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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는 들러리양-84화 (외전) (84/100)

00084  외전1. 라테와 간달프 원정대  =========================================================================

“ 요즘 탑주님께서 많이 착해지셨습니다.”

“ ?”

나는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햇살이 좋은 오후였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뒤 디저트를 달라 아우성치는 위장에게 레몬차와 치즈케이크를 번갈아 넣어주던 차였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이었던 아로브럭이 마침 자기도 다과가 고팠다며 맞은편에 합석을 했다.

그리곤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저런 이야길 꺼낸 것이다.

난 차기를 만지작거리며 고심하다 대답을 건넸다.

“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에 마탑주가 바뀌었나요?”

아윈 얘가 언제 꼭대기 자리에서 물러났지. 그러나 정권교체를 의심하는 내게 아로브럭은 고개를 저었다.

“ 아닙니다. 정말로 착해지셨습니다.”

“ 으으음.”

“ 표정이 솔직하시군요. 안주인님, 그거 아십니까? 탑주님께선 본래 두 개의 선택지로 타인을 대하셨었습니다.”

“ 두 개의 선택지요?”

“ 예. 하나는 ‘죽인다’, 하나는 ‘살린다’였죠. 중간은 없었습니다.”

“ ……그런데요?”

“ 한데 요즘! 생겼습니다. 무려 ‘때린다’가!”

마치 연설을 하듯 아로브럭이 목소리를 높였다. 두둥! 하는 효과음이 들린 것도 같았다. 나는 일단 예의상 놀라줘야 할 것 같아 입을 가리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 맙소사!”

“ 느껴지십니까? 탑주님께서 얼마나 변하셨는지.”

“ 아뇨. 죄송하지만 사실 전혀 모르겠어요.”

어차피 때리는 것도 반복하면 사람 죽지 않나? 차라리 마법으로 한방에 끝내주는 게 더 인도적인 거 아닐까? 아윈이 패기 시작한 대상을 도중에 놓아주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 안주인님, 안주인님!”

누군가가 마침 자리로 난입하며 나를 찾았다. 부름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황급히 달려온 듯 숨을 몰아쉬는 조들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난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 것에 눈을 껌벅였다. 마탑 재정담당 마법사잖아. 무슨 용건으로 날?

“ 후우, 후우. 여기 계셨군요.”

“ 무슨 일 있나요?”

건강을 위한 달리기를 하던 중 갑자기 내가 생각났을 리는 없고. 의아함을 담아 묻는 것에 조들리어가 다급히 대답했다.

“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안주인님, 탑주님을 좀 말려주십시오!”

“ 음……가죠.”

자세한 사정을 듣기도 전 이미 내 엉덩이는 의자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탑주님’ ‘말려’ 이 두 단어면 그걸로 얘기 끝났지 뭐.

이런 식으로 아윈을 뜯어말리러 가는 것은 기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아주 드물었다. 아윈의 파격적인 행보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이 터져도 다들 그러려니 하는데다, 괜한 일로 날 호출했다간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보통은 내가 관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이 마무리되곤 했는데, 그 와중에 간혹 지금처럼 내 간섭을 필요로 하는 때가 있었다.

무슨 경우냐 하면…….

“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 다신 빗자루라고하지 않겠습니다! 살려주세요!”

이런 거.

그러니까 일의 원인에 내가 껴있을 때였다. 나는 눈물을 한번 삼키고 아윈을 향해 바삐 다가갔다. 시벌 또야!

“ 안녕.”

사건의 중심으로 끼어든 나는 우선 인사부터 했다. 아윈은 그렇다 치고 자진모리장단으로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세 남자의 얼굴이 영 안녕하지 않았다. 아이쿠……장난 아니군.

난 신입으로 추정되는 낯선 삼인방에게서 눈을 떼고 아윈을 응시했다.

“ 있잖아.”

“ 말리지 마.”

“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오는 길에 들은 얘기에 따르면, 얼굴이 안녕하지 않은 삼인방이 그 꼴이 된 이유는 다름 아닌 나를 욕하다 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걸어 다니는 노란색 빗자루를 봤다나 어쨌다나. 자기들 딴엔 몰래 나눈다고 나눈 뒷담화였겠지만 결국 들켜서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어딜 가나 입방정이 문제다. 나는 머리를 조금 긁적였다. 솔직히 폄하당한 입장에서 의욕적으로 대상을 변호해주고 싶은 마음은 딱히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이승탈출 넘버원을 찍도록 놔둘 수도 없었다. 내 욕했다고 사람이 죽으면 그건……뭐랄까, 꿈에 나올 것 같거든. 그래, 밤마다 처녀귀신이 찾아오는 장화홍련 속 사또가 될 것만 같다.

꿈자리에서 원혼과 미팅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아윈을 막아섰다.

“ 말리지 말랬지.”

“ 말리는 이유라도 좀 물어봐라, 야.”

“ 고객님, 잘 들어.”

“ ?”

아윈이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가까워졌다. 퐁당 빠질 것 같은 붉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 말릴 때마다 밤에 자세 하나씩 추가야.”

“ ……?!”

미쳤! 미, 미쳤어! 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몇 걸음 씩 멀어지는 게 순식간이었다. 홍당무가 되어 동공을 뒤흔드는 나를 아윈이 예쁘게 웃으면서 응시했다.

나와 아윈은 아직 신혼이었다. 뜨근뜨끈 한참 타오를 시점이다. 그건 즉 밤마다……자세한 건 생략한다. 아무튼 아윈이 방금 꺼낸 말은 그렇고 그런 발언이라는 얘기다! 아니 이놈이!

“ 추, 추가?”

“ 응. 난 빈말 안 해. 알지?”

선 자리에서 동공만 떠는 나를 향해 아윈이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더없이 상큼했다.

“ ……그,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건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다. 정말이다. 진짜야!

마음의 준비를 한 나는 그날 아윈을 총 세 번쯤 말렸다.

이후는……흠흠, 상상에 맡기겠다.

*

마탑에서 보내는 나날은 대체로 평화로웠다. 아윈은 여전히 잘생겼고, 아로브럭도 여상히 노인이었고, 꼭대기의 전경도 전과 같았다. 카르댄밸과 넘나레드는 변함없이 툭하면 부딪혔는데, 그러다가도 한번 의기투합하면 누구보다도 마음이 잘 맞았으니 어째 보면 볼수록 천생연분이 따로 없었다.

탑에는 가끔 새 식구가 들어왔다. 마법 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햇병아리 친구들이거나, 혹은 뒤늦게 탑에 관심을 가진 원로 마법사이거나 그랬다. 전에는 마탑의 생리에 무지해 뭣 모르고 아윈에게 개겼다가 많이들 죽어나갔다고 했는데, 근래에는 개기되 흠씬 처맞기만 하고 목숨을 부지한다고들 하니 아로브럭의 말마따나 아윈이 착해지긴 정말 착해졌나보다. 신기한 일이다. 혹시……사랑의 힘인가? 꺄륵.

아무튼 큰 변동이나 사건 없이 하루하루가 물처럼 흘러갔다. 나는 위에서 열거한 것들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다. 달라짐 없이 그대로, 쭉.

“ 으아아아아! 드디어 발견했다아아!!”

그런데 아니었다.

며칠 만에 내 생각은 도전장을 받았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 방금 뭐야?”

“ 괴성 누구야?”

“ ……어, 저 백발은 아로브럭인데.”

산삼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누군가가 환호성을 지른 날이었다. 범인을 찾아 두리번대던 이들은 곧 탑 뒷마당으로 뛰쳐나가는 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성성한 백발이 누가 봐도 아로브럭이었다.

“ 이 추운 날씨에 미쳤는가.”

“ 근데 발견하다니? 뭘?”

“ 발견?”

아로브럭의 뜻 모를 외침은 나도 들었다. 심지어 나는 공교롭게도 마침 뒷마당에 있었다. 투우장 황소마냥 달려 나오는 아로브럭을 정면에서 봤다는 소리다. 여럿의 수군거림을 배경삼아 뛰쳐나오던 그의 얼굴은 마치 로또라도 당첨된 사람 같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기 로또가 있을 리 없는데! 온 몸으로 감격과 환희를 표현하는 아로브럭에게 난 응당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마법진을……제가 마법진을 결국 찾아냈습니다!”

“ 마법진이요?”

“ 예! 제 저주를 풀 수 있는 마법진!”

“ !!”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로브럭에게 걸린 저주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단 하나뿐이었다. 아니! 아로브럭이 더 이상 노인이 아니게 된다고?

“ 다 들었다!”

“ 아로브럭 씨, 그게 정말인가요?!”

“ 세상에!”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넘나레드, 메모리아, 카르댄밸이 차례로 튀어나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거참 익숙한 조합이로고. 넘나레드는 등장하자마자 개중 가장 충격 받은 표정을 했다.

“ 저주가 풀리면, 그럼,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야? 요? 그러니까……스물다섯의 얼굴로?”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애매한 어휘로 넘나레드가 아로브럭을 붙잡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넘나레드가 연상이라고 했었나? 나이로 따지면 반말인데 얼굴을 보아하니 존댓말이라 저리 뒤죽박죽인 표현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하긴 연하의 할아버지라니 오묘하지.

어깨를 짤짤 흔들기까지 하는 상대에게 아로브럭이 떨떠름하게 응수했다.

“ 네, 뭐. 그렇죠.”

“ 아이고! 아이고오!”

“ 왜 갑자기 통곡을 해요?!”

대뜸 목 놓아 울기 시작하는 넘나레드의 작태에 아로브럭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나도 덩달아 흠칫 놀랐다. 넘나레드는 주저앉아서 무려 바닥까지 치고 있었다!

“ 누가 이 병신이 난데없이 이러는 이유 좀?”

카르댄밸이 황당한 낯으로 중얼거리며 넘나레드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 와중에 그걸 또 피하는 넘나레드라니…….

이 자리의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궁금해 할 이유는 곧 본인의 입에서 나왔다.

“ 아로브럭의 늙은 얼굴은 마탑의 명물인데! 아이고!”

“ 뭐라구요!?”

‘뭐요? 명물!?’ 아로브럭이 기가 차다는 기색으로 외쳤다. 멀쩡한 남의 아픔을 특산품 취급한 뻔뻔한 넘나레드는 당사자의 반응에도 물론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제하는 기색은커녕 한층 목청을 높인다.

“ 영감! 가지마오 영감!!”

“ 미, 미쳤어.”

아로브럭이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질린 노인의 얼굴에서 내가 다 짙은 연민이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넘나레드와 그 콤비는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싸이코패스인 것 같았다. 증거로 카르댄밸은 현재 배를 잡고 껄껄 웃고 있었다. 넘나레드의 영감 발언에 터졌나보다. 메모리아도 가만 보니 어깨가 떨리는 것이 똑같았다.

이 잔인한 인간들! 난 아로브럭의 유일한 이해자로서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 너무들 하네요. 아로브럭 힘내요!”

“ 안주인님께서도 웃으셨잖습니까…….”

앗 들켰나.

아로브럭은 생각보다 매의 눈이었다.

아무튼 매일 보던 익숙한 할아버지가 사라진다니 살짝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아로브럭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바라마지않던 일일 테니 축하를 해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긴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어릴 때 저주에 걸렸다고 했으니 얼추 잡아도 십년은 되었을 테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면 지나가던 의사가 쭈뼛거리며 진찰하러 오는 환경에서 그 긴 세월을……왈칵.

잠깐 잊었던 연민이 되살아난 나는 아로브럭에게 축하한단 인사를 세 번쯤 건넸다. 연속된 축하말에 넘나레드로 인한 멘붕이 좀 가신 듯 아로브럭이 수줍게 고맙다며 답해왔다. 그럼 이제 곧 변신하는 거겠지? 굿바이 간달프……!

“ 우리 영감 송별회라도 하자!”

포기를 모르는 넘나레드를 아로브럭은 이제 무시하기로 한 것 같았다. 나는 그 도외시에 동참하며 아로브럭에게 다른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저주를 건 범인이 마물이라고 했었지? 마물도 눈이 두 개고 손가락이 다섯 개일까?

“ 손가락은 안 세 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제 기억에 눈은 하나였던 걸로…….”

“ 그래서, 다시 소환하는 건가요? 마법진 찾았으니까?”

쓰잘머리 없는 의문에 성실하게 답해주는 아로브럭에게 메모리아가 불쑥 말을 걸었다. 언제 웃었냐는 듯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로브럭이 그렇다는 뜻으로 주억거리자 메모리아가 질문을 더한다.

“ 마법진은 어디에 그릴 겁니까? 혹시 바로 이곳에?”

“ 아, 아닙니다. 마법진을 그리는 법을 알아낸 건 아니구요.”

“ 그럼요?”

“ 그려진 곳의 위치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동일한 마법진이요.”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말을 잇지 못하는.....)

그리웠다 후기란아 ㅇㅅㅠ 너도 내가 그리워찌?ㅎㅎ

후기란: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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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에 언급했던 눈따따 eye 첫날밤은...음...막상 집필하려고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안 나더라고요! 저도 제가 그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엄청 바빠요! 하하!

그래서 간단하게 여기에 썰을 풀고 가겠습니다 ㅇㅅㅠ

제가 그때 쓰고 싶었던 저질드립이 뭐였냐면...

아윈 라테 첫날밤 -> 아윈 알몸 두둥 -> 충격적인 소중이(아시죠..?)의 크기 -> 충격 받은 라테의 의식의 흐름 -> 저..저건...야동에서나 보던 서양 소중이?!? -> 서양소중이라니!! 안돼!! 불가능해!! 서양 소중이는 서양인만 감당할 수 있다고"ㅁ"!!갸아아악!! -> 는 나도 지금은 서양인이네?ㅇㅅㅇ깜박함 -> 해피엔딩

ㅎ......

참고로 둘의 속궁합은 굉장히 잘맞는다고 합니다^0^ㅎㅎ 라테 추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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