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6 짐승, 상태가 수상하다 =========================================================================
류 충은 식사 도중 자룡궁으로 들라는 어명을 받고, 미적미적 시간을 끌다가 자룡궁 소속 내관에게 잡혀 끌려갔다.
류 충이 끌려가기 전에 혼자 남겨질 내 딸은 어떻게 할 거냐며, 이 위험한 곳에 어떻게 혼자 놔두고 갈수 있냐며 내관에게 삿대질을 하고 언성을 높이자, 내관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었다.
“황궁 안이 위험하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너는 짐승 얘기도 못 들었단 말이냐?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 내 새끼를 습격할지 어떻게 알아!”
“그분은 궁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러지 마시고 빨리 가셔야 합니다.”
“잠깐! 그럼, 내가 마차까지 데려다 주고 올 테니 그때 까지 기다리시게!”
“지체하지 말고 서둘러 모셔오란 어명이 있으셨단 말씀입니다. 그렇게 걱정되시면 호위를 붙여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류 충이 더 펄쩍 뛰며 그 놈이 더 위험 할 거라는 둥, 믿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는 둥, 니가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거냐는 둥 잔뜩 욕을 퍼부으며 버티고 있었지만, 하도 안 오셔서 모시러 왔다는 두 팔을 걷어붙인 우락부락한 또 다른 내관이 찾아오자 결국에는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혼자 남은 화연만 류 충의 집무실에 멀거니 앉아 있었다.
궁에 오긴 했지만 아버지와 오라버니 때문에 그 남자에게 갈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뭐야...그럼 갈 수 있잖아?
얼굴이 다시 더워지는 것 같았다.
화연은 발그레한 얼굴로 가져온 접시와 찬합을 주섬주섬 챙기고는 나비를 꼼꼼하게 쓰고 행궁을 빠져나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저번에 봤던 그 썰렁한 궁으로 발길을 돌렸다.
도와주기로 했잖아. 조금 안쓰럽기도 하고... 괜스레 자신을 설득시키면서 무거운 찬합을 들고 궁 앞에 도착하니 오늘은 문지기도 없었다.
‘어휴...어지간히 따돌림 당하나 보네...뭐하는 사람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신경도 안 쓰지?’
찬합을 가슴에 안고 궁에 들어가니 역시나 궁 안은 썰렁했다.
온도가 크게 낮은 것 같지는 않는데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연우였을 때, 일을 마치고 혼자 들어서던 불 꺼진 휭 한 집, 거기서 느꼈던 외로움을 떠올려보니 이 사람도 참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더욱 안쓰러워 졌다.
저번에는 깜빡하고 말을 못해줬는데 오늘은 꼭 옷을 입고 있으라고 말해줘야지. 그럼 궁녀들이라도 올 수 있을 테니...
3층으로 올라가는데 저번보다 궁이 조금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치워주는 사람이 있긴 있는 건가? 왜 지금은 아무도 없지? 화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3층, 그 방의 문을 열었다.
오늘은 저번처럼 어둡지 않았다.
약한 연초향기가 풍기는 방은 매우 넓었는데 아무래도 궁의 3층 전체를 다 사용하는 것 같았다. 방 정면에는 창이 길게 이어져 있는 듯 그 위를 두꺼운 가림막이 가리고 있었다. 방안이 밝았던 이유는 창 중에 한가운데에 있는 창의 가림막이 걷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밝은 햇빛에 전보다 방안이 훨씬 잘 보였다. 전에는 경황이 없어 방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던 화연은 방안을 자세히 보고 깜짝 놀랐다.
방안에 굴러다니는 술병이 너무 많았다.
저번에 발에 차였던 술병은 우연이 아니었나 보다. 왜 치우지도 않고, 이렇게... 이 사람 알콜 중독 인가봐. 뭐가 그렇게 괴로워서......꿈에서 알콜 중독 직전까지 갔었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도자기로 된 술병이 여기저기 굴러다녀 잘못하다가 깨지면 다칠 것 같아, 화연은 찬합을 내려놓고 굴러다니는 술병을 하나하나 주워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러다 보니 이 방의 다른 특징을 발견했다. 이방에는 좁은 탁자 몇 개만 벽에 세워져 있을 뿐 가구라고는 의자도 침상도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는 발목까지 감싸는, 이름 모를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푹신한 융단이 넓게 깔려 있었고 그 위를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배연이 굴러 다녔다.
주위를 둘러본 화연은 결국 의자를 찾을 수가 없어 잠시 머뭇거리며 서 있다가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로 다가갔다.
“와-”
이곳이 지대가 높은 곳이었는지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내 궁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큰 연못과 그 주변에 듬성듬성 정자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 위를 길게 가로지르는 구름다리가 보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외궁과 시가지 까지 한눈에 보였다. 외궁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와 정확히 밭 전(田)자 모양으로 길이 나있는 시가지, 그 위에 점처럼 작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기서 보니 꼭 사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중국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세계의 일원이 아닌 멀리 붕 떠서 훔쳐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다시 마음이 불안해졌다.
제발, 이게 꿈이 아니기를...내가 만든 환상이 아니기를...설사, 환상이 맞더라도 깨지 않기를...제발, 제발...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빌고 있는데, 허리 양 옆에서 벌거벗은 남자의 팔이 쑥 들어오더니 자신이 서있는 바로 옆 창틀을 잡는 것이 아닌가.
“!!”
화연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니 남자가 뒤에 서 있었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이고 양손을 벌려 그 사이에 그녀를 가둔 채 창틀을 잡고 있었고, 때문에 깜짝 놀라 돌아선 화연의 얼굴과 그의 얼굴은 그녀의 예상보다 너무 가까이 있었다.
그의 곧게 뻗은 검미 한 올 한 올과 긴 속눈썹, 황금색의 눈동자 안에 비추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자세하게 보였다. 창과 남자 사이에 낀 화연이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 졌다.
무영은 아무 말도 없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붉어지는 얼굴을 감상했다. 그녀의 볼이 먼저 붉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얼굴 전체에 붉은 기운이 곱게 번졌다. 만지기라도 한다면 손에 단물이 묻을 것만 같았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하얀 치아가 살짝 보이고 깨물린 붉은 입술은 치아에 짓눌려 부풀어 올라 있었다. 검 푸른색 눈동자가 어디를 봐야할지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이리저리 정신없이 움직이다가 결국 내려 깐 눈꺼풀에 반쯤 감싸였고 긴 속눈썹이 내려가면서 그녀의 볼에 처마를 만들었다.
무영은 그녀의 검푸른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에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다.
“아!”
무영은 그의 눈으로 그녀의 시선을 잡아챘다.
은색별이 촘촘히 박혀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검 푸른색 눈동자는 한없이 맑아 보이기도 하고, 성숙해 보이기도 하고, 신비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같이 어둡고, 슬퍼 보이기도 했다. 무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슬퍼 보이는 거지?
그의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보고 있는데 그에게 속 까지 들여다보이고 있는 기분이 들어 화연은 당황스러웠다.
“저...아픈데요...”
“흠...”
손의 힘은 조금 빼줬지만 여전히 턱은 잡혀 있었기 때문에 화연은 다시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는 왜 만나기만 하면 턱을 잡는 거지?
“빨리 식사 하셔야죠. 저 서둘러 가봐야 해요...아니면, 이미 식사 하신 거예요?”
남자는 한동안 눈을 들여다 보다 그녀의 턱을 놔 주었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었다.
화연은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춥지도 않은 건지 오늘도 이 남자는 웃통을 벗고 있었다.
옷이라도 입고 있다면 어디라도 밀어 좀 떨어지게 할 텐데 손 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어깨라도 밀어 볼까 싶었지만 툭 드러나 있는 쇄골과 근육으로 둥글게 감싸인 어깨를 보니 어쩐지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골반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바지는 저번처럼 매듭도 다 풀려 있어 자신이 잘못 움직여 건들이기 라도 한다면 훌렁 벗겨질 것 같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좀...떨어져 주시면”
자신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창틀을 붙잡고 서있는 그대로 그녀를 샅샅이 관찰하다 짧게 물었다.
“왜”
“...식사 안하실 거예요?”
“할거야”
“그럼, 비켜주셔야지...”
“싫어”
그가 싫다고 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화연이 놀라 되 물었다.
“네?”
“싫다고”
“어...왜요?”
“그냥”
“......”
화연은 느낌이 왔다. 아...이거, 그거구나...미운 6살.
이 남자는 생긴 건 안 그렇게 생겼는데 참 아이 같은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란건가...? 그럼, 아이한데 하듯 부드럽게 달래줘야겠지.
화연은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단박에 뒷목 잡고 쓰러질 오해를 하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여기에는 그걸 바로 고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화연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의 움직임을 따라 무영의 눈동자가 같이 움직였다. 화연은 천천히 들어 올린 손을 무영의 머리위에 살며시 얹었다. 남자의 눈동자가 위로 향했다가 천천히 내려와 그녀를 주시했다.
화연은 남자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 듯 머리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있다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무렇게나 갈기처럼 자라있어 거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의 머리카락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남자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가 천천히 가늘어 졌다. 거의 감은 듯 살짝 벌어진 그의 눈동자 안에 은실이 마구 엉켜 빛났다.
그 표정에 화연은 남자가 이것을 꽤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의 접촉이 부족했었나 보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화연이 쉽게 쓰다듬을 수 있도록 고개까지 더욱 숙여 머리를 화연에게 들이민 채 목안을 그르렁 거리는 것이 무슨 고양잇과 짐승 같기도 했다. 화연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말했다.
“찬합 좀 가져와 열어 줄래요?”
화연의 부탁에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그거 도와주면 나중에 또 해줄게요.”
남자의 가늘어진 눈은 미동도 없었다. 화연은 그를 달래듯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오늘 많이 걸었더니 다리가 좀 아파요. 찬합도 무겁고요.”
“흠...”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움직여 찬합을 가져오더니 반찬통까지 직접 열어 바닥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기분이 좋아도 나빠도 눈이 가늘어 지는구나...차이라면 눈동자에 은빛이 섞이면서 빛나면 좋은 것이고, 안 섞이면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면 나쁜 것이다. 너무 알기 쉬운 거 아냐? 정말 반응이 너무 단순하잖아...
화연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웃으면서 옆에 앉아 같이 찬을 꺼냈다.
무영은 다리를 쭉 뻗은 자세로 배연에 비스듬히 기대어 그녀가 입 앞으로 가져다주는 밥을 오만한 표정으로 받아먹었다.
그는 입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천천히 씹으면서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를 감싸고도는 재상이나 오라비들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아팠던 그녀는 분명히 제 손으로는 젓가락질 한번을 안 해봤을 것 같은데... 다소곳하게 앉아서 자신의 먹는 속도에 맞춰 부지런하게 반찬 위를 오고가는 젓가락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며 차분했다. 젓가락을 들고 있는 손의 모양까지도 완벽했다.
게다가...그녀의 나이는 이제 분명히 18세 라고 했는데 전혀 그 나이 같지가 않았다. 겉모습은 오히려 제 나이보다 어려 보였는데 그녀의 눈빛이나 행동, 분위기가 18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무영의 고개가 비스듬해졌다.
이상하군...눈동자와 머리카락의 색깔은 분명히 류 가(家)의 혈통이 맞는데...
무영이 그녀를 주시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데 눈치를 보던 화연이 나물을 들어 슬쩍 그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고기”
“야채를 안 먹으면 나중에 혈관이 막힐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지금은 아니라도 몸 안에 독소가 쌓일 거예요.”
“고기”
“...저 여기 매일 오면 나물반찬 드시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무영이 붉은 입술을 비스듬히 들어올렸다.
“매일 올 수 있다고? 하루도 빠지는 일 절대 없이?”
“...아뇨...”
“고기”
한숨을 쉰 화연은 결국 들고 있던 나물을 내리고 산적을 집어 들었다.
“위에 거 빼”
“......”
산적위에 예쁘게 놓여 있는 고명을 젓가락으로 떨어뜨리고 입에 다시 가져다 대니 그제야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 많이 혼났죠. 편식한다고”
“누가, 나를?”
피식 웃으며 그 누구도 나를 혼낼 수 없다는 표정의 그의 얼굴은 때려주고 싶게 얄미웠다.
“한 번도 혼난 적이 없어요? 정말로요? 어머니에게도?"
“당연하지”
“이렇게 밥을 먹었는데도 아무 말씀 안하셨단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아니, 어떻게...”
“어마...어머니와 식사를 같이한 적도 없고, 있더라도 그럴리가 없지.”
“...왜, 어머니와...”
“출산 후 바로 승하...돌아가셨어”
“...죄송해요...”
“별로”
남자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실제로 무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있는 사실만을 그대로 말했을 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그녀의 미안해하는 표정을 보니 어떤 동요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무영은 고개를 다시 기울였다.
어제부터 자신이 좀 이상했다.
화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기쁜 것도 아니다. 마음이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긴 한데 왜 이상한 건지를 모르겠다. 처음 느껴 보는 거라서 이 감정의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가슴이 조금 쯤 울렁거리고, 쿵 떨어지면서 약간 지끈 거리는 것도 같은데...
멀미인가? 왜 갑자기 멀미를 하지?
아니면...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두려움 같은 건가? 음...그건 아닌 것 같은데...태어나서 한 번도 무언가를 무서워 한 적이 없어 이게 그거인지도 잘 모르겠다.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 나쁜 일이다. 이제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 여자와 있으면 자꾸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생긴다.
오늘, 이 여자를 자세하게 관찰해 보면 자신이 왜 그러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아침부터 이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음...생각해 보니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좀 좋았던 것도 같고... 류 강연도 나한테 기분이 좋으냐고 물어봤었지. 그럼 이 여자 때문은 아닌가?
아닌데...자신의 본능은 분명히 저 여자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더불어 이 여자가 나에게 큰 위협이 될 거라며 경고를 보냈다.
무영은 화연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작고 가는 손이다. 자신이 잡고 약간의 힘만 줘도 통 채로 으스러뜨릴 수 있을 것이 분명한 저 손으로는 나한테 작은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것이다.
저 손으로 칼을 집는다고? 과도도 못 쥘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니, 미래에도 전혀 위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아니야. 겉으로 봐서는 모르지.
방금전만해도 손끝만 닿아도 칼부터 뽑고 보는 내가 그녀에게는 안 그랬잖아. 혹시 독이라도 먹였나?... 그것도 아니다. 자신에게는 독이 잘 통하지 않는다.
무영은 그녀의 손을 자세히 관찰했다.
투명하게 빛나는 하얀 손과, 가는 손가락, 그 끝에 달려있는 작은 손톱은 꽃물을 들인 건지 끝이 다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을 보고 있는데 어째, 밥을 먹고 있는데도 허기가 지는 것이 아까보다 마음이 더 울렁거리는 것도 같고...
안고 싶은 건가?
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자를 안고 싶었다. 이 와중에 이것만은 확실했다.
문제는, 손을 선뜻 뻗을 수가 없었다. 왜?
이러면 다시 원점이잖아...
자신의 상태가 마음에 안 드는 무영의 눈이 점점 차가워졌다.
차라리 지금 없애버릴까?
“흠...”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야수 바로 앞에서, 두려움 하나 없이 저 혼자 꼬물대면서 노는 초식 동물처럼 그녀는 자신의 목숨이 간당 간당하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장조림을 들어 무영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이건 안 드세요? 이것도 고기인데?”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그 모습이 참 볼만한 게 앞에 앉혀놓고 혼자만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지금 없애버리면 이 모습은 더는 못 보는 건데...
“음...”
무영의 고민스럽다는 의미의 작은 신음소리에 화영이 다른 반찬을 고르려다 그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검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저 눈을 다시는 못 본다고 생각하니 영문을 알 수 없는 자신의 상태보다 그것이 더 맘에 들지 않았다.
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모습을 보기위해 의전에서 아바마마에게 청까지 드린 것이 아닌가. 나중에 거슬리면 그때 없애버려도 된다.
지금은 그녀의 행동이 거슬리는 게 아니라 그녀로 인한 자신의 상태가 거슬리는 거니까...아직 안지도 못했고...그럼, 좀 참아볼까...
무영은 고민을 마치고 입을 열어 짧게 말했다.
“고기”
화연은 그가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해서,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전혀, 눈치 채지도 못하고 나라 제일의 편식쟁이라고 작게 투덜대며 쇠고기무침을 젓가락으로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