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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15화 (15/110)

00015  짐승, 꽃을 발견하다  =========================================================================

내궁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던 류 강연은 가문의 인장이 찍혀있는 마차가 보이자 한걸음에 달려갔다.

“연아 고생했어. 춥지는 않았고?”

“오라버니, 집에서 얼마 걸리지도 않는 거리인데요. 왜 여기까지 나와 계세요. 제가 가면 되는데”

마차 뒤로 가서 찬합을 꺼내 들던 류 강연이 엄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궁 안에 짐승이 살아서 혼자 다니면 위험해”

“네? 궁 안에 짐승이 살아요? 어머! 누가 키우던 동물이에요?”

류 강연은 그 짐승이 진짜 짐승이라고 생각하는 화연이 귀여워, 얼굴이 헤벌쭉 해졌다.

“어이구, 귀엽긴...누가 키우던 건 아니고, 암튼, 여간 사나운 게 아니니까 혼자 다니지 마. 그러다 맞닥뜨리면 큰일 난다.”

“알았어요, 오라버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도 대꾸도 없이 웃으면서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화연이 너무 예뻐 하마터면 여기가 어딘지도 잊어버리고 끌어안고 빙빙 돌 뻔 했다.

“연아, 이쪽이야.”

“네”

류 강연은 화연과 함께 예전에 화연이 왔을 때 봤던, 청기와 전각과는 전혀 다른 쪽, 자룡궁 가까이에 있는 3층의 화려한 궁으로 데려갔다. 그때는 행궁이라서 화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완전 잘못 생각한 모양이다.

“행궁인데 굉장히 화려하네요. 저는 무슨 황후의 궁이나 그런 곳 인줄 알았어요.”

“타국에서 사절단이 오면 가장먼저 보는 게 행궁이야. 나라의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중추역할을 하는 곳인데 그런 곳은 대부분 굉장히 화려해.”

“아, 그렇구나...몰랐어요. 아버지, 굉장히 좋은 곳에서 일하시네요.”

“아니! 겉모습에 속으면 안 돼. 저 속은 지옥이야. 아니, 지옥보다 더 심하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명씩이나 과로로 쓰러져 실려 나가는 곳이야. 화려한 겉모습에 속으면 큰일 난다. 혼자서는 들어갈 생각도 하지 말어.”

“네...”

“사람도 마찬가지지. 오라비가 아는 누구도 겉모습은 그렇게 말짱할 수가 없어요. 근데, 하는 짓마다 상식도 없고, 이유도 없고, 윤리 없는, 딱 본능만 남은 짐승 같은 짓만 해대는데...어휴...이걸 어떻게 사람 만드나- 싶은 것이 오라비가 걱정이 태산 같다”

아~ 사람얘기였구나. 그런 사람과 같이 일을 해야 하다니...화연은 연우로 있을 때 자신이 다니는 화계사무소를 가끔 이용하던 술집 사장이 생각났다.

정말 경우 없는 짓을 많이 해서 참다 못 한 회계사님이 당신 일 안 받을 테니까 이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고함지르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 얌전하신 분이 그렇게 고함지를 정도면 그 사장님은 정말 진상이었던 거다.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사장 바꿔’ 라고 말씀하시던 분이였기 때문에 통화도 길게 해본적도 없어 사실 그렇게 진상인지도 몰랐는데...화연은 류 강연이 걱정이 됐다.

무영을 떠올리고는 수심 가득했던 류 강연은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동생의 시선을 느끼고 표정을 갈무리 했다. 애 앞에서 이러면 안 돼지. 저 걱정스러운 표정 좀 봐...

아...깨물어 주고 싶다.

류 강연은 화연의 볼을 아주 살짝 꼬집어, 아주 살살 흔들었다.

“으이구...오라비 괜찮으니까 표정 풀어. 아버지 보시면 오라비 혼난다.”

“훗...네, 알겠어요.”

그들이 행궁 3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이제나 저제나 화연이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면 류 충이 주선(환국의 양말)발로 달려 나왔다.

“연아! 아구, 내 딸. 어서 이리와 여기 화로 앞에 앉아. 추웠지? 내 새끼. 찬합이 너무 무겁지는 않던?”

“아버지, 저도 왔습니다.”

“어, 그래? 너도 거기 아무데나 앉던가...아이고, 내 새끼, 애비 보러 온다고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구나. 이 칙칙하고 삭막하고 거지같던 곳이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것이 애비 눈이 멀겠어요. 그냥.”

화연은 부끄러워하면서 찬합 밑을 열어 식기를 꺼내들었다.

“아버지도 참...찬합은 오라버니가 들어주시잖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시장하시죠? 식사하세요. 오라버니 같이 들어요.”

“오, 그래그래, 우리 연이가 싸온 음식 맛 좀 볼까? 애비가 입궁 하면서부터 이시간만을 기다렸지 뭐냐. 일도 손에 안 잡혀서 아침나절 내내 일도 못했어. 하하하하하”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많이 드세요. 다음엔 제가 한번 만들어 올 게요”

“아녀, 아녀. 그런 힘든 일은 하는 거 아니다. 그냥 주는 거 그대로 가져오기만 하면 애비는 그거로도 족하다. 무거우니까 네 오라비 보고 들라고 하고 너는 맨손으로 가볍게 오거라. 행여 애비 준다고 괜히 칼 쓰고 그런 건 하지도 말고. 그러다 다치면 큰일 난다. 알았지?”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버지, 여기 젓가락이요.”

“음, 그래 같이 들자구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 많이 먹으련?......넌 뭐하냐? 왜 일어서?”

류 강연이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서는걸 보고 류 충은 그제야 아는 척을 했다.

“아침에 군총부 쪽으로 행궁 소속관료 차출해서 보내주셨죠?”

“그랬지......왜! 설마 모자르다던? 흥! 더 이상은 못줘! 오늘 아침에만 벌써 두 명 과로로 혼절해 실려 나갔다! 더 달라고 하는 거라면 그 수 만큼 그냥 나를 찢어서 나눠가지던지 말던지 맘대로 하라고 전하거라!”

“그게 아니고요, 그거 때문에 당분간 저도 오후에는 군총부로 가봐야 해서요.”

“넌 또 왜?”

“왜 긴 왜에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처리 할 건지 논의를 해서 세부사항을 정해야 하는데, 말 꺼낸 사람이 말만 꺼내놓고 요지부동 이라 서요.”

“아니! 그놈은 정말 왜 그런다든? 뭐 대단 한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할 거면 말은 왜 꺼낸 거야? 여러 사람 피곤하게 스리... 정말 나한테 악 감정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저도 물어 봤는데요, 아니 라던데요? 그리고 그럴 사람도 아니잖아요.”

“너, 왜 어제부터 걔 편들어? 상관이라고 편들어 주는 게냐?”

“후- 아버지, 태자가 악감정 생겼다고 뒤로 손쓰는 그런 유형의 사람입니까? 생기자마자 뒷생각 없이 바로 목을 칠 그런 사람입니까? 후자 입니까, 전자 입니까.”

“...후자지...아! 그럼 왜 그런다는 게야! 나한테 악감정도 없다면서!”

“군인복지를 위해서라던데요.”

“뭐? 군인복수?”

“아뇨. 복지요”

“복지?”

“네...”

“...그 놈, 뭐 잘 못 먹었냐? 어디서 독이라도 주워 먹은 거 아냐?”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저번에 보니까 웬만한 독에는 끄덕도 안하더라고요.”

놀란 류 충이 아무도 없는 주변을 살피더니 작게 속삭였다.

“헉! 니가 먹여봤어? 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 태잔데...독살은 좀 그렇지 않니?”

“아버지...제가 먹였겠습니까? 그랬으면 저는 여기 없었겠죠. 이미 예전에 그 전장에서 해골이 되어 구르고 있었을 겁니다. 그것도 아주 잘게 잘려서요...륜국과 전쟁 때 독을 바른 무기에 몇 번 당했었는데 끄떡없더라고요. 자가 치유력은 얼마나 좋은지 칼에 벤 정도로는 다음날이면 거의 아물어 나중에는 흔적도 없습니다. 내장 정도는 흘러나와줘야지 부상 좀 입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것도 며칠이면 괜찮아 지구요. 야생의 치유력이죠.”

“허...짐승 같은 놈...응? 가만... 혹시, 궁에 떠도는 소문의 짐승이 그 짐승이냐?”

“네, 맞습니다.”

“요즘 궁 안에서 무슨 야생짐승이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습격한다고 여기저기서 수근 데는 것이,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했더니...으이구...”

“아무튼, 제가 오후에는 군총부로 가야하니, 연이 돌아 갈 때는 아버지께서 마차 앞까지 데려다 주세요.”

“그니까 거길 니가 왜 가냐고! 배정된 내관이 있는데!”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뭘, 또”

“첫날, 죽었습니다. 3명 다 모조리.”

“뭐? 왜!”

“한명은 손끝이 몸에 스쳤다고요”

“...그럼 나머지 두 명은?”

“그걸 보고만 있었다고요.”

“......”

“그 뒤로 아무도 안 옵니다. 버틸 수 있을 때 까지 버텨보겠지요. 태자야 꼭 배정내관이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직 선위(禪位, 왕위를 물려주는 일)가 언제일지 확정된 것도 아니고요”

“어휴...머리야...알았다. 가 보거라”

“연아, 오라비는 가 볼 테니까 식사 후 바로 돌아가거라. 오라비가 아까 말했지? 위험한 짐승 있다고?”

그 짐승이라는 게 누구를 말하는 건지 확실하게 깨달은 화연은 살 풋 웃으며 류 강연을 안심시켰다.

“네, 오라버니. 걱정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그런데, 식사도 못하셔서 어떻게 해요? 이거 좀 싸드릴까요?”

“아냐. 가서 먹으면 되니까 걱정 말고. 아버지 부탁드립니다.”

“오냐...”

챙겨온 종이를 꺼내 그 작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접더니 그 위에 반찬을 덜어 예쁘게 담는 화연의 모습을 보는 류 충의 얼굴이 어두워 졌다.

망나니 태자도 모자라 이젠 짐승태자가 되어버렸구나...전에는 그래도 사람이긴 했었는데...애국심도 별로 없던 류 충까지도 이제 나라가 걱정 될 지경이었다.

내 딸하고 여기서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데...그 놈이 왕위에 오르면 다른 나라로 망명이라도 갈까?... 류 충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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