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87화 (87/100)

00087  외전2. 케니스와 함께 춤을 (IF외전)  =========================================================================

*본 외전은 케니스와 이어지는 if이야기입니다.

*본편과 별개로 진행됩니다.

*기본 설정도 다소 다릅니다. 이 점 유의해주세요!

안녕! 내 이름은 라테! 잠시 내 근황 좀 들어줄래?

얼마 전 케니스가 나한테 상담을 해왔어. 이벨린에게도 여혐증상이 적용되어 당황스럽다는 내용이었지. 나니? 남주인공이 여혐증세 때문에 여주인공에게 손을 못 댄대! 믿어지니? 그렇다면 이 막장인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내 머리는 한 가지 결론밖에 내릴 수 없었어. 바로 이벨린의 여주인공 버프가 사라졌거나, 최소한 약해졌다는 거!

물론 이 가정에 힘이 실리려면 나머지 두 놈들의 태도도 따져봐야겠지. 하지만 난 황태자나 마탑주가 현재 이벨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둘이랑 안 친해서 만날 일이 거의 없거든! 내 인맥이 글쎄 이렇다!

사실 마탑주는 황태자보단 조금 친한 사이긴 해. 하지만 잘못 개겼다간 누구보다 빠르게 내 목을 날릴 수 있는 위인이라 가능하면 가까이하지 않는 중이야. 많이 쫄리거든.

참, 그리고 최근 페리도트가 작살났다는 소식을 들었어! 자세한 과정은 모르겠지만 황태자와 아윈이 손을 잡고 털었다나봐. 이건 내 추측인데, 아윈이 직접 모가지를 따고 황태자가 집안을 주저앉히지 않았을까?

아무튼 무서운 언니였는데 세상을 떴다니 다행이야. 사견이지만 그 언니가 워낙 악행을 많이 저질러서 관련 얘기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좀 그랬거든. 징악이 되었다고 생각해.

그럼 내가 알려줄 근황은 여기까지야! 지금까지 설명충과 함께 해줘서 고마워!

*

“ 아가씨, 편지가 도착했어요.”

“ 으응……줘.”

나는 부스스 베개맡에서 몸을 일으키며 에슐라가 내미는 서간을 받았다. 아, 나 무슨 꿈 꾼 거지. 뭔가 꿈속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혼자 열심히 나불거린 것 같은데. 대체 뭘 한겨.

하품을 하며 뜯어본 편지의 발신인은 부크였다. 음? 부크가 나한테 뭘 전달할 사안이 있었나? 생각하다 벼락 같이 내가 차기작을 계속 미루고 있는 상태라는 걸 깨닫는다. 난 접혀있는 종이를 펼치기 전 조금 주저했다. 뻔하지, 독촉편지네.

-살려주세요.

“ ……?”

편지 중앙엔 커다란 폰트로 구원 요청이 적혀있었다. 나 언제부터 119였지.

“ 선생님! 오셨군요,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그래도 그간 쌓인 정이 있어 찾아가봤다. 부크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진드기마냥 매달렸다. 얼굴이 핼쑥한 것이 본능처럼 떨궈내려다가도 흠칫 발길질을 망설이게 된다. 아니, 그새 무슨 일이 있었길래?

“ 왜 그래.”

“ 절 죽여버리겠대요!”

“ 무슨 소리야, 바람 폈어?”

“ 그런 거 아닙니다! 치정 아녜요! 선생님 팬이 그랬다구요!”

“ 뭐?”

내 팬? 난 얼떨떨해져서 자리에 앉았다. 소파에 착석하자 바닥에서 뒹굴던 부크도 맞은편으로 위치를 옮긴다. 산발이 된 머리에 잔뜩 울상인 얼굴로 부크가 사정을 설명했다.

“ 처음에는 단순한 독촉이었습니다. 신간을 빨리 내 달라고요. 그런 정도야 자주 있는 일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답장을 보내곤 잊고 지냈죠.”

“ 그런데?”

“ 그러다 며칠이 지나니 다음엔 경고장이 날아오더군요. 네, 경고장. 근시일내로 신간 소식을 발표하지 않을 경우 본인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전 그때까지만 해도 웬 중이병이 나대는 구나 생각했죠. 아, 기억나시죠?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단어잖습니까, 중이병.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자꾸 쓰다 보니 입에 착착 달라붙는…….”

“ 본론으로 돌아와.”

“ 네. 그래서 당시엔 장난으로 치부하고 넘겨버렸습니다. 편지는 태웠고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라고 여긴 그 순간!”

“ 순간?”

“ 이런 게 도착했습니다.”

괴로운 표정으로 부크가 한 구석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지목한 곳에는 웬 천조각이 볼록하게 무언가를 덮고 있었다. 섣불리 다가가 손을 대기가 망설여져 저게 뭐냐고 물으니 대답대신 가리킴만이 꿋꿋하다. 직접 확인해보란 얘긴가? 어째 꺼림칙함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 앞선 궁금증을 따라 내가 몸을 움직였다.

마침 근처에 막대기 같은 것이 눈에 띈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포유류인 나는 그것을 집어 천에 갖다 댔다. 무슨 뭐, 난도질당한 인형이라도 보냈나? 명찰에는 부크라고 쓰여 있고?

그런 상상을 하며 난 천을 훌렁 뒤집었다.

“ 시발!”

그리고 쌍욕이 터졌다. 의식하기도 전에 입 밖으로 튀어나온 비속어였다. 나는 동시에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 이게 뭐야! 너구리?! 심지어 시체?!”

“ 곧 똑같이 만들어주겠다는 본보기라고…….”

“ 더군다나 보라색?!”

“ 독에 중독 시켜 죽였다고…….”

해설처럼 날아드는 부가설명을 들으며 난 손안의 막대기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혈압이 솟구친다. 부크 이 멍멍이 같은 새끼가!

“ 악! 갑자기 왜 이러세, 악!”

“ 그냥 말로 묘사해주면 되지, 저걸 꼭 내 눈으로 확인하게 해? 어? 죽고 싶냐? 죽을래?!”

“ 저는 단지 선생님께서 제 충격을 공유해주시길 바랐을 뿐……악!”

“ 닥쳐! 너는 내 시신경과 정신건강의 분노를 좀 맛봐야해. 이 아메바! 플라나리아! 미토콘드리아! 짚신벌레! 버스 뒷자리 일진! 비바람 부는 날 반대로 뒤집힌 우산! 1분 전 놓친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 워터파크에서 즐겁게 데이트하고 나오는 길에 썸남이 주워서 건네주는 가슴뽕!”

아는 욕을 총출동해 퍼부으며 부크를 퍽퍽 막대로 두들겼다. 격분을 담은 혼신의 응징은 내가 체력이 다해 나가떨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막대기를 휘두르고 싶은 게 지금 심정이었다. 아오.

“ 하다못해 너구리가 아니라, 후우, 개나 고양이기만 했어도, 후우, 반은 덜 때렸을 거야.”

“ 뎨가 마은 데데로 하 후 이어흘 거란 애깅가어?”

“ 응. 말은 제대로 할 수 있었겠지. 아무튼 저거 완전 싸이코 아냐?”

나는 진절머리를 치며 소파에 도로 주저앉았다. 여태껏 눈치만 보던 점원이 슬며시 차를 내온다.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쥔 채로 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름이 쫙 끼친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너구리-주변사람에게 날 닮은 동물이 뭐가 있냐 물으면 열에 다섯은 너구리를 대답했다-라니! 떨어질 정도로 놀랐던 가슴은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진정이 됐다.

“ 근데 저거, 어떻게 된 거야?”

“ 네?”

“ 냄새가 안 나던데. 악취가 풍겼으면 가까이 가기도 전에 알았겠지.”

시체라는 걸.

그래, 헝겊을 들추기 전까지 내가 인형 따위를 상상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냄새의 부재 때문이었다. 생물의 사체에서 고약한 혹취가 풍긴다는 건 세기의 천치라도 알 만한 사실이다. 당연히 나야하는 냄새가 나질 않으니 시체라는 경우의 수를 떠올리지 못할 수밖에.

부크가 한숨을 푹 쉬더니 대답했다. 저도 그거에 당했습니다. 회복 포션을 입안에 들이부은 부크는 그새 붓기가 가라앉았는지 멀쩡한 발음으로 이야기했다.

“ 일부러 무취상태로 만들기 위해 약품처리를 한 것 같습니다. 저게 처음에……선물상자에 담겨서 왔거든요.”

“ 헐.”

“ 선생님의 앞으로 팬 선물이 종종 오곤 하니까 전 이번에도 그런 건 줄만 알고……흑흑.”

미간에 절로 주름이 잡혔다. 수법이 고약하다. 대체 누구지? 왜 이런 짓을? 설마 정말로 신간을 빨리 보고 싶다는 게 목적인가?

“ 그리고 사실, 혈서도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 와. 가지가지.”

“ 심적 안녕을 위해 그 자리서 태워버리는 바람에 보여드릴 순 없지만, 내용은 확실히 기억합니다. 저를 향한 협박과 더불어 선생님께 보내는 전언도 있었어요.”

“ 뭐? 어떤?”

“ 차기작은……빼어난 실력의 기사를 주인공으로 해 달라고요. 몬스터 토벌 같은 이벤트가 있으면 더 좋다며.”

“ …….”

뒷머리가 띵하다. 진짜 미쳤다. 또라이도 아주 상급 또라이였다. 난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고 물었다.

“ 그렇게 안 쓰면 나도 같이 죽여 버리겠대?”

“ 혈서 읽으셨어요?”

“ 그럴 줄 알았다.”

뻔하지. 이로서 이 문제는 남의 불행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 아이고 두야. 미친놈이 행동력을 갖추니 이런 사달이 벌어지는구나. 원작엔 등장도 않는 작 외 인물에게 살해협박을 당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 아까 발언한 건 정정하자. 내 팬이 그랬다고 했지? 이게 무슨 팬이야.”

“ 어긋난 팬심 아닐까요?”

“ 어긋난 살심이겠지.”

이걸 팬심으로 여겨줄 바엔 차라리 사생짓을 수줍은 응원으로 취급하겠다. 난 급격히 피곤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 신고는 했어?”

“ 신고하면 잡힐까요?”

“ 몰라. 그래도 일단 해.”

“ 제가 죽으면 재산은 사회로 환원되겠죠? 전 가족이 없으니까요. 딱히 환원하고 싶지 않은데 그냥 선생님이 전부 가져가서 사치에 쓰세요.”

“ 왜 이렇게 앞서가? 잡아야지. 잡을 거야!”

순간 흔들렸지만 돈 때문에 부크를 버릴 순 없었다. 그리고 부크가 죽으면 누가 내 책 내줘? 난 이미 이 출판사에 정들었단 말이야!

잡는다. 난 다짐하듯 읊조렸다. 잡히면 진짜 다져버린다! 당황이 가시자 분노가 자리를 채웠다. 범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가만히 두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지만 하는 행동이 몹시 괘씸했다. 내 필시 네놈을 괘씸죄로 태형에 처하리라!

“ 처음엔 답장 보냈었다고 했지? 주소 있어?”

“ 그게, 번화가의 유명 식당으로 되어있었습니다.”

“ 실제 사는 곳은 아니겠네.”

“ 그렇겠죠? 보통 큰 가게는 편지 같은 걸 대신 받아주기도 하니까요.”

“ 일단 시간을 끌자. 내가 기사에 대해 잘 몰라서 사전조사기간이 필요하다고 해. 자기도 허접한 소설을 읽고 싶진 않을 거 아냐. 이렇게까지 하는데.”

“ 보내면 읽을까요?”

“ 안 읽을 거면 요구는 뭐하러 했겠어.”

부크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부크에겐 티를 내지 않았지만, 사실 묘한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빼어난 실력의 기사. 몬스터 토벌.

어떤 기시감 같은 것이 살살 신경을 건드린다.

‘ 혹시.’

비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또 모른다.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선 짚이는 것은 뭐든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 굉장히 쓸데없는 용건이군.”

“ 제 입장에선 아니거든요.”

부크를 만나고 그 길로 곧장 에스반데 공작저를 방문했다. 그리고 공작각하를 만나게 해달라고 장엄하게 외쳤으나 튕겼다. 당사자가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예약을 넣고 돌아와 다음날인 오늘, 이렇게 케니스와 오찬을 함께 할 수 있었다.

“ 밥은 굳이 안주셔도 됐는데.”

“ 들지 않아도 된다. 따로 시간을 빼는 것이 귀찮아 겸사겸사 식사시간에 부른 거니까.”

“ 저런. 친구인데 취급이 너무한 거 아녜요?”

쌀쌀한 케니스는 대답대신 싫으면 꺼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물론 그럴 용의는 전혀 없었다.

“ 아무튼, 대답 해주세요. 있나요?”

“ 동물의 사체나 혈서를 보냈던 상대 중, 몬스터 토벌에서 만났거나 엮인 적이 있는 영애……말인가?”

“ 넵.”

“ 그런 걸 일일이 기억할 거라 생각하다니, 기대가 크군.”

“ 각하 기억력 좋으시잖아요.”

케니스의 기억저장소는 크기도 넓고 능률도 좋았다. 내 말마따나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소리다.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웬만해선 까먹지 않았다. 어떻게 아냐고? 원작에서 그랬으니까!

“ 저 이러다가 협박범한테 죽으면 매일 밤 각하 꿈자리에 찾아갈 거예요.”

“ 나는 귀신도 벨 수 있다.”

“ 미,”

미친.

나는 제어하지 못할 뻔한 욕설을 겨우 참았다. 케니스에게 언제 저렇게 이상한 유머감각이 생겼지.

“ 진짜로 죽으면 어떡해요? 농담 아닌데.”

“ 조문은 가겠다.”

“ 부의금으로 공작성 주세요.”

“ ……말하지만, 직접 나서지 말고 치안대에 신고를 해라. 버젓이 있는 공권력은 병풍으로 보이는 건가?”

“ 병풍 맞잖아요. 아, 혹시 일가친척친지 중에 치안대 사람 있으면 방금 말 취소.”

“ 신뢰가 아주 바닥이군. 왜 그렇게 생각하지?”

“ 저잣거리 골목에서 폭탄을 터뜨려도 안 나타나던데요.”

“ 터뜨려봤나?”

“ 비슷한 건.”

케니스가 대꾸를 하지 않아서 사이에 잠깐 정적이 내려앉았다. 케니스의 표정은 완벽히 해석하긴 어려웠지만, 아마 높은 확률로 나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 작품 후기 ============================

이게...어....오늘 업데이트 될 외전이 아니었는데...

실수로 다른 작품을 여기에 올리는 바람에..."-"

그런데 프리미엄이라 삭제가 되지 않고...''-''

그래서 실수한 김에 그냥 외전으로 수정했습니다. (!)

5화는 원래 연재일을 맞추어야 해서 쵸큼 나중에 올라옵니다 ㅠㅠ

이게 다 작가의 멍충한 실수 때문이니 저를 때려주세요 ㅜㅠ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

다음화에서 다시 만나요!

*

수정 전에 확인하셨던 분들께...충격과 혼돈의 도가니탕을 드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8ㅁ8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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