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8 외전4. 눈따따 연애조작단 =========================================================================
나타나세요 용사여! 눈따따를 짤짤 흔들며 말을 걸었다. 내 하는 양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넘나레드와 카르댄밸은 이내 새파랗게 질려선 쏜살같이 도망쳤다. 마나의 유동을 느낀 모양이었다. 곧이어 공간을 찢고 아윈이 등장했다.
“ 불렀어?”
“ 아윈!”
잘 왔다는 듯 내가 아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눈따따는 목소리까지 전달해주는 유용한 CCTV였다. 본래는 감시용이었을 테지만 최근엔 내가 핸드폰처럼 쓰고 있었다. 남편의 출연에 신이 난 나는 조금 전보다 밝아진 목소리로 얘기했다.
“ 나 좀 도와줘!”
“ 그래.”
내용은 묻지도 않고 아윈이 고개부터 끄덕였다. 아윈의 무조건적인 수락에 힘을 얻은 난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에슐라는 열여섯 살이었고, 이미 열두 살 때부터 ‘연하가 좋다’는 선언을 함으로서 주변을 놀하게 한 전적이 있었다. 첫 남자친구를 사귄 것은 열네 살 여름, 한 살 연하로 삼 개월을 만나고 헤어졌다. 코찔찔이였지만 나름 귀여운 추억이었다고 에슐라는 가끔 회상했다.
에슐라의 취향은 한결같았다. 연하는 남자, 동갑은 친구, 연상은 아저씨. 늘 이 울타리로 사람을 대했다. 그러나 평생 굳건할 것만 같았던 그 공식이 무너진 것은 얼마 전이었다.
‘ 앗!’
짐을 옮기다가 그만 발을 삐끗하고 만 오후였다. 하필이면 근처에 계단이 있은 탓에, 쏟아진 물건 중 팬던트 하나가 층계를 타고 한참 아래로 떨어졌다. 에슐라는 그걸 확인하자마자 넘어진 아픔도 잊고 하얗게 질렸다. 자기 것이 아니었다. 부탁을 받아 함께 운반 중이었던 남의 물건이었다.
‘ 괜찮아?’
‘ 마, 마법사님.’
‘ 왜 그래?’
‘ 팬던트가…….’
마침 지나가던 비숏이 떨어진 것을 마법으로 끌어올려주었으나, 에슐라의 우려대로 팬던트는 엉망으로 상해있었다. 고작 일층높이의 계단이 아니었던 탓이다. 깨진 구슬을 바라보며 에슐라가 사색이 되어 안절부절 못했다. 라테는 결코 악독한 고용주가 아니었지만, 그 전에 있던 곳에서 험한 일을 겪었다. 아끼는 장신구를 상하게 했다고 손목이 잘릴 뻔한 일이 있었다.
물론 팬던트의 주인이 그때처럼 매질을 하고 손을 자르라 명령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래도 각인된 공포라는 것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물건도 비슷했다. 과거엔 목걸이였다.
‘ 망가졌네. 누구 건데?’
‘ 카르댄밸님…….’
‘ 그래? 그럼 내가 이랬다고 하자.’
‘ 네?’
‘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괴롭힘 당하는 거 진짜 억울했거든. 뭐라도 저질렀으면 화나 덜 나지. 그러니까 이건 내가 한 거다?’
그러더니 비숏은 팬던트를 들고 촐랑촐랑 사라졌다. 에슐라는 멍하니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비숏이 카르댄밸과 넘나레드에게 열심히 쫓기고 있었다.
‘ 마법사님…….’
에슐라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께가 간질간질하고, 묘하게 속이 울렁이는 감각이 차올랐다. 이때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에슐라가 비숏을 다시 만난 것은 다음날이었다.
‘ 어! 에슐라!’
복도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비숏은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어쩐지 수줍어서 고개를 숙이는 에슐라에게로, 비숏은 함박웃음을 짓고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는 마침 자랑할 것이 있었다.
‘ 오랜만에 낀 건데, 이거 봐봐.’
에슐라는 눈을 들었다. 가까이 선 비숏이 웬 외알 안경을 쓴 채로 얼굴을 디밀고 있었다. 금줄이 달려있는 것이 비싼 안경인 듯했다.
‘ 어때? 지적으로 보이지?’
비숏이 당연히 그리 비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기색으로 말했다. 에슐라는 평가를 위해 물끄러미 비숏의 얼굴을 살폈다. 솔직히, 객관적인 감상으로는 빙구 같았다.
‘ 엄청……잘 어울려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이미 에슐라의 눈에는 문제가 생긴 상태였다.
‘ 역시 그렇지? 후후! 지적인 나!’
에슐라의 말을 철썩 같이 믿은 비숏이 콧대를 높였다. 심지어 한술 더 떠 그는 지팡이까지 꺼내 휘둘렀다.
‘ 이걸 쓴 채로 마법을 사용하면 더 멋있다? 짠!’
지팡이의 끝에서 알록달록한 색깔의 구체들이 방울방울 나타나 흩어졌다. 진심으로 멋있을 거라 여기는 듯 뿌듯한 표정이었다. 멋있기는커녕 일반적인 눈으로 보기엔 좀 등신 같았다.
‘ 우와! 정말 멋있어요.’
허나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 에슐라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덕분에 비숏은 한층 더 으쓱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똑같은 짓을 넘나레드와 카르댄밸의 앞에서 했다가 처맞게 된다.
아무튼 그렇게 에슐라는 비숏을 좋아하게 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깨어있으면 자꾸만 생각이 나고, 잠이 들면 꿈에 나온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을 땐 차마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어 붉어진 얼굴로 고개만 숙였으니, 누가 보아도 사랑의 허리케인에 푹 빠진 소녀의 행태였다.
이는 남들 앞에서도 여실히 티가 나 주위사람들이 전부 알게 되기까지도 금방이었다.
‘ 하필 그 놈을! 쯧쯔쯔!’
에슐라의 짝사랑을 눈치 챈 대부분은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는데, 이는 비숏이 상종 못할 인간말종이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멱살을 잡은 채로 면전에 대고 ‘내꺼 하! 자! 내가 널 사랑해! 어?’하고 외치지 않는 이상 죽어도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비숏의 둔감함이 이미 만천하게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비숏을 마음에 두었던 한 사용인-주방에서 일하던 여성이었다-이 몇 주간의 직, 간접적인 추파 끝에 종내 속이 터져 양파를 던지고 사라진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였다. 당시 비숏은 양파에 적중당해 시퍼레진 눈탱이를 며칠 내내 유지해야만 했다-치유마법을 쓰는 것을 선배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실정이었으니 대다수가 에슐라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항간에서는 ‘비숏의 둔함에 마음고생을 하던 에슐라가 결국 앓아누움 -> 사정을 알게 된 안주인님이 분노 -> 탑주님의 출동 -> 비숏의 사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개가 언제쯤 시작될 것인지에 대해 내기를 벌이기도 했다. 비숏은 선배들이 제 제삿날에 돈을 걸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어쨌든 이리저리하여 탑 내 관심의 소용돌이에 서게 된 십 육세 소녀. 에슐라는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가을바람에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 아저씨일 뿐이었는데…….”
창밖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에슐라가 중얼거렸다. 취향을 깨부수고 찾아온 사랑은 결코 평탄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마음을 깨달은 지 얼마 안 되어 마냥 즐거울 뿐이었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험난한 고생이 시작되리라는 걸 에슐라 또한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 내 사랑의 행방은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예전에 읽었던 로맨스소설의 대사를 최근 들어 촉촉해진 감수성으로 읊은 뒤, 에슐라는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사랑은 사랑이고 지금은 일을 해야 했다.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유능한 시녀 에슐라가 막 몇 발자국을 옮겼을 때였다.
“ 안녕, 귀여운 소녀?”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가 쏜살같이 나타나 에슐라의 앞을 가로막았다. 덕분에 발을 멈춘 에슐라가 그 자리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면을 쓴 낯선 인물은 어쩐지 장미 한 송이를 물려줘야만 할 것 같은 느끼한 자세로 벽에 반쯤 기대고는, 이쪽을 향해 찡긋 윙크를 날렸다.
“ 고민이 있어 보이는데?”
“ 아가씨, 뭐하세요?”
“ 앗.”
정체는 빠르게 밝혀졌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있었지만 드러난 나머지에서 느껴지는 개성이 워낙 강렬한 탓에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라테가 가면을 벗었다.
“ 어떻게 알았어?”
“ 모르는 편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 눈썰미가 남다르구나.”
“ …….”
어떻게 생각해도 몰라보는 쪽이 문제가 있는 것 같았지만, 에슐라는 본심을 피력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꺼냈다.
“ 절 찾아오신 거예요?”
“ 에슐라. 어제까지의 난 너의 아가씨였을지 몰라도, 오늘의 나는 그렇지 않단다.”
“ 네?”
“ 눈따따 연애조작단의 핵심멤버, 괴도 러브라고 불러주겠니?”
벽에 비스듬히 기댄 자세를 유지한 채 라테가 당당한 헛소리를 뱉었다. 뜬금없는 신분전환이었다. 에슐라는 주인의 뜻 모를 주장에도 놀라지 않고 그저 그러려니 했다. 새삼스럽게 당황하기엔 그간 모시면서 쌓아온 내공이 아까웠다.
“ 네, 괴도 러브님.”
“ 우리 조작단의 두목 괴도 눈따따를 소개하는 시간은 다음에 갖도록 할게. 아무튼 에슐라, 내가 널 찾은 이유는 말이야.”
말을 하며 라테가 품을 뒤적거렸다. 곧이어 웬 동그란 주머니를 하나 꺼낸다. 라테는 그것을 다짜고짜 에슐라의 손에 쥐어주었다.
“ 받아. 네 사랑의 성사를 도와줄 거야.”
“ ……네?”
“ 비숏이 지금쯤 이걸 애타게 원하고 있을 거거든? 가서 줘.”
라테가 아윈의 파워를 등에 업고 짠 계획은 그리 거창하지는 않았다. 실은 중간에 노선도 한번 바꿨다. 처음에는 정말로 비숏의 목이 날아가기 직전 에슐라가 짜잔! 하고 등장하는 극적인 그림을 그려보았으나, 비숏도 비숏이고 에슐라의 간담에도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어 도중에 갈아엎었다. 새롭게 구상한 것은 전과는 약간 다른 방향이었다.
“ 마법사님이요?”
“ 응. 내가 줬다는 말은 하지 말고, 네가 찾은 거라고 해. 아니면 원래 가지고 있었거나.”
“ 이게 뭐길래…….”
“ 빨리 안 전해주면 비숏 곧 죽을 걸?”
“ 헉.”
눈을 동그랗게 뜬 에슐라가 이내 바삐 사라졌다.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지만 있을 만한 곳을 알아서 짐작한 듯 달음박질에 망설임이 없었다. 멀어지는 작은 체구를 물끄러미 응시하다, 몸을 바로 세운 라테가 짧게 중얼거렸다.
“ 잘될까.”
“ 걱정돼?”
허공에서 아윈이 튀어나와 말을 걸었다. 라테는 갑자기 나타나 시야를 가리는 아윈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속에서 아우성치는 내심을 삼켰다. 그래, 걱정 된다. 니가 제일.
아윈은 라테의 부탁으로 비숏에게 특정한 물약을 만들도록 시켰다. 물약제조는 연금술의 영역이라 비숏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하달된 난이도 극악의 명령에 굳어버린 비숏에게 아윈은 또한 ‘오늘 자정까지 만들지 않으면 죽는다’는 으름장까지 놓았다. 비숏의 혼과 얼이 사이좋게 빠져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약을 만들기 위해선 그야말로 갖가지 재료가 필요했는데, 개중 제일 구하기 까다로운 것이 한 식물의 열매였다. 열매는 어디에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막상 찾아보면 어디에도 없는 아주 짜증나는 원료로 악명이 높았다. 과거 열매를 찾다찾다 열이 뻗쳐 화병으로 몸져누운 연금술사의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혹자는 그것을 전설의 빡침빡침 열매라고도 불렀다.
빡침빡침 열매를 얻는 것이 수월찮은 이유는 간단했다. 열매가 열리는 식물이 매우, 놀라울 만큼 제멋대로였기 때문이다. 식물은 자기 마음대로 내키면 열매를, 아니면 꽃을, 그도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맺지 않다가 툭 시들고는 했다. 각각의 경우에 대한 조건도 시기도 환경도 그 무엇도 일정하지가 않았으니 채집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물 떠놓고 운이 좋기를 비는 것뿐이었다.
이처럼 열매는 그 무조건적인 랜덤성 탓에 획득에 어려웠는데, 역으로 말하면 운만 좋으면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막상 필요한 연금술사는 눈에 불을 키고 뒤져도 얻지 못한 것을 뒷산에 산책나간 어린아이가 우연히 발견해 가지고 노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열매는 또한 딸 시기를 놓치면 금방 상하는데다 수요가 자주 있는 편이 아니라 시장의 매물로도 나오지 않았다.
“ 잘되겠지.”
에슐라에게 건넨 것은 바로 그 열매였다. 이른바 ‘고마움이 사랑으로’작전이다. 라테는 낙관적으로 대답하며 아윈을 감시하듯 쳐다보였다. 사실 계획이 망하면 가장 먼저 말려야 할 상대는 눈앞의 이놈이었다. 라테가 처음 사정을 털어놓았을 때 아윈이 태연한 얼굴로 ‘정신계 마법 한번이면 끝나겠네’라며 자리를 뜨려 했었던 것이다. 조작의 끝을 달리는 그런 결실을 바라진 않았던 라테는 당연히 기겁해서 몸을 던져 막았다. 하마터면 비숏의 뇌에 몹쓸 짓을 저지를 뻔했다.
“ 아윈.”
“ 왜?”
“ 앞으로 한 일주일은 종일 내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 1분도 안되고 1초도 안 돼. 알았지?”
“ 원한다면.”
라테는 한동안 아윈을 곁에 붙여놓고 감시해야겠다며 단순히 생각했지만, 그런 제 발언이 곧 일주일간 침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미래를 불러오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
열매를 찾아 이산 저산을 누비느라 마나를 새하얗게 불태운 비숏은 작업실에서 유언장을 작성하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 비숏이 글씨를 마저 써내려갔다. 재산은 모두 저번 달 시장에서 마주쳤던 예쁜 아가씨에게……아, 그럴 재산이 없구나.
유언장마저 빈약한 것에 비숏이 동공을 비울 때였다. 마침 노크소리와 함께 에슐라가 도착했다.
“ 저어, 마법사님?”
“ 웅……드러와…….”
삶의 의욕을 잃은 비숏의 발음이 뭉개졌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살심을 부르는 귀척이 되었지만, 에슐라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초췌해진 비숏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맞은편에 앉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에슐라는 생각을 정리했다. 제가 감정을 털어놓은 이후 아가씨가 그에 대해 꽤나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해주실 줄은 정말 몰랐다. 딱히 바라고 고백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에슐라는 손에 쥔 주머니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자세한 내막까진 모르더라도 대략적인 추측은 가능했다. 자신이 이런 물건을 받게 된 것도, 상대방이 저 꼴을 하고 있는 이유도 전부 제 마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몇 차례 눈을 깜박인 에슐라가 시선을 들었다.
“ 마법사님.”
“ 웅…….”
“ 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여기요.”
“ 응……어? 어어? 이, 이건!”
에슐라의 심경은 평온했다. 계획까지 벌이고 등을 떠밀 정도로 다른 사람이 난리를 쳐주니, 오히려 당사자의 마음은 차분해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이상하게 불안하지도 떨리지도 않았다.
“ 이걸 어떻게!”
“ 아가씨께서 주셨어요.”
“ 안주인님께서? 왜?”
“ 저랑 마법사님이 잘되기를 바라셨던 것 같아요.”
“ 어?”
“ 제가 마법사님을 좋아하거든요.”
에슐라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원래라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고백이었다. 고백은 먼저 하는 게 아니라 남자로부터 받아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애초에 에슐라에게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사에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는 에슐라는 유독 이성관계에서는 소극적으로 변하곤 했다. 수줍어서 말도 잘 못 붙이고, 그렇게 바라보기만 하다 결국 열병만 앓고는 포기한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리 아무것도 못 하곤 했었다.
“ 좋아해요.”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에슐라는 똑바로 상대의 눈을 마주보았다. 비숏이 멍청하게 얼이 빠진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평소에는 반쯤 감겨 졸려보이던 눈이 지금은 동그랗다.
“ 그래서 말인데요, 내일 저랑 데이트하실래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격언이 실천되고 있었다. 비숏은 에슐라의 돌직구에 이어 시간차를 두지 않고 날아든 데이트신청에, 고민도 없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날아간 넋을 잡아오지 못한 듯 표정은 여전히 멍청했다.
*
나는 입 안 가득 과자를 집어넣었다. 에슐라가 만들어준 핸드메이드 쿠키는 달지 않고 고소했다. 열심히 씹어 입에 든 것을 꼴깍 삼킨 뒤 녹차로 목을 축인다.
“ 헤이, 유부남.”
“ 아, 안주인님!”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잎이 전부 떨어진 나무들은 저마다 수줍게 앙상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첫눈이 내렸는데, 꽤나 오랫동안 그치지 않아 사위에는 하얀 눈이 소복했다.
나무는 다이어트를 하고, 주변은 온통 하얘지고, 그리고 비숏은 유부남이 되었다.
유부남.
유 부 남!
“ 여행지는 정했어요?”
“ 아뇨, 아직…….”
눈따따 연애조작단의 괴도 러브가 되어 에슐라에게 주머니를 건네줬던 날, 에슐라는 다시 돌아와 내게 용기를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내가 한 거라고는 비숏을 반 폐인으로 만들고 열매를 구해다 안겨준 것뿐이거늘 대체 어디서 용기라는 숭고한 걸 얻었는지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잘됐으니 다행이었다.
용기를 얻어 적극적으로 변모한 에슐라는 비숏의 그 어떤 멍충하고 둔한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꾸준히 공략을 지속해, 결국에는 상대를 함락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미녀밖에 모르던 비숏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는 에슐라에게 꽃다발을 건네주던 날,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나는 눈따따와 함께 기쁨의 축배를 나눴다.
에슐라는 단아한 늦가을의 신부가 되었다.
“ 아윈한테 휴가 길게 주라고 할 테니까 최대한 좋은 곳으로 다녀와요.”
“ 감사합니다.”
창밖으로 비숏이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관리가 되지 않아 종종 지저분해보였던 단발은 에슐라가 다듬어주기 시작한 뒤부턴 늘 가지런한 상태를 유지했다. 듣기로는 단발계의 1인자라 스스로 자신하던 카르댄밸이 은근히 라이벌의식을 느끼고 있다고도 한다.
“ 여보!”
“ 아, 전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에슐라가 낭랑하게 비숏을 불렀다. 한참 신혼인 비숏은 내게 인사를 건넨 뒤 허둥지둥 아내가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더니, 그건 남자한테도 적용되는 얘기였던 걸까? 영락없이 아저씨로 보였던 비숏은 요 근래 부쩍 회춘한 듯 점차 제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사랑의 힘이란!”
창틀에 턱을 괸 채로 내가 중얼거렸다. 쿠키가 남았나 확인하려 눈을 돌리는데, 마침 탁자에 앉혀두었던 눈따따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장난스럽게 손을 뻗어 눈따따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예!
외전 4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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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숏x에슐라
해피엔딩이라고 합니다'♡' 꺄르륽
+
누군가 그러길 눈따따 살아있는 것 같다고.........ㅇ ㅓ...처키?
++
여건이 되면 이벤트 형식으로 굿즈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주인공은 눈따따로ㅋㅋㅋㅋㅋㅋㅋㅋ주인공보다 더 주인공 같은 너....눈따따 아가씨 늘 행복해라
+++
외전5는 5월1일에 올라옵니다! 그때 다시 만나요! 20000!
++++
추적 일주일. 라테는 왜 감금을 당하였는가.
라테: 으..윽..이 ㅅH77l 마법사주제에 체력이 왤케 무한......
그랬다고 합니다. (음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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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X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