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3 에필로그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관차르자. 마탑으로 들어온 지 올해로 1년차인 따끈따끈한 신입입니다. 동시에 오늘 결혼식의 신랑 측 하객이기도 하고요. 자발적 참여는 아닙니다만 이런 걸 하소연해봤자 들어줄 사람도 없으니 얌전히 자리나 채우러 가겠습니다.
결혼식 장소는 신부네 저택 앞마당입니다. 앞마당…음…단어선택이 고급지지 못하군요. 하지만 뜻만 통하면 되니 상관없겠지요? 중요한 건 신부네 집과 마탑은 제법 거리가 멀다는 거고, 온 힘을 쥐어짰음에도 제가 지금 지각할 위기에 놓여있다는 점입니다. 안 돼! 이대로 탑주님한테 죽고 싶지 않아!
휴우. 다행히 그럭저럭 늦지 않게 도착했습니다. 신부와 신랑 모두 입장은 했습니다만, 아직 맹세의 키스를 나누지도 않은데다 신부가 부케를 던지기도 전이니 이 정도면 뒤질 만큼 늦게 온 건 아니겠죠?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탑주님은 정말, 몹시, 진짜로 무섭거든요. 탑주님 무서워오. 살려주새오.
아, 신부가 부케를 왜 던지냐고요? 저도 생소하긴 한데, 신부가 들고 있던 부케를 식이 끝나갈 때 쯤 신부 측 하객들을 향해 던지면 그걸 하객 중 한명이 받아내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덧붙여 부케를 받은 하객은 반년 내에 결혼을 해야 한다고도 하니, 참 특이한 관례인 것 같습니다. 부케를 이룬 꽃을 한 송이씩 하객들에게 꽂아주는 건 몰라도 통째로 던지는 건 또 처음 봅니다만, 안주인님께서 하시고 싶다는데 누가 감히 말리겠습니까. 박수나 열심히 쳐야죠. 죽기 싫으면.
그나저나 탑주님이 결혼을 다 하시다니! 참 놀랍습니다. 전 탑주님과 동고동락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탑주님이 15대 헤브림을 다셨을 때부터 곁을 지켜온 원로멤버들도 뒷목을 잡고 고꾸라졌을 정도니 확실히 탑주님의 결혼소식은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인 일이 맞는 듯합니다. 참, 어떻게 알았는지 타국에서도 공주니 왕녀니 하는 양반들이 식에 참석하겠다고 난동을 피웠다는데…사실인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왕들이 생각이 있으면 말렸겠죠. 괜히 식장에서 신부 욕이라도 들리게 떠들었다간 귀한 딸들 목이 날아갈 게 뻔한데. 네? 사람이 정도가 있지 일국 공주의 목을 어떻게 그리 쉽게 따겠냐고요?
하하. 저도 처음엔 그렇게 여겼었는데요.
‘ 관차르자야. 탑주님이 그래도 우리 때문에 그나마 자제하면서 사시는 편이란 건 알고 있느냐?’
‘ ……?! 쩐다. 선배 혹시 천하제일 개그대회 이런 거 입상자예요?’
‘ 하하. 이 녀석아 잘 듣거라. 어떤 왕국이 있다. 그 왕국의 왕을 비롯해 피를 이어받은 모든 왕족들이 하루아침에 죽어 사라졌다고 가정해보자. 네가 그 나라의 귀족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 감히 주군을 죽이다니! 힘을 모아 흉수에게 어서 피의 복수를!’
‘ 솔직히 말해 보거라.’
‘ 왕 자리 내 거 찜뽕☆’
‘ 그렇지. 옥좌를 두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내분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계승권을 가진 이가 모조리 뒈졌으니 말 그대로 공석이거든. 그렇게 개판으로 싸움질을 해서 누군가가 왕위에 올랐다. 국력은 이미 반 토막이 났겠지. 그럼 이제 다시 흉수를 찾겠느냐?’
‘ 누군지 알아는 보겠죠. 왕 죽인 것처럼 자기도 죽일지 모르니까.’
‘ 그래. 그래서 알아봤더니 흉수가 마탑주다. 과연 제거를 시도할까?’
‘ 저라면……아뇨.’
‘ 그냥 숨을 죽이고 살겠지. 일국의 군대를 모조리 쏟아 부어도 탑주님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자기들도 알 테니까. 수십만의 군대가 탑주님을 노린다고 가정해보자. 탑주님은 결코 그 모두를 상대하진 않으실 게다. 지휘관, 그 위 귀족, 그 위 왕족, 왕. 이렇게만 죽이고 잠적하시겠지. 아무리 모든 군대를 끌어 모은대도 야심한 밤 텔레포트로 제 거처에 나타나는 탑주님을 막을 수 있겠느냐?’
‘ 헐.’
‘ 그들은 그저 벌벌 떨며 살 수밖에 없을 거다. 부디 상대가 제 목숨을 노리지 않길 빌면서. 솔직히 탑주님이 이 나라에 가서 메테오 몇 방 갈기고, 어디 도망쳐서 좀 쉬다가 저 나라에 가서 메테로 몇 방 갈기고, 또 도망쳐 쉬다가 다른 나라에 메테오 갈기고……. 그렇게 산다고 한들 누가 제지할 수 있겠느냐? 에스반데 공작이나 론드미오 황태자의 무력이 인외의 경지라 탑주님과 비등하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가까이서 맞붙었을 때의 이야기지 먼발치서 마법만 난사하고 튀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을게다.’
‘ 허얼.’
‘ 그럴 수 있으신 분이 재수 없게 구는 왕 및 왕족들의 목을 따지 않고 경고와 금품갈취만으로 내버려두는 건, 다 우리가 탑주님의 아래 달려있어서지. 아마도 전대 마탑주셨던 타브오너께선 본능적으로 그런 걸 예견하고 탑주님이 헤브림의 성을 달도록 안배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대륙이 혼란에 빠지지 말라고.’
‘ 와 소름.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런데 왜 이런 걸 저한테 얘기해주시는 거예요?’
‘ 뭣 모르고 탑주님한테 개기다가 일찍 죽지 말고 오래오래 함께하자는 의미란다.’
‘ 아하…. 몰랐어도 절대 안 개겼겠지만 어쨌든 감사합니다.’
막 딸 수 있더라고요. 못 따는 게 아니라 안 따고 봐주는 거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공주고 왕녀고 안주인님 앞에서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간 사달이 날 수밖에요. 솔직한 말로 아직도 믿을 수가 없긴 하지만, 탑주님은 안주인님을 정말 끔찍이 아끼시거든요. 과보호도 그런 과보호가 없습니다. 안주인님 새끼손가락의 절대반지에 메테오가 설정되어있단 소리를 들었을 때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시나요? 탑주님 그거 밤새서 새기셨다면서요? 미친 무슨 반지에서 메테오가 나가 미친.
앗! 생각에 빠진 사이 어느새 신랑과 신부가 맹세의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하핫, 뭐, 잘 어울리네요. 평소 종종 마탑으로 놀러(?)오시던 안주인님은 대체로 머리카락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걸 보여주듯 미모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렇게 보니 꽤 미인이시군요. 아니 잠깐, 완전히 다른 사람 수준인데? 원래 저 정도까지 변신하나요? 살짝 무섭당……. 탑주님의 외모야 설명하기 입 아프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늘 그렇듯 인간이 아니시네요.
우렁찬 박수갈채 속에서 키스가 끝났습니다. 이제 부케를 던질 차례인가 봅니다. 신부 측 하객들이 받을 준비를 하는데……헉! 황녀? 그 옆에는 웬 빛이……황태자?! 가만 보니 빛이 두갠데……에스반데 공작?!
눈을 여러 차례 깜박여 봐도 그대롭니다. 잘못 본 게 아니에요. 맙소사! 저 호화로운 멤버들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 셋 뒤에 더 있는 몇몇은 광채에 가려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럴 수가. 갑자기 안주인님이 다르게 보입니다. 범상한 분이 아니셨군요! 하긴, 탑주님이 아내로 선택하신 분인데 평범하면 그게 더 신기하겠네요.
“ 던질게요!”
신부의 밝은 목소리와 함께 부케가 하늘을 가릅니다. 과연 향하는 방향은……핫, 에스반데 공작에게로 떨어지는 군요!
의도한 게 아니었던지 안주인님의 표정이 썩 좋지 않습니다. 이런, 에스반데 공작의 표정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구리군요. 똥 씹은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공작이 여성혐오증을 앓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부케를 받으면 반년 이내에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던가요? 아이구야, 이거 참 부케: 뜻밖의 조롱……아앗! 마침 에스반데 공작이 부케를 피했습니다! 대단히 빠른 몸놀림으로 자리를 회피했어요!
그렇다면 부케는?
“ 어, 어라?”
공작의 바로 뒤편에 서있던 양반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본인도 얼결에 받았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비숏?
엥? 저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숨길 수 없는 노안과 얼빵함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자세는 분명 비숏이 맞는데 말입니다. 스크롤 불량이 발견된 걸 계기로 사라졌기에 어디 야산에라도 파묻혔나 싶었더니, 다행히 멀쩡히 살아있었군요.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기분입니다. 신부 측 하객으로 비숏을 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는데요. 그나저나 비숏은 여자 손 한번 못 잡아본 모태솔로로 알고 있는데……. 반 년 내에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 걱정이 되면서도 궁금해집니다.
어쨌든 신랑과 신부는 진짜 부부가 되었습니다. 식이 짧기도 했지만, 제가 중간에 도착하기도 한터라 별로 본 게 없군요. 먼저 도착한 입탑 동기에게 물어보자, 탑주님이 다정한 눈빛으로 신부를 응시하며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줄 때는 너무나 현실 같지 않아서 눈을 꺼내 씻고 싶었다고 합니다. 으음, 이해되는 심정이네요.
아로브럭씨도 비슷한 감상인 것 같습니다. 아로브럭씨는 얼마 전 수염을 전부 미는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는데, 자의에 따른 시행이 아니었던지 며칠밤낮을 우울하게 지내다 이제야 겨우 회복에 들어선 참입니다. 아로브럭씨는 아무래도 외모 탓인지, 저보다 훨씬 연하인데도 말을 놓을 수가 없어 조금 불편한 상대이기도 합니다.
“ 더 계실 겁니까?”
“ 아뇨. 방금 마주쳤던 탑주님의 눈이 꺼지라는 지시를 담고 있었거든요.”
“ 그럼 같이 갑시다.”
“ 마나 회복은 되셨구요?”
“ 사실 아직…….”
“ 저도…….”
에구구.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돌아가는 길도 영 쉽지만은 않을 것 같네요. 텔레포트 무한으로 쓰고 싶다……힝.
*
안녕하세요. 도드보기라고 합니다. 관차르자와는 달리 저번에도 한번 출연한 전적이 있습니다. 무려 탑주님과 안주님이 결혼반지를 고르러 가는 길에 함께했었거든요. 그때 목격했던 일 하나를 간단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가는 길이었나 오는 길이었나, 아마도 패물을 고르기 전이었을 겁니다. 가게로 향하는 도중이었겠네요. 웬 귀족이 길 한복판에서 모녀를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귀족양반이 죄 없고 힘없는 평민을 겁박하는 거야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지만, 모녀 쪽에 어린아이가 있었기에 과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습니다.
구경꾼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길을 건너다 넘어지는 바람에 귀족이 타고 있던 마차의 앞을 막은 것이 원인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달리던 마차도 아니고 느긋이 걷는 속도로 이동하던 마차라, 잠깐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어 피해가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텐데도 부러 내려서 저리 지……흠흠, 난리를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잘못을 용서해달라며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어미는 이미 한차례 걷어차인 것 같았습니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에 나서야하나 갈등이 일 무렵이었습니다.
안주인님이 탑주님께 무언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마치 허락을 받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내 탑주님이 가볍게 끄덕이자, 안주인님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갔습니다. 기합 같은 외침도 함께했습니다.
“ 정의의 오지랖이 간다!”
?! 노란색 머리카락이 휘날립니다. 발이 빠른지 안주인님은 금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때까지도 귀족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욕을 고래고래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 그러게 누가 더러운 애새끼를 그런데 함부로 두라더냐? 엉? 천한 것이, 제 애를 제대로 간수하지도 못하고 말이야! 하여간 천박한……끄악!”
“ 어머나.”
“ 내 발! 악! 이게 무슨 짓….”
“ 이게 무슨 짓이죠?!”
“ ?!”
“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죠? 내 발에 밟히다니!”
“ 뭐, 뭐?”
다짜고짜 귀족의 발을 밟은 안주인님이 크게 외쳤습니다. 목청이 굉장했습니다. 뱃심을 목소리에 담는 법을 아시는 것 같았습니다.
“ 누가 발을 그런데 함부로 두래요? 네? 아니 알만하신 분이, 발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그래서야 되겠어요?”
“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
“ 님 잘못이네, 님 잘못이야. 왜 사람 걸어가는 길에 발을 두고 그래요? 어? 이젠 사람 팔 휘두르는데 얼굴까지 놔두고 있네?”
퍽!
“ 어억!”
“ 왜 얼굴로 내 손등을 때리고 그래요! 얼굴 간수 제대로 안 할래요? 네?”
“ 이, 이런 미친…. 드리어! 사비! 코용! 당장 이 정신 나간 년을 제압하지 않고 뭣들 하는 거냐!”
뺨까지 얻어맞은 귀족이 버럭 제 호위들에게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호명된 사비, 드리어, 코용은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죄다 잠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안 봐도 뻔합니다. 탑주님의 서포트겠죠. 저 귀족이 안주인님께 물리적인 해를 끼치지 못하고 입만 나불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귀족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수족대신 핏발 선 눈으로 외쳤습니다.
“ 이, 이년! 감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내가 누군 줄 알고!”
“ 그러는 넌 내가 누군 줄 알고? 뭔데 발등으로 내 신발 밑창을 때리고 뺨으로 내 손등을 때려?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 이이 버릇없는 년! 난 대귀족 뱃사레 기르미 자작이다!”
“ 어허 건방진 놈! 난 지나가던 마탑주 여친이다!”
“ 뭐, 뭐라?”
“ 너 서열1위 남자친구를 둔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지? 자기야 나 쟤 마음에 안 들엉~의 파워를 보여줄까? 응?”
그렇게 귀족은 한참을 안주인님에게 농락당해야만 했습니다. 찰싹찰싹 때려가며 혼내주는 솜씨가 어찌나 일품인지, 나중에는 지은 죄도 잊고 슬슬 상대가 불쌍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탑주님은 그런 안주인님을 귀엽다는 듯 흐뭇하게 바라보셨…….
…….
다시 생각해봐도 제 뇌의 기억장치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뱃사레 기르미 자작은 부패의 온상에서 자란 것 같은 썩어빠진 귀족이었습니다. 자잘한 악행에 뇌물에, 이래저래 난리가 났더군요. 안주인님은 물론이고 저 모녀에게도 무슨 일이 생기면 그날로 목이 떨어질 줄 알라며 으름장을 톡톡히 주었는데, 어차피 탑주님의 얼굴을 확인한 이상 목숨이 아깝다면 허튼 짓은 삼갈 테니 걱정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 고객님, 속 시원해?”
“ 응. 호가호위 아주 마음에 든다. 이렇게 된 거 정의의 오지랖 용사로 전직할까? 범죄자들만 잡아다 쥐어 패는 거지.”
“ 상관없는데,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는 날엔 어떻게 되는지 알지?”
“ …어떻게 되는데?”
“ 어떻게 되긴. 지도 새로 만드는 거지.”
“ !”
안주인님께선 세계평화를 위해 몸을 사리기로 하셨다고 합니다.
좌우간 안주인님이 기르미 자작을 조지던 장면은 한동안 잊혀 질 것 같지 않습니다. 몹시 강렬했거든요. 역시, 탑주님이 아내로 고르실만한 비정상……아, 아니, 비범한 인물이신 것 같습니다. 이거 누가 듣는 건 아니죠? 탑주님 짱! 안주인님 짱! 환상의 커플 만세!
*
안녕하세요. 돌아온 관차르자입니다. 어느덧 마탑에서 보낸 세월도 2년이 다 되어갑니다. 탑주님의 결혼기념일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시간이 참 빠르게도 흐릅니다.
어제는 행시가 저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왔습니다. 행시는 탑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친구입니다.
“ 관차르자, 관차르자! 내 말 좀 들어봐요.”
“ 무슨 일이에요?”
“ 탑주님께서 곧 결혼1주년이라고 기념여행을 다녀오시겠답니다, 글쎄!”
“ 어디로요?”
“ 대륙전체요. 대륙을 한 바퀴 도시겠대요, 미친! 돌아오면 2주년이겠네! 스케일이 왜 그렇대요 대체? 업무는 어쩌라고! 결재는! 으아아!”
“ 이런……. 그래서, 말렸어요?”
“ 말렸겠어요?”
“ 아뇨.”
“ 말렸으면 관차르자는 지금 목 없는 좀비와 대화 중이었겠죠. 아무튼! 아아아! 망했어요, 망했어! 허엉엉.”
저는 그저 행시를 토닥거려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번에는 좀 크긴 하지만, 어쨌든 행시는 또 펑펑 울고 팔다리를 휘적거리면서 이딴 탑 때려 칠 거라는 말을 열세 번쯤만 하고나면 다시 평소대로 돌아올 테니까요. 늘 그랬거든요.
“ 이딴 탑 때려 칠거예요! 이번에는 진짜라구요!”
“ 네, 네.”
여덟 번. 횟수를 세며 저는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저 멀리 어렴풋이, 반짝이는 빛과 노란색 털실이 보입니다. 탑주님과 안주인님이시겠네요. 어쩜 이리 눈에 쏙쏙 들어오는지, 볼 때마다 사람 옆구리를 시리게 하는 탑 내의 유일한 커플……이 아니지 참! 비숏이 결혼했습니다! 걔가 진짜로 반년 전에 유부남이 됐어요!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상대는 글쎄.
“ 크흡……관차르자.”
“ 네?”
“ 우리도 연애하죠.”
“ 예에?”
“ 단체 미팅! 갑시다! 제가 주선하는 걸로!”
“ 헐.”
“ 다 결혼해버려, 그냥! 마탑이 아니라 유부탑으로 개명해버려!”
“ 잠시만요, 행시. 정신 차려요.”
“ 신혼탑! 웨딩탑! 베이비탑! 패밀리탑! 학부모 정모탑!!”
“ 이런 미친.”
큰일 났습니다. 행시가 업무과다에서 온 스트레스로 머리가 살짝 돌아버린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조들리어가 필요합니다. 재정업무를 담당하는 조들리어는 평소 곧잘 행시를 다독여주며 빠진 정신을 도로 주워서 꽂아주곤 했으니까요. 조들리어! 여기예요!
“ 좋은 생각입니다.”
“ ……? 예?”
“ 제 옆구리가 보이십니까? 얼어붙었습니다. 얼음마녀의 저주마냥 아주 꽁꽁 얼어버렸죠. 이걸 녹이기 위해선 따스한 사랑,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단체 미팅! 가죠!”
“ …….”
관차르자. 입탑 2년째.
몸담은 직장이 망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마법사 이직은 어디로 하면 되죠…?
“ 허어엉.”
“ 감격해서 우는 겁니까?”
“ 이 미친 인간들!”
이 와중에도 날씨는 따뜻합니다. 하늘도 엄청 쾌청하네요. 아 모르겠다. 퇴직금 정산은 나중에 진짜로 탑 망하면 하죠 뭐. 탑주님께서 인색하신 편은 아니니 못 받거나 덜 받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죠?
“ 넘나레드랑 카르댄밸도 넣을까요?”
“ 오오, 첫 미팅부터 개판이 될 것 같은 이 강렬한 느낌!”
믿어보렵니다.
-에필로그 끝.
============================ 작품 후기 ============================
<완결 후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학업에 허덕이며 첫 연재를 시작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8개월이 흘러 완결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기분이 참 묘해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적어보겠습니다.
1. 구경하는 들러리양(이하 구들)은 2012년도에 구상을 했던 글입니다. 당시 다른 작품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동시연재를 할 여건이 안 되었던지라 ‘나중에 언젠가는 써야지’하고 간단하게 메모를 해두었었지요. 제목도 조금 달랐습니다. “들러리를 위하여”가 첫 제목이네요.
당시에 구상했던 구들은 지금보다 짧고, 단순한 내용이었습니다. 남주인공은 황태자와 공작 두 명. 용량은 500키바 내외의 중단편. 심지어 라테의 짝은 황태자였습니다(!). 지금이랑은 성격이 약간 달랐는데, 보다 전형적인 남자주인공에 가까웠던 것 같네요. 능글남주…? 그리고 초기의 케니스는 여혐이 없는 일반적인 목석남주였는데, 이벨린에게 푹 빠져 정신 못 차리고 후반부엔 라테를 적대시하는(ㅋㅋㅋㅋㅋ)캐릭터였습니다. 이벨린은 지금보다 싸가지가 몹시 없었고요. 황태자를 뺏겼다고 생각한 이벨린이 케니스를 대동하고 라테를 찾아와 욕을 퍼붓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장면을 구상하기도 했었네요.
결과적으로 올해 본격적인 연재를 마음먹으면서 많은 부분을 뜯어고쳤습니다. 두 명은 심심하니 하나를 더 넣자싶어 마탑주를 추가했고(아윈의 탄생이 이렇게 충동적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벨린과 케니스의 설정도 수정했습니다. 비모르와 페리도트도 이때 더했네요. 용량도 튀겨지고 여러모로 살이 많이 불어났습니다. 참, 라테의 짝은 연재시작 며칠 전 정해졌는데,
나: 이런이런 내용의 로판을 쓸거야
동생: 그러든가
나: 남주1 남주2 남주3 중에 누굴 여주 짝으로 할까?
동생: 남주1이 뭐랬지?
나: 능글남
동생: 극혐 (존중입니다 취향해주세요)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생: 남주2 ㄱㄱ
나: 그럴까? 오케이.
라는 대화를 해놓고 정작 실제로 고른 건 3번 아윈이었죠. 사실 황태자와 공작 중 누굴 짝으로 할까 고민을 제법 오래 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른 고객님이라는 호칭에 확 꽂히는 바람에 후보에도 없었던 아윈이 대뜸 낙점되었답니다(충동적222). 프롤로그를 쓰기 일주일쯤 전이었던 듯.
아윈을 남주로 올려놓은 뒤 나머지 둘(황태자, 공작)의 포지션을 정했습니다. 저는 치정싸움이나 서브남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취향), 잘난 남캐 셋이 라테와 각각 다른 관계를 맺길 원했어요. 하나는 연인, 하나는 친구, 하나는 남. 이렇게요! 그리하여 케니스는 친구, 황태자는 남이 되었습니다.
황태자와 라테는 서로가 서로의 근황을 궁금해 하지 않는 사이입니다. 마주칠 구실도 딱히 없구요. 라테가 이벨린을 따라다니는 걸 그만둔 시점부터 인연이 소멸하는 관계죠. 이걸 작 내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냈어야하는데 제 부족함 탓에 그만 어영부영 황태자를 치우고 말았습니다(feat. 먼지가 되어). 반성중입니다(무릎).
더불어 완결 및 내용전개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신 분이 있다면 그 또한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보다 발전하는 엘리아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화! 진화를 하자!)
2. 이벨린의 운명은 앞으로 어찌되나?
우선 이벨린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제국에 남습니다. 황태자가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관계에서 나름 잘 보살펴줍니다. 그렇게 몇 년 지내며 세상을 좀 배우고, 론드미오가 황위에 오른 뒤 황비가 됩니다. 황후는 다른 나라 공주님. 반쪽짜리 사랑에도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다가 남편(황제)의 애정이 식어 궁으로의 발걸음이 뜸해질 때 쯤 운 좋게 아들을 잉태해 낳습니다. 사랑 도로 겟.
라테는 이벨린보다 일 년 먼저 예쁜 딸을 순산한답니다!
3. 눈따따 시점으로 보여드리겠다 예고했던 첫날밤은, 음…사실 므흣한 건 없습니다. 딱히 므흣하지도 야릇하지도 않아요(아마도). 다만 저질드립(!)이 존재하는데, 이 저질드립이 생각할수록 영 저질이라(…)전체이용가인 구들에 정식으로 넣기엔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겠다싶어 외전에서 덜어냈습니다. 대신 블로그에 차후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블로그 주소는 복사가 가능하도록 작품소개에 추가할게요!
계획해둔 외전은 차례로 ‘라테와 아윈의 신혼이야기(+아로브럭 저주탈출기)’, ‘사랑의 큐피드가 되기 위한 라테의 노력이 담긴 눈따따 연애조작단(비숏x에슐라)’, ‘케니스와 썸타고 이어지는 IF 엔딩(본편과 상관X)’, ‘구들 현대판 이야기’ 이 정도입니다.
외전은 프리미엄으로도, 이북(&종이책)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는데, 아쉬운 점은 공개날짜가 빨라야 2월이라는 점입니다(ㅜㅜ). 기다리셨던 분들께 대단히 죄송합니다(ㅠㅠ). 저도 최근에 전해들은 계약 일정이라 미리 예고해드릴 수가 없었어요(눈물). 1~2월 사이에 K사의 기다리면 무료를 통해 먼저 서비스될 예정이니, K사를 이용 중이신 분들은 그편으로 만나보시는 게 가장 빠를 것 같습니다. 물론 이후 조아라 프리미엄과 출간물로도 공개됩니다.
한동안 구들을 잊고 크리스마스도 보내고 명절도 보내고 하다보면 어느 순간 외전이 딱…☆(그리고 아무도 읽지 않았다)
4. 차기작은 동양물입니다. 아래 맛보기 가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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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피었다.
“ 봄이구나.”
이르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는 그 깨끗하고 단아한 순백으로 누구보다 먼저 봄을 알려오는 춘화였다. 서릿발 같은 추위 가운데 피어난 고운 매화를 보고 있노라면, 굳이 용한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자연히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곧 눈이 녹겠구나. 그리고 봄이 오겠구나.
여인은 제 온몸을 통해 봄의 방문을 전해주는 자그마한 계절의 이정표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아씨! 어디계십니까, 아씨!”
저를 찾는 익숙한 목소리에 손가락 끝이 멈춘다. 백옥을 연상시키는 희고 고운 손마디는 미처 꽃잎에 닿지 못하고 도로 아래로 떨구어졌다.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드러난 눈동자가 어딘지 모를 슬픔을 담고 있었다. 흑연 같은 검정에 물기가 묻어난다.
“ 아씨, 추운데 또 이리 나와 계십니까? 혹 고뿔이라도 걸리실까 우려됩니다.”
“ 순아. 이를 어쩌면 좋으냐.”
“ 예?”
“ 내 보고야 말았다. 목격하고야 말았어….”
“ 무얼 말씀하시는지…….”
“ 돌쇠가 쌀밥을 먹더구나.”
“ …예?”
“ 오라버니께서 내리신 것이다.”
“ 헐.”
돌쇠와 도령의 수상한 눈빛교환. 급기야 어느 날부터 돌쇠는 쌀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숨겨진 비밀을 알아버린 아씨와 그녀의 몸종 순이의 운명은…?!
5. 는 뻥입니다. 여러분 4번 뻥이에요! 차기작 저거 아님!
진짜 차기작은 ‘달려라 메일’ 리메이크입니다. 구들 전에 쓰다가 연중한 작품인데, 요래조래 뜯어고쳐서 새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언제? ……졸업하고 나서…….
그렇습니다. 작가는 휴학생이었습니다(3학년 2학기). 복학 후엔 졸업 때까지 학업에만 열중하기로 약조를 한 마당이라, 다음 작품으로 인사드리는 건 몹시 나중이 될 것 같습니다(ㅠㅠ). 달려라 메일이 학교 및 생업과 함께하면서 이래저래 잠수가 많았던 작품인 만큼, 새롭게 보여드릴 때는 장기 휴재 없이 완결까지 쭉 전해드리고픈 욕심이 있네요. 졸업 후 백수 신분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주륵).
사실 여건만 되면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아요. 황제인 남주의 침실에 여주가 뚝 떨어졌는데 하필이면 폭군이라 첫 화부터 여주 목이 잘린다든가(?), 근데 알고 보니 타임리프를 할 수 있고…하지만 계속 죽고…(?), 남주를 꼬시는 것이 여주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어떻게든 살아남아 유혹해보려 하지만 계속해서 목이 잘릴 뿐이고……(?).
※추가: 비슷한 내용의 게임 배경 작품이 있다고 합니다!(동공지진) 그럼 저 이야기는 생각만 하는 걸로...(눈물)
혼돈 파괴 망각의 로판. 아무튼 이런저런 작품을 많이 쓰고 싶습니다! 비록 먼 훗날이 되겠지만요…크흡. (학교폭파 원정대 모집합니다. 1/1000)
6.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서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말정말 고마웠어요! 감사하고…제가 많이 사랑하고…(급 시상식 눈물바다).
다시 인사드리는 그날까지 늘 행복하고 건강하세요(__)♡ 사랑합니다.
2015 12월 5일
엘리아냥 드림.
+덤
엘리아냥: 얘들아 인사하자!^0^
라테: 사랑해요! 워 아이니! 아이시떼루! 알러뷰! 쥬뗌므! 맞나? 아 이런 건 지식인에 검색해서 한 100개국어정도로 말해줘야 하는데.
아윈: 고객님, 지금 뭐하는 거야?
라테: ? 뭐가?
아윈: 방금 씨발. 어디다대고 사랑고백을 한 거냐고.
라테: 아 그거…쟤가 시켜서(빠른 고자질).
엘리아냥: (배신감)
아윈: (예쁘게 웃는다)
엘리아냥: 살려ㅈ
지금까지 엘리아냥을…아니, 구들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기의 후기>
막간 가족이야기'-'★
~모녀끼리 어디 가는 중~
막내: 엄마
엄마: 왜?
막내: 난 정말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
엄마: 너무 예뻐서?
막내: 웅 >_<
나: 와 내 동생이지만 정말 답없다ㅁㅊ
막내: 닥쳐
나: 로답이라우 동무! 로답! 핵로답!
막내: (폭력을 행사한다)
~집~
엄마: 깜박하고 (차에)기름을 안 넣었네. 막내야 기름 넣으러 가자
막내: 응 잠만
(준비하느라 시간이 흐름)
엄마: 그냥 엄마 혼자 다녀올까?
나: 야 불효녀야 장난해?? 엄마 혼자 기름 넣으러 가면 큰일나거든? 고독사 하시거든?
막내: 헐 안대 엄마 기다려 내가 엄마의 목숨을 살려줄게
엄마: 허허허(개드립에도 웃어주시는 상냥함)
~컴퓨터를 하러 둘째(男)방에 기어들어간 막내~
막내: 언니
나: ?
막내: 바탕화면에 엄청 수상한 제목의 폴더가 있어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존중해주렴
막내: ㅋㅋㅋㅋ앜ㅋㅋㅋㅋ아니었어 언니 내가 잘못본거임
나: ??
막내: 폴더 이름이 '영화'야
나: 그럼 뭔줄 알았는데
막내: '영희'로 볾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내: 19금 영희시리즈 이런건줄
나: 미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