘게 눈짓을 하다 짐승이 어쩌고 있는지 궁금해 눈알만 돌려 슬쩍 봤는데.
“!!”
이런, 니미럴! 그 설마가 맞았나 보다.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그의 온몸에서 어두운 뭔가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짝사랑하는 남자에게는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온몸이 썩어버릴 것 같은 특유의 음울한 기운이 있는데 그것이 태자의 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째 예사롭지 않은 것이 금세라도 폭발해서 최고로 잔인하고, 최대로 악랄한 무시무시한 어떤 짓을 벌일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첫 제물이 될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 들어 대원 둘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이 심장이 미친 듯이 방망이질하고, 눈앞이 빙빙 돌았다.
아가씨가 사라진 방향을 사납게 노려보던 태자의 악물린 입에서 드디어 맷돌에 뼈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뿌드득뿌드득-
그 소리를 듣는데 내 뼈가 갈리는 것 같아 머리끝이 쭈뼛 서면서 눈도 깜빡 하지도 못하고 굳어있는데 짐승의 음산하고도 살벌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두고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