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을 문 짐승-18화 (18/110)

00018  짐승, 상태가 수상하다  =========================================================================

<성적인 묘사가 조금 있습니다.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이번 편은 넘어가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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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하려면 마음대로 하지는 못 하시겠고요.”

“...어떻게 알지?”

어떻게 알긴, 해봤으니까 알지. 류 강연은 결론을 내렸다.

짐승에게 발정기 왔다.

“전하, 경하 드리옵니다. 발저...흠, 흠... 연심(戀心)을 알게 되셨군요.”

“연심?”

“네. 전하.”

“이게, 연심이라고?”

“예”

“확실해? 내가 예상했던 거와는 완전히 다른데...”

니가 연심이 뭔지는 알았어야지 예상을 하지...어이구... 류 강연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내 말 들어, 형이야.

“뭘 예상하셨는지는 몰라도 확실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심쩍은지 무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눈 안에는 허튼소리 지껄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정말인가?”

“네. 못 믿으시겠습니까?”

“너 같으면 믿겠어?”

당연히 믿기지 않았지만 류 강연은 이제 와서 사실, 이게 일반적이긴 한데 너는 아닐 수도...라는 말은 때려죽여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남자의 음심이나 사심이나 연심은 다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음심이나 사심이 있는 건 확실해보이니 이제는 우기는 수밖에...

류 강연은 자신이 지금 무슨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있는 지도 모르고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럼 맞는지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그런 방법도 있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요.”

“말해봐”

“그 아가씨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것을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싫어”

“네? 한번 상상만 해보세요.”

“싫다고”

“아, 알려달라면서요!...휴우...그럼 상상하기도 싫다는 걸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

“그럼, 아가씨를 다시 못 보게 되는...”

“쯧, 그래서 못 죽이는 거라니까.”

“전하를 싫어하는 것은요?”

“나를?”

그 어떤 여자가 나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그 표정에 류 강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니 속을 알기 전까지는 그렇겠지.

“전하, 말해보라고 하셨잖습니까! 협조를 좀 해주셔야지요!”

“...계속해봐.”

“후...그럼 아가씨가 전하를 보고 웃는 것은 어떠십니까?”

“좋아.”

“기뻐하는 건요”

“그것도”

“전하를 좋아하는 것은요?”

“......”

무영의 가늘어진 눈에서 은실이 마구 빛났다. 으이구, 생각만 해도 좋은가 보다. 그러면서 아닌 것 같다고?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고, 계속 전하와 같이 있으면서, 전하를 좋아하며 항상 웃어줬으면 하는 그것이 바로 연심입니다. 그 아가씨에게 연심을 품으셨는데 죽이니, 마니 이런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시고, 잘해볼 생각을 하셔야지요. 아! 혹시 모를 불상사를 위해 전하께서는 누가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고 미리 말씀도 해 놓으세요. 이왕이면 누가 닿기만 해도 칼을 뽑는 그 미ㅊ...아니, 습관도 좀 바꾸시고요.”

“......”

류 강연을 주시하던 무영의 눈동자가 허공으로 돌아갔다. 왜 저래? 뭔가 찔리는 거라도 있는 것처럼...

“...혹시, 그 아가씨께서 이미 전하를 만지셨습니까.”

“......”

“어디를...”

“...머리...”

“그것도 머리를요? 폐하께서도 만져보신 적 없는 그 머리를요?”

“......”

“그런데도 아직 멀쩡히 살아계시는 거군요.”

“......”

“설마, 좋으셨던 건 아니시지요?”

그랬으면 넌 정말 인간 아니야. 음심...아니, 연심품은 여자니까 참은 거라고 말해! 어서!

“...좋던데”

이, 짐승! 개죽음 당한 내관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후...”

류 강연의 바닥을 뚫을 듯 음울한 한숨소리가 3층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류 강연의 활약으로 인하여 짐승은 멀미도, 두려움도, 위협도 아닌 제3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경호대원인 쌍둥이 주 해랑과 주 아랑은 새벽 경호 당번이었다.

한참 경호를 서고 있는데 청룡궁 안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주씨 쌍둥이는 두려워 할 지언 정 동요하지는 않았다. 요즘 매일 이랬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하루 종일 무언가를 세게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 모두가 벌벌 떨었었다.

새벽 경호를 서고 있는 주씨 쌍둥이도 그 날 서로를 부둥켜안고 공포에 떨었다.

전각이 울리도록 거세게 내려치는 저것은 무엇일까. 화병이나, 술병? 아니면, 도끼나 망치? 혹시...잘려진 누군가의 머리통이면 어쩌지...

그들은 전쟁터에서 태자와 같은 부대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 얼마나 잔인한 짐승인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경호 대원으로 발령이 났을 때 그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그냥 퇴역(退役)하면 했지 그건 절대로 못하겠다고, 차라리 우리를 죽이라며 거품을 무는데, 그때 류 강연이 자신들을 붙들고 말했었다.

“너희의 임무는 다른 사람으로 부터 태자전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태자전하로부터 다른 사람을 지키는 것이며, 나아가서 이 궁을 거대한 위험에서 지키는 무엇보다 막중한 일이다. 궁 내의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

...그게 무슨 씨알도 안 먹힐 소리냐며 짜게 식어있는 그들의 얼굴을 보던 류 강연은 한숨을 쉬고 다시 말했었다.

“녹봉 두 배, 위험수당 두 배, 노후 연금 보장, 평생 무료 의궁(醫宮)출입 권한 부여, 황궁 앞 노른자 땅의 저택 제공, 퇴역 후 명의이전”

“......”

눈이 휘둥그레질 매력적인 제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태자인데...아무리 돈이 중요하다고 해도 목숨보다 중요한건 아니라서 그들이 결정을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류 강연이 그들을 양쪽 어깨에 끼고 조용히 속삭였다.

“수락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 주씨 쌍둥이는 여자하나 끼고 셋이서 뒹구는 걸 즐기는 변태쌍둥이라는 내용의 글이 궁 곳곳에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그 정도야 뭐...

“......”

“그 여자가 공조서 궁녀 담주하 라는 것도.”

헉! 그것만은...

굳은 표정의 주 아랑이 입을 열었다.

“위험수당 세 배”

류 강연이 빠르게 조건을 붙였다.

“중도퇴역불가, 청룡궁 종신계약”

종신이라니...너무한 거 아냐? 주 해랑이 분개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위험수당 네 배!”

“좋아”

그들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손을 굳게 잡았었다.

경호 대원으로 발령받은 그들은 초기에는 태자가 전쟁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잡히는 대로 깡그리 죽여 버릴 줄만 알고 태자만 보면 두려움에 벌벌 떨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여기서는 웬일인지 건드리지만 않으면 죽이지는 않는 것이 아닌가. 살만해진 대원들은 행궁에 버금가는 높은 녹봉에 최고의 복리후생을 자랑하는 경호대에 들어오기를 잘했다며 이게 무슨 행운인가 하고 좋아했었다.

처음에는 바짝 얼어 말소리 하나 못 내던 그들이 이제는 궁 안에 내관도, 궁녀도 없어 이러다가 자신들의 손으로 뒷간 청소까지 하게 되는 거 아니냐고 투덜거릴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전보다 더 바짝 예민해져 몸을 사려야 할 정도로, 며칠 전 부터 태자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아니, 원래도 정상은 아니었는데 상태가 점점 수상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살기를 뿌렸다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보였다가 오락가락하는데, 보아하니, 이러다가 얼마 있지도 않는 자신들의 인원수가 머지않아 줄어들 것만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드는 것이 조만간 누구하나 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들은 태자가 움직이기만 해도 삽시간에 조용해지면서 모든 인원이 그를 주시할 정도로 태자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 세웠다.

짐승이 언제 칼을 빼 입에 물고 칼춤을 출지 몰라. 조심, 또 조심하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짐승우리에 들어오겠다고 한 거지...류 강연에게 넘어가 굳게 맞잡았던 자신의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고만 싶었다.

다시 쏟아지는 차가운 살기를 느낀 주씨 쌍둥이 중 동생 주 아랑이 청룡궁으로 눈을 슬쩍 돌렸다.

“주무시지도 않고, 또, 왜 저러신데...하루에도 몇 번씩. 이거, 무서워서 살겠냐고.”

주 해랑이 심각한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요즘 들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은데...”

주 아랑이 어두컴컴한 주변을 둘러보다 주 해랑에게 작게 속삭였다.

“형...나 어제... 무서운 것을 봤어.”

“...뭔데”

“어제, 주하랑 놀다가 늦어서 여기서 그냥 잤잖아.”

요즘 그들은 공조서 소속 궁녀인 담 주하와 셋이서 한창 끈적거리는 연애를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입가에 애교점이 있는 교태 넘치는 미인이었는데, 평소에는 얌전해 보이는데 살짝 눈웃음을 치면서 웃기라고 하면 단숨에 남자 수백 명은 잡아먹은 것 같은 요염한 요부로 변하면서 색끼를 줄줄 흘리는데 그게 어찌나 사내 애간장을 녹이는지, 단숨에 단 한군데를 제외한 몸 전체가 흐물흐물해졌다.

그리고 홀로 굳건히 서있는 그 신체의 한군데를 다루는 솜씨는 또 얼마나 예사롭지 않은지 산전수전 다 격은 그들마저도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보통이 아니었다.

이제까지는 처음부터 둘이 같이 들이대면 여자가 대경질색을 했기 때문에 주 아랑이 먼저 작업을 들어가고 뒤에 주 해랑이 합류하는 방식으로 거사를 치르곤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같이 들어오기를 원했다. 심지어 말을 꺼낸 것도 그녀가 먼저였다. 교태 넘치는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셋이 같이할래요?” 이러는데...

그 날, 참 대단했는데...

뼈가 타고 살이 타던 그 밤을 떠올리던 주 해랑의 입가가 느슨하게 풀렸다.

“그랬지. 주하랑 있으면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더라고. 걔도 참 물건이야”

“그렇긴 하지. 걔는 앞, 뒤가 다 명기잖아. 쩝, 보고 싶다. 아니, 이게 아니고, 그래서 어제 청룡궁 1층 접객침소에서 잤었잖아.”

“근데?”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침소 밖으로 나가는데 갑자기 뒷골이 오싹하면서 팔에 닭살이 돋는 거야.”

그때가 다시 생각나는 듯 주 아랑 표정이 잔뜩 굳었다..

“추워서 그런가 하고 팔을 쓸고 있는데 뒤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 같지 뭐야. 눈 먼 자객이라도 들은 건가 해서 잽싸게 몸을 낮추고 조용히 뒤를 돌아보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어 주 해랑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 졌다.

“보는데...?”

“바로 앞에 노랗게 번뜩이는 눈이 있는 거야.”

“헉! 태자전하셨구나!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당연히 깜짝 놀라 비명도 못 지르고 주저앉았지. 얼마나 놀랐는지 나중에 보니 소변까지 찔끔 지렸더라고”

“찔끔? 이 자식, 생각보다 담이 좋구나?”

“내가 어렸을 때부터 담 하나는 끝내줬잖아. 암튼, 그러고 주저앉아 있는데”

“앉아있는데?”

“전하께서 내 앞에 같이 쭈그리고 앉으셔서는 나를 가만히 노려보시는 거야. 찍 소리도 못하고 벌벌 떨면서 쳐다보고만 있는데, 전하께서 말씀 하셨어.”

“뭐, 뭐라고”

“그 여자 좋아?”

그때가 다시 생각나는 듯 주 아랑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아무리 궁 안 이지만 화로가 없으면 추워서 닭살이 돋는데 태자는 여전히 맨발에 바지만 입고 여름에나 입는 얇은 면사로 된 장옷만 걸치고 있었다. 태자의 노랗게 번뜩이는 눈을 보면서 얼어붙어 있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그 여자 좋아?”

“누...누구 말씀이신지”

“오늘 네 색사(色事) 상대”

“네?! 어...오늘...아무도...”

“냄새나. 여자 냄새”

“헉! 내, 냄새요?”

반사적으로 자신의 팔을 들어 냄새를 맡아봤다. 주하와의 색사 뒤 형과 같이 목간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남자 냄새도”

“!!”

아, 맞다...이분 사람 아니셨지...짐승이셨지. 더 이상의 부정(否定)은 의미가 없었다.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니고...

“...하, 하긴 했는데...왜, 그러시는지...”

“그 여자 좋으냐고. 아니면, 그 남자가 좋아?”

“네?! 아니요! 저는 여자가 좋습니다! 네!”

“좋아서 한 거야?”

“예?”

태자의 눈이 가늘어 졌다. 조금 짜증나는 기색이었다.

“쯧...색사 말이야.”

그의 기색에 놀라 황급히 대답했다.

“네! 네! 좋아서 했습니다!”

“흠, 그래?”

태자가 턱을 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좋은 건 어떻게 알아.”

“네? 무, 무슨...”

“그 여자가 좋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어, 어떻게 알긴요...매일 보고 싶고, 안고 싶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싶고, 그러면 좋은 거죠...”

“확실해?”

“네! 네! 확실합니다!”

“그게 다야?”

“어...더 깊어지면 같이 살고 싶어지겠죠...전하, 왜...이런 걸 여쭤보시는지...”

“그럼 거짓말은 아니라는 건데...”

태자는 가늘게 뜬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더니 몸을 획 돌려 사라졌다.

“오메...소름 돋아”

얘기를 듣던 주 해랑의 얼굴에 진짜 닭살이 오소소 돋아 있었다.

“그치? 어우...난 어제 밤새 흉몽에 시달리고...암튼 생각하기도 싫어”

“한 밤중에 왜 그런 말씀을 하신거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난 사람인데.”

“허긴, 젠장. 요새 같으면 정말 퇴역하고 싶다.”

“형, 나도. 근데 지금 퇴역하면 아무것도 못 받잖아. 주하한테 이번에 새로 나온 꽃 신 사주기로 했단 말이야.”

“난, 비견사주기로 했어. 토끼털로 된 거. 그리고 잊었나본데, 우리 종신계약이야 중도 퇴역 못해. 청룡궁을 나가고 싶으면 죽어서 나가는 수밖에는 없어.”

“맞다. 그랬지...”

그래, 주하 얼굴을 봐서라도 조금만 참자. 우리에게는 그녀가 있으니까. 하지만 별로 위로는 안 되는 듯 주 해랑과 주 아랑의 침울한 얼굴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들이 우울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서 있는데 뒤에서 낮고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말이야”

“커억!”

“엄마야!”

깜짝 놀란 주씨 쌍둥이는 펄쩍 뛰면서 바닥을 굴렀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기척도 없이 뒤로 다가온 태자였다.

소변을 지린 주 해랑의 바짓가랑이 사이가 짙게 물들어 갔다. 그들이 그 꼴로 나뒹굴어 굳어있는데 그 앞에 무영이 쪼그리고 앉았다.

“궁금한 것이 생겨서 말이야.”

둘 중에 그래도 담이 큰 동생 주 아랑이 주 해랑을 슬쩍 보면서 대답했다. 형은 아무래도 너무 놀라 눈 뜨고 기절한 것 같았다.

“저, 전하...뭐, 뭐가 말씀이십니까.”

“어제, 좋아하면 보고 싶고 뒹굴고 싶다며.”

“에? 뒹군다고는... 네. 그, 그랬지요.”

“언제까지”

“네? 어, 언제까지라니요...?”

“언제까지 하고 싶어지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좋아 할 때까지는 계속 그러고 싶겠지!... 라고 소리친다면 내 머리는 눈 깜짝 할 사이에 떨어져 저 짐승의 큼직한 뒷발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가겠지. 그리고 굴러온 내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뻥 차서 궁 밖으로 날려 버리겠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서있는 적의 목을 한 번에 자른 뒤 머리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발로 차 날려 버리는 것이 꽤 재미있었는지 한동안 그 짓만 하던 태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 얼마나 좋아하냐에 따라 다, 다르겠지요.”

“기간이 없어?”

그럼, 제가 앞으로 몇 월, 며칠까지 당신을 좋아할 테니 그때까지만 당신과 만나고, 만날 때마다 뒹굴면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싶은데 당신 생각은 어떠십니까...그러겠니? 한심스러운 기분에 한숨을 쉬려다 화들짝 들어 마시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네...기, 기간은...따로...”

“그럼 영원히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 그렇죠.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그렇게 되면 같이 사는 거죠.”

“흠...”

짐승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노랗게 빛나는 두 눈을 번뜩거리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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