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경하는 들러리양-64화 (64/100)

00064  6. 에이레네의 밤: 저잣거리  =========================================================================

“ !”

어이쿠 살았다! 나는 반쯤 튀어나온 심장을 도로 제자리에 넣고 나와 지러브의 사이를 타이밍 좋게 가로막은 기다란 무언가를 응시했다. 와 진짜 깜짝 놀랐네! 하마터면 내 소중한 심방이와 심실이들 실종신고 할 뻔했다!

내게 달려드는 지러브의 허리께를 막아 움직임을 차단하고 있는 물체는, 다름 아닌 짙은 흑색의 검집이었다. 정체를 확인하고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집? 누구 꺼? 퍼뜩 시야를 돌리자 다름 아닌 케니스가 언제 이동했는지 검집을 쥔 채 지척에 서 있었다. 그야말로 이 상황이 짜증나서 죽을 것 같다는 끔찍한 표정으로. 나는 케니스가 검집으로 지러브를 막고 있는 그 충격적인 광경을 응시하다 눈을 부릅떴다. 헛! 케니스가 날 구했다?

얘가 웬 일이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케니스에게 도움을 받고 있으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문득 개드립이 넘실거리며 올라왔다. 크큭, 케니스야 놀랬느냐? 너도 모르게 네 몸이 멋대로 움직여 나를 구하고 말았을 테지. 네 통제를 벗어나버린 움직임!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내 필사의 비기 꼭두각시 조종술! 크하하핫!

…이걸 꺼냈다간 케니스가 손수 지러브를 다시 내게로 밀어주겠지. 참자. 나는 미친 사생팬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는 소중한 검집님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일단 살긴 살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지. 검집은 지러브의 배 부근을 후려치거나 하진 않고 다만 허리춤에서 그녀의 달려듦만을 봉쇄하고 있었다.

제 소행을 케니스가 나서 막았다는 사실에 거한 타격을 받았는지 지러브의 얼굴에는 충격과 놀람이 가득했다. 한꺼풀 누그러진 기세로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몸 앞의 검집과 케니스를 연달아 응시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 결심하고 주먹을 힘껏 쥐었다.

지러브를 퇴치하자!

날도 어둡고 난 지금 가면까지 쓰고 있었다. 설마하니 그녀가 나를 기억했다가 훗날 보복하러 쫓아오진 못할 것이다. 그래, 해치우자! 쫓아 보내자!

마음 같아선 스크롤이라도 써 혼자 내빼고 싶었지만 그래도 도움을 받은 마당이었다. 그리고 나는 염치가 있는 여자지. 행동을 결정하자마자 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있는 힘껏 외쳤다.

“ 썩 물럿거라! 사악한 사생팬아!!”

“ ?!”

지러브가 흠칫 놀란다. 나는 그러한 그녀의 면전에 대고 계속해서 같은 말을 마치 주문이라도 외듯 소리 질렀다. 이이제이. 미친년에는 역시 미친년이지! 대신 난 격투기가 안 되니까 목청으로 간다!

“ 썩 물럿거라! 사악한 사생팬아!!”

“ 무, 무슨,”

“ 썩 물럿거라! 사악한 사생팬아―!!”

“ 이게 뭐하는,”

“ 써억 물럿거라, 사악한 사생팬아아―!!”

복식호흡까지 해가며 소리쳤다. 흡사 고장 난 기계처럼 같은 외침을 반복하는 내 행동에 지러브가 점점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올, 이거 왠지 퇴마하는 기분인데? 나는 계속해서 힘껏 우렁찬 뱃심을 질렀다.

“ 썩 물럿거라!! 이이이 사악한 사생팬! 사악하다 사악해! 아아아 사악하도다! 사악한 사생팬…! 사생팬! 사생팬! 사생팬!! 사악한 사생팬!!”

“ !”

앗 너무 심취했나. 영혼까지 담은 피를 토하는 외침에 그녀가 꼭 저주라도 받은 사람처럼 새하얗게 질린 안색을 했다. 저 낯색은 익숙한 게 어째 비숏을 떠올리게 만드는 걸. 지금쯤 무도회에서 잘 놀고 있으려나.

이내 검집을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하고 있던 지러브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 가, 각하….”

떨리는 눈빛. 떨리는 목소리. 거리를 벌린 그녀가 부들부들 입을 열었다.

“ 어, 어찌…소녀를 마다하시고 태, 택하신 것이…저런….”

뭔가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꺼져주기만 한다면 상관없었다. 나는 여기까지 온 김에 아예 발을 쿵 구르며 몸을 한 발짝 앞으로 들이밀었다. 내 허세에 지러브가 흠칫한다.

“ 어, 어찌 저런 미, 미….”

“ 미 뭐? 뭐!! 야 그냥 뜰까? 어?! 드레스자락 떼고 한판 붙을까!!”

물론 그랬다간 십중팔구 이쪽이 발리겠지만 일단 지금 이 순간 말만큼은 내가 세계챔피언! 나는 재차 복식호흡으로 고함쳤다.

“ 덤벼 이 사악한 사생팬아!!”

“ …!”

“ 덤벼! 사생팬! 사악한 사생팬!!”

“ 크윽…!”

“ 사악한 사생팬! 아아아아 사악한 사생팬――! 사―생―팬―!!”

결국 지러브는 도망쳤다.

나는 뒷걸음질 치다가 마침내 등을 돌려 달아나는 지러브의 뒷모습을 흡족하게 응시했다. 하하하! 아 완전 뿌듯하다. 악령퇴치에 성공한 퇴마사의 기분이 바로 이런 걸까. 나는 입가에 저절로 걸리는 흐뭇한 미소를 매단 채 조금 전까지 지러브가 있던 자리를 훑었다. 퇴치했도다. 비록 배랑 목은 좀 아프지만 어쨌든 물리쳤다!

과연 미친 여자한테는 마찬가지로 미친 여자 컨셉이 딱 이라니까. 효과가 끝내준다. 나는 시원하게 웃음 짓다가 그대로 케니스와 눈을 마주쳤다.

“ …….”

넌 왜 움찔하냐.

“ …….”

그건 무슨 표정이니?

난 침묵 속에서 케니스와 시선을 교환하다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열기가 가라앉고 생각해보니 아주 조금, 정말 조금이지만 부끄러운 기분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괜찮아! 밤이고 가면도 썼고 무엇보다 길에 인적이 없으니까! 내게 남은 건 지러브를 퇴치했다는 영광스러운 결과뿐이다. 나는 일부러 고개를 빳빳이 들고 생색이나 좀 냈다.

“ 도와드린 겁니다.”

그래. 지러브를 물리친 건 나도 좋지만 너도 몹시 좋은 일이 아니더냐. 그리고 어떻게 보면 좀 전의 퇴치는 나와 케니스의 합작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언니의 돌진이 막혀있어서 내가 용기를 낸 거거든.

“ 덤벼드는 걸 먼저 막아주셨으니까 쌤쌤으로 칠까요?”

서로 한 번씩 도와 준거지. 공평하다. 딱히 대꾸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케니스는 의외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선선히 긍정의 답을 주었다. 음음. 장하다, 푸딩 케니스야. 따지고 보면 애초에 너 때문에 지러브를 만난거긴 하지만, 지러브가 등장하자마자 나를 버리고 사라지는 선택지를 택하지 않았으니 봐주도록 하겠노라.

그렇게 나 혼자 속으로 케니스를 용서하네 마네하고 있는데,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지러브가 처음 등장했을 때 케니스는 짜증과 혐오감은 넘치게 내비쳤지만 놀라는 기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지러브 정도면 일생에 한번 만날까말까 막장수준 인 것 같은데. 안 놀랄 수가 있나? 물론 그녀가 역사 깊은 오래된 사생팬이라 그럴 가능성도 있었지만, 나는 문득 다른 가정을 생각했다. 케니스 얘…설마하니 이런 일 자주 겪나?

“ 저기, 각하.”

“ ?”

“ 혹시…음……좀 전의 광년, 아니 지러브 영애 같은 경우가…흔한가요?”

말을 던지면서도 에이 설마, 하는 심정이 들었다. 솔직히 말이 되나. 이 세계 사교계의 미래가 어찌되려고 저런 크레이지 걸들이 흔하겠어. 뭐 찾아보면 곳곳에 제법 숨어있을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숫자가 죄다 케니스한테 덤벼든다는 건 또 말이 안 되는…….

안 되는….

너 왜 부정 안하냐?

“ 가, 각하.”

내 동공이 아까 전과는 다른 의미로 떨렸다.

케니스는 도저히 부정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고요함을 지키다가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야 입을 뗐다. 그리고 꺼낸 것은 지러브와 방향은 달랐지만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들이었다.

“ 관심을 끌기 위해 마차 앞에 일부러 뛰어드는 영애도 있었다.”

“ !”

“ 임무를 나가면 어떻게든 알아서 쫓아오기도 하더군.”

이어서 그는 어느 산맥으로 몬스터 토벌을 나갔을 때 그 험준한 산세에서 예쁘장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영애들이 하나같이 위기에 처해 ‘도와주세요’를 외치고 있었던 기억도 들려주었다. 토벌 도중에 최소 다섯 이상은 만났던 것 같다고. 미, 미친.

우연인척 하며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스토커들은 아주 기본이었다. 나는 그 구구절절한 사연담을 들으면 들을수록 들끓어 오르는 애잔함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심지어 가만 경청해보면 얘 어릴 때부터 시달렸어…! 와 핵너무해! 얘 원래 이렇게 불쌍한 캐릭터였나?

원작에서는 자세한 사례들까진 나오지 않고 다만 ‘유독 시달림이 심했다’정도로만 언급되었었기에 구체적인 정도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인기가 하도 극성이라 여혐에 걸렸다는 설정이 나오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었는데, 와……진짜 심했다. 여혐 인정. 곱선생 인정.

나는 케니스의 안쓰러운 인생사(?)를 들으며 현대에서의 인기아이돌과 극성 사생팬의 모습을 떠올렸다. 방송에서 다루는 내용들을 보면서 저 아이돌 저러다 정신병 걸리는 거 아닌가 싶었었는데, 그 판타지 버전이 여기 있었다니. 사생팬이 비유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사생이었어! 게다가 직접적으로 위해를 끼치기보다는 정신적으로 빡치게 하고 거슬리게 하는 것이 대다수였기에 딱히 처벌하기도 마땅치 않은 것이 실상이었다. 케니스를 후드려 패는 것도 아니요, 흉기로 공격하는 것도 아니요-내 콧구멍 팝콘 어택은 공격이었군…!-, 단지 ‘사랑 한다’는 핑계를 뒤집어쓰고 들러붙는 겉보기엔 가녀린 레이디들이었으니 당하는 사람만 그 미치고 팔짝뛰는 심정을 이해 할 것이다. 나는 흡, 손으로 입을 가렸다.

불쌍해!

불쌍하다. 어느 정도냐면 마음을 울리는 짠내에 저절로 상대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 만큼이었다. 힘내라며 어깨를 토닥토닥! 도닥도닥!

“ 각하…….”

“ 말해라.”

“ 죄송한데 저 검집 잠시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아, 절대 맨손으로 안 만질게요.”

나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보였다. 길을 걷다 언제 어디에서 상처투성이 기사님을 만날지 모른다며 에슐라가 챙겨주었던 건데-그녀가 요즘 읽는 로맨스소설이 어떤 내용일지 뻔했다-여기서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난 케니스가 갈등 끝에 건네주는 검집을 손수건으로 감싼 손으로 조심히 받아들었다. 그리고 맨손이 닿지 않도록 신경 쓰며 검집을 쥐고 팔을 뻗었다.

토닥토닥.

“ …….”

“ …….”

나는 그렇게 케니스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나뭇가지보단 그래도 이게 낫겠지? 나름의 배려가 듬뿍 담긴 내 토닥임을 받은 케니스는 도무지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음 저기, 그 눈빛은 어떤 의미니.

어째 싸한 바람이 스쳐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 후 방향을 바꿔 케니스는 나를 마차대여소까지 데려다주었고, 합의하에 내가 마차에 올라탄 시점에서 각자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후로 물고기2를 보다 가여이 여기기로 했다. 과거의 행적들도 없었던 일로치고 용서해주기로 하고. 그래, 내가 먼저 팝콘을 콧구멍에 먹여줬었으니까 뭐. 훗…나도 참 대인배란 말야?

스스로의 드넓은 이해심과 포용력에 스스로 감탄하며 돌아온 집 앞에는, 마침 저도 막 귀택했는지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비숏이 있었다. 딱 잘 만났다싶어 막장대회에서 얻었던 외알 안경을 선물로 주자 감격한 표정을 짓는다. 응, 왠지 이 안경을 손에 넣은 순간부터 이건 비숏한테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확실히 어울리긴 잘 어울린다.

전보다 조금 더 연륜이 있어 보이는 것만 빼면…….

“ 흠흠,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학자느낌이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당사자가 몹시 좋아했기에 그 감상은 꺼내지 않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케니스에 대한 라테의 인식변화

전: 재섭는 ㅅㄲ

후: 불쌍한 ㅅㄲ..

+

~카톡~

막내: 언니

나: ㅇ

막내: 남친이 머리띠 사줬는데 흰색 왕리본 달린거

나: ㅇ

막내: 내가 머리띠 안차니까 반항의 의미로 자기가 차고있음..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내: (사진)

나: 미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내: 남자들이 겁나 뜨겁게 쳐다보더라

막내: 고개가 자꾸 돌아감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요즘 듣는 노동요(?): 마마무 girl crush

노래 발랄하고 졓아여!

이어폰 꽂고 이거 들으면서 가다가 횡단보도에서 신호기다리면서 저도 모르게 신명나서 어깨춤췄는데

친구가 쪽팔리다고 일행아닌척함 ㅇㅅㅇ...

말 걸었는데 왜 누구세요라고 해..ㅇㅅㅇ....

+++

놋네눨느 혜성특급 존잼 8ㅁ8 언뎬간 가고말테야!

++++

라프니아님, 니하오안녕님, soulover님, 에블링님, 수상한손님님, 곰하나님, LiNnEeR님, Jeong25님, ii묘ii님, 0네레시스0님, 윤희수님, 검은색눈동자님, 쿠루쿤님, pingno님, 김블리님, Yuiera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 <)/ !

머랄까나....'ㅁ' 죽은 슬슬 질리지만...여러분들의 사랑은 질리지 않는다고나 할까나...? 'ㅁ'~☆ 사랑으 별사탕 빵야빵야☆

*

요즘 막내가 키우기 시작한 햄스터

o(...'ㅅ'...)o <-요렇게 생겼고 이름은 찌찌

찌찌야..잘 지내니..?(아련

0