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0 7. 악역은 네 이년! 하고 웁니다 =========================================================================
“ 각하.”
이벨린이 곁에 있었으니 딱히 놀랍지도 않은 만남이었다. 여기서 만난 걸 보니 그럼, 후에 아이언 단죄는 케니스가 하려나? 그리 짐작하는데 웬일로 녀석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
“ 너.”
“ 저요?”
불러놓고 케니스는 왜인지 말이 없었다. ? 뭐? 불렀으면 어서 내게 토킹을 해! 난 독심술 못 써! 소심하게 마음으로 재촉하고 있자니 잠시 후 케니스가 입을 열었다.
“ 언제 마탑주랑 그렇게……아니다.”
어엉?
그렇게? 그렇게 뭐? 케니스는 또 기껏 꺼내나 싶던 말을 도중에 요상하게 잘라먹었다. 마탑주랑 그렇게? 그렇게 다음이 대체 뭔데요 님아. 케니스가 말을 찜찜하게 끊어버리니 내 기분도 덩달아 찜찜해졌다. 나는 뭐라고 항의해야하나 고민하다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 그러는 각하께서야말로 언제 황태자전하랑 그렇게……아닙니다.”
묘한 어조로 끝을 흐리니 케니스가 곧장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가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음흉하게 웃자 바로 따지고 든다.
“ 무슨 뜻이지?”
“ 뭐가요?”
“ 그렇게 뭐. 말을 똑바로 완성해서 해라, 사람 답답하게 하지 말고.”
“ 각하께서 먼저 그랬거든요?”
그제야 내가 자길 일부러 따라한 걸 알았는지 케니스가 할 말을 잃고 조용해졌다. 이래서 역지사지가 명언이라니까. 지러브 사건 이후로 나름 말랑해지고 친해진-내 착각일 가능성 존재-케니스는 잠깐의 침묵 이후 순순히 내게 끊었던 뒷말을 들려주었다.
“ 친분이 있는 듯 보여 한 얘기다.”
“ 친분이요? 마탑주랑 제가요?”
“ 그래. 그러니 녀석이 일부러 널 도왔겠지.”
“ 도와요?”
앵무새도 아닌데 자꾸 들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 첫 번째는 그래, 그렇게 보일 여지가 있는 걸 나도 대충 인정하니 그렇다 치고, 정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건 두 번째였다. 아윈이 날 도와?
“ 언제요?”
“ 파티장.”
짤막한 대답은 고작 한 단어였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를 습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파티장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장엄한 기세로 바닥을 구르던 아이언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아. 설마 그게…….
그럴법하네. 가능성이 푸짐하다. 어째 반동이라거나 발을 헛디뎠거나하는 이유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맹렬히 구른다싶었는데, 아윈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납득이 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만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 그거, 절 도와준 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뭐?”
“ 그냥 상대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마침 굴리기 좋은 위치에 있었다거나?”
“ …….”
“ 아니면 별 이유 없이 심심해서 굴렸다거나?”
대답은 없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제법 그럴싸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무래도 날 위해서라는 이유보단 저편이 더 신빙성 있었다.
이 주제가 일단락되자 케니스는 이벨린에게로 관심을 전환했다. 원래부터 그랬어야하는데 아윈이 나를 도운 걸로 보였던 게 어지간히도 놀라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여주인공을 두고도 나한테 우선 말을 걸었지. …되새기니까 열 받네? 도와준 게 뭐? 뭐.
주고받는 대화와 흘러가는 분위기로 보아 두 사람은 곧 데이트라도 시작할 낌새였다. 요즘 이벨린도 참 바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덤벼드는 자잘한 엑스트라들 상대해주랴, 번갈아 우연히 만나는 물고기들이랑 공평히 썸 타랴. 덕분에 나야 볼거리가 풍성한 나날이었지만. 아, 아윈은 제발 마주칠 때마다 눈따따 안부 좀 그만 물었으면. ‘내 분신 잘 지냄’하고 쓰인 카드를 하나 만들어두고 아윈만 등장했다하면 이마에 붙여버릴까 보다.
“ 전 이만!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나는 몽실몽실 핑크색 구름을 만들기 시작하는 물고기와 어장주인을 응시하다 슬슬 작별인사나 건넸다. 따라다니며 구경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왠지 아이언과의 사투(?)를 벌인 걸로 할당량(?)을 다 채운 기분이라 딱히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집에 가야지!
케니스는 확실히 많이 말랑해졌다. 무시할 줄 알았더니 웬걸, 인사도 받아준다. 권력자와 사이가 좋아진다는 건 나름 기쁜 일이지. 난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택에 귀환했다.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릴리에게 달려가 쾌거의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분노조절장애 아이언몹을 물리친 무용담은 마음 같아선 과장을 왕창 덧대고 싶었으나, 인간 확성기 에슐라를 의식해 최대한 실제보다 순화하고, 순화하고, 또 순화해서 들려주었다. 착한 릴리는 고된 훈련의 보람이 있었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난 축배대신 축팝콘을 들며 원작에서 그려진 아이온의 말로를 회상했다. 그녀는 머지않아 한 괴팍한 늙은이가 가주로 있는 귀족가문에 시집을 가게 된다. 그것도 늙은이의 다섯 번째 첩으로. 대개 가난한가문의 버린 여식들이 지참금 때문에 팔려가듯 부인이 되는 최악 중의 최악의 혼처였는데, 멘타르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할 테냐 딸을 버릴 테냐 하는 물고기의 협박에 후자를 택하여 아이언을 그곳으로 보낸다. 아, 그거 아윈인가보다. 마탑이랑 척질래 딸년 버릴래 뭐 이랬던가? 아무튼 아이언은 시집을 가 늙은이의 다섯 번째 첩이 되는데, 문제는 늙은이가 성격만 괴팍한 게 아니라 손버릇도 험했다는 거다. 그녀는 그야말로 생판 모르는 곳에서 비참한 첩살이를 시작하게 된다.
아이구…불쌍한 아이언. 그러게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주인공한테 그 난리를 쳐선. 기실 뺨도 못 때렸겠다 고작 말 몇 마디 한 것에 대한 대가론 지나친 감이 있었지만, 성질머리를 보건데 그간 아랫사람들에게 손찌검 발찌검을 숱하게 해왔을 것이 뻔해 따지고 들면 적당한 인과응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이언 애도. 다시 한 번 사요나라. 현실도 현실이지만 소설 속에선 정말 착하게 살아야 한다. 저 늙은이도 언젠간 첩들 중 한명한테 칼 찔려 죽겠지?
“ 좌우간 이제 근심 무!”
나는 중얼거리며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온건-나불파는 물론이요 이제 급진-번쩍파도 걱정 없다. 엑스트라의 스윙 따위 밥 먹다가도 막을 수 있었다. 오호홋! 가소로운 것들! 떼로 덤비면 또 모르겠지만 그럼 그냥 황녀언니한테 가서 일러야겠다.
더 이상 내 구경에 장애물은 없었다. 옥체보존하며 이 꼴도 관람하고 저 난리도 관전하고 그래야지! 난 태평하게 위기 없는 구경꾼의 훈훈한 앞날들을 상상했다. 한바탕 신나게 구경하다가 페리도트언니가 진격할 때쯤만 잠시 몸을 사리지 뭐!
그리고 그 안일한 생각은 날이 밝은 뒤 내 앞으로 날아온 초대장을 확인하는 순간 와장창 박살났다.
*
“ 나는 똥멍청이야.”
자학은 취미가 아니었지만 지금만큼은 스스로를 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가까스로 벽에 머리를 박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여긴 연회장이었다. 발광석을 대체 몇 개를 심었는지 번쩍거리는 샹들리에가 너른 홀을 골고루 비추느라 바쁘다. 눈을 떼기 힘든 찬란한 장식품들, 기다란 테이블을 가득 채운 휘황한 각종 디저트들까지 눈이 가는 곳마다 온통 고가의 향기가 진동을 한다.
평소 같으면 ‘이것이 돈의 맛!’ 거리면서 샴페인이라도 하나 들어 맛봤을 텐데, 현재는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난 참담한 심정으로 화려한 홀 내부를 둘러 살폈다. 허엉.
나는 페리도트 가넷이 주최한 연회에 초대받았다.
물론 초청을 나만 받은 건 아니다. 초대장은 이벨린에게도, 황태자에게도, 케니스에게도, 아마 마탑주에게도 갔을 것이다. 문제는 본래 초대장이 그들에게만 발송되었어야한다는 점이었다. 난 빼고!
라테 엑트리는 아는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한 미진한 지위의 자작가 여식이었다. 위세 높은 후작가 금지옥엽인 페리도트와는 조금도 인연이 있을 리 없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 아이고오.’
나는 한탄했다. 빨빨거리면서 이벨린의 곁에서 구경을 일삼을 때, 구경만하면 또 모르겠는데 내게 걸어오는 시비를 이리 받아치고 저리 받아칠 때, 난 이런 상황을 예기했어야했다. 페리도트가 수집한 정보 중에 분명 일말이지만 내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단 한줄, ‘이벨린의 곁에 껌처럼 붙어 다닌다더라.’ 하는 겨우 이 정도의 언급일 뿐이더라도.
페리도트는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한다.
그래! 걔는 눈에만 띄면 남의 집 햄스터도 써먹는다! 으앙! 이걸 왜 이제야 실감하니! 이 똥멍청이가, 집에만 칩거하며 한동안 바깥공기를 회피해도 모자랄 판에 구경한다고 싸돌아다니긴 뭘 싸돌아다닌 건지. 뒤늦은 후회에 난 그저 한숨만 늘렸다. 거기다 페리도트도 내 예상보다 조금 일찍 출격했고.
“ 라테 엑트리님. 맞으신가요?”
자책에 빠져있는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저택의 사용인으로 추정되는 여인이 정갈한 자세로 가만 서 있다. 맞다고 긍정하자 내게 심장 떨리는 소식을 전해왔다.
“ 페리도트 아가씨께서 영애를 따로 뵙길 원하십니다.”
꺄아악!
벌써! 넘 빨라! 갑작스러워! 난 속으로 온갖 비명을 지르며 겉으로는 최대한 침착한 척 차분히 사용인의 뒤를 따랐다. 음, 뭐랄까…둘만의 밀회를 가지기엔 우리사이, 아직 많이 이르지 않을까요? 난 천천히 가는 게 좋은데. 심지어 페리도트는 현재 홀에 입장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바, 방에서 만나자는 거니?
똑똑.
“ 아가씨. 라테 엑트리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 들어와.”
달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문 옆에 자리한 호위기사의 매서운 눈길이 내게 잠깐 닿았다 떨어진다. 저기 호위님, 솔직히 페리도트를 지킬게 아니라 페리도트한테서 다른 사람들을 지키는 게 더 알맞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나라든가. 가령 나.
“ 들어가시죠.”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떼 문턱을 넘었다. 으어어, 무슨 면접 보러가는 것보다 더 떨리냐. 쿵더쿵 널뛰는 가슴을 애써 달래며 호화로운 방 안 풍경을 눈에 담자, 광활한 실내 한가운데 소파 위를 차지한 페리도트가 보인다. 사용인은 그녀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린 뒤 이내 자리를 비켰다.
…둘만 남았네. 이 와중에도 페리도트는 여상히 예뻤다. 워후 여신.
“ 엑트리 영애?”
“ 네.”
“ 이리 와서 앉아요.”
나는 자동적으로 조신히 몸을 움직였다. 페리도트는 여러모로 가장 대하기 어렵고 시종일관 경계를 기울여야하는 인물이었다. 지닌 권력 및 힘으로만 따지면 감히 물고기들에 비할 수 없었지만, 이벨린 실드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과 내가 굳이 깝죽대긴커녕 제자리에서 숨만 쉬어도 잡아다 죽이려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위험요소가 낙낙했다.
후, 벌써 정신력소모 쩐다. 자꾸만 심쿵해! 그나저나 이 언니는 날 왜 부른 걸까.
“ 이벨린 도트 영애와 친분이 있다죠.”
“ …네.”
“ 자주 함께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과연 소문까지 났으려나. 엑스트라 악역언니들은 그냥 그 자리에 내가 있길래 건드린 것뿐 매번 나에 대해선 거의 모르는 눈치였다. 그녀들은 늘 이벨린 한명만으로도 씹고 뜯고 물고 다지기 바빠서 기실 내가 옆에 붙어있든 아니든 관심이 없었다. 실제 이벨린도 나보다는 물고기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냈기 때문에 나는 딱히 화제 근처에도 오르지 않았다.
당연히 일부러 캐낸 거겠지. 이벨린 근처의 사소한 어떤 것들까지 모조리 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한동안 구경을 포기하고 집에서 은둔형 외톨이노릇을 했었더라도 어차피 불려왔을 거라는 추론이 나왔다. 뭐얌 이거 정해진 운명인가…또르르.
“ 다른 게 아니라, 제안할 게 있어서 보자고 했어요.”
“ 제게요?”
“ 그래요. 별 건 아니고.”
페리도트는 운을 띄워놓곤 말을 한 호흡 쉬었다. 난 그사이 이어질 내용을 추측하느라 머리를 열심히 굴려댔다. 이런, 두뇌회전이 오랜만이라 상당히 삐걱거리는걸? 도대체 나한테 뭔 제안을……잠깐. 설마 그거?
그럴듯한 상상이 머리를 때림과 동시에 상대가 입을 열었다.
“ 도트 영애를 배신해요.”
============================ 작품 후기 ============================
<돌발 퀘스트 "이벨린의 통수를 쳐라!" 가 도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시: 죽음
거절시: 죽음
라테: ? ㅅ벌
+
ㅎ넝담~ 우리 라테는 꽃길만 걸을 거라능ㅎ
ㅎ> < 지금가튼 꽃 길 ☆
++
(ㄸ얘기 주의)
막내: (큰 볼일을 보고 나온뒤 잠시 후, 양치하러 화장실로 회귀)
화장실: (ㄸ냄새)
막내: 아 ㄸ냄새나!
아빠: (정색)그거 니 ㄸ이잖아
막내: 아하ㅎㅎ냄새쩌러
아빠: 어쩌라고 니 ㄸ인데
막내: 넹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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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윈 등장 열시미 땡겨보고 이뜹니다"-" 씨유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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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라테에게 이 세계는 아직 소설속인가요?
A. 넹. 온전히 현실로 받아들이는 계기는 더 뒤에 있습니다 >
그 밖에도 대답해드리고 싶은 댓글들이 많지만 스포라서ㅜㅜ참고 이뜹니다 끙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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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졜리님, pingno님, soulover님, 수상한손님님, 라프니아님, ppippi님, 세남매님, 0네레시스0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 *. _.)/ --------☆-☆-☆☆-☆ 이거슨 사랑으 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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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화 기여운 대끌(카시아렌님): (/▽\) 아위니 업~~땅~ \( ˚ ▽ ˚ ) / 여기따!
줍줍한 이모티콘(날스괴님): 맛있겠당 (๑´ڡ`๑)
줍줍한 이모티콘2(해햐님): 하악 아윈?! (。◑∀◑。)
이 밖에도 여러 이모티콘들ㅋㅋㅋㅋㅋㅋㅋㅋ왜케 귀여워욬ㅋㅋㅋㅋㅋㅋㅋㅋ덕분에 잘 줍고있습니다 ㄳㄳ 'v'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