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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문 짐승-14화 (14/110)

00014  짐승, 꽃을 발견하다  =========================================================================

“그리고, 나 류 재상 좋아졌어. 이제 친하게 지내려고”

그렇게 말한 뒤 슬쩍 웃는 무영을 보는데, 그 웃음이 어찌나 요사스럽고 스산한지 버럭 외치고 싶어졌다. 그럴 거면 좋아하지 마!

“......네”

아버지에게 미리 경고를 해둬야겠군.

“뭐, 그건 그렇고...저, 점심때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

“지금부터 나가서 영원히 안 들어와도 돼”

“...아직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전하. 제가 전하의 경호대장입니다.”

“그래서”

“...후...아닙니다. 아무튼 점심때 동생이 궁에 온다고 해서요. 잠깐 자리를 비웠다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한참동안 태자에게서 아무 말이 없어, 엎드려 일지를 쓰려니 허리도 아프고, 보낼 것도 있고 해서 침소를 빠져나가려는데 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니 동생 풀 뽑으러 산에 갔다며”

“...후...전하...셋째는 풀이 아니고 약초! 를, 뽑는 게 아니고 캐러! 갔습니다. 그리고 오는 건 셋째가 아니고 막내 동생입니다.”

“...흠...그 12년 만에 깨어났다는?”

“네! 그 동생 맞습니다. 근데 웬일로 제가 말씀드린 걸 기억하고 계십니까?”

“귀에 인이 박혀서.”

“흠, 흠...제가 그렇게 많이 말씀드렸었나요?”

“음...그럼 이제 처녀가 다 됐겠군.”

류 강연은 꽃 같은 제 동생 얘기가 나오니 신이 나서 입궁 후 가장 환하게 웃는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요~ 벌써 18살인걸요. 하여튼, 연이가 깨어나고 저희 현은 잔치 분위기입니다.”

“진짜 잔치도 한다며”

“네, 그럼요. 이런 경사를 그냥 넘어갈 수 있나요.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잔치음식 준비하느라 이 추운 날 땀으로 목욕을 할 지경이었죠.”

“그래서 땀내가 났군.”

“...아침에 목간하고 나왔는데...냄새가 나십니까?”

“목욕 안 한줄 알았는데”

“......”

짐승 같은 게 후각마저도 짐승 같았다.

“크흠...아무튼 우리 연이가 파루안 떡을 참 좋아해서 저희가 잔치 날 꼭 만드는 음식중 하나인데요. 아시다시피 그 나무가 자르기가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침에 그거 손질 하느라 땀이 좀 났습니다.”

“별로”

“뭐가 말입니까? 전하? 파루안 떡 별로 안 좋아하십니까?”

“그것도 그렇긴 해”

“그럼요?”

“잘 잘라지던데?”

“뭐가요?...설마, 파루안 나무 말입니까?”

“응”

“하하하하하하하. 전하도 참...그 나무를 보신적은 있으십니까? 떡으로 만든 것만 봤지 나무는 보지도 않으시고선...”

배연에 기대어있던 무영은 류 강연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뒤 장죽을 깊이 빨아들여 연기를 삼킨 뒤 천천히 내뱉었다.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응”

“만져보신 적도 있으시다고요?”

“응”

“그럼...잘라보신...적도?”

“응”

“왜요?”

“이거 만드느라”

그러면서 들고 있던 장죽을 내밀었다.

무영이 건네는 장죽을 받아들고 살펴보았다. 나무 위를 은으로 칠 한 줄로만 알았는데 정말 파루안 나무였다.

“헉!”

이정도의 두께라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파루안 나무였다.

파루안 나무는 어리면 어릴수록 은을 직접 녹인 것처럼 번쩍번쩍 광이 나면서 윤기가 흐르고 속살은 야들야들 하면서 더 맛있었다. 하지만 너무 단단해 다 자란 파루안 나무보다 훨씬 자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팔기만 하면 쉽게 거금을 손이 쥘 수 있는데도 팔기가 너무 힘든 나무였다. 사간 사람이 손질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걸 발견해서 이렇게 잘라 모양을 만들었다고? 직접?

“어디서 자르셨는데요?”

“외궁 숲”

“언제요?”

“전쟁터 나가기 전”

그럼 5년 전이란 말인데 그럼 태자가 18살 이었을 때...

“...그러시군요.”

자신은 18살 때 뭐했더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다 자란 파루안 나무를 단칼에 자를 수 있었던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아까부터 조금씩 아프던 머리가 더 아파오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럼 이따가 점심때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흠...그러던지”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어 무영을 쳐다보니 무영은 이미 배연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더 물어보고 싶었으나 아까부터 지워지지 않고 떠있는 저 요사스러운 미소가 류 강연을 머뭇거리게 했다.

거 참, 오늘 따라 이상하단 말이지...고개를 갸웃거리던 류 강연은 번뜩 머리를 스치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태자가 기분 좋을 때 청룡궁 단장이라도 좀 해놓자, 침소만 안 건드리면 잠깐 동안은 괜찮겠지.’

자신의 머리가 참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태자의 침소의 문을 조용히 닫고 공조서로 보낼 연통을 작성했다.

-짐승이 잠들었습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니 놓치지 마시고 빨리 궁녀와 내관을 보내 조용히 우리를 단장하시기 바랍니다. 3층 짐승의 핵심 영역은 건드릴 생각도 마시고 쥐 죽은 듯이 단장만 하시다가, 조금이라도 짐승이 깨어나는 기색이 보인다면 지체하지 말고 바로 우리를 탈출해 나가시면 되겠습니다. 경계를 늦추고 미적거리다가 벌어질 참사에 대해 저희 경호대에서는 일절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경호대장 류 강연

경호 대원을 시켜 공조서로 연통을 보내자 바로 답변을 들고 왔다.

-귀하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저번의 참사로 인하여 투입인원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리며, 짐승이 잠든 것이 확실하다면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안전을 위하여 다시 한 번 철저히 확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혹시, 필요하실지 몰라 마취제를 같이 동봉하오니 사용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공조서장 감 호열

“아기씨, 이건 찬합이고요. 이건 어르신 입으실 속곳 이예요. 마차 뒤에 넣어둘게요. ...근데 무슨 찬합을 4인분이나 싸달라고 하셨어요? 설마...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실 거는 아니시죠?”

마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화연은 찔리는 것이 있어 기해의 얼굴은 쳐다보지 못하고 치마만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강이 오라버니도 같이 드실지 모르잖아...”

“아...그렇지. 근데 아기씨 치마에 뭐 묻으셨어요? 아까부터 계속 치마만 만지작거리세요. 어휴...이거, 주름졌네.”

“어...주름 펴려고...”

“이거 손으로 해서는 안 펴져요. 어쩔 수 없지 오늘은 그냥 가셔요. 근데 왜 여기에 주름이 졌담? 이것만 아니면 완벽한데...속 상하게스리...”

기해는 화연의 치마 위 주름진 부분을 양손으로 잡아 쫙쫙 피다가 손으로 탁 쓸어내리고는 화연의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새하얀 치마 단 끝을 진하게 물들인 검붉은 색은 위쪽으로 가면서 점점 흐려졌다. 마치 치마 끝을 붉은 꽃물에 담갔다 뺀 것 같았다.

허리에는 한 뼘 정도 두께의 하얀 허리띠를 매고 있었고 가운데에 가문의 인장이 붉은색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검푸른 머리카락을 땋아 진주가 밖혀있는 머리끈으로 곱게 묵고 붉은 여우털로 만든 비견까지 어깨에 두룬 화연은 전설에나 나오는 신화 속 여신 같았다.

기해는 화연을 이렇게 차려 입힌 자신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동생이기만 했어도 저 볼을 꽉 깨물어 줄 수 있을 텐데.

“아유, 진짜! 누구 아기씨 인데 이렇게 예쁠까..아기씨, 궁에 가서도 나비는 절대로 벗지 말고 둘째도련님 옆에 딱 붙어계시다가 식사 끝나시면 바로 돌아오세요. 누가 먹을 거준다고 해도 절대 따라가시면 안돼요. 아셨죠?”

“기해도 참...내가 어린애야? 걱정 말라니까. 이제 한번만 더 말하면 한 스무 번 채울 거 같은데?”

“네, 알겠어요. 아기씨. 제 말 꼭 명심하시고요. 둘째 도련님 옆에 꼭 붙어계셔요. 아셨지요?”

“응. 알았어. 다녀올게”

화연은 기해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마차에 올랐다.

오늘 아버지에게 가면 그 청색기와의 전각이 무슨 궁인지 물어봐야지...

잠깐...그곳을 어떻게 아냐고 물어 보시는 거 아냐?...그럼, 거기 가본 일에다 그 남자를 만난 일까지 다 말할 수밖에 없을 텐데...어휴, 난리가 나겠지.

“물어보지 말아야겠다...어차피 못 갈 것 같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음식이야 싸가지 만 아버지에다 둘째오라버니까지 옆에 계속 있으면 아무래도 그 남자에게는 못갈 것 같았다.

“아쉽다......응?”

저도 모르게 아쉽다는 말을 꺼낸 화연은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입을 막았다. 내가 왜 아쉽지? 딱 한번 본 그 사람을 다시 못 본다고 왜 아쉬워하는 거야? 어머...나, 왜이래...미쳤나봐. 아우~ 더워.

얼굴이 붉어지면서 마차 안이 더워지는 것 같았다.

기해가 따뜻하게 가라고 탕파를 넣어줬는데 이것 때문에 그런가 싶어 마차 구석에 밀어 넣었는데도 여전히 후끈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왠지 창피한 느낌이 들어 나비를 들어 올리고 손으로 마구 부채질을 해 얼굴을 식혔다. 발그레 해진 얼굴을 한 화연을 태운 마차는 어느새 내궁 앞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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