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8 8. 전에 알던 너도 아냐 =========================================================================
유전자조작(?)파이어볼 때처럼 운석들은 투명한 막에 부딪혀 공중에서 부서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빛과 굉음이 일대를 온통 뒤덮는다. 나는 저 암석들이 지표면으로 그대로 내리꽂혔을 때 벌어질 법한 사태를 상상하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사람한테 쓸 만한 마법이 아니다. 재개별 지역에서나 사용해주면 사회에 공헌도 되고 좋겠네. 응.
“ 이,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우주스케일의 폭죽놀이 같은 요란한 광경이 막 사그라들었을 무렵이었다. 경악에 찬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리는 것에 난 자연히 고개를 돌렸다. 나랑 아윈 말고도 또 다른 사람이?
그리고 알게 되었다. 여기 그냥 평야가 아니었구나.
“ 뭐야 뭐야? 뭔데?”
“ 탑주님?! 탑주님께서 하신…?”
“ 습격 아니죠? 화산폭발 아니죠? 아 이 근처에 화산 없지 참.”
옹기종기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 뒤로 익숙하고 드높은 검은 탑이 있었다. 음, 그러니까…여기가…마탑 뒷마당?
“ 소인의 견해로는 메테오 같소만…….”
“ 탑주님께서 메테오를? 근데 그런 것치곤 너무 멀쩡하다.”
“ 어!”
소란 사이로 누군가 불쑥 외쳤다. 검지 끝으로 정확히 나를 가리킨 채였다.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끼고 있는 반지일까.
지목하기 무섭게 그 사람의 옆에 있던 다른 이가 내뻗은 손가락을 냅다 후려쳤다. 소곤거리는 형상이라 들리지는 않았지만 입모양으로 보건데 ‘미친놈아’ 정도인 것 같았다. 곧이어 옆 사람 손가락을 내리게 한 이가 어색한 듯 해맑은 애매한 웃음으로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뱃심이 느껴지는 큰 목소리로 말한다.
“ 이렇게, 가리켜야지! 두 손으로! 하하! 그래서 이 친구야, 저분이 왜?”
떠올랐다. 칼단발! 이름이 카르댄밸이었던가? 나는 목 부근에서 찰랑거리는 남자의 머리끝으로 시선을 주었다. 가지런함은 여전하군. 날 특인가 초인가 아무튼 그런 고객님으로 기억하고 있겠구나.
처음 내게 삿대질을 했던 남자는 그런 카르댄밸을 황당하게 바라보더니 재차 떠듬 입을 열었다. 역시 지목한 건 반지가 맞았다.
“ 저 반지….”
“ 반지가 왜?”
“ 저거 예전에 버려진 레어인 줄 알고 잘못 기어들어갔다가 거의 죽다 살아나서 가지고나온 거잖아. 탑주님 아니었으면 그때 우리 다 뒤졌을 거라고 맨 날 그랬었는데.”
“ 여기서 그게 보여?”
카르댄밸의 반응이 내 심정이었다. 시력 뭐야 무서워…. 그나저나 반지의 출신지가 생각보다 엄청나다. 레어? 그 유명한 태산만한 판타지 도마뱀이 사는 집? 허어.
“ 자르보니다 안력 좋은 건 인정해줘야 한다니까. 파워아이랑 둘이 거의 엇비슷하지?”
“ 라시그 라세그 형제까지 해서 사대천왕일걸.”
“ 아무튼 저 반지, 들으니까 나도 생각난다. 그땐 정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 주변 마나를 흡수하는 능력이 상식 외라서 소화 못하는 마법이 없을 거라던 거 맞죠?”
“ 그 반지가…….”
이목이 쏠린 건 순식간이었다. 입구에 몰려들어 북새통을 만들어낸 그들의 눈동자가 모조리 내 쪽으로 향하기까지는 숨 한번 들이쉴 시간이면 충분했다. 불시에 내려앉은 침묵과 어딘지 부담스러운 스포트라이트 가운데, 뻘쭘해진 내가 표정관리에 힘을 쏟고 있을 때였다.
“ 반지가 왜 저 여자…아야! 왜?”
“ 미친놈이 진짜 눈치를 그때 레어에 버리고 왔나. 저분! 저! 분!”
“ …? 그, 그래. 아무튼 왜 저분 손에?”
자르보니다라고 불린 남자가 카르댄밸에게 또다시 얻어맞는 고행을 거치며 제 물음을 토해냈다. 왜 내 손에 있냐니, 그야 직접 받았으니까…. 그걸 상상하기 많이 힘든가? 의아함으로 점칠 된 시선들에 내가 답을 주기 위해 막 입술을 떼려던 차였다. 실상은 한발 앞서 아윈에게서 나왔다.
“ 내가 줬으니까.”
“ !”
이후 두 번째 침묵이 내려앉았다. 좌중을 삼킨 고요 속에 어쩐지 동공지진소리만이 가득히 울리는 기분이었다. 이번 정적은 앞전에 비해 한층 늦게 깨졌다.
“ 누구…시길래 절대반지를 주셨……?”
단체 동공지진 사이에서 한 사람이 용기를 냈다.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이름이 진짜 절대반지였어? 아니 뭔가 되게 어울리기는 한데.
그리고 이어진 대꾸에 나는 선 자리에서 고꾸라질 뻔했다.
“ 안주인.”
“ 뭐라고!”
가장 빠른 반응은 나한테서 튀어나왔다. 난 청세포가 소리를 인식하자마자 반사적으로 소리부터 질렀다. 보나마나 지금 내 눈동자는 일당백의 지진을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파격적이라고 표현하기 미안할 정도로 파격적인 발언을 입에 담은 아윈은 정작 태연한 얼굴이었다.
“ 마탑 안주인.”
확인사실이 덧대어졌다. 그 즉시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 카르댄밸?! 시므야그!”
“ 시므야그는 본래 심약한 성정이라 툭하면 저런다지만 카르댄밸은 대체 왜?!”
“ 이보게, 정신 차리게! 이런, 완전히 넋이 나갔소!”
“ 어서 안으로 옮겨!”
“ …….”
벌어진 소동에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가녀린 자세로 바닥에 널브러진 두 사람을 보니 갑자기 내 충격과 놀람이 하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왜……왜 님들이 기절을…?
폭탄선언 자체보다 그에 대한 타인의 리액션에 더 큰 혼란을 겪고 있을 때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남편이 된 아윈이 나도 모르는 사이 마탑의 안주인이 된 내 어깨를 감싸왔다. 귓가에 숨결이 닿았다.
“ 안개, 보여줄게.”
“ 어?”
이 판국에 뭔 안개? 그리고 어, 어깨랑 숨결은 또 뭐니? 그러나 어느 쪽도 물을 새가 없었다. 눈을 깜박이기 무섭게 풍경이 변한다. 텔레비전 화면을 넘기듯 순식간에 일어난 교체였다.
마탑 최상층의 방, 그와 연결된 탑의 꼭대기. 전에 앉았던 자리와 동일한 위치로 아윈은 저와 나를 이동시켰다. 풀썩, 자연스럽게 아윈에게 이끌려 나는 또 그 난간에 다리를 뻗고 걸터앉는다. 착석하고도 한동안 얼이 빠져 난 눈꺼풀만 껌벅였다. 처음 인식한 것은 이 자리가 저번만큼은 무섭지 않다는 점이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전방으로 먼저 시선을 옮겼다. 당시엔 아래에만 깔려있었던 안개가 성큼 솟아올라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안개 보여준다더니 진짜 안개를……어, 근데 이 안개 멀리서보면 꼭 구름 도너츠 같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 난 옆으로 힐끔 눈을 돌렸다.
‘ 아 역시.’
물끄러미 이쪽을 응시해오는 아윈과 지척에서 눈이 마주친다. 하마터면 눈을 질끈 감을 뻔했다. 바로 직전에 그 난리를 치고도 이렇게 둘만 가까이 붙었다고 금세 심장이 쿵쾅거리며 익숙한 야단을 떨어댄다. 경보기도 아주 법석이었다.
아윈은 잠자코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전체를 새기듯 계속해서 그저 눈에 담는다. 별다른 말도 없이 지속되는 시선이 이만큼이나 사람을 어쩔 줄 모르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덕분에 이리 배우고 만다. 얼굴 가득 열이 올랐다.
“ …….”
전에 이곳에 왔을 때, 그때는 내가 아윈을 좋아한다는 걸 몰랐다. 모르면서도 잡힌 손과 닿는 눈길을 신경 썼다. 상대가 지나치게 해롭다고 생각했다. 그럼 지금은?
“ 야, 그…그만 보렴.”
통하지도 않을 소릴 하며 난 눈따따를 든 손으로 낯을 가렸다. 다른 손은 언제 잡았는지 의식도 못한 사이 아윈에게 붙들린 채였다. 눈따따를 방패 삼은 내가 가만있지 못하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귀는 물론이고 목덜미까지 당연히 빨갛게 익었을 게 뻔하다. 아아아. 부끄러워 끄아아.
“ 원래는.”
아윈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눈따따가 저 멀리 하늘을 날았다. ?! 눈따따야! 장막을 잃은 내 시야로 한층 가까워진 아윈의 얼굴이 고스란히 자리를 잡았다.
난 생각을 멈췄다.
“ 반지에 실드도 같이 새길까 했는데.”
“ …….”
“ 마음을 바꿨어.”
“ …….”
“ 내가 항상, 늘, 필요할 때마다 고객님 곁에 있을 테니까. 실드 따위 쓸 일이 없도록.”
그, 그렇니? 그렇구나. 그, 그래. 마음이 허둥지둥한다. 그러는 사이 다가온 이마가 닿았다. 아주 천천히, 몹시 조심스러웠다.
“ 반지는 그냥, 고객님이 손수 조지고 싶은 인간이 있을 때나 써.”
“ …….”
“ 그리고.”
맞닿은 곳을 통해 전해지는 체온은 여상히 따뜻했다. 나는 그 높은 온도와, 귓가에 직접 내려앉는 목소리와, 오롯이 나를 향하던 시선 따위에 꽁꽁 사로잡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들숨날숨이 내 최고로 적극적인 행위였다. 그 숨소리마저 떨렸다.
한 호흡을 쉰 아윈이 입술을 도로 열었다.
“ 라테.”
그리고 나는 또, 찰나 숨 쉬는 법을 잊고 말았다.
“ 계속 이대로 있어. 내가….”
“ …….”
“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곳에.”
“ …….”
“ 언제까지든.”
심장이 널뛰었다. 박동하는 소리가 선연했다. 이 자리에, 이 순간에, 상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난 눈꺼풀을 한차례 움찔하고 나서야 내가 눈을 깜박일 줄 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도, 숨소리도, 세포 하나까지 떨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입을 열어 가까스로 내뱉은 짧은 한마디까지 떨림을 담아냈다.
“ 난…….”
“ 잘 생각해야 돼. 아니면 내가 미칠 수도 있으니까. 나 정신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나라 한두 개 지도에서 지워지는 걸로는 안 끝나.”
“ 뭐?”
덧붙여진 말에 나는 꼼짝없이 굳어있다 결국 푸헛 웃음을 터뜨렸다. 숨 쉬는 것도 힘이 드는 마당이었는데 기습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 저게 고백인지 협박인지. 얼핏보면 영 허황한 것 같은 으름장이 충분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이 더 웃겼다. 한번 터진 웃음은 잘 멈추지 않아서 난 정말 한참을 웃은 후에야 다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불과 조금 전보다는 한결 수월하게 대답이 나왔다.
“ 그러게, 맞네. 미치면 큰일 나지. 그럼…난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도 평생 네 옆에 꼭 붙어있어야겠다.”
말하면서도 얼굴이 홧홧 타올랐지만 최대한 의연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목소리가 떨리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내 음성이지만 참 바들바들 연약하게도 나왔다. 괜히 민망한 기분에 내리깐 눈을 들지 못하고 있으려니 아윈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타고 낮게 스며들었다.
이어 녹을 것 같은 음색이 공기를 흔든다.
“ 눈 피한 김에, 그대로.”
“ …….”
“ 감아.”
뭘? 왜?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홧병을 일으킨다는 희대의 둔치일지라도 이 분위기에 저 말이 뜻하는 바를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걸 못 알아들으면 정말, 그렇지, 연애방면 모든 뇌세포의 파괴를 의심해보아야 한다.
나는 눈을 감았다. 연애부의 뇌세포가 바로 그거라고, 잘한다고 일러주는 것 같았다. 왠지 응원도 겸하는 느낌인데.
이내 잊지 못할 감각이 입술위로 내려앉았다.
*
마탑은 대체로 조용하기보단 시끌벅적했다. 딱히 말이 많은 유형들만 모인 건 아니었지만-굳이 따지자면 과묵한 인원의 비율이 더 많았다-, 떠들기 좋아하는 몇몇 구성원이 저마다 일당백의 시끄러움을 담당했기에 탑 내부는 좀체 잠잠할 날이 없었다. 물론 아윈이 탑 내에서 살벌한 분위기를 펄펄 풍길 때는 예외였다.
아로브럭은 쓰고 있던 안경을 조심스레 벗어 내려놓았다.
‘ 오늘은 또 무슨 일인지.’
책읽기라는 정적인 취미를 지닌 아로브럭은 매일 같은 소란을 그리 달가워하진 않았다. 다만 호기심이 넘치는 터라 벌어지는 사건들을 꼭 그냥 지나치지 못할 뿐이다. 바깥에서 벌어져 일층 안으로 타고 들어온 소동에 그가 서고에서 몸을 일으켰다. 넘나레드와 카르댄밸 그 맛 간 콤비가 볼 때마다 최고의 현자아이템이라며 놀려대는 안경은 눈에 안 띄게 품안으로 잘 갈무리한 뒤였다.
“ 카르댄밸, 정신 차리……얘 우냐?!”
“ 울어?!”
“ 충격적인 건 이해하지만 이건 좀 과한데. 무슨 탑주님한테 금단의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도 아닐 테고.”
“ 잠깐, 얘 뭐라 말한다. 카르댄밸…뭐라고? 더 크게 말해봐. ……뭐? 살 가치가 없어? 내기에 져? 누구 이 말 이해하는 사람?”
“ …….”
아로브럭은 일층으로 내려오자마자 석상처럼 그 자리에 굳었다. 카르댄밸. 카르댄밸이 바닥과 하나 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더욱 격하게 혼절한 시므야그도 널브러져 있었지만 저 양반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성성한 수염이 파들거린다. 아로브럭은 겨우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 무슨…일입니까?”
“ 아, 아로브럭씨. 안에 있어서 못 들었나보네요. 방금 탑주님께서 웬 영애더러 안주인이라며 말씀하셔가지고. 그 때문에 두 명이나 이 꼴이 됐어요.”
“ 노란머리에 개털이었지?”
“ 맞는 말이긴 한데 앞으로는 그거 꼭 속으로만 생각해라.”
“ 아차.”
‘ 내 수…염…….’
안주인. 듣자마자 눈앞에 벼락이 쳤다. 설마가 사실이 되었다. 넘나레드가 양손에 가위를 쥔 채 대소와 함께 달려드는 형상이 얼핏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 안 돼.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아로브럭의 몸이 힘없이 기울어졌다.
“ 헉!”
“ 왜? …헉! 아로브럭씨!”
털썩.
그렇게 마탑은 세 번째 실신자를 맞이했다.
============================ 작품 후기 ============================
카르댄밸: 넘나레드 따위에게 지다니...더 이상..살아갈 이유가 없다...(옥상)
+
S: (일본 먹방 사진)
H: 대박
나: 허류ㅠㅠㅠㅠㅠ쩌러ㅠㅜㅜㅜㅜㅜㅜㅜ
H: 우리 일본여행갈때
H: 식비 낭낭히 챙기자
나: ㅇㅅㅇ킄킄 걱정말라굿
나: 원래 여행경비의 90퍼는
나: 식비라굿
H: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 ㅋㅋㅋㅋㅋ위장 비워놓고 와
나: ㄴ
나: 여분의 위장 챙겨감
H: 난 두 개 챙겨감
S: 여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