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을 문 짐승-17화 (17/110)

00017  짐승, 상태가 수상하다  =========================================================================

<아주 쬐-꼼 성적인 암시가 담겨있는 단어가 나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이번편은 안보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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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비 말이야.”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장죽을 태우면서 찬합에 반찬통을 정리해 넣고 있는 화연을 지켜보던 무영이 말을 꺼냈다.

“네?”

화연이 찬합을 정리하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쳐다봤다. 가슴이 다시 쿵하고 떨어져 무영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무영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 나비 말이야, 니가 쓰고 다니는 거”

인상을 쓰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무영의 얼굴을 쳐다보다, 또 뭐가 맘에 안 들어서 저러나 싶기도 하고, 다 큰 성인 남자지만 입맛도 그렇고 하는 짓도 딱 애구나 싶어 웃음이 흘러 나왔다.

“네. 나비가 왜요?”

고개를 돌리고 있던 무영은 화연의 웃는 모습을 곁눈질로 훑어보다가 부드럽게 올라가 있는 입술에 시선을 멈췄다.

도톰했던 붉은 입술이 호선을 따라 펴지면서 주름하나 없는 고운 모양으로 변했다. 표면은 거스러미 하나 없이 매끈 거렸고, 부드럽고 폭신한 아랫입술은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 터질 것처럼 탱탱해 보였다.

“?”

화연은 말을 꺼내 놓고 아무 말 없이 장죽만 뻑뻑 태우는 남자를 보다 장죽의 매캐한 연기를 손으로 휘저으면서 가까이 다가갔다.

“콜록콜록...흠, 흠...말씀을 해보세요. 제 나비가 왜요?”

시선을 돌리고 장죽만 태우던 무영이 장죽을 바닥에 놓더니 멀리 밀었다.

“벗지 말라고.”

“어디서요? 여기에서요?”

무영은 여기에서도 벗지 말라고 할까 고민스러워 졌다.

“...아니, 밖에서”

“아...난, 또 뭐라고...어차피 밖에서는 안 벗어요. 그거 말씀 하시려고 그렇게 뜸을 드린 거예요?”

화연은 이 남자가 혼자 있기 싫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 하고 살며시 웃으며 한 결 가벼워진 찬합을 들고 일어섰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혼자 있으려면 외롭기도 하겠지...어떻게 할까...

무영은 찬합을 들고 서 있는 화연을 보면서 저 여자 때문에 자신의 상태가 점점 이상해지니 차라리 당분간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입을 열었다.

“당분간...”

“어! 내 나비! 어디로 갔지?”

찬합을 들고 있던 화연이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만지더니 나비를 찾았다. 큰 소리로 책을 읽듯이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무영은 쭉 뻗고 있는 자신의 다리 옆에 떨어져 있는 나비를 가리켰다.

“여기 있잖아.”

“아! 거기 있었네요.”

화연이 찬합을 들고 다가와 그 앞에 앉더니 씩 웃으며 얼굴을 들이 밀었다. 무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뒤로 물리면서 바닥을 뒹굴고 있는 장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야”

“씌워 주세요.”

“뭐?”

“나비 씌워 달라구요. 전 찬합을 들고 있잖아요.”

“놓고 써.”

“저는 아까 손수 밥도 먹여드렸는데 그 정도도 못해줘요?”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그녀의 말에 인상을 콱 찌푸리면서 너 따위가 뭔데 나한테 해라, 마라 하냐며 건방진 버릇을 고쳐주려고 그녀를 휙 쳐다보는데... 보는데... 보는데... 보는데...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식사 시중도 들어줬는데...이 정도야 해주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가 씌워 주기를 그렇게 원한다는데 그 정도쯤이야...

무영은 말없이 나비를 들어 화연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씌워주고 매무새 까지 꼼꼼하게 살펴 봐준 뒤 손을 내렸다.

화연은 웃으면서 얌전히 있다가 그가 나비를 다 씌워주자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무영은 그녀의 손이 자신의 머리로 다가오는 것을 흘끔 흘끔 보다가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손이 닿기도 전에 먼저 고개를 모로 기울여 머리를 가져다 댔다.

“다시 올게요. 외롭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

외롭지도 않았고 참을 일도 없었지만 나비 안에서 반달모양으로 변한 그녀의 눈을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응”

화연이 무영의 머리를 조금 더 쓰다듬다가 찬합을 들고 뒤돌아 나가려다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근데, 아까 하려던 말씀은 뭐예요? 당분간...이라고 하셨죠? 당분간 왜요?”

그녀의 뒤통수를 보던 무영은 화연이 고개를 돌리자 다시 장죽을 쳐다봤다.

“......좀 빨리 오라고”

“그건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노력해 볼게요.”

“...응”

화연이 돌아가고 나서도 한참동한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던 무영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벽 앞에 서더니 말아 쥐고 있던 주먹을 있는 힘을 다해 휘둘렀다. 벽이 움푹 들어가면서 ‘퍽’ 소리가 내실에 울렸다.

주먹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꿀물에 빠져있는 것 같던 기분이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후...좀 낫군.”

류 강연은 요즘 계속 몸이 안 좋았다. 며칠 전부터 고뿔에 걸린 것 같더니만 몸살까지 난 것 같았다.

아버지는 요즘 업무에 치어 퇴 궁도 못하시고 일주일째 행궁 밖으로 나오지도 못해 짜증이 극에 달아 자신을 볼 때마다 ‘너 혼자 연이를 보니 좋으냐? 이 불효막심한 놈. 하여간 사내놈들은 키워놔 봤자 소용이 없어’ 라고 하시며 옆구리를 찌르며 윽박지르시곤 하셨는데 자신이 고뿔에 걸렸다는 것을 아시자마자 꼬숩다는 표정으로 연이한테 옮으면 큰일 난다며 다 낫기 전에는 별채에 얼씬도 하지 말고, 혹시 모르니 집에 들어가지도 말라며 호통을 치셨다.

생각해보니 정말 연이한테 옮기기라도 하면 큰일이라서 아버지의 말씀대로 퇴 궁하지 말까 하다, 청룡궁에서 머무르는 건 죽기보다 싫어, 힘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연이 얼굴도 못보고 방에 쥐 죽은 듯이 처박혀 있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힘든 몸을 이끌고 입궁을 하곤 했었다.

오늘도 힘없이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멀리 청룡궁이 보였다. 아...이제 궁 처마만 봐도 짜증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류 강연은 한숨을 길게 내 뱉고 청룡궁으로 들어갔다.

3층으로 올라와 닫혀있는 침소 문 앞에서 한숨을 다시 던지고 문을 열었다.

방안은 웬일로 뿌연 연기도 없었고 환했다.

태자가 열어놓은 창틀에 앉아 장죽을 태우고 있었다.

“전하, 문안인사 드리옵니다. 밤새 강녕 하셨습니까.”

인사를 건네며 고개를 깊이 숙이고 다시 들어 올렸지만, 무영은 들은 척도 안하고 그 자세 그대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기분이 또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분명히 어제 자신이 군총부로 가지 전 까지만 해도 티가 날 정도로 기분이 좋았었는데 이 아무도 없는 궁에서 밤새 무슨 일이 생겼다고 고새 기분이 나빠져서 저러는 건지...요즘 들어 매일,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이러니 정말 장단을 못 맞추겠다.

무슨 달거리 하는 처자도 아니고...

류 강연이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린 한숨을 내 쉬며 고개를 돌리는데 한쪽 벽이 습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너덜너덜 변해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꼭 무슨 돌덩이로 수십 번은 내려 친 것 같은 자국이 벽에 한가득 나있고 그 밑에는 벽에서 떨어져 나온 잔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전하! 여기...벽이”

류 강연이 얼빠진 표정으로 무영을 쳐다봤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태연히 장죽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장죽을 든 손에 붕대가 아무렇게나 둘둘 말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류 강연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싶은 것을 혼신을 다해 꾹 눌러 참고 침착하게 물었다.

“전하...언짢으신 일이라도,”

말도 다 꺼내지 않았는데 물어봐 주기만을 바랐는지 무영이 대답했다.

“있어”

“무슨 일이시온데...”

“마음에 안 들어.”

무영의 목소리에 아주 미세하게, 개미 똥구멍만한 크기의 음울한 기운이 묻어있었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아, 그러니까, 그 뭐가 뭐라는 말씀이시옵니까?”

“......”

무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류 강연을 노려봤다.

“크흠...그럼, 혹시...지금 언짢기는 한데 왜 언짢은지를 모르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아니면, 뭐가 뭔지를 모르셔서 언짢으시다는 말씀이시옵니까?”

“...후자”

“음...무슨 일이 있어난 건지 소신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럼 제가 왜 언짢으신 건지 말씀드리지요.”

무영이 장죽을 물고 코웃음을 쳤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니가 안다고?”

“말씀을 먼저 해보시면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전하보다는 제가 몇 년 더 살지 않았습니까.”

“흠...”

무영은 말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혹시 저놈은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말을 꺼내보기로 했다.

“...별건 아니고...요즘, 누구를 죽여 버리고 싶어”

류 강연은 태연했다.

“정말, 전하에게는 별거 아니군요...헌데, 누구를...”

무영이 고개를 훽 돌렸다.

“있어. 그런 사람이”

설마, 나는 아니겠지...류 강연은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어 물어볼까 말까하다 맘 편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설마, 저는...”

“아니야”

후...가슴을 쓸어내린 류 강연이 한결 여유로워진 표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설마, 아직까지 못 죽이신 겁니까? 그래서 기분이 안 좋으신 거구요?

“응”

웬일이래? 왜 못 죽였지?...헉! 류 강연의 목소리가 급격히 작아졌다.

“...혹시...폐하를...”

“아니라니까”

짜증스럽게 대답한 무영의 눈빛은 쓸데없는 말 더하면 그 대상을 너로 바꿔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류 강연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지, 그럴 사람이 아니지. 황제라 할지라도 죽이고 싶었다면 진즉에 죽여 버렸을 사람이다. 괜히 짐승이겠냐고...근데, 정말 왜 못 죽였지?

“왜, 못 죽이셨습니까?”

“...죽이기 싫어서”

“네? 아니, 아까는 죽이고 싶으시다면서요.”

“맞아. 죽이고 싶어.”

“......”

류 강연은 가슴이 답답해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아! 죽이고 싶은데, 죽이기 싫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말이 되게 해줄까?”

“아뇨...음...그러니까...죽이고 싶은데 못 죽인 이유는 죽이기 싫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이게 말이 되니?

“비슷해”

이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이제야 말이 통했다고 생각하는지 무영에게서 펄펄 풍겨지던 스산한 기운이 조금씩 사라졌다.

류 강연은 후회가 됐다.

내가 왜 그런 말을 꺼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담을 해야 하는가. 앞에 있는 이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 인 것을 잊었다는 말이냐...도무지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거, 웬만큼 정상적이어야 말을 해주지. 아, 모르겠다. 대충 아무 말이나 던져주지 뭐.

“크흠, 전하께는 참 드문 일입니다만...그런 일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면 죽이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다”

“네?”

“모든 행동 다”

“그게 무슨...그렇다면, 그 사람이 하는 행동마다 모두 전하의 맘에 드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주 맘에 들지...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어지간히 맘에 들었나 보네...잠깐...그럼, 이상하잖아?

“그럼, 죽이고 싶은 생각은 어떨 때 드시는 건데요?”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

그럼, 세상 사람들 모두 죽이고 싶어야 한다는 거냐...류 강연은 이 짐승의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반으로 쪼게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자신을 보면서 해답을 기다리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니가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대충 뭐라고는 대답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태자짐승론 밖에는 생각나는 이유가 없었다. 아...피곤해. 몸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냥, 그 사람을 안 보시는 건...”

“안 돼.”

류 강연은 무영의 단호한 대답에 눈이 커졌다.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안 보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꼭 봐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아하! 어렵게 생각 할 필요 없었던 거군. 죽이고 싶은 상사를 죽일 수도 없고, 안 보고 싶어도 꼭 봐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 닮았다. 이제 내 마음을 알겠지.

“꼭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싫은 점 말고 좋은 점을 생각하셔야 겠네요. 물론, 좋은 점이 단 한 가지도, 손톱만큼도 생각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 놀라지는 마시고요, 노력이나 한번 해 볼까요? 자, 그 사람을 볼 때면 다른 좋은 생각은 안 나십니까?”

“생각나.”

“저는 10여 년 간을 찾으려 갖은 노력을 다 해봐도 아직까지 못 찾았었는데 전하께서는 빨리도 찾으셨네요.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안고 싶어.”

“네?”

“안고 뒹굴면서 잔뜩 침을 묻히고 싶어.”

“......”

“피날 때 까지 물어뜯고 싶기도 하고, 살이 벗겨질 정도로 핥고 싶기도 해.”

“......”

“그러다 깊이 박아 넣고 흔들어...”

“그만! 잘 알겠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아직 잔뜩 남아 있는데 왜 중간에 끊냐 며, 기분 나빠진 무영의 눈이 가늘어 졌다.

“......”

무영의 그 눈초리에도 류 강연은 담담했다.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군.

“여인이셨군요.”

“...응”

“그럼 종합해 보면, 그 아가씨가 하는 모든 행동은 꽤, 많이, 아주 맘에 드는 거 맞으십니까?”

“그렇다니까.”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오히려 죽이고 싶다는 겁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해서 죽이고 싶은데, 보고 있으면 죽이기 싫어, 그런 생각이 들면 다시 죽이고 싶고.”

“그래서 요즘 오락가ㄹ...심기가 불편하신거구요?”

“그래”

난 또, 뭔가 했더니...뻣뻣했던 류 강연의 자세가 여유로워 지면서 약간 건방져 졌다.

“혹시, 안 보면 보고 싶고 그러십니까?”

그 건방진 자세가 맘에 안들었는지 찬기를 풍기며 가늘어 지던 무영의 눈이 놀란 것처럼 조금 커졌다.

“응”

무영이 고개까지 끄덕이며 강하게 긍정했다.

“하루 종일 생각나면서 기분도 좋아지고요.”

“응”

“보고 있으면 만지고 싶기도 하고, 입 맞추고 싶기도 하고요. 그죠?”

“맞아. 박아 넣...”

“아무튼, 그죠?"

“...그렇긴 한데,”

“그런데, 막상 하려면 마음대로 하지는 못 하시겠고요.”

“...어떻게 알지?”

어떻게 알긴, 해봤으니까 알지. 류 강연은 결론을 내렸다.

짐승에게 발정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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